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27화>
227화. 인재 (5)
“……!”
“뭐, 뭐야?”
그렇게 스스로 뺨을 때리는 이성하의 모습에 몇몇 소방관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이성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제길.’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 때문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언제부턴가 현실에 타협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무슨 소리야? 잘해 왔어. 그동안 목숨을 걸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 왔잖아.’
그 생각에 또 다른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고 반박하듯 외쳤지만.
‘아니, 목숨을 건 적이 없어.’
자신은 구조를 할 때 목숨을 건 적이 없었다.
언론에서는 항상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조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언맨이라는 엄청난 별명까지 붙여 줬지만, 정작 자신이 목숨을 걸었던 시기는 그 별명이 붙기 전의 일이었다.
‘에베레스트 때가 마지막이었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그 부담스러운 별명을 붙여 줬던 에베레스트의 활동까지가 정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던 시기였고, 그 뒤부터는 목숨을 건 게 아니라 점차 늘어가는 기술과 현장경험에 따라 어떻게 하는 게 나을까를 판단하며 구조를 해 왔다.
‘펌프차 때도.’
건물에 고립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펌프차로 막힌 길을 뚫을 때도.
‘산타클라리타 공장과 시어스 타워도 그랬어.’
미국으로 연수를 나가 공장 폭발과 테러 재난을 막아 냈을 때도.
‘가능하다는 판단에 들어갔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진입을 결정했던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그건 잘못된 게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현장에서도 수없이 강조하고 주의하는 게 소방관 자신에 대한 안전 확보였다.
소방관은 목숨을 걸고 구조해서는 안 된다.
배운 지식과 보유한 장비를 최대한 현명하게 사용해 안전하게 구조해야 한다.
그리고 방금 렉스가 말했던 요구조자는 둘이다까지.
모두 소방관이 외워야 할 구조 매뉴얼에서 가장 강조하는 사항이었다.
‘용기와 만용을 구분하라.’
현장에 들어가는 소방관 역시 진입한 순간부터는 똑같은 요구조자기에, 구조를 진행할 때는 냉철한 정신으로 용기와 만용을 철저히 구분하라고.
하지만 그보다 우선되는 사항이 있었다.
매일 외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까먹어 버린 신념이 있었다.
‘소방공무원은 위기에 처한 국민의 요청에 주저하지 않고 대응하며, 현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구호의 손길을 내민다.’
바로 소방강령 제2조 3항 헌신의 신념.
이성하가, 아니 전국의 모든 소방관이 소방관으로 임용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과 명예를 바치겠다는 헌신의 신념을 말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지금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창피해.’
매일 말로는 사람을 구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항거할 수 없는 큰 재난 앞에서 힘없이 회피한 자신의 모습에.
‘너무 창피하다고.’
깊은 분노를 느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뺨을 내리친 거였다.
짜아아악.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짜아아악!
더 이상 뭘 좀 배웠다고 그만 좀 거만 떨고, 예전처럼 오로지 사람들을 구하는 데만 집중하자고.
그리고 그 모습에 박민규는 비로소 얼굴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래, 그거다.’
그게 자신이 아는 이성하라서였다.
모두가 늦었다고 좌절하며 고개를 숙일 때.
‘그게 네 원래 눈빛이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악착같은 기세로 CPR을 이어 가던 그때의 눈빛이 지금과 같았고, 그 생각처럼 이성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방법이 있을 거야.’
한쪽에 펼쳐진 지하철역의 내부 도면도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진입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철도 통로는 안 돼.’
‘환풍구 쪽도 마찬가지야.’
‘비상구도 전부 막혔어.’
떠올리는 방법마다 막히는 것에, 좌절할 법도 하지만.
‘그럼 다른 쪽은?’
어떻게든 요구조자들이 있을 걸로 추정되는 승강장까지의 진입 방법을 떠올리기 위해 계속 지하철역의 내부 도면도를 살폈고.
‘……불량!’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서둘러 바닥에 흩날려 있는 서류 뭉치를 바라봤다.
[불량?]
‘네, 스프링클러랑 수막차단벽. 이게 가동이 안 됐다면서요. 이걸 가동시키면 되는 거 아녜요?’
진입이 불가능하다면 가능하게 만들어 줄 상황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쏴아아아아아!
통로마다 물이 뿜어져 불길의 확산을 막는 그 두 개의 설비가 떠오름에.
‘그것만 작동이 된다면 진입할 수 있어.’
그 설비들의 작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서류들을 살폈으며, 그렇게 확인한 내용에 양유철을 바라봤다.
“팀장님, 방법이 있습니다, 기계실로 진입해 수막차단벽과 스프링클러를 수동으로 작동시키는 겁니다.”
“수동?”
“네, 지금 두 설비가 작동을 안 하는 건 연기감지기가 불량이라서 그렇습니다. 두 장비가 작동된다면 불길 진압은 몰라도 내부 열기만큼은 떨어트릴 수 있을 겁니다. 소방관 전원 진입이 가능한 상태로 열기를 떨어트리는 겁니다!”
혹시나 했지만 작동이 안 된 두 설비 모두 화재를 감지하는 센서에만 문제가 있을 뿐이지, 실제 작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말에 다급히 서류를 뺏어든 양유철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다. 진짜 감지기만 불량이야.’
정말 이성하의 말처럼 실제 장비 가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 지하1층 A-2,4,6 스프링클러 불량.
* 지하2층 역무실 옆 창고 스프링클러헤드 미설치.
* 지하3층 하선 승강장 4번 수막차단벽 불량.
.
.
.
몇몇 구역이 불량 상태로 작동이 불가능한 사항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전부 이성하의 말처럼 이상이 없는 상태에.
