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29화>
229화. 그래도 다행이야 (2)
은평대가 진입을 시도한 방향은 화재가 일어난 지하상가가 바로 연결돼 있는 2번 출입구였다.
“2번이 3호선 대합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출구야. 불길에 닿는 시간을 최대한 줄인다.”
목표로 삼은 기계실이 가장 가까운 곳으로 진입 방향을 잡은 거였고, 그 때문에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접근하는 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화르르르르!
금방이라도 주변을 휘감을 것 같은 불길이 사방에서 피어올랐지만.
“주수해!”
“주수!!”
쏴아아아아아!
3호선의 각 출입구에서 미리 대기하던 진압대의 주수 지원이 이루어졌기에.
“달려!! 모두 전력으로 달려!!”
탁탁탁탁!
그 뜨거운 불길의 열기를 무사히 통과해 기계실이 있다는 지하 2층으로 단번에 내려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부터가 문제였다.
“제길, 역시 불길이!”
제일 먼저 계단을 내려간 허석훈이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지하 2층 역시 불길이 휘감은 상태였다.
화르르르르르!
화재의 진원지인 지하 1층과 맞닿은 천장은 아예 불바다가 돼 있었고.
“대장님! 길 막혔습니다!”
기계실이 있는 방향은 불타는 잔해물에 막혀 있었다.
“천장 잔해 같습니다! 개찰구 위로 잔해가 무너진 거 같아요!”
당황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는 도성민의 말처럼 천장의 잔해가 통로에 해당하는 개찰구 위로 떨어져, 기계실로 향하는 길이 불길로 막혀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성민이라면 몰라도, 센터 시절부터 악전고투를 겪어 온 은평대에게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던 사안이었다.
“도성민, 비켜!”
권일섭이 앞으로 나서며 챙겨 온 소화기를 치켜들었다.
“허석훈! 이성하!”
김필주 역시 그 뒤를 따르며 가장 믿고 있는 후배들의 이름을 불렀고, 그렇게 이름을 불린 허석훈과 이성하는.
“알고 있어요!”
이미 이름이 불리기도 전에 그 뒤를 따른 상황이었다.
“준비됐습니다!”
자세를 잡고 외쳐지는 두 사람의 고함에.
“시작해!”
쏴아아아아!
권일섭과 김필주가 일제히 챙겨 온 소화기를 잔해물 위로 뿜었으며, 그렇게 뿜어지는 소화액 안으로 허석훈과 이성하가 들어갔다.
“도성민, 빨리 붙어!”
“길 만든다! 잔해물 치워!”
와르르르르!
뿜어지는 소화액을 보호막 삼아, 불길이 붙은 잔해물들을 옆으로 밀쳐 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끄으윽.”
“허억, 허억.”
아무리 소화액이 뿜어진다 한들, 불길이 붙은 잔해물을 그대로 잡은 덕분에 손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으로선 망설일 틈이 없었다.
“빨리!”
조금이라도 기계실에 빨리 도착해야만 센서 고장으로 멈춰 있는 제연설비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그 제연설비가 작동돼야만 대기하던 소방관들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기에.
“빨리해!”
퍽! 퍽!
악착같이 고함을 지르며 앞을 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치워 갔고, 그 행동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끄으윽.”
“허억, 허억.”
뜨거운 불길 때문에 손과 몸이 익어가는 고통을 느낀다 하더라도.
“으아아아아!”
퍽! 퍽!
단순하면서도 무식한 이 방법이 기계실에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에 은평대는 드디어 막혀 있는 길을 뚫을 수 있었다.
“좋아, 진입해!”
“네!”
잔해물을 치워 드러난 길을 통해 바로 눈앞으로 보이는 기계실로 향했고.
“대장님, 찾았습니다! 바로 작동시키겠습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기계실에서 드디어 멈춰 있는 제연설비를 가동시켰다.
철컥.
위이이잉.
“여기는 은평대. 수막차단벽과 스프링클러 가동시켰다. 다시 말한다. 수막차단벽과 스프링클러 가동 완료했다.”
