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25화 (225/235)

<강철 소방대 225화>

225화. 인재 (3)

인재(人災)는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는 재난을 뜻하는 말이었다.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나 당연히 해야 할 조치를 취하지 못해 일어나는, 인간의 실수로 벌어지는 재난.

그리고 그런 인재는 예전이라면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어 그에 대한 기준이 강화된 현재의 지하철역이라면, 작은 불은 몰라도 지금처럼 큰불이 일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시설 정비? 지금 이 화재가 설마 철도공사 측의 책임으로 발생한 거라는 겁니까?”

성난 소방관의 말에 멍한 표정으로 묻는 한 소방관의 말처럼, 역사 내부에서 발생하는 화재에 대해서만큼은 완벽하게 보안이 강화된 게 현재의 지하철역 시스템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멱살을 잡혀 있는 철도공사 책임자는 아무 말을 못 했다.

“그, 그게…….”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가 창피했는지 주저하는 눈빛으로 양유철 팀장을 바라봤고, 그 시선에 양유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화재감지기, 수막차단벽. 스프링클러. 게이트비상모드 전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주먹을 꽉 쥐며 하는 말이었다.

“지난 3년간 서초 소방서에서 5개월마다 한 번씩 꾸준히 동안지하철역으로 보낸 조치 명령서입니다. 위반 사항만 수십 개가 넘습니다.”

직접 보고 이야기하라는 듯 옆에 있는 소방관에게 한 뭉텅이의 서류를 넘기며 눈앞의 철도공사 책임자를 죽일 듯이 노려봤고, 그 반응은 서류철을 받아 읽어 본 소방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X발.”

너무 화가 나서 말이 안 나오는 모습이었다.

“하…….”

“X발. 이러니까 불이 저렇게 커졌지.”

“이걸 죄다 무시한 겁니까? 이 미친놈들이?”

이어서 서류철을 건네받은 다른 소방관들 역시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으며, 권일섭의 경우에는.

“이 X새끼들아!”

촤라라락.

악에 받친 표정으로 받아 든 서류 뭉치를 철도책임자에게 집어 던졌다.

“니들이 사람이야! 왜? 아예 불이 일어나라고 고사를 지내지. 알려 줘도 이 X랄을 할 거면 니들이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냔 말이야!!”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나열된 위반 사항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 지하1층 물탱크실 시점 알람 밸브 센서 불량.

* 지하1층 환기실 댐퍼 모터 체결 안 됨.

* 지하2층 전기실 출입구 옆 소화기 불량.

* 지하2층 캐비닛형 자동 소화 장치 약제 없음.

* 지하2층 역무실 P형 1급 화재수신반 비상방송 조작반 기능 불량.

* 지하2층 역무실 화재수신반 응답 표시 안 됨, 수리 요망.

* 지하2층 공조기계실 연기 감지기 불량.

* 지하3층 유도등 미설치.

* 지하3층 스프링클러 설비 센서 오작동.

* 계단 수막차단벽 작동 불능.

* 열차 선로 케이블 교체 요망.

.

.

.

흩날리는 종이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방법 위반 사항들이 빼곡히 적혀 있어서였다.

[불량, 없음, 수리. 어떻게 된 게 하나도 정상인 게 없네.]

기가 찬 렉스의 말처럼 대부분의 소방 시설이 빨갛게 불량 처리가 표시된 상황이었기에.

빠드득.

그 화를 참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들 예상은 하셨을 겁니다. 이번 화재가 뭐 때문에 일어났는지.”

억지로 화를 억누른 양유철이 한쪽에 서 있는 소방관에게 눈치를 줬다.

끄덕.

그에 고개를 끄덕인 소방관이 막사에 모인 소방관들이 볼 수 있도록 노트북을 돌려 영상 하나를 틀었고, 그렇게 틀어진 영상에서는 한 사람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촤아아악.

휘발유로 보이는 액체를 역사 내 한 곳에 잔뜩 뿌림과 동시에.

화르르르르르!

바로 라이터를 이용해 불을 지르는 방화범의 모습이.

하지만 별로 특별한 영상은 아니었다.

“역시 방화범이었네.”

“이 새끼 잡은 겁니까?”

“썩을 새끼. 불은 지가 질러놓고 놀라서 도망가네.”

