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28화>
228화. 그래도 다행이야 (1)
동안고속터미널은 최악의 환승역을 꼽는다면 항상 TOP3에 들어갈 정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진 지하철이었다.
“아니, 방금 3층에서 올라왔는데. 왜 또다시 4층으로 내려가라는 거야?”
“원래 그래. 여기 갈아타는 데만 10분 걸려.”
“10분?”
“어. 여기 노선이 ㄷ자 형으로 3개나 몰려 있는데, 갈아타는 층이 다 제각각이라서 전부 에스컬레이터 타야 하거든.”
“끄응…….”
처음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복잡한 구조에 항상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갈아타는 구간이 복잡하게 설계돼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구역은 엘리베이터는커녕 에스컬레이터도 설치되지 않아 장애인이나 아이 엄마와 같은 교통 약자들에게 많은 원성을 받는 역이었다.
“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그럼 저 유모차랑 아기는 어떻게 해요?
“저기 호출벨 눌러서 역무원 도움받아서 가셔야 해요.”
“역무원이요?”
“네. 역무원이 와서 계단 위까지 들어서 옮겨 주시더라고요.”
“저 계단을요?”
“네…….”
“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이나 그를 도와주는 역무원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올라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그 때문에 동안고속터미널역은 매번 이용객들의 많은 민원이 발생하는 역이었다.
- 돌아가는 구조 때문에 너무 이동이 힘든데 중간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주시면 안 될까요?
- 계단이 너무 많아서 어르신들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신청합니다.
- 역무원이 너무 적은 거 같아요. 분명히 도움 이용 서비스라고 해서 벨 눌렀는데 사람이 없는지 역무원분이 오시는 것도 한참이고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네요.
.
.
.
불편한 환승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와 노약자들의 안전을 위한 에스컬레이터 설치 같은 요청들이.
하지만 그 요청에 철도공사가 내미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문의 감사합니다. 현재 계획 중에 있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매번 계획만 한다는 답변으로 시민들의 민원에 대답했다.
- 제작년부터 계획 중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언제 설치됩니까? 이용이 너무 불편합니다. 빨리 좀 해 주세요.
기다림에 지친 시민들의 경우에는 설치되는 때가 정확히 언제냐고 다시 민원을 넣어 봤지만.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신속한 기일 내로 빠르게 계획 잡아서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죄송하다, 최대한 빨리 설치하겠다는 원론적인 대답뿐이었고, 그런 시민들의 기다림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선생님, 안 무거우세요? 죄송해요, 저희 때문에.”
“허억 허억. 죄송하긴요. 오히려 저희가 죄송하지. 금방 옮겨 드릴게요. 조금만 계세요.”
“네…….”
10여 년째 이용객과 얼마 안 되는 역무원들만 그 불편을 땀으로 해소하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철도공사에 그 안건이 안 올라온 건 아니었다.
“7호선 쪽에 계속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설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엘리베이터?”
“네, 지난달에 노인 한 분이 계단에서 굴러서 크게 다쳤다고 해서요.”
복잡한 환승 구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계단만 있는 몇몇 구간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그에 대한 안건이 회의에 올라간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고위직 관리자들은 그 안건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동안역은 가뜩이나 수리할 것도 많아서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하는 데 예산을 쓰긴 너무 힘들어요.”
“맞습니다. 소방청에서 이번에 지적한 사항들만 개선해도 돈이 엄청 들어갑니다. 그것도 돈 부족해서 수리 전부 못 하는데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하면 완전 적자입니다.”
거기에 예산을 쓰기에는 아깝다고.
가뜩이나 소방시설 수리에 돈이 많이 들어가서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하면 적자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지만 그로 발생한 사고가 오늘이었다.
“부, 불이야!!”
소방시설이라도 수리를 제대로 했다면 모르지만, 그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해 큰불이 일어났고.
“이, 이쪽입니다!”
“계단 이용하세요! 전부 계단이요!!”
그에 역 내를 순찰 중이던 보안관들이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안타깝게도 역 내에 있는 보안관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제길, 이 인원으로는 안 돼!”
“이러니까 충원해 달라고 했던 건데…… 이 많은 사람들을 우리 다섯이서 어떻게 대피시키라는 거야!”