환한 표정으로 본부에 무전을 보내는 권일섭의 모습처럼 드디어 목적했던 제연설비를 작동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동된 제연설비는 그들이 바랐던 모습을 그대로 실현시켜 줬다.
쏴아아아아!
열려 있는 기계실 문 너머로 천장에서 물줄기가 세차게 뿜어짐에.
“좋았어!”
“됐다! 됐어!”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쁜 표정으로 주먹을 치켜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 작동 확인했다. 지금부터 대원들 진입한다! 고생했다, 은평대! 올라와서 정비하기 바란다.
바로 울리는 양유철의 무전처럼 원래 여기까지가 은평대의 임무였지만, 은평대의 그 누구도 여기서 임무를 종료할 마음은 없었다.
“대장님, 쉬실 겁니까?”
“설마.”
장난처럼 묻는 허석훈의 말에 권일섭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혹시 지쳐서 휴식 필요한 사람?”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김필주가 다른 대원들을 둘러보며 피식 웃었고, 당연히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대원은 없었다.
“아직 쌩쌩합니다!”
“바쁩니다. 얼른 가시죠.”
아직 사람이 있었다.
“그래, 가야지. 요구조자가 있는데.”
그 말에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필주의 말처럼 이 지하철 안에는 아직 그들이 구해야 할 요구조자들이 있었고, 그렇다면 임무의 종료는 없었다.
“가자!”
바로 명령하며 기계실 문을 나서는 권일섭이나.
“악!”
그에 대답하며 뒤를 따르는 대원들 역시 아직 남아 있는 요구조자들을 구하기 위해, 위가 아닌 밑으로 통하는 계단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은 판단이었다.
“대장님! 열차가 불길에 휩싸여 있습니다!”
가장 먼저 소화기를 뿌리며 내려가던 도성민이 비명을 질렀다.
화르르르르!
내려와 보니 안전할 것이라고 여겼던 열차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그에 대원들은 지체 없이 열차를 향해 달렸다.
“외부 불길부터 잡아!”
“알겠습니다!”
쏴아아아아!
뒤이어 들리는 권일섭의 명령처럼 열차를 감싼 불길부터 잡기 위해 다들 챙겨 온 소화기를 뿌리며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그렇게 은평대는 다행히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철컥.
“콜록, 콜록. 소, 소방관이야.”
“흐윽, 드디어 왔어. 소방관들이 우리를 구하러 왔어.”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으허허헝.”
곳곳에서 자신들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다행히 열차가 불길에 완전히 휩싸이기 전에 현장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일산화탄소 중독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좀 있어.]
렉스의 말처럼 몇몇 사람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이성하 소방관.”
면체를 쓰고 있어 눈과 얼굴의 윤곽만 보일 텐데도 지금 이성하를 알아보며 손을 뻗는 보안관이 그랬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바로 허리춤에서 보조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말하지 마세요. 일단 마스크부터 착용할게요.”
“허억, 허억.”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보안관의 얼굴에 꺼내든 보조 마스크를 착용시켜 응급조치를 취했으며.
“양 팀장님. 어디쯤입니까?”
지금쯤 내려오고 있을 양유철에게 무전을 보냈다.
- 이제 지하 2층이야. 무슨 일 있어?
“일산화탄소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사람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불길에 희생된 사람은 없는 듯 보였지만, 눈앞의 보안관처럼 일산화탄소 중독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꽤 많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들려오는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 걱정 마. 들것부터 실린더까지 넉넉하게 챙겨 가는 중이다.
그런 상황을 미리 예상했는지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춰서 내려오고 있다는 양유철의 대답이 들렸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여깁니다! 은평대가 있습니다!”
정말 그 말처럼 수십 명의 소방관들이 들것을 든 채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통로 불길 확실히 잡아!”
쏴아아아아!
그것도 그냥 내려오는 게 아니라 불길을 완전히 제압하며 대피로를 구축하는 모습이었고, 그 모습은 모든 역에서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 9호선 진입로 구축했습니다! 요구조자 구조하고 빠져나가겠습니다!
