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
존자 전쟁이 끝나던 날, 인간을 지키는 강아지는 해맑게 웃었다.
그 오른쪽 눈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했고, 존자 단탈리안의 독에 당한 왼팔은 그 어떤 마법으로도 재생이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미티어 블루는 기뻐했다.
인류가 살았으니까.
끝끝내 살아남았으니까.
미티어 블루는 귀를 쫑긋 세웠다. 인간 종이 부르는 생명의 노래를 들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 떠나야지.
약속의 땅에는 다신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딘가 발붙일 곳이 있겠지.
“넌 바보야. 이 멍청한 멍멍아.”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미티어 블루는 빙글 돌아섰다. 딱 한 번을 제하고는 존자 전쟁 내내 자신의 곁에 있었으면서 절대 싸움에 나서지 않았던 최강의 동물신을 바라보았다.
“누나, 난 바보가 아냐.”
“충분히 바보야. 네가 그렇게까지 싸울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용신 레드 저지먼트의 명을 어기고 존자 전쟁에 참여한 대가로 미티어 블루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지불해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약해질 대로 약해진 신성과 망가진 육신이 전부였다.
“공물이라도 거둬! 제사도 매일매일 지내게 하고! 네가 참전하지 않았으면 저 잘난 태양의 왕이랑 달의 여왕이 오기도 전에 인류는 멸망했을 거야!”
과장이 아니었다. 분명한 사실이었다. 미티어 블루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끝끝내 헤이스팅스 요새를 지켜 내지 못했을 터였다. 그로 말미암아 중부 전선을 빼앗겼을 터이고, 종국에는 멸망했을 터였다.
열두 존자들 가운데 대부분을 쓰러트린 것은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 그리고 최초의 대천사 카무이였지만, 그들이 활약할 시간을 벌어 준 것은, 진정 인류를 구한 영웅은 미티어 블루였다.
미티어 블루도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미티어 블루는 인간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마음이 없었다. 미티어 블루 자신이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인간 종을 도운 것은 전쟁이 끝난 후 무언가를 얻어 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누나, 나는 인간을 지키는 강아지야.”
미티어 블루는 인간들이 좋았다. 인간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사심 하나 없는 목소리에 최강의 동물신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하얀 고양이 귀를 쫑긋거리며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미티어 블루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그래, 그리고 나는 강아지를 지켜보는 고양이지.”
미티어 블루는 맞은 이마를 어루만지며 히히 웃었다. 강아지를 지켜보는 고양이 묘신 화이트 로커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런데 누나.”
“응?”
“정말,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도 그냥 쳐다보기만 했을 거야?”
화이트 로커스는 저 헤이스팅스 요새 공방전에서조차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미티어 블루의 목숨이 위험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화이트 로커스가 미티어 블루의 곁을 지키지 못했던 단 한 번의 순간처럼, 저 존자 단탈리안과 미티어 블루가 대적했던 순간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했을까.
화이트 로커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가늘고 긴 꼬리를 살랑거리며 미티어 블루를 꼭 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