수백 명, 많을 때는 수천 명까지도 이용객이 있는 지하철역이 동안고속터미널역이지만, 그에 반해 역 내부를 순찰하는 보안관은 겨우 다섯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보안관들은 필사적으로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화아아아악!
새카만 연기가 역사 내부를 서서히 채워 가는 공포스러운 광경에도.
“어르신! 엘리베이터 안 돼요! 계단으로!”
“밀지 마시고 천천히 올라가세요! 천천히!”
끝까지 자신들의 위치에서 시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고, 그건 고속터미널역에 배치된 지 5년 차 보안관 강병준도 마찬가지였다.
“콜록, 콜록. 이쪽은 안 돼요! 저쪽으로 돌아서 가세요!”
“저, 저쪽이요?”
“네, 이쪽은 연기가 너무 많아요. 빨리요!”
“감사합니다!”
어느덧 뒤덮인 연기에 기침을 토하면서도 끝까지 남아 있는 시민들을 대피하기 위해 승강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보안관이 바로 그였으니까.
- 선배님. 이제 다 올라온 거 같습니다. 우리도 나가야 돼요!
“오케이, 알겠어!”
그리고 그렇게 모든 시민들이 대피한 거 같다는 후배의 무전에 그 역시 이제는 됐다며 대피를 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시민들의 대피는 모두 끝난 게 아니었다.
철컹, 철컹.
순간 역사 내부로 접근하는 열차의 소리가 들렸다.
- 역사 내부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열차 그대로 통과합니다.
스피커에서 외쳐지는 안내 멘트처럼 지금처럼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열차가 역을 그대로 통과하기에.
‘빨리 나가자.’
그대로 신경을 끄며 위로 향하는 계단을 향했는데.
파밧!
하필 그때 역사 내부에 모든 전등이 동시에 꺼졌다.
‘저, 전기가…….’
불길이 전력 케이블을 잡아먹었는지 역 내부의 전기가 일제히 다운된 거였고.
“설마 멈추진 않겠지…….”
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막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바라봤지만, 그 예감은 그대로 현실이 되고 말았다.
끼이이익…… 피시익.
“마, 맙소사…….”
역을 통과해야 할 열차가 화재가 발생한 지하철역에 그대로 멈춰 서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강병준은 다급한 표정으로 멈춰 선 열차 문 하나를 강제로 개방하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비켜 주세요! 전부 비켜요!”
기관사가 있는 조종실로 가기 위함이었다.
‘제길, 열차를 다시 출발시켜야 해.’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은 물론 열차에 타 있는 모든 승객들이 불길에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출발 안 해!”
“길 좀 비키라고요!!”
필사적으로 겁에 질린 승객들을 밀치며 열차 끝에 있는 조종실로 향했으니까.
하지만 열차는 출발할 수 없는 상태였다.
“빨리 출발시켜요!”
“안 돼요! 전기가 완전히 나갔어!”
열차 전체가 새카만 어둠으로 뒤덮인 것처럼 전기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라서였다.
“제길! 왜 안 돼!!”
덜컥, 덜컥.
기관사가 어떻게든 시동을 걸기 위해 전원 버튼을 눌러봤지만, 열차의 불은 들어오지 않았고.
“안 되겠어요. 일단 승객들 전부 내리게 해서 터널로라도 이동합시다.”
“터, 터널이요?”
“네, 이미 위쪽은 불바다일 겁니다. 탈출하려면 선로를 걸어서 이동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요! 그럽시다!”
그 때문에 기관사를 설득해 승객들을 이끌고 열차가 다니는 선로를 이용해 탈출 방법을 세웠지만, 안타깝게도 선로 역시 이동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길, 선로도 막혔습니다!”
“뭐, 뭐라고요?”
“선로 벽면이 불바다예요! 광케이블을 타고 불길이 내려왔어요!”
열차가 다니는 선로 역시 케이블을 타고 내려온 불길에 길이 막혀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강병준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3호선 보안관 강병준이라고 합니다. 아무도 없습니까?”
- 상황은요? 안에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상황이고 뭐고 지금 연기가 너무 차서 전동차에서 나가질 못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만 삼백 명이 넘습니다. 빨리 오셔야 합니다!”
