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33화>
233화. 그래도 다행이야 (6)
‘에이, 설마…… 방금까지도 움직였는데.’
이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없을 거라며 살짝 고개를 저었지만, 몸은 정직했다.
부들부들.
렉스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 손이 더욱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아니야. 그런 일은 없어.’
그래도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들었지만.
찌릿.
“커헉.”
다시 한번 등에서 치밀어 오르는 격통에 비명을 토했고, 그에 이성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다…… 등 쪽에 문제가 생겼어…….’
몸을 움직이려 할 때마다 온몸을 휘감는 고통에 자신이 정말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물론 목숨이 위중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아예 움직일 수 없는 건 아니야.’
아까도 혼자 위층을 다녀온 것처럼 고통은 있어도 몸을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니라서였다.
‘내부에 출혈도 발생하지는 않았어.’
게다가 가만히 있을 때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신경 외에 다른 문제는 없어 보이는 상황.
하지만 그 신경이 문제였다.
‘신경 손상은 100퍼센트 회복이 되질 않는다고 했나.’
신경은 재활을 하면서 회복 기간을 거치면 어느 정도 호전은 되더라도 다치기 전으로 100퍼센트 회복이 불가능한 기관이었다.
몸 전체의 감각과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인 만큼, 그 쓰임새와 역할이 방대해 아직 현대의 의학기술로도 완벽한 치료와 복구가 불가능한 기관이 신경이었고, 그 때문에 신경 부상이 확실한 경우 무조건 안정을 취하고 병원으로 옮길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정석이었다.
덜덜덜덜.
‘완전한 회복이 힘들다…….’
지금도 계속 떨리는 손의 움직임처럼 무리하면 무리할수록 손상의 정도가 커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게 신경 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이성하는 몇 번이고 현장에 있으면서 지켜봐 왔다.
‘내 전의 선배님이 신경 손상으로 입원하셨다고 했나…….’
처음 소방관으로 임용되며 배치됐던 길현대 시절에도.
‘재작년 구조대에 있던 선배님도 신경 손상으로 재활 치료 중이라고 했었지.’
지금 있는 은평소방서에도 그런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재활 중인 선배가 몇 명이 있다고 들었고, 안타깝게도 그중 복귀에 성공한 선배는 없다고 들었다.
“명훈 선배?”
“네, 저 있기 전까지 길현대에 있던 선배님이요. 그 선배님은 복귀 안하십니까?”
“하려고는 하시는데 아직 힘들어.”
“아직 힘들다고요?
“어. 신경은 완쾌가 쉬운 부위가 아니잖아. 꽤 많이 좋아지셨다고 했는데 아직 다리를 저시거든.”
자신이 길현대에 들어가기 전 신경 손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선배 역시 아직도 재활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자신 역시 지금 무리하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 보였다.
찌릿.
아니, 등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생각하면 확실했다.
‘이거 진짜 장난 아니네.’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무언가 잘못될 것 같다는 섬뜩한 느낌이 자꾸 뇌리에 경종을 울려 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끄응.’
이성하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손을 움직였다.
까닥, 까닥.
‘움직이는 건 가능해.’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피며 다시 몸 상태를 점검했고, 그러고는 입고 있는 방화복의 상의를 풀어헤쳤다.
‘무게를 줄여야 해.’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철컥.
상의뿐만 아니라 하의까지 벗으며 헬멧과 허리에 찬 신호기를 제외한 모든 장비를 탈착했으며, 그렇게 몸을 가볍게 하고는 쓰러져 있는 요구조자에게 다시 팔을 뻗었다.
찌릿.
‘커헉…….’
그 동작에 다시 등에서 섬뜩한 고통이 온몸 전체를 휘감았지만.
“하하. 어머니, 괜찮으시죠?”
기어코 요구조자를 부축하며 웃음을 지었고, 그 이유는 하나였다.
“허억, 허억. 연주…….”
계속해서 자신의 딸을 찾는 요구조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연주…….”
힘이 다해 가는지 이제는 눈도 뜨지 못하고 딸의 이름만 부르는 요구조자의 모습에.
“조금만 버티세요, 어머니. 곧 연주 보게 해 드릴게요.”
억지로 고통을 참아가며 발걸음을 옮겼으며, 그 방향은 당연히 잔해물 속에 파묻혀 있는 열차 쪽이었다.
‘가야 해…… 빨리 병원으로 옮기지 못하면 사망할지도 몰라.’
서서히 한계에 달해 가는 요구조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아가며 열차 안으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른 고통은 엄청났다.
“허억, 허억.”
최대한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방화복을 벗었지만, 거의 실신한 거나 다름없는 요구조자를 데리고 이동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찌릿.
게다가 혼자일 때는 견딜 만했지만 요구조자를 데리고 이동하다 보니 등 쪽에서 전해지는 아픔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열차가 위로 이어지는 경사 부분에서는 올라가던 도중에 균형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어엇!”
트드득.
고통 때문에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다 보니, 올라가던 도중 부축하던 요구조자를 손에서 놓치는 일이 발생했으니까.
“젠장!”
화아아악!
다행히 이성하가 빨리 몸을 날려 미끄러지던 요구조자를 잡아냈지만, 자칫하면 요구조자와 이성하 모두 크게 다칠 뻔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이성하, 괜찮냐!]
‘괘, 괜찮아요!’
