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26화 (226/235)

<강철 소방대 226화>

226화. 인재 (4)

박민규는 이성하의 짧은 소방관 인생에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는 선배 소방관이었다.

[야, 저 꼴통. 병원에 있는 거 아녔어? 아직 치료 안 끝나서 복귀 안 했잖아.]

렉스가 보자마자 바로 꼴통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이성하에게는 어떤 의미로 고문관에 해당하는 선배였지만.

‘그, 그쵸. 분명히 몇 주 전에 통화할 때, 아직 항암치료를 더 받아야 해서 병원에 계시다고 했는데…….’

이성하가 사적으로도 따로 전화를 주고받을 정도로 그의 소방관 인생에 큰 가르침을 준 선배 소방관이 눈앞의 박민규 주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대화처럼 박민규는 아직 병원에 있어야 하는 게 맞았다.

“박민규 환자님. 오늘 몸 상태는 어때요?”

“좋습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입원한 병실에서 간호사와의 인사로 하루를 시작한 참이었고.

“아우, 어머님. 반찬 좀 고기 위주로 짜 주시면 안 됩니까?”

싱거운 병원 음식에 식사를 챙겨 주는 병원 직원에게 투정을 부린 게 바로 몇 시간 전이었다.

“에이, 암 환자가 무슨 고기예요.”

“아, 그래도 어떻게 풀만 먹고 살아요? 사람이 가끔 고기도 먹고 해야죠.”

암을 치료하기 위해.

“끄응…….”

워낙 암이 퍼진 부위가 많아 그 치료를 위해 오랜 기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게 한때 은평소방서로 파견을 나갔던 박민규의 일상인 상황.

하지만 그 일상이 바뀐 게 오늘 오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우, 좀 쉬어야겠다.”

운동을 위해 잠시 병원 산책로를 한 바퀴 걷고 병실로 돌아왔는데.

“아이구,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게요. 저거 너무 심한데요.”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TV를 보며 안타까운 얼굴로 탄식을 하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에요? 어디 불이라도 났어요?”

항상 병실에 있는 환자들로서는 늘 있는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물으며 자신의 침대에 앉았지만, 그 표정이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화아아아악!

TV 화면으로 보이는 새카만 연기에.

‘설마…….’

평온하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고.

- 상황이 너무 심각합니다. 환풍구와 역사 입구마다 계속해서 연기가 솟구치고 있습니다.

데자뷰처럼 토해지는 다급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빠드득.

깊은 분노를 느꼈다.

- 지원 필요해!

- 들것 가져와, 들것!

- 산소 실린더 전부 이쪽으로! 빨리 갖고 와!

심장 깊숙이 새겨진 그 참사가 현실로 다시 일어난 상황에.

“X발!”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병실에 있는 박민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형준아, 지금 뉴스 봤는데 어떤 상황이야? 광역 출동은 떨어진 거야? 피해 상황은?”

그저 본부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자세한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거밖에 박민규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렇게 듣게 된 대답에 절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 최악입니다. 대구 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다급한 표정으로 대구 참사 때보다 심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후배의 말 때문이었다.

“뭐?”

- 동안고속터미널역은 하루 이용객만 10만 명이 넘는 역입니다. 정확한 확인은 안 되지만 현재 최소 500명은 역에 갇혀 있다고 추산되는 상황입니다.

무려 500명.

심지어 그 또한 최소로 잡은 숫자라는 말에.

“말도 안 돼…….”

- 선배님…….

“이건 아니잖아…… 그 지옥이 다시 벌어지는 건 아니잖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비명 같은 절규를 내질렀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맞아요. 그 지옥이 다시 벌어지는 건 안 되지.”

그런 박민규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누구십니까?”

“경기재난본부장 노상일이라고 합니다. 본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필요할 땐 아무것도 못 하는 쓰레기죠.”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쓰레기라 소개하는 노상일 본부장이었다.