- 7호선도 요구조자 발견! 이쪽은 역사 내부에 불길이 없습니다!
귓가로 들리는 무전의 상황처럼 지금 자신이 있는 3호선만이 아닌, 붙어 있는 7호선과 9호선에서도 고립된 요구조자들의 구조작전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다행이야. 늦지 않았어.’
최악의 상황만은 막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괜찮으세요?”
“저희가 도와드릴 겁니다. 마스크 착용하시고 저와 함께 나가세요.”
곳곳에서 막 도착한 소방관들이 시민들을 부축하며 계단으로 걸음을 옮기는 상황이었기에.
“선생님. 괜찮으시죠? 몸 좀 들게요.”
이성하 역시 방금 자신이 마스크를 씌운 보안관을 부축하며 걸음을 옮겼고, 그러면서 부축하고 있는 보안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선생님이 비상인터폰으로 보안관이시죠? 선생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 보안관의 연락이 있었기에 작전이 가능했다는 생각에서였다.
“콜록, 콜록. 제가요?”
“네. 선생님이 내부에 생존자들이 있다는 걸 알려 주셔서 저희가 진입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이 정말 많은 사람들을 구하신 겁니다.”
생존자가 수백 명이 있다는 다급한 연락이 있었기에 진입을 서두를 수 있었지, 안 그랬다면 상부에서 내려온 대기 명령에 아직까지도 위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차근차근 올라가세요!”
“안 넘어지게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워낙 고립된 사람들이 많았기에 차근차근 대피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 순간 굉음이 들렸다.
콰가각!
“어엇!”
“흔들린다. 꽉 잡아!”
무언가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가 울리며 지반이 격하게 흔들렸고, 그에 다급한 무전이 이성하의 귓가를 울렸다.
- 대장님! 지반이 무너졌습니다!
지반이 무너졌다는 한 소방관의 고함이었다.
- 뭐라고요?
- 9호선 천장이 무너졌습니다! 빨리 대피하십쇼! 위험합니다!
9호선에서 구조작업을 펼치던 소방관들이 천장이 무너졌다며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알려왔으며,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말하든 열차의 앞부분이 순간 거대한 광음과 함께 밑으로 사라졌다.
콰르르르르!
“이런 미친!”
지하3층에 위치한 3호선 승강장이 밑에 있는 9호선 노선으로 떨어지는 붕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기겁한 표정으로 대피를 서둘렀다.
콰각, 콰각.
천천히 밑으로 지반이 가라앉는 광경에.
“꺄아아아악!”
“다들 뛰세요!”
“빨리요! 빨리!”
요구조자, 소방관 할 거 없이 다급한 표정으로 밖을 향해 달렸고, 그건 이성하를 비롯한 은평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업고라도 뛰어!”
“제, 제기랄!”
그대로 있으면 무너지는 지반과 함께 꼼짝없이 밑으로 떨어질 상황에, 몸을 움직이기 힘든 요구조자들을 필사적으로 부축하며 위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몸을 날렸으니까.
그리고 다행히 지반이 무너지기 전에 모든 사람들이 지하 2층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이쪽입니다! 이쪽이에요!”
곳곳에서 소리치는 소방관들의 고함에 따라 다들 위로 통하는 계단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고, 다행히 사람들의 대피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듯했다.
“출입구다!”
“다 왔어! 저쪽으로 나가면 밖이야!”
반색하며 외치는 몇몇 사람들의 고함처럼 어느덧 지하 1층에 도착해, 조금만 달리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구에 도달하는 상황.
하지만 그때였다.
카가가각!
지하 3층에서 들었던 섬뜩한 굉음이 바로 뒤쪽에서 다시금 들렸다.
드드드드!
그와 동시에 발밑에 무섭기 흔들리게 시작했고, 그 현상에 이성하는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기둥이 무너졌어! 지하 2층도 무너진다!]
“제길!”
렉스의 말처럼 지하 3층이 무너지며 발생한 연쇄반응이 바로 그들이 올라왔던 지하 2층을 덮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