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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2. (28/74)


Chapter 22.

전쟁이 끝났다.
열두 존자는 모두 소멸했다. 인류는 마침내 승리했다. 살아남았다.
많은 희생이 있었다. 백 수십억을 헤아리던 인류는 이제 천만에도 미치지 못했다. 제네식 플렌트가 존재하는 성지를 제외한 모든 도시가 파괴되었다. 인류는 가족과 친구와 문명과 종교와 그 외 많은 것들을 잃었다.
하지만 승리했다. 살아남았다.
최초의 대천사는 멍한 얼굴로 무덤 앞에 섰다. 나란히 선 무덤은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의 것이었다. 최초의 대천사는, 카무이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억지로나마 웃으며 말했다.
왕이여, 태양의 왕이여, 나의 왕이여.
전쟁이 끝났어요. 당신에게 물려받은 이 주먹으로 마지막 존자를 소멸시켰어요.
여왕이여, 달의 여왕이여, 나의 여왕이여.
당신의 당부를 지켰어요. 당신이 사랑한 세상을 지켜 냈어요.
무덤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카무이는 울었다.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승리했다는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세상을 지켜 냈다는 환희의 눈물이 아니었다.
태양의 왕과 달의 여왕이 보고 싶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한 그들이 보고 싶었다.
카무이는 무덤의 비석을 쓰다듬었다. 차가웠다. 온기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카무이, 세상을 지켜 다오.
카무이, 인류를 부탁한다.
“카무이.”
등 뒤에서 들려온 부름에 카무이는 고개를 돌렸다. 눈물 때문에 뿌옇게 변한 시야 너머로 여자 하나가 보였다. 마술사 같은 복장이었다. 검정 하이힐을 신은 다리는 훤히 드러낸 반면 상의는 제대로 된 정장 차림이었다.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은발은 동그랗게 말려 있었고, 머리 위로는 하얀 토끼귀가 쫑긋 솟아 있었다. 은으로 된 회중시계를 든 여인은 방긋 웃었다. 카무이는 여자를 알았다.
“묘신 패스파인더.”
이상한 나라에서 온 토끼, 길잡이라 불리는 동물신.
여인은 까르르 웃었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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