“그런 분이 여길 왜 오신 겁니까?”

그 처참한 소개에 박민규 역시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고.

“도움을 청하러.”

“도움이요?”

“그래요. 지하철 화재. 그 현장의 지독함을 직접 겪은 소방관에게 조언을 청하러 왔습니다.”

그 이유가 지하철 화재에 대한 조언이라는 말에 눈을 빛냈다.

“조언이요?”

“네, 같이 가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 지옥을 마주하고 있을 소방관들에게 조언을 해 주기 위해.”

지금처럼 망연자실하게 앉아 병실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는 게 아닌, 현장으로 직접 가 구조를 진행하고 있을 소방관들에게 도움을 주겠냐는 노상일의 말에.

“가겠습니다. 가야죠. 그곳이 내 전장이니까.”

바로 몸을 일으켜 내밀어진 노상일의 손을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현재 지독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하기도 전에 포기한다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는데 벌써부터 포기하는 듯한 현장 소방관들의 대화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어.”

“그래. 열기도 문제지만 시야 확보가 아예 안 되잖아.”

“제길, 연기라도 빠져야 뭘 하지.”

진입을 제대로 시도조차 해 보지 않았으면서 본부에서 내려온 대기명령에 어쩔 수 없다며 자위하는 소방관들의 대화를 들으며.

‘아무도 항명하는 이가 없다고?’

지독한 분노를 느꼈고.

“안녕하십니까. 은평소방서 구급대 주임 박민규입니다.”

그 때문에 소개를 마친 박민규는 싸늘한 눈빛으로 늘어선 소방관들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서울은 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 소방관은 없는 겁니까?”

1년 전, 그저 스스로의 안위와 월급만을 위해 근무하던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여서였다.

사람을 구한다는 소방관의 신념이 아닌, 그저 공무원으로서의 주어진 일만 하며 어쩔 수 없다고 핑계만 대던 한심한 옛날이 떠올랐기에.

“뭐요?”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다시 말해 드립니까? 이곳에 소방관은 없습니까? 도움을 주기 위해 왔는데, 제대로 된 소방관이 없네요.”

그에 반문하는 소방관들을 향해 다시 한번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고, 그 태도는 권일섭과 이성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실망입니다, 대장님. 그리고 이성하, 넌 정말 실망이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믿었던 두 사람만은 그래선 안 되었다.

“주, 주임님.”

“내가 아는 예전의 너는 상부에서 그따위 명령 떨어지면 바로 반대했을 거다. 사람이 있다. 사람이 있으니까 살려야 한다.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요구조자를 두고 물러나지 않는다. 그게 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소방관의 긍지 아니었나?”

누구보다 존경하고 동료로서 믿는 두 사람이, 불길 안에 요구조자가 있음에도 방법을 찾을 생각은 않고 어쩔 수 없다며 자위하는 모습만 보인 것에 지독한 분노를 느꼈으니까.

물론 이성하로서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박민규는 제대로 된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불가능해?”

“네, 이거 보십쇼. 불길에 접근도 안 했는데 피부가 다 일어났습니다.”

불길에 제대로 접근도 못 했는데, 이미 열기 때문에 익어 버린 피부를 보이며 하는 말이었다.

“근처만 가도 이런 상태인데, 안으로 들어갔다는 몇 명이 화상으로 다칠지 모릅니다. 구조가 아니라 동료 소방관 중에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요.”

겁을 먹은 게 아니라고.

지금 이 상태로 진입했다가는 그렇게 들어간 소방관들 중에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말에 박민규는 그 어느 때보다 성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그럼 요구조자는!”

그럼 안에 있는 요구조자는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우리랑 달리 방화복도 안 입은 요구조자는 어떨 거 같나? 네가 말한 그 뜨거운 불길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온다는 것을 지켜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요구조자는? 모두 죽고 난 다음에나 구할 거야!”

