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32화>
232화. 그래도 다행이야 (5)
내출혈은 강한 외부의 충격에 의해 신체의 장기가 손상을 입었을 때 발생하는 증상이었다.
나이나 질병의 문제로 혈관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교통사고와 같은 외부 충격에 의해 압력을 견디지 못한 신체 내부의 장기가 파열되며 출혈이 발생하는 증상.
그리고 이런 내출혈은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가장 숱하게 접하는 환자들의 증상이면서도, 가장 질색하는 증상이었다.
[끄응, 분명 겉으로는 아무 상처가 없었는데.]
떨떠름해하는 렉스의 말처럼 외부로 드러나는 부상 흔적이 없는 증상이라서였다.
골절처럼 부상 상태가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증상이 이 내출혈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신체 외부의 상처라면 모를까 내부에서 발생한 출혈을 의사도 아닌 이성하가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성하는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하며 억지로라도 말을 듣지 않는 몸을 강제로 일으켰다.
“허억, 허억, 응급처치해야 해.”
직접적인 처치는 못 하더라도, 최대한 요구조자의 상태가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해 응급처치를 하기 위함이었다.
부들부들.
피는 토하지 않지만 아직도 계속해서 미세한 쇼크 증상을 내보이는 게 요구조자의 상태였기에.
“끄으으.”
의식이 없는 요구조자의 몸에 팔을 뻗어 요구조자가 입고 있던 옷의 단추와 허리띠를 풀었고.
‘다, 다리!’
그러고는 요구조자의 다리를 들어 올려 요구조자의 혈액이 머리와 상체 쪽으로 쏠리게 했다.
‘이러면 시간을 벌 수 있어…… 이렇게 하면 혈압이 유지돼서 최악의 상황만은 막을 수 있을 거야.’
선배들이 올 때까지는 어떻게든 시간을 버는 것만이 최선이었기에, 필사적으로 소방관이 되며 배웠던 쇼크 환자의 응급처치 법을 요구조자에게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변화되는 요구조자의 상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아직 미세한 경련은 여전하지만 조금은 호흡이 편해진 듯한 요구조자의 상태 때문이었다.
“여, 여기가 어디예요…….”
고통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정신을 잃고 있던 요구조자가 힘겹게 눈을 떠 상황을 물었고, 그에 이성하는 억지로나마 환한 표정을 지으며 요구조자의 손을 잡았다.
“다행입니다, 어머니. 여기 지하예요. 지하.”
부상을 입은 요구조자를 최대한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콜록, 콜록. 지, 지하…….”
“네, 어머니, 기억 안 나세요? 따님 구하고 우리 밑으로 떨어진 거.”
“맞아요, 내 딸…… 고마워요, 소방관님…….”
요구조자가 정신을 잃기 전 그토록 걱정하던 딸이 무사하다는 걸 떠올리게 해, 요구조자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우리도 곧 구조될 수 있을 거예요. 곧 구조대가 올 거예요, 어머니.”
어떻게든 요구조자가 버틸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구조대의 존재를 언급했다.
“……구, 구조대요?”
“네. 방금 무전으로 연락받았습니다. 지금 구하러 오고 있대요. 조금만 버티시면 돼요. 나가서 따님 안아 주셔야죠.”
구조대가 온다고.
실제로는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했지만, 곧 구조대가 달려와 요구조자가 그토록 사랑하던 딸을 다시 보게 해 줄 거라고.
그리고 그 말에 요구조자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나가야죠. 콜록 콜록.”
고통 때문에 기침을 토하긴 했지만, 사랑하는 딸의 존재가 다시 떠오름에 조금이나마 힘을 찾은 모습이었다.
“허억, 허억. 우리 연주 울보라서 지금쯤 엄마 엄청 찾을 거예요. 호호…….”
그렇게도 딸이 소중한지, 지금쯤 안전한 곳에 있을 딸의 이름을 부르며 연신 웃음을 흘리는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에 이성하는 고개를 돌려야 했다.
[못 버틸 거다…….]
씁쓸해하는 렉스의 말처럼 그 바람이 가망이 없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쇼크까지 일으켰다는 건 단순한 내출혈이 아니야. 최소 장기 하나는 무조건 파열된 거야. 안타깝지만 복강내출혈이다.]
렉스가 아까도 언급했지만 단순한 내부출혈이 아니라 장기 파열로 복강에 피가 고이기 시작한 게 요구조자의 상태였고,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요구조자의 생명을 장담할 수 없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1시간? 아니,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어.]
‘그보다 짧다고요?’
[그래. 벌써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했어. 출혈량이 꽤 된다는 거지. 빨리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심정지가 올 거다.]
‘하…….’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출혈 때문에 바로 심정지가 올 수도 있는 게 요구조자의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길……’
조금이라도 빨리 선배들이 도착해 줬으면 하는 바람에, 지상이 있는 위쪽을 바라봤지만, 매몰된 구조물을 파헤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이성하였다.
‘지반이 너무 약해. 이런 상황이라면 최소 4시간…… 아니 6시간은 더 걸릴 거야.’
안 좋은 지반의 상태를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선배들이 시간 내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결국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방법이 없어…….’
요구조자가 죽어 가는 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연주야…… 연주야…….”
