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31화 (231/235)

<강철 소방대 231화>

231화. 그래도 다행이야 (4)

지하철 화재는 사람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끔찍한 재난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대중교통 중 가장 많은 사용량을 자랑하는 게 지하철인 만큼, 한 번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 인명 피해가 자동으로 따라붙는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런 인명 피해를 직접적으로 겪어 본 나라였다.

- 흐윽, 저 안에 제 딸이 있어요!

- 이거 놔! 가족이 저 안에 있다고!

- 으허허헝. 금방 온다고 했는데! 금방 온다고 했다고요, 흐윽.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대한민국 전체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대구지하철 참사의 아픔이 아직도 생생한 나라가 바로 이 대한민국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대구지하철 참사 역시, 지하철역이 붕괴되는 상황은 없었다.

콰르르르르!

“여, 역이 무너진다!”

“모두 달려!!”

“밖으로 나가요! 빨리!!”

지금처럼 불길이 아닌, 무너지는 역을 피해 탈출하는 경우는 이때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없던 상황이었고, 그러던 도중 결국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보, 본부장님. 이 소방관이 요구조자와 함께 지하철역에 매몰됐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안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 요구조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동료 소방관들이 말렸지만 요구조자의 비명에 결국 혼자 내부로 진입했고, 다행히 아이 한 명을 구하기는 했지만 그대로 매몰되는 지반과 같이 밑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피를 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요구조자 한 명과 소방관 한 명이 무너지는 지하철역에 같이 매몰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상황을 보고받은 본부장이 성난 표정으로 지휘막사를 벗어난 건 당연했다.

“마, 말도 안 돼…….”

밑으로 떨어진 소방관이 그가 평생의 짐을 느끼고 있는 부하대원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양 팀장! 어떻게 된 겁니까! 이성하는 어떻게 된 거예요!!”

그랬기에 막 지하철역 입구로 빠져나오는 양유철을 보고 달려가 자신이 들은 보고가 잘못되기를 바라며 고함을 질렀지만, 그 바람과 다르게 보고는 거짓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양유철이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제가 곁에 있어야 했는데 데리고 나오지 못했어요…….”

이성하를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게 자신의 잘못이라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었고.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 자식 괴물이잖아. 그러니까 지금 나오고 있을 거야…….”

그 말에도 노상일은 믿지 못한다며 이성하를 찾기 위해 막 양유철의 뒤로 보이는 역사 입구로 들어가려 했지만.

콰르르르르.

안타깝게도 계단 밑으로의 지반은 이미 무너진 상황이었다.

파각, 파각.

심지어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위치 역시 무너지려는 듯 불길한 소리가 발밑에서 울리고 있었고, 그에 노상일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제길…….’

마음은 당장이라도 이성하가 매몰됐다는 역사 내부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전원 대피시켜! 요구조자들 먼저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알겠습니다!”

그 무엇보다 구조한 요구조자들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현장에 있는 모든 소방관들에게 대피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조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아직 살아 있을 거야. 그놈이라면 절대 죽지 않아.’

그가 아는 이성하는 그 어떤 지옥 같은 재난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생환한 소방관이었다.

에베레스트, 동아백화점, 시어스 타워 등, 목숨이 몇 개가 있더라도 부족한 현장에서 악착같이 사람들을 구하며 돌아왔기에 아이언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방관이 이성하였고,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노상일만이 아니었다.

“지반 안정화되면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지하철역의 반대편 입구에서 빠져나온 권일섭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서울과 경기 지역의 모든 인력을 이쪽으로 모아 주십쇼.”

노상일의 위치인 본부장의 힘을 이용해 서울과 경기 지역의 모든 소방관들을 이곳에 모아 줄 것을 요구했으며, 그런 권일섭의 뒤로는 이미 많은 소방관들이 서 있었다.

“명령만 내려 주시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성하가 소속된 은평대였다.

“허투루 죽을 놈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본 그 친구라면 쉽게 죽을 리가 없습니다.”

그 옆으로 양유철이 이끄는 특수구조대 또한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붙이며 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 요구조자들을 대피시킨 소방관들 역시 차츰차츰 모여들었다.

“저희도 준비됐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시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본부장님!”

그들 또한 아직 이성하가 살아 있을 거라고 의견을 밝히며, 한시라도 빨리 구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의지를 불태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방관들의 생각처럼 이성하는 아직 살아 있었다.

“끄으으…….”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에 신음을 토하고는 있었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입가에는 내뱉는 신음과 다르게 웃음이 어려 있었다.

‘그래도 살렸어.’

이성하의 옆으로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여성 때문이었다.

“하아…… 하아…….”

가냘프게 토해지는 숨소리를 보면 여성 역시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몇 미터나 되는지 모르는 까마득한 지하로 떨어졌음에도 둘 모두 살아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며 씨익 웃음을 지었고, 그런 두 사람의 위로는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가 불안하게 걸려 있었다.

“하하하…… 운이 좋았어. 진짜 다행이었네.”

떨어진 충격에 살아남은 것도 다행이었지만,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 하나가 다른 층의 지반에 걸려 위쪽에서 떨어지는 잔해를 막아 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렉스가 고함을 질렀다.

[뭐가 다행이야, 인마! 지금 네 몸 상태 몰라!]

