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30화>
230화. 그래도 다행이야 (3)
한편, 지상에 마련된 지휘소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 여기는 은평대. 수막차단벽과 스프링클러 가동시켰다. 다시 말한다. 수막차단벽과 스프링클러 가동 완료했다.
“좋았어!”
“그렇지! 이거지, 이거!!”
위험을 무릅쓰고 진입한 은평대가 기어코 멈춰 있던 제연설비를 가동시켰다는 무전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고, 그 환호성에 어린 기쁨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 갔다.
- 3호선 승강장 도착했습니다!
은평대의 무전을 받고 진입을 시작했던 양유철 팀장 역시 성공적으로 승강장에 도달했다는 무전을 보내와서였다.
- 7호선도 도착했습니다.
- 9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승강장 도착했습니다.
그 무전이 울리기 무섭게 7호선과 9호선에 진입한 소방관들도 성공적으로 승강장에 도달했다는 무전을 보내왔으며, 그 뒤로 도착한 무전에 지휘소에 있는 소방관들은 일제히 서로를 껴안았다.
- 고립된 요구조자들 전원 무사합니다!
“뭐? 정말인가?”
- 네, 일산화탄소 중독 증세를 보이는 요구조자들이 몇몇 있지만 심각한 상황은 아닙니다. 병원으로 이송만 하면 괜찮을 수준입니다.
“서장님, 사망자 없다고 합니다!!”
“하하하, 나도 들었네. 정말 다행이야!”
“그렇습니다. 이제 됐어요! 구조만 하면 끝납니다, 본부장님!”
소방관들이 진입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 시간이 늦어 피해가 클 거라고 예상되던 내부 상황이, 다행히 사망자 없이 마무리되는 것에 모두가 쾌재를 부르며 기쁨의 포효를 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콰가각!
“어엇! 뭐야?”
“이게 무슨 상황이야?”
갑자기 발밑에서 굉음이 들리면서 순간적으로 땅이 무섭게 흔들렸다.
“보, 본부장님, 지반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뭐?”
“9호선에 진입한 대원들이 빠져나오는데 승강장과 대합장이 일제히 무너졌다고 합니다! 3호선도 같이 무너지고 있고요!”
무전을 담당하는 소방관의 다급한 목소리처럼 구조가 진행되던 지하철역 내부에 붕괴 상황이 벌어진 거였고, 그에 노상일 본부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지하철역이 왜 무너져? 아무리 화재 상황이 심각했다고 해도 속도가 너무 빠르잖아!”
은평대의 진입이 성공한 시점에서 지하철역이 붕괴되는 그림은 예상 경과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황이라서였다.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까지 진행되려면 최소 화재가 4시간은 지나야 해. 그런데 벌써 무너진다고? 아직 건물 변형이 일어난 지가 얼마 안 됐을 텐데?’
일반적으로 1,000℃가 넘는 화재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건물을 이루는 철골이 서서히 변형, 팽창되며 발생하는 게 화재로 인한 건물의 붕괴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그런 노상일의 눈에 한쪽에 걸려 있는 동안고속터미널역의 내부 도면도가 보였다.
‘9호선 바로 위에 3호선이 있어…….’
두 노선이 십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설계도면의 그림이 순간 눈에 들어온 거였고.
‘설마…….’
그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철도공사 책임자를 바라봤다.
“저거 몇 미터 차이로 지어진 겁니까?”
“……네?”
“3호선과 9호선 노선. 두 노선 사이의 인접 거리가 얼마나 되냐고요!”
거리는 표시돼 있지는 않지만, 도면상으로 보이는 두 노선이 완전히 붙어 있듯이 표시된 그림에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듣게 된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아니, 그보다 더 최악이었다.
“15cm입니다…….”
m가 아닌 cm 차이였다.
“뭐, 뭐라고요? 15cm요?”
혹시나 잘못 들었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어봤지만.