[제길, 뭐가 괜찮아. 가슴을 좌석에 정통으로 부딪쳤잖아!]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렉스가 고함을 지른 것처럼, 무방비로 밑으로 떨어질 뻔한 요구조자의 상황도 문제였지만, 그런 요구조자를 잡기 위해 이성하가 몸을 날리다가 좌석에 강하게 부딪힌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스으윽. 스으윽.
그저 지금 해야 할 일은 요구조자를 데리고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는 것만이 전부라는 듯, 다시 요구조자를 부축하고 경사진 열차 안을 올랐으며.
[이성하!]
그 행동에 렉스가 다시 고함을 질렀지만, 이성하는 그런 렉스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허억, 허억. 안 말렸잖아요.’
[……뭐?]
‘처음에 안 말렸잖아요. 그럼 제 판단을 존중한다는 거 아니었어요?’
평소라면 안 된다며 고함을 질렀을 렉스가 지금까지 조용히 침묵해 있었다.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
딱 그 한마디만을 건넨 채 지금까지 이성하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듯 조용히 있었고, 그 이유는 이성하의 선택에 따라 요구조자의 생명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제길, 그럼 내가 뭐라고 말해! 혹시 장애가 남을지 모르니 요구조자를 버리라고? 아니면 네가 다시는 못 걷게 되더라도 요구조자를 구하라고? 그걸 내가 어떻게 말해! 요구조자는 구해야 하는데. 구하게 되면 네가 다시는…… 네가 다시는 못 걷게 된다고 어떻게 말하냔 말이야!]
그에 성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렉스의 말처럼 눈앞의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가는 이성하의 몸에 장애가 남을지 모르는 게 확실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피식 웃었다.
‘장애? 그까짓 거 남으면 어때요? 후회하는 거보단 낫잖아요.’
생각해 봤었다.
요구조자를 포기하고 혼자만 살아남는다면 어떠할지를.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서 느낀 건.
‘평생 지금의 선택을 후회할 거야.’
그런 선택을 하게 되면 평생 후회 속에 살게 된다는 거였다.
지키지 못했다는 후회.
그때 시도라도 해 봤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
그리고 그렇게 요구조자를 구하지 못했음에도 소방관으로서 계속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려지지 않았고, 그때 떠오른 게 자신이 소방관이 된 계기였다.
양발에 관창을 움켜쥔 채 용맹하게 날개를 치켜든 새매 마크도.
그런 새매를 가슴에 단체 현장에 출동하는 주황빛 제복을 입은 소방관들의 모습이 멋있어 이 길을 걷게 된 것도 있지만, 그걸 입은 게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아빠였기에 이 길을 택했다.
“아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아빠는 넘어져 울고 있는 자신을 번쩍 안아 주며 강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힘센 사람?”
“하하하. 물론 힘이 센 사람도 강하긴 하지. 그런데 힘보다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야.”
울음을 그치고 힘이 센 사람이 아니냐고 묻는 자신의 모습에 씨익 웃으며 힘보다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마음?”
“응, 힘만 센 사람은 보통 자신보다 강한 힘에 쉽게 무릎을 꿇거든. 하지만 마음이 강한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닥쳐도 그걸 극복하기 위해 나아가.”
그 마음이 강하다는 게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닥쳐도 그걸 극복하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에이, 그건 아빠 이야기잖아.”
이내 그게 아빠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걸 깨닫고 그게 뭐냐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 말을 아빠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하하하. 맞아. 이 아빠의 이야기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말이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들도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런 스스로를 아들인 이성하가 닮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며, 그 주체는 소방관이 아니라고 말했다.
“딱히 소방관이 아니더라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따뜻한 사람. 그런 강한 사람이 돼야 해. 알겠지, 성하야?”
그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면 된다고.
그리고 그게 강한 사람이라고.
“귀하는 소방공무원 교육 훈련 규정 제5조에 의거. 중앙소방학교 제86기 신임 교육과정반 교육 훈련을 마쳤으므로 이 증서를 드립니다. 2013년 12월 20일 중앙소방학교장 이경민. 축하합니다.”
“안! 전!”
물론 그런 아빠를 존경해 소방관의 길을 걷게 됐지만, 아빠와 약속한 건 단순히 소방관이 된다는 게 아니었다.
“응, 아빠.”
자신은 아빠에게 소방관이 아니라,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위험에 처한 사람을 버리는 소방관이 아니라.
꽈아아악.
지금 요구조자의 몸을 잡고 있는 이 손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아빠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끄으으으.’
손을 뻗을 때마다 온몸을 휘감는 끔찍한 고통에도.
터억.
계속 위로 올라가기 위해 손을 뻗었으며, 그렇게 이성하는 계속해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 제가 꼭 살려 드릴게요.’
요구조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연주…… 연주…….”
잘 들리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계속 딸의 이름을 부르는 저 요구조자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허억, 허억.”
필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요구조자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다.
휘이이이잉.
좀 전에 혼자 올라와 느낄 수 있었던 그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게 느껴졌고, 그 느낌에 이성하는 그대로 쉬지도 않고 바람이 불어오는 철로 안으로 바로 걸음을 옮겼다.
‘할 수 있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절대 죽게 하지 않아.’
어떻게든 요구조자가 생명을 잃기 전에 밖으로 빠져나가겠다는 일념하에, 또다시 어두운 터널 속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