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34화>
234화. 그래도 다행이야 (7)
이성하가 걸음을 옮긴 터널은 지하철 3호선인 잠원역 방면으로 이어지는 철로였다.
길이는 1.2km로 뛰어서 간다면 아무리 요구조자를 부축하고 있더라도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였고, 그게 이성하라면 10분은커녕 5분 내로 주파할 수도 있을 정도로 짧은 거리였다.
“아, 진짜 허 부장님. 축구 경기에 성하 끼는 건 반칙이죠.”
“아니, 성하도 우리 팀인데 왜 반칙이야?”
“몰라서 묻습니까? 인간들 싸움에 괴물이 끼는 게 맞아요?”
“맞습니다. 그냥 괴물도 아니고 천조국까지 씹어 먹는 체력 괴물인데 어떻게 같이 합니까? 그냥 우리가 밥 사고 말지. 아무튼 빼요. 성하 끼면 안 합니다.”
“옳소. 스포츠 승부에 이성하 끼는 건 반대입니다!”
출동 전 족구 시합 때도 그랬지만, 몸을 쓰는 일에서만큼은 같은 서의 모든 소방관들도 그 참여를 배제할 정도로 괴물 체력으로 유명한 게 은평서의 이성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요구조자를 부축하며 나아가는 이성하의 속도는 누가 본다면 걷는 게 아니라 기어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느렸다.
“허억, 허억.”
입에서 새어 나오는 거친 숨소리만큼이나 다친 몸으로, 그것도 요구조자까지 업은 채 걸음을 옮기는 건 막대한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었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갈수록 등에서 올라오는 고통이 심해진다는 거였다.
욱씬.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등에서 치밀어 오르는 격한 통증에.
‘아파…… 너무 아파…… 도저히 걸음을 옮기지 못하겠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자꾸 몸을 굽히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걸음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비틀.
통증 때문에 몸을 제대로 서지 못하지만.
터벅.
그럼에도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 금방 갈게요. 조금만 버텨요…….”
“하아…… 하아…….”
대답은 없지만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리는 요구조자의 숨소리에.
‘가야 해…….’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어느덧 꽤 많은 거리를 이동한 상태였다.
터벅.
이정표도 없고.
터벅. 터벅.
거리를 짐작할 수 있는 지도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많이 온 건가…… 그래. 많이 왔어. 꽤 걸었어…….’
쉴 새 없이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걸음을 내디뎠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은 누가 봐도 무리에 가까웠다.
“이성하! 이 멍청한 새끼야!”
권일섭이 봤다면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둘렀을 무모한 행동이었다.
“안 돼, 성하야. 그러다 진짜 돌이킬 수 없어…….”
김필주가 봤다면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애잔한 모습이었고, 그 때문에 보다 못한 렉스는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성하야, 그냥 구조대 기다리자.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야.]
이성하의 각오를 듣고 자신이 나설 수 없는 신념에 관련된 문제라는 생각에 더는 말리지 못했지만, 지금 이성하의 상태는 더 이상 그냥 두고 볼 상황이 아니었다.
“끄으으…….”
그저 고통에 찬 신음만을 토해 내며 기계같이 앞만 향해 걷는 모습 때문이었다.
“아…….”
털썩.
앞에 쓰러진 잔해더미가 위험하게 튀어나와 있음에도 그대로 걷다가 부딪혀 균형을 잃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고, 그 모습에 렉스는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너 지금 앞도 제대로 안 보이잖아!]
이성하의 시야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
[무시하지 마! 너 지금 의식이 흐리잖아. 앞이 뿌예서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대답은 없었지만 현재 이성하가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라는 걸 단번에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현재 이성하는 대답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하고 있었다.
‘어지러워…… 왜 토할 것 같지…… 아프고 어지러워…….’
뿌옇게 변한 시야뿐만 아니라 지독한 현기증에 주변 환경이 회전하는 것 같은 광경을 보고 있었고, 그 이유는 아직 터널 내에 남아 있는 불길 때문이었다.
화르르르르!
지하철역이 붕괴되며 철로를 막던 불길이 대부분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 그 잔해 밑과 벽에는 약간의 불길이 남아 있었다.
화아아아악!
그 불길이 적게나마 터널 내부에 짙은 연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으며, 안타깝게도 이성하에게는 그 연기를 차단해 줄 공기호흡기가 없는 상태였다.
[제길, 그 요구조자에게 공기호흡기를 주는 게 아니었어. 이렇게 떨어질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공기호흡기를 챙기게 했을 거라고!]
분통에 찬 렉스의 고함처럼 지하철역에 매몰되기 직전, 구조해 나오던 보안관 요구조자에게 착용하고 있던 공기호흡기를 내준 상황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렉스는 지금의 이동이 무리라고 판단했다.