입고 있는 방화복조차 곳곳이 찢어질 정도로 이성하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뭐가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 고함에 이성하가 괜찮다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어? 왜 이러지…….”

여전히 쓰러진 상태로 멍한 표정을 짓는 모습처럼 이성하는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뭐가 왜 이래야? 너 떨어진 깊이만 20m야!]

렉스의 말처럼 20m나 되는 높이를 그대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것도 그냥 떨어진 게 아니라 요구조자 보호하려고 너 혼자서 떨어지는 충격을 다 받아 냈잖아!]

심지어 답답한 듯 토해지는 렉스의 말처럼 옆에 있는 요구조자를 보호하기 위해 떨어질 때의 충격을 이성하 혼자 등으로 전부 받아 낸 상태였고, 그 때문에 현재 이성하는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아니, 움직이면 안 됐다.

찌릿.

‘드, 등이…….’

요구조자를 끌어안은 채 20m나 되는 어마어마한 높이를, 그것도 무방비로 그 높이를 그대로 떨어진 탓에 등 쪽의 신경에 문제가 생긴 상황인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일어나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을 견디는 정도야 익숙한 일이었기에, 참고 일어나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미친놈아! 등 부상은 신경이야! 신경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끄응, 알겠어요.’

렉스의 말처럼 신경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는 만큼, 온몸에 힘을 풀고 편한 자세를 유지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삶에 대한 희망을 놓은 건 아니었다.

‘뭐,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없겠네.’

어차피 몸을 일으킨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그냥 휴식을 취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몸에 힘을 뺀 거였다.

‘9호선 천장이 무너졌다고 했으니까 여긴 지하 5층인가. 까마득하네.’

역 전체가 가장 밑에서부터 차례대로 붕괴한 걸 생각하면 현재 이성하가 있는 위치는 9호선 열차가 다니는 지하 5층이었고, 그렇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자력으로의 탈출은 불가능했다.

[뭘 계산해, 대충만 계산해도 떨어진 깊이만 20m야. 천장도 붕괴 때문에 막혀 있는 상태고.]

렉스의 말처럼 떨어진 깊이도 문제지만, 붕괴 상황으로 인해 위쪽의 길이 완전히 막혀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담할 상황은 아니었다.

삐삐삐삐.

언제부턴가 허리춤에서 울리고 있는 신호기 때문이었다.

“이성하, GPS신호기다, 착용해.”

“GPS요?”

“그래. 우리 팀에서 쓰는 거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지.”

처음 현장에 진입 전, 특수구조대의 양유철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며 자신들이 사용하던 GPS신호기를 은평대에 지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 신호기가 지금 울리는 거였다.

[작동은 잘되네. 네 위치가 한동안 변동이 없으니까 바로 울리기 시작했네.]

렉스의 말처럼 이성하가 지하로 떨어지며 입은 부상 때문에 오랜 시간 움직임이 없자, 신호기가 자체적으로 위급상황이라고 판단해 지상에 있는 소방관들에게 구조요청을 보내는 상황이었으며.

번쩍.

그 말처럼 빨간빛을 토해 내며 주변을 밝히는 신호기의 모습을 보면,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이거 많이 화내시려나.’

신호를 확인하고 그 누구보다 다급한 얼굴로 잔해를 파헤치고 있을 선배들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이 새끼야! 너 내가 몸 사리라고 했지!”

“이성하, 정신 안 차리니?”

“야, 인마!!”

“이성하, 너 진짜!!”

자신을 보자마자 고함을 지르며 바로 주먹으로 몇 대 쥐어박을 선배들의 모습이 떠오른 거였고, 그래서 이상하게도 불안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곧 오겠죠?’

[오겠지. 권일섭이 부하가 위험에 빠졌는데 그냥 있을 인간이냐?]

‘아, 그렇게 들으니까 갑자기 무섭네.’

[왜? 혼날까 봐?]

‘당연하죠. 이번에는 진짜 저 죽일지도 몰라요. 한 번만 더 이러면 작살 낸다고 했거든요.’

구조받지 못할 거라는 걱정보다는 그 뒤가 문제라는 생각이 갑자기 치밀어 오른 덕분에.

[부정은 못 하겠다. 나라도 내 부하가 이랬다면 죽였을 거야.]

‘얼씨구. 예전 라이언 구할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던 사람이.’

[야, 그건 상황이 다르지.]

‘뭐가 달라요.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그때 솔직히 진짜 서운했어요. 맨날 안 돼! 안 돼! 하던 인간이 자기 아들 위험할 때는 조용히 있고. 진짜 그러는 거 아닙니다.’

[끄응…….]

괜스레 렉스에 대한 서운함을 풀어내며 선배들을 기다렸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커헉.”

방금까지 정신을 잃고 있는 상태였지만, 아무 이상이 없던 요구조자가 갑자기 피를 토했다.

부들부들.

피를 토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격하게 온몸을 떨기 시작했으며.

“왜, 왜 그래요!”

그 모습에 이성하가 당황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요구조자의 대답은 없었다.

“아…….”

그저 가냘픈 숨을 토하며 다시 실신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에 이성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출혈이었다.

[맙소사…… 장기 파열…….]

‘제, 제길…….’

렉스의 말처럼 요구조자의 내부 장기가 파열되는 응급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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