‘가능하겠어. 정말 이것만 가동시키면 진입할 수 있겠어.’
꽈아악.
정말 진입이 가능하겠다며 주먹을 움켜쥐었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잠깐만, 지하 2층?”
서류에 나와 있는 기계실의 위치가 지하 2층이었다.
한마디로 이성하가 말한 스프링클러와 수막차단벽을 가동시키려면 지하 2층까지는 누군가가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렇다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안 돼. 이건 무리야. 불길이 일어난 지하상가가 지하 1층이야. 그 불길을 어떻게 뚫고 가려고?”
화재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지하상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제연설비를 작동시킬 수 있는 기계실까지 도달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웃으며 말했다.
“통로에서 주수 지원해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화재 진압대를 전부 통로로 배치해 달라는 말이었다.
“뭐?”
“미친 듯이 위에서 물 퍼부어 주십쇼. 단체가 아닌 몇 명이라면 주수 지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진압대의 지원하에 소수의 정예인원으로만 팀을 구성해 기계실까지 단번에 들어가자는 말이었고, 그 말에 양유철은 불같이 화를 냈다.
“주수 지원? 야 이 새끼야! 그것도 잠깐만 가능하지 지하 2층부터는 어떻게 할 건데?”
불길 때문에 주수 지원이 가능한 게 말 그대로 1층까지만이라서였다.
“거기부터는 맨몸으로 뚫어야 돼. 그냥 소화기만 들고 들어가야 한다고, 인마!!”
1층이야 진압대의 지원으로 어떻게든 열기를 커버한다 치지만, 2층부터는 그 열기를 진입한 소방관들이 알아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권일섭을 바라봤다.
“우리는 가능하거든요. 불길 통과, 그거 몇 번이나 해 봤으니까.”
무턱대고 제안하는 게 아니라 동료를 믿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얼씨구, 너 뭐 하냐?”
그 말에 권일섭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뭐 하긴요? 우리 팀 어필하죠. 솔직히 이 정도는 익숙하지 않습니까? 안 그래요?”
우리 은평대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냐며 씨익 웃음을 지었고, 그 말에 권일섭은.
퍼억!
“아!”
함부로 나선 이성하에게 바로 응징의 주먹을 날리긴 했지만.
“양 팀장, 그거 우리가 할게.”
이성하의 말처럼 그 역할을 은평대가 하겠다고 말했다.
“안 그럼 쪽팔리잖아.”
그렇지 않으면 창피하다고.
“지금 모여 있는 소방관이 몇백 명인데 구경만 할 순 없지.”
현재 현장에만 수백 명의 소방관들이 모여 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에는 자존심이 용납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 말을 양유철은 거부하지 못했다.
“찬성.”
“저도 찬성입니다.”
막사에 모여 있는 각 소방대장들이 그 의견에 찬성을 던진 것도 있지만, 그때 막 전해 온 하나의 소식 때문이었다.
“팀장님, 지금 역 내부에 있는 보안관과 연결이 됐습니다.”
“뭐? 보안관?”
“네, SOS 비상인터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시점에 내부의 보안관이 비상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왔고, 그렇게 듣게 된 소식에 양유철은 결국 이성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3호선 보안관 강병준이라고 합니다. 구조대는 도대체 언제 오는 겁니까?
“상황은요? 안에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 상황이고 뭐고 지금 연기가 너무 차서 전동차에서 나가질 못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만 삼백 명이 넘습니다. 빨리 오셔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숫자만 추산되던 요구조자의 숫자가 드디어 사실로 확인됨에.
“젠장! 진압대 전부 통로 쪽에 집결합니다. 은평대가 들어가서 제연 설비 작동시키면 그때 구조 시작합니다.”
“알겠습니다!”
이성하가 건의한 은평대의 진입 작전을 정식으로 승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밖에 있던 소방관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강동대! 송파대! 양천대! 3호선 입구로 집결한다!”
각 위치에서 역사 안으로 물을 퍼붓던 세 개의 소방대가 불이 가장 심한 3호선 입구로 집결했다.
“보유하고 있는 호스 전부 연결한다! 주수 준비해!”
“우리도 연결해!”
“신호 넘어오면 전부 쏟아붓는다!”
“알겠습니다!”
철컥, 철컥.
각 진압대장들의 고함에 수십 명의 소방관들이 일제히 호스를 연결하며 배정된 역사 입구에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준비가 끝난 진압대원들의 앞으로 방화복을 입은 여섯 명의 소방관이 앞으로 나섰다.
“하…….”
“어휴, 재난 제조기 새끼.”
“넌 서로 돌아가면 보자.”
“선배님. 아무리 그래도 그걸 자원을 합니까…….”
선두에 선 한 소방관을 향해 각자 불만을 토하며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준비!”
“악!”
바로 외쳐지는 한 소방관의 고함에 눈빛을 바로 하며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이었으며, 그런 그들이 나아감에 현장의 모든 소방관들이 강한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은평구조대>
그들의 헬멧에 써 있는 이름 때문이었다.
지난 4년간 대한민국의 대형 재난을 앞장서서 해결한 대한민국 최고의 구조대가 저 이름이었기에.
“우리도 준비한다!”
“악!”
그들 역시 관창을 잡은 채 진입하는 은평대의 뒤를 따랐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난 소방관들의 모습에 현장지휘관인 양유철이 고함을 질렀다.
“주수!”
“주수!!”
쏴아아아아아!
단호한 그 명령에 수십 개의 물줄기가 각 역사 입구에서 지하 1층을 향해 강하게 뻗어졌으며, 그 물줄기를 등에 업고 은평대가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집중해!”
“악!”
동안고속터미널역에 고립된 요구조자들의 구출 작전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