[성하야, 돌아가자. 그냥 열차에서 기다려. 지금은 구조대를 기다리는 게 맞아.]
이성하의 신념은 알지만, 지금으로선 열차에서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고.
이대로 더 움직였다가는 신경 손상만이 아니라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그리고 이번 렉스의 말만은 이성하에게 들린 듯했다.
“안 돼…… 유독가스…….”
유독가스를 말하며 잠시 걸음을 멈추는 이성하의 모습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거의 업다시피 부축하던 요구조자를 바닥에 앉히는 모습에.
[제길…… 그래. 어쩔 수 없어.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서 기다리는 게 최선이야.]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돌아가기 위해 멈춘 게 아니었다.
“요구조자…….”
혹시 모를 요구조자의 상태를 걱정해 멈춘 거였다.
“일산화탄소 중독 증상이야…….”
렉스의 말을 들은 게 아니라 본인의 상태로 유독가스가 터널 내에 찬 사실을 깨달았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요구조자를 앉히고는 입고 있던 당근복을 벗었다.
“어머니, 조금만 참아요, 조금만.”
자신은 몰라도 요구조자가 유독가스를 흡입하는 건 막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하면 괜찮을 거예요…….”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은 덕분에 요구조자의 얼굴을 더듬거리며 방금 벗은 당근복으로 그 입과 코를 가리게 했으며, 그러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 이제 다시 가요…….”
어떻게든 부축하고 있는 요구조자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이성하!!]
“조금만 가면 돼요…… 조금만…… 조금만…….”
어떻게든 자신의 손으로 전해지는 가냘픈 생명의 기운이 꺼지지 않기 위해, 또다시 요구조자를 부축하며 걸음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카가가각!
“더 뚫어! 그대로 잘라서 들어내!!”
바로 이성하를 구출하기 위해 지상에서 잔해를 들어내는 소방관들이었다.
“굴착기 언제 도착한데!”
“여기 인원 더 필요합니다!”
“우선 들어내! 맨손으로라도 들어서 옮겨!”
어떻게든 지하철역 밑으로 향하는 길을 뚫기 위해 수백 명의 소방관들이 전부 모여서 잔해를 들어내고 있었고, 그런 열정적인 모습과 다르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성민아, 얼마나 뚫었어?”
“아직 지하 1층 뚫는 중입니다.”
“뭐? 아직도 지하 1층이야? 좀 더 빨리 안 돼?”
“안타깝게도 지반이 불안정해서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대장님.”
“제기랄!”
도성민의 보고를 듣고 분통을 터트리는 권일섭의 모습처럼, 지반이 불안정한 덕분에 잔해물 제거 작업이 난항을 겪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황이 방금 돌변했다.
- 여기는 성남대. 막 현장에 도착했다.
한창 작업이 진행 중인 와중에 현장을 울린 무전 때문이었다.
- 용인대 도착 3분 전입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 화성대도 왔습니다. 좀만 기다려 주십쇼.
그 무전을 시작으로 연이어 다른 소방대들의 무전도 뒤를 이었으며, 그에 잔해물을 제거하는 소방관들의 손에는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에에에엥!
“지원 팀이다!”
“경기도 놈들이 왔어!”
거리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증명하는 것처럼, 드디어 권일섭이 노상일 본부장에게 요청했던 경기도의 소방관들이 동안고속터미널역으로 지원을 온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잔해물 제거에 속도가 붙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성남대 17명! 돕겠습니다!”
“용인대 21명입니다! 지휘 내려 주십쇼!”
속속들이 도착해 잔해물 제거에 힘을 쏟는 소방관들이 늘어가기 시작해서였고, 그에 권일섭은 비로소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 지하 2층까지 뚫었습니다!”
“정말이야?”
“네, 잠시 후면 3층으로 향하는 진입로 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방금 전과 달리 환한 표정으로 보고를 하는 도성민의 말처럼, 비로소 매몰된 지하층으로의 접근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권 대장님, 이성하 대원이 찬 신호기의 위치가 이상합니다!”
다급한 표정으로 지휘막사에서 달려온 소방관이 노트북을 들어 보였다.
“방금까지 가만히 있던 신호가 위쪽으로 움직입니다. 여기요.”
노트북에 보이는 빨간 점을 가리키며 이성하의 위치에 변동이 생겼다고 말했고, 그에 권일섭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합니까? 이거 오류 아니에요?”
건물에 매몰된 상황에서는 움직이지 않고 대기하는 게 상식이라서였다.
‘첫 붕괴에서 공간을 유지한 곳이 가장 튼튼해. 그걸 모를 놈이 아닌데…….’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면 원 위치에서 대기하며 구조를 기다리는 게 붕괴 상황에서 수없이 강조하는 대처 매뉴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동 경로 또한 이상했다.
