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rologue. (1/74)


Prologue.

홀 안은 난장판이었다. 곳곳에 오크와 놀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반쯤 썩은 시체의 내음과 혈향이 코끝을 찔렀다.
입구에 선 여인은 숨이 막힌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불만스런 얼굴로 홀 중앙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모습은 꽤나 특이했다. 짙은 갈색 중절모 아래로는 검은 머리칼이 길게 흘러내려 어깨를 스쳤고, 역시 세트인 양 갖춰 입은 조끼와 가죽 바지에는 여기저기 해서 작은 주머니가 열 개도 넘게 매달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허리 뒤쪽에는 채찍이 하나, 양 허리춤에는 각각 하나씩 단검이 둘, 왼쪽 엉덩이 쪽에는 표창을 연상케 하는 짧은 투척용 나이프들을 줄줄이 매달아 두었다.
남자는 엘프 특유의 긴 귀를 쫑긋거리며 돌아섰다.
“재미있군.”
영리해 보이는 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꺼낸 남자의 말에 여자는 퍽이나 그렇다는 듯 한숨을 쉬며 남자에게 다가섰다.
남자 못지않게 여자의 겉모습도 특이했다.
머리끝까지 눌러쓴 베이지색 로브 사이로 살짝 흘러내린 머리칼은 새하얀 순백이었고, 남자를 바라보는 양 눈동자는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각기 색을 달리하였다.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물었다.
“어떤 게 느껴지지?”
“네?”
“이 현장을 보고 알게 된 걸 다 말해 봐.”
꽤나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여자는 또 한 번 되묻는 대신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가 이러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도 했으니까.
“에… 음… 일단… 못해도 청동의 시대… 아니, 영웅의 시대의 유물 같네요.”
반경 30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홀 안에는 기둥 하나 없었다. 거기다 벽과 바닥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현대, 소위 말하는 철의 시대에는 재현 불가능한 과거의 유물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음, 대규모 난전이라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숫자는 엇비슷?”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삼십 구 이상이었다. 거기다 홀 곳곳에 고루고루 나자빠져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비슷한 숫자의 적과 난전을 벌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여자의 대답에 남자는 쯧 하고 가볍게 혀를 차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자는 맞았지만 후자는 완전히 틀렸어.”
“틀렸다니요?”
“이건 난전이 아니야.”
남자는 휙 하고 몸을 돌리더니 다시금 시신들을 돌아보았다.
“시안Xian, 너도 무도를 수련하는 몸이라면 좀 더 동선에 대해 주의 깊게 보도록 해. 이건 난전이 아냐. 다수 대 소수, 아니, 극단적으로 다 대 일의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다. 처음에는 포위전이었지만 이내 상황이 바뀌어서 다수인 쪽이 한 명의 적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모조리 죽어 나자빠진 상황이지. 거기다 더욱 재미있는 건…….”
남자는 발치에 나자빠진 오크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이놈은 가슴이 베여 죽었다. 상처로 보아 무기는 대검. 그리고 저쪽에 나자빠진 놀은 태도류의 병기에 등이 베였고, 저기 있는 고블린 친구는 아무래도 사슬낫에 당한 것 같군.”
“사슬…낫이요?”
“그래, 낫 뒤에 사슬을 달아서 쓰는 병기인데 쓰는 사람이 드문 만큼 상대하기도 더러운 무기지.”
남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저놈은 워해머에 머리가 터져 죽었고, 저놈은 장창에 배가 뚫려 죽었어.”
남자는 머릿속으로 홀 안에서 벌어졌을 살육극을 연상해 보았다. 삼십이 넘는 놀들과 오크들. 놈들에게 포위된 1인.
전투 시간은 극히 짧다. 놀들과 오크들이 절대적인 무력의 차이를 깨닫고 도주를 결심하는데 걸린 시간도 짧다.
단 한 명이 동시에 수많은 병장기를 사용해서 수십에 달하는 놀과 오크 무리를 쓰러트렸다.
남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여자를, 시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홀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저것.”
홀의 끝에는 거대한 오우거가 배가 뚫린 채 죽어 있었다. 못 잡아도 5미터 이상.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일 자이언트 오우거.
배에 뚫린 상처는 컸다. 뭔가에 찔렸다기 보다는 터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일반적인 병기가 아니었다. 장창이나 대검, 사슬낫 그런 것들로 인한 상처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발리스타.
성문을 부수기 위한 공성 병기.
“아니야.”
발리스타가 아니었다. 투사 병기가 아닌 무언가. 훨씬 더 강렬한 공격. 5미터에 달하는 자이언트 오우거를 수 미터 이상 밀어내 벽에 처박을 정도의 공격.
“랜스 차징.”
“…네?”
남자가 저도 모르게 흘린 말에 시안이 되물었지만 남자는 시안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오우거의 시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홀 안이 넓긴 했지만 말을 달릴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설사 말을 타고 있었다고 해도 랜스 차징만으로 자이언트 오우거를 저런 식으로 밀쳐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랜스 차징이었다. 발리스타를 능가하는 위력을 가진 어마어마한 랜스 차징.
남자는 오우거에게 다가갔다. 배와 가슴 사이에 무저갱마냥 뻥 뚫린 상처를 바라보았다.
단신으로 오크와 놀 수십을 제압한 자.
삼두육비의 괴물이라도 된 마냥 온갖 종류의 무기를 동시에 구사한 자.
그리고 파멸적이라 해도 좋을 랜스 차징.
“누굴까?”
중앙은 아니다. 그놈들은 일을 이렇게 처리하지 않는다.
아마도 인간.
그저 철의 시대를 살아가는 1인.
남자는, 로드 발터는 웃었다. 갈색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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