그 뜨거운 불길이 요구조자를 덮쳐 모두가 죽고 난 뒤에야 들어갈 거냐고 물었으며.

“그 말이 아니잖습니까. 일단 들어가더라도 진압을…….”

계속 극단적으로 말하는 박민규의 말에 이성하 역시 성난 표정으로 반박하려 했지만.

“또 그걸 반복할 거냐!”

이어지는 박민규의 말에 아무 말을 못 했다.

“이름 없는 전시회. 그걸 이 서울에서도 열고 싶냔 말이야!”

슬프게 울리는 한 단어 때문이었다.

“흐윽.”

그 말을 꺼내며 눈시울을 붉히는 박민규의 모습에.

“하아…….”

이성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고, 그건 막사에 있는 모든 소방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구지하철…….”

한 소방관의 멍한 목소리처럼 대구지하철참사와 관련된 슬픈 역사가 지금 박민규가 말한 이름 없는 전시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전시회는 그 당시 희생된 유가족들과 소방관들만 기억하는 아픈 이름이었다.

<희생자 유류품 사진 전시회>

바로 대구지하철 참사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소지품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전시회.

그리고 그 전시회가 열린 이유는 안타깝게도 희생자의 신원을 알기 위함이었다.

참사 당시, 너무 강한 불길 때문에 소방관들이 진입했을 때는 이미 모든 희생자들의 시신 대부분이 재가 돼 뒤섞인 상황이었고, 그런 희생자들의 유족을 찾기 위해 열린 전시회가 이 희생자 전시회였다.

“아빠가 맞아…….”

“제 딸이 맞아요…… 흐윽.”

“미, 미영아. 으허허헝.”

새카맣게 탄 소지품만으로 희생자가 자신의 가족이라는 걸 유족들이 직접 증명해야 하는 슬픔의 자리가 바로 그 이름 없는 전시회였으니까.

그리고 그걸 눈앞에서 본 게 박민규였다.

‘아…….’

구조는커녕 시신조차 제대로 찾아 주지 못한 참사였다.

“대기하란다!”

“뭐라고요!”

“전원 대기!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잖아!”

그때도 지금처럼 뜨거운 불길의 위협에 진입 대기 명령이 내려졌었으며, 박민규는 그때.

“달서대, 대기해!”

어쩔 수 없다며 그 명령에 수긍했었다.

화르르르르르!

‘안 돼. 이건 진입이 불가능해.’

이건 불가능하다고.

들어갔다가는 크게 다칠 확률이 높다고.

하지만 그 선택은 평생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선택이었다.

“엄마…….”

“아빠!!”

“흐어엉. 살려 줘요. 살려 줘.”

눈만 감으면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울려왔다.

금방이라도 주변을 위협하는 뜨거운 불길이 아닌.

“소방관님, 제 남편 구해 주세요!”

“따, 딸아이가 저기 있어! 흐윽.”

“여보! 여보!!”

그저 가족을 구해 달라는 유족들의 울음에.

“으허허허헝.”

매일같이 후회의 눈물을 흘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후회를 눈앞의 소방관들이 하지 않았으면 했다.

“한 번이면 족합니다.”

겪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당신들은 그러지 마세요. 잃고 나서 후회하는 거, 이제 지겹지 않습니까.”

잃고 나서 후회하기보다는 시도라도 해 보고 후회하자고.

그리고 그런 박민규의 진심이 담긴 말에 막사에 모여 있는 모든 소방관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꽈아악.

그 말처럼 불길의 위협에 시도조차 해 보지도 않고 망설였다는 것에 창피해 주먹을 움켜쥐었으며, 앞에 있는 이성하의 경우에는.

짜아아악.

양손으로 거세게 자신의 뺨을 두들겼다.

“젠장.”

쪽팔려서였다.

[야.]

‘창피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요.’

심장 깊숙이 파고드는 박민규의 말에, 너무나도 창피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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