‘위쪽?’
GPS의 이동 그래프를 보니 그 방향이 위쪽이었다.
“선로! 이거 선로로 탈출하는 거 같은데요? 이동 경로가 잠원역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선로와 같습니다. 이 자식. 요구조자를 데리고 탈출하나 봅니다! 선로 쪽을 막고 있던 불이 꺼진 겁니다, 대장님!”
지도와 그 이동 경로를 비교해 본 양유철은 이성하가 불길이 꺼진 선로를 통해 탈출하는 거라며 화색을 지었지만, 권일섭은 굳은 표정으로 보고한 대원을 바라봤다.
“이 신호기 언제부터 이동한 겁니까?”
“네?”
“이성하 이동이요. 움직임 보이고 여기까지 이동하는 데 얼마나 걸렸냐고요.”
신호기가 이동한 게 언제부터냐고.
원래 있던 곳에서 지금 여기까지 이동하는 데 얼마나 걸렸냐고.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말에 권일섭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3, 30분 정도입니다!”
“30분?”
“네, 그 전에도 움직임이 있긴 했는데, 이렇게 직선 움직임을 보인 건 딱 31분 됐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 위치고요.”
현재 이성하가 이동한 거리는 700m 정도였다.
느긋하게 걸어서 가도 10분이면 갈 거리를 무려 30분이나 걸려서 이동한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권일섭은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지금 당장 잠원역으로 이동한다!”
“뭐, 뭐라고요?”
“지금 요구조자 아니면 이성하가 심한 부상을 입은 거야. 아니라면 이 속도가 말이 안 돼. 지금 이 자식 우리에게 구조요청을 보내는 거야! 빨리 와 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거란 말이야!”
본능적으로 요구조자 혹은 이성하가 심한 부상을 입고 이동 중이라는 걸 단번에 깨달은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성하라는 걸 알았다.
“대장님, 이거 성하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운전해! 빨리!”
황급히 운전대를 잡은 허석훈조차 부상자가 이성하라는 걸 알아챌 만큼, 어찌 보면 당연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요구조자는 여성이었어…… 그리고 부상자야…… 그런 부상자가 체구가 건장한 이성하를 옮기는 건 말이 안 돼…….’
이성하가 안고 떨어진 요구조자가 여성이라는 것을, 그것도 이미 부상을 입고 걷기조차 힘들어하던 상황이라는 건 이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목격한 일이었고, 그 때문에 권일섭을 비롯한 은평대는 빠르게 이성하의 목적지로 예상되는 잠원역을 향했다.
“빨리 내려가!”
“왼쪽이야, 왼쪽!”
잠원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장비를 챙겨 계단을 날듯이 승강장 쪽으로 뛰어내려갔으며, 그렇게 도착한 승강장에서 바로 선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제길!”
안 봐도 힘겨운 표정으로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을 이성하가 떠올랐기에.
“이쪽으로 오고 있을 거야! 바로 진입해!”
“네!!”
모두 망설임 없이 이성하를 구하기 위해 선로 아래로 몸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날린 은평대는 그 다급한 모습과 다르게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이, 이성하…….”
어두운 터널 속에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방화복은 어디로 갔는지, 몸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요구조자를 부축하며 걸음을 옮기는 이성하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고.
“제길, 이성하!”
그에 가장 먼저 허석훈이 달려가 그런 이성하를 부축하려 했지만, 이성하는 그 손길을 거절했다.
“가, 가야 해…….”
허석훈이 보이지 않는지 요구조자를 부축한 채 계속 걸음을 옮겼다.
“서, 성하야…….”
당황한 허석훈이 뒤돌아 불렀음에도.
“허억, 허억.”
그대로 계속 걸음을 옮기는 이성하였고.
“너 왜 그래!”
“이성하!”
그 모습에 김필주와 도성민이 이성하를 옆에서 붙들었지만, 이성하는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려 했다.
“또 뭐야…… 가야 해…….”
그저 앞으로 가는 것만이 자신의 길이라고 여기는 모습이었고, 그에 권일섭이 다가가 이성하를 꼭 끌어안았다.
“도착했다…… 너 도착했다고!”
절규에 찬 고함을 지르며 이성하의 몸을 부서질 듯 껴안았으며, 그에 이성하는 드디어 걸음을 멈췄다.
“왔네요…….”
멍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었다.
“이 자식…….”
“믿었습니다, 대장님. 올 거라고…….”
분루에 차 있는 권일섭의 말에 씨익 웃으며 하는 말이었고, 그렇게 이성하는 그대로 선 채로 정신을 잃었다.
“이성하!!”
자신의 임무는 다했기에.
[제길…….]
그대로 웃으며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걸음을 드디어 정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