“……네, 3호선과 9호선의 노선 차이는 15cm입니다.”
철도공사 책임자는 두 노선의 차이가 손바닥 한 뼘도 안 되는 15cm의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고.
“마, 맙소사…….”
그에 망연자실해하는 노상일의 모습에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하, 하지만 문제는 없습니다. 9호선은 CAM공법과 TRCM공법을 이용한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기술로 지어진 역입니다.”
그것 때문에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다급히 9호선의 공사 과정을 늘어놨다.
“세계 최고요?”
“네, 원래 한강과 인접한 입지조건과 토사와 자갈 등으로 구성된 연약한 충적층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걸 최신 수준의 시공 능력으로 완성한 역이 9호선 노선입니다. 영국의 토목학회에서 브루넬 메달을 수상했을 만큼 안전 문제만큼은 확실합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세요.”
9호선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기술로 지어진 지하철역이라고.
영국의 토목학회에서도 상을 수상했을 만큼 안전만큼은 확실하니, 지금의 붕괴가 그 때문에 일어난 상황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 말은 노상일을 더 화나게 하는 말이었다.
“이 멍청한 인간아! 방금 당신이 말했잖아. 애초부터 건설이 불가 판정이 났던 지역이라고. 당신 말대로면 그 최신 공법을 이용해 어거지로 지었다는 건데, 그게 어떻게 안전해! 그게 어떻게 안전하냐고!”
애초부터 불가 판정이 난 곳을 인간의 욕심 때문에 억지로 지었다는 말과 같아서였다.
아무리 최신 공법을 이용해 지었다 한들, 그 토대가 되는 지반과 환경이 문제라면 결코 안전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게 지금과 같은 화재라면 더 큰 문제였다.
“15cm? 그럼 아예 붙어 있다는 거나 다름없잖아…….”
“충적층이면 건물 내부가 통째로 무너질 겁니다!”
“제길, 전부 빨리 대피시켜야 해!”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밖으로 뛰어나가며 고함을 지르는 소방관들의 모습처럼, 일부분의 붕괴가 아닌 지하철역의 전체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소방관들의 생각처럼 지하철역 내부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콰르르르르!
3호선 열차가 지반 밑으로 완전히 떨어지며 그 주변의 지역까지 같이 무너지는 상황이었고, 그 여파는 그대로 그 위층을 덮친 상태였다.
파가가가각!
대피하는 승객들을 잡아먹기라도 할 듯, 지하 2층의 지반 역시 굉음을 내며 갈라지는 상황이었으며, 그 때문에 은평대를 비롯한 몇몇 소방관들은 잠시 걸음을 멈춘 상태였다.
“사, 살려 줘요!!”
“아아악!”
“어, 엄마!”
살려 달라며 고함을 지르는 요구조자들의 목소리처럼, 아직 지하 2층에 남아 있는 요구조자들의 숫자가 꽤 많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은평대는 망설임 없이 다시 계단을 뛰어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요구조자 먼저 챙긴다!”
“알겠습니다!”
권일섭의 고함처럼 뒤처지는 요구조자들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아저씨, 일어나요! 빨리 가야 해요!”
넘어진 한 남성을 바로 부축하며 일으키는 허석훈의 모습처럼 곳곳에 방금의 충격으로 넘어진 사람들이 있기에.
“제 손 잡으세요!”
“조금만 가면 돼요!”
“빨리 올라가요, 빨리!”
다들 다급히 달려가 그런 요구조자들을 부축하며 다시 계단을 올랐고, 그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이거 끼고 그대로 올라가세요!”
방금까지 부축하던 보안관에게 끼고 있던 호흡기를 통째로 넘기고는 그런 동료들의 뒤를 바로 따랐다.
파가가각.
지반이 갈라지며 거친 속살을 드러냈지만.
“으라차!”
큰 걸음으로 그런 갈라짐들을 무시하며 2층으로 바로 뛰어내렸고, 그렇게 뛰어내린 이성하가 향한 곳은 가장 뒤쪽이었다.