저렇게나 다시 딸을 보고 싶어 하는 요구조자의 바람에도, 그저 지켜만 봐야 한다는 이 무력한 상황에.
‘제길…….’
소방관으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반짝.
순간 잔해물 사이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삐삐삐삐.
신호기에서 울리는 불빛에 무언가가 반짝이는 거였고, 그에 헬멧에 붙은 라이트를 가까이 대본 이성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열차…….’
잔해물 사이로 가장 먼저 떨어진 열차가 파묻혀 있어서였다.
9호선 밑으로 떨어진 3호선 열차가 잔해물에 파묻힌 채 발밑에 있는 상태였고.
화아아아악.
그에 라이트를 깊이 비춰 보자 열차의 끝부분이 위를 향해 있는 게 보였다.
[이거 뭐야…… 위층으로 연결된 건가……?]
렉스의 말처럼 잔해물 사이로 보이는 열차의 끝부분이 위로 연결돼 있던 거였으며, 그에 이성하는 조금도 주저 않고 잔해물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위층…… 위층으로 갈 수 있어.”
정말 열차가 위층으로 연결이 돼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주변을 감싼 붕괴 잔해물에 열차의 대부분이 가려 있는 상황이었기에.
“끄으으으.”
억지로 잔해 속으로 밀어 넣어 열차의 깨진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들어가 보게 된 광경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위로 향해 있어…….”
정말 열차의 내부가 위로 연결돼, 길이 있던 상황인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주저 없이 움직였다.
‘올라가 볼게요.’
혹시라도 요구조자를 옮길 수 있는 희망이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뭐?]
‘확인해야죠. 이쪽으로 나갈 수 있는지를.’
아래층은 전부 잔해물로 막혀 있는 상태였지만, 열차가 있는 위층은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끄으으.”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아 가며 열차의 위쪽으로 올라갔고, 그렇게 올라가 확인한 광경에 두 눈을 빛냈다.
‘철로.’
열려 있는 기관실의 창문 너머로 열차가 다니는 철로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불길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겠지만.
휘이이이잉.
이제는 흘러나오는 바람 소리처럼 불이 꺼진 상황이었으며, 그에 이성하는 다시 주저 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저기로 간다면 살릴 수 있어! 살릴 수 있다고!’
그저 지켜만 봐야 한다고 절망만 하던 상황에서, 드디어 찾아온 실낱같은 희망에.
[뛰지 마!]
‘빨리 가야 해요!’
단번에 몸을 움직여 요구조자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다르게 이성하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어머니, 나갈 수 있어요. 길을 찾았어요.”
어떻게든 요구조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쓰러져 있는 요구조자를 부축하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어…….”
이상하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콜록, 콜록. 소방관님.”
“어머니, 잠시만요. 손이 저려서 그런가 봐요. 하하하.”
오늘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가라는 생각에, 걱정하는 요구조자에게 웃음을 보이며 몇 번 손을 쥐어 보고 다시 요구조자를 부축하려 했음에도.
‘이, 이게 왜 이러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건 여전한 상황이었고.
“어머니, 제가 팔을 목에 걸어서 들게요.”
그 때문에 좀 더 힘을 제대로 줘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앞으로 숙이는 순간.
찌릿.
등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에 그대로 앞으로 거꾸러졌다.
“커헉…….”
혼자 움직일 때는 짧게나마 욱신거렸던 몸의 통증이, 요구조자를 일으키기 위해 힘을 쓰는 순간 몸을 제대로 휘감은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 렉스는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신경 쪽 문제야.]
혼자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 심한 상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처럼 고통을 토하는 모습을 보면 등 쪽 신경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끄으으으…….”
그것도 몸을 숙이는 가벼운 동작에도 저렇게 온몸을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면, 운동, 감각, 자율 신경을 모두 포함하는 척수 신경이 문제가 생긴 듯 보였고, 그런 상황이라면 지금 이성하는 움직여서는 안 되는 상태였다.
[안 돼, 가만히 있어!]
‘끄응, 갑자기 왜 그래요?’
[혹시나 했지만 단순한 부상이 아니야. 너 중추 신경이 다친 걸 수도 있어. 지금 무리하다가는 다시는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몸 전체의 운동 신경을 컨트롤하는 척수 신경이 다친 상황에서 무리하게 움직였다가는,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냥 조금 뜨끔한 건데.’
그 말에 이성하가 괜한 소리를 한다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렉스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너 손 떨리고 있어.]
다친 부위는 등인데도 불구하고, 손에 경련이 일어나는 이성하의 상태 때문이었다.
덜덜덜덜.
자세히 보면 손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는 상황이었고, 그 모습에 렉스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동료가 옛날 너와 같은 상태였어. 너 지금 무리하면 다시는 못 걷게 될 수도 있어.]
단순한 의학적 지식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예전에 같은 증상을 겪은 동료를 봤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모, 못 걷는다고요?’
[그래. 내 동료는 다시 못 걸었다. 손상된 신경은 돌아오지 않아.]
그 때문에 다시 묻는 이성하의 물음에도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말해 줬으며, 그에 이성하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못 걷는다…… 내가?’
지금 무리하면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된다는 렉스의 말이 심장에 꽂히듯 박혀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