자력으로 탈출이 불가능했기에 승강장 중앙에 있는 비상인터폰을 통해 외부에 지금의 상황을 알렸고.
“아무도 열차 밖으로 나가시지 마세요! 모두 안에서 문 닫고 대기하세요!”
그러고는 다시 열차 안으로 들어와 승객들에게 문을 닫고 대기하게 했다.
‘문만 열지 않으면 연기가 못 들어올 거야.’
지금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열차 내부라는 생각에서였다.
화르르르르르!
금방이라도 열차를 태울 것 같은 저 불길도.
화아아아악!
그리고 그 불길로부터 발생한 새카만 유독 가스도.
‘그래. 문만 열지 않으면 여기가 제일 안전해.’
역사와 달리 전부 불연재로 만들어진 이 열차만큼은 위협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오만이자 방심이었다.
화르르르르!
절대 들어와선 안 되는 불길이 열차 내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부, 불이야!”
“으아아아!”
문틈을 통해 단번에 번지는 불길에 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이 비명을 질렀고, 그 광경에 강병준은 잔뜩 성난 표정으로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제길, 내가 래핑광고 저거 다 떼야 한다니까……”
바로 열차 내부의 벽과 천장에 붙어 있는 래핑광고.
연예인의 생일이나 대형 병원, 유명 행사 등을 광고하기 위해 시트지로 붙여진 래핑광고가, 외부에서 전해진 불길에 무섭게 타오른 것이다.
“일단 전부 입 막고 머리 숙여요! 빨리요!”
그 때문에 강병준이 다급한 표정으로 승객들에게 입을 막고 고개를 숙이라고 외쳤지만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화아아아악!
금세 시트지를 연료 삼아 뿜어진 유독 가스가 열차 내부를 휘감기 시작해서였다.
“아, 안 돼! 빨리 불을 꺼야 해!”
펄럭!
그에 강병준이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불길을 끄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화르르르르르!
그 정도로는 안 된다는 듯 불길은 더 거세게 용오름을 토해 냈고, 그런 불길 속에서 강병준은 힘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털썩.
“아…….”
어느새 흡입한 유독 가스에 정신이 흐려진 것이다.
그 때문에 나오는 건 분통이었다.
‘보안관과 역무원 숫자만 늘려 줬어도 화재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텐데…….’
매년 수차례 항의했음에도 인건비를 이유로 보안관의 숫자를 줄인 철도공사에 분노를 느꼈으며.
‘소방관들 왜 이렇게 늦어…… 언제 와…….’
신고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도 도착하지 못한 소방관들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콜록, 콜록.”
“어, 엄마. 나 아파…….”
“여보, 나 죽고 싶지 않아. 흐윽.”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음에도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처참함에.
‘미안해요. 내가 미안합니다.’
구슬피 눈물을 흘렸으니까.
그런데 그러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소방관이 있었다면 살 수 있었으려나…… 이름이 뭐였지?’
예전 TV에서 감탄한 적이 있던 한 소방관의 얼굴이었다.
‘그래, 동아백화점. 그 소방관이 수십 명의 사람들을 혼자 살렸다고 했는데.’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1년 전 무너지는 백화점 내부로 혼자 들어가, 아직 살아 있던 생존자들을 구해 나오던 용감한 한 소방관의 얼굴이.
물론 그 소방관이 여기에 나타날 리는 없었다.
‘맞아, 이성하. 이성하였어.’
기어코 그 소방관의 이름을 떠올리고 희미한 웃음을 지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영웅이라지?’
그 소방관이 현재 미국에 있다는 사실 또한 TV로 봤던 만큼 잘 알고 있었기에.
하지만 그 순간.
“어?”
열차의 차창 너머로 뭔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뭐야, 환각인가…….”
다시 보니 불길만 보이는 광경에 피식 웃음을 지었지만.
“다들 괜찮으십니까!”
“……!”
이번엔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문 열겠습니다!”
철컥.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등장한 한 사람의 모습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소, 소방관…….”
그토록 기다리던 소방관이 나타나서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제부터 안전하게 구조해 드리겠습니다.”
“이, 이성하 소방관.”
방금까지 애타게 바라던 그 TV 속의 소방관이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