“사, 살려 줘요!”
“갑니다! 기다려요!”
인명구조를 최우선으로 하는 구조대답게, 가장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뒤쪽으로 처진 요구조자들부터 먼저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인지 지하 2층에 남아 있는 요구조자들을 빠르게 지하 1층으로 올릴 수 있었다.
“무조건 달려요! 빨리 위로!!”
“허억, 허억.”
이성하를 필두로 몇몇 소방관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뒤처진 요구조자들을 들고 뛴 덕분에.
“동민아, 남은 사람은?”
“없습니다! 전부 올라왔어요!”
지하 2층이 무너지기 전에 모든 요구조자들을 지하 1층으로 대피시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엔 일렀다.
[빨리 나가야 해. 여기도 언제 무너질지 몰라.]
렉스의 말처럼 지하 1층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콰르르르르!
여전히 발밑에서 들리는 저 불길한 소리를 생각하면 절대 허튼 예상은 아니었고, 그에 이성하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대장님, 바로 나가야 합니다! 곧 이곳도 무너질 겁니다!”
방금처럼 지하 1층도 지하 2층과 같이 붕괴의 연쇄 반응이 덮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빨리 밖으로 나가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권일섭 역시 그 말에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이동해! 쉬더라도 나가서 쉰다!”
“알겠습니다!”
이성하의 말이 없더라도 붕괴 상황이 심각하다는 건 현장에 있는 그 역시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아저씨, 가죠! 조금만 가면 돼요.”
그렇게 내려진 권일섭의 명령에 밖으로 나가기 위해 요구조자를 부축해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사, 사람 살려요…….”
뒤쪽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렉스…….’
[사람이야…… 나도 들었어.]
환청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렉스 또한 들었다는 말을 보면 분명 환청은 아니었고.
‘아닐 거야. 잘못 들은 걸 거야.’
그에 아니길 바라며 뒤를 돌아봤지만, 안타깝게도 지하 2층에는 아직 사람이 있었다.
“……사, 살려 줘요.”
“어떻게…….”
“딸이 있어요…… 딸만이라도 살려 줘요…….”
계단 아래쪽에서 한 꼬마 아이를 품에 안은 여성이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라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길이 없었다.
‘제길, 길이…….’
아까도 뛰어서 넘어갔던 지반의 갈라짐이 이제는 완전히 그 속살을 드러낸 상태였다.
“이성하, 안 돼! 내려가면 못 올라와!”
그 모습에 바로 고함을 지르는 권일섭의 말처럼 지반이 갈라져 밑으로 움푹 들어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포기할 수 없었다.
투두두둑.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 사이로 간절한 여성의 눈빛이 보여서였다.
“제발…… 아이만이라도…… 아이만이라도요.”
품에 안고 있는 아이만이라도 데려가 달라며 손을 내뻗는 여성의 간절한 음성에.
“제길!”
주저 없이 몸을 움직였고.
“미친놈아! 안 돼!!”
그 모습에 옆에 있는 허석훈이 바로 안 된다며 고함을 질렀지만, 이성하는 이미 계단 밑으로 몸을 날린 상태였다.
‘저러는데 어떻게 그냥 가.’
터억.
차마 아이만이라도 살려 달라는 여성의 음성에,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간 이성하는 바로 여성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들었다.
“아이부터!”
여성의 그 말처럼 아이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였다.
콰각, 콰각.
이미 지반 대부분이 밑으로 내려가 위로는 올라갈 수 없기에.
“이성하!!”
“부탁해요, 선배!”
바로 자신에게 손을 뻗는 허석훈에게 아이를 던지듯 올렸고.
“아…….”
그렇게 아이를 받아드는 허석훈을 보며 뒤로 남은 여성을 끌어안았다.
콰르르르르.
“이성하!!”
무너지는 지반 아래로 여성을 보호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