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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0. (39/74)


Chapter 30.

나란히 선 한 쌍의 무덤은 무척이나 호화로웠다. 존자 전쟁으로부터 수백 년이 넘게 흘렀음에도 세상을 구한 영웅들의 묘를 찾는 발길은 끊이질 않았다.
최초의 대천사 카무이는 멍한 얼굴로 무덤 앞에 앉아 있었다.
일 년 내내 황혼밖에 보이지 않는 중앙의 하늘은 붉었다. 산산이 비산하는 빛 무더기 속에서 카무이는 생각했다.
‘다 소용없구나.’
아무리 무덤을 호화롭게 꾸며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무덤을 찾아도,
아무 소용없었다.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은 이미 오랜 옛날 죽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죽은 후에 바치는 추모는 아무리 많아도 무의미했다.
카무이는 울었다.
몸도 마음도 다 큰 지 오래였지만, 그 옛날 그러했던 것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
아버지이며 어머니.
형이며 누나.
평생에 걸쳐 동경한 남자와, 평생에 걸쳐 사랑한 여자.
흐르던 눈물이 멈췄다. 통곡을 토하던 입에선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카무이의 곁에 검은 정장을 잘 차려 입은 남자 하나가 섰다.
“아름답군요.”
카무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인지했다.
남자는 묘지 앞에 세워진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의 조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살짝 비껴 쓴 중절모는 검은색이었고, 멋들어지게 기른 수염은 머리칼과 매한가지로 검정색이었다.
남자는 카무이의 곁에 앉았다. 지팡이를 휙휙 돌리며 말했다.
“가족을…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죠.”
카무이는 눈동자를 굴렸다. 남자는 그런 카무이에게 서글픈 미소를 보여 주었다.
“생 제르몽입니다. 친한 자들은 천년백작이라고도 부르고, 사기꾼 모자 장수라고도 부르죠.”
“…제 입으로 사기꾼이란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넌 진정 사기꾼이구나.”
생은, 천년백작은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었다. 다시금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의 조각상을 보았다.
“얼마 전에… 제 가족이 죽었습니다.”
“그러한가.”
“네, 저에게 있어서는… 누나라고도, 동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아이였지요.”
생은 허공을 향해 입김을 불었다. 오색의 연기가 쏟아지더니 이내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을 갖추었다.
“착해 보이는군.”
“거기다 예쁘기도 했지요. 성격도 좋고, 의지는 어찌나 강한지. 이름은 아샤랍니다. 생명이라는 뜻인데, 정말 예쁜 이름이죠?”
카무이는 말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생은 계속해서 입김을 불었다. 오색의 연기는 계속해서 여러 사람의 얼굴을 허공에 구성했다.
“저기 무뚝뚝해 보이는 꼬맹이는 펠튼이랍니다. 아샤랑 정말 사이가 좋았죠. 둘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안타까워요. 저기 순둥이처럼 보이는 아이는 캠벨입니다. 케이크 위의 딸기는 꼭 제일 마지막에 먹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졌죠. 그 옆에는 록이고, 다시 그 옆에는 엘란이랍니다. 오른쪽 끝에 있는 여자는 메키도구요. 제가 가족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죠.”
생은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았다. 잠자코 듣던 카무이는 손가락을 놀렸다. 세상의 시스템을 희롱해 빛을 재구성했다. 오색 연기 옆으로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 그리고 그 사이에 선 작은 소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생은 빙긋 웃었다.
“보기 좋네요.”
카무이는 처연한 얼굴로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메마른 목소리를 토했다.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은 인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그 둘의 희생 덕에 인류는 살아남았다.”
자신들의 목숨조차 돌보지 않았던 그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다.
존자 전쟁이라는 사상 최악의 대재앙으로부터 살아남았다.
카무이는 그것이 싫었다.
카무이는 그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생은 오색 연기를 거뒀다. 카무이는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 날의 자신을 보았다.
“생, 사기꾼 모자 장수야. 천 년 동안 지치지 않는 마법사야.”
생은 단숨에 자신의 본질을 파악한 최초의 대천사에게 감탄했다. 카무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의 희생으로 인류는 살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을 위해 인류가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공평하지 않을까?”
이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있다면 그래야 한다.
인류에게 염치라는 것이 있다면 그래야만 한다.
생은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절모를 고쳐 쓰며 사기꾼의 미소를 지었다.
카무이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가락을 놀려 빛 무더기를 흐트러트렸다. 산산이 흩어지는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과 어린 날의 자신에게 인사했다.
결심은 굳혔다.
그렇다면 이제는 행해야 할 때.
최초의 대천사는 돌아섰다. 아침을 그린 희망 호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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