이미 예상이라도 했듯 욕설을 내뱉는 소방관들의 모습처럼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대부분 방화로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방화사고 맞네요.’

[그래. 그것도 악질이야. 딱 보니까 아예 저 위치에 불을 지를 걸 사전에 계획했었네.]

이성하와 렉스 역시 아직 증거가 없어 말은 안 했지만, 이번 화재가 방화로 발생한 것 정도는 이미 예상하던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양유철은 그런 뻔한 방화범의 존재를 알려 주기 위해 영상을 보여 준 게 아니었다.

“어? 불길이?”

“뭐, 뭐야?”

영상에 보여지는 불길의 확산 속도가 이상하게 너무 빨랐다.

화르르르르르!

휘발유를 부은 지역만이 아니라 그 다른 지역까지도 단번에 불길이 확산되는 광경이 영상으로 나왔고, 그 모습을 끝으로 영상은 단번에 끊어졌다.

지지지직.

[마, 말도 안 돼. 벌써 전력이 다운됐다고? 뭐가 이리 빨라!]

렉스의 말처럼 확산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불길이 그대로 천장을 집어삼켜 전력이 다운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벌어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도, 동안고속터미널역은 불연재가 아니야?”

당황한 한 소방관의 말처럼 역사 내부 역시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불연재로 보강이 된 상태라서였다.

“맞습니다. 지하철역의 모든 소재는 전동차, 역사 할 거 없이 전부 불연재로 교체되게 됐죠.”

그에 고개를 끄덕이는 양유철의 말처럼 모든 지하철역은 혹시 모를 화재를 방비하기 위해 대부분의 소재를 불연재, 혹은 그에 준하는 난연재로 교체하도록 법으로 규정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제외되는 특수한 경우가 하나 있었다.

“이런 썅. 설마 여기 공사하고 있던 겁니까?”

한 소방관의 말처럼 내부 공사를 위해, 공사가 진행되는 부분에 벽을 치는 경우였다.

원래는 이 또한 지하철 내부에서 진행되기에 전부 방염 소재로 진행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행법상 철거가 가능한 가건물에 대해서는 화재 대비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었다.

오로지 권고.

그저 화재 위험성에 대비해 조금만 신경 써서 작업하라는 권고만이 소방관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러다 보니 지하철 내부에 불연재를 써야 한다는 규정은 공사 상황에서만큼은 유명무실했다.

[합판…… 그리고 유독 가스를 뿜어내는 비닐 소재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겠네.]

렉스의 말처럼 방염 효과가 있는 비싼 알루미늄 재질이 아니라 타기 쉬운 합판 같은 가연성 소재들이 늘비할 게 분명했으며, 그렇다면 지금의 비정상적인 불길 확산은 말이 됐다.

‘제길, 공사하느라 열어 둔 천장으로 불길이 바로 번진 거야. 그래서 전기가 바로 끊어졌어.’

가연성 소재를 연료 삼아 잔뜩 커진 불길이 노출된 천장까지 모두 집어삼키며 지하철역 전체로 단번에 확산된 상황인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시설 정비를 개판으로 한 겁니까?”

그렇게 불길에 취약한 상황인데도, 담당 소방서의 권고 조치를 무시한 게 이해가 가지 않아서였다.

방금 멱살을 잡았던 소방관이 분노할 수밖에 없던, 아니 당연히 분노해야 할 그 감정이 마음 깊이 전해져서였고, 그 때문에 눈앞에 있는 철도공사 책임자가 도저히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건 아니잖아.’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빠드득.

이런 대형화재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만.”

그런 자신의 앞을 팔을 들어 막는 권일섭의 행동 때문도 있었지만, 이 긴급회의의 진짜 목적이 따로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팀장님, 아니죠?”

설마 하는 마음에 간절한 표정으로 양유철을 바라봤다.

“대기 명령. 설마 그거 전달하시려고 회의 소집한 거 아니죠?”

효율적인 구조를 위해서가 아닌, 전 소방관들의 대기를 명령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든 게 아니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양유철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아. 지금부터 현장의 모든 소방관들은 요구조자 수색을 잠시 중단한다…….”

“팀장님!”

그 어이없는 대답에 이성하가 반발하는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지만, 양유철 역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판단한다.”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라고.

현장지휘관인 자신 역시 그렇게 판단한다고.

그리고 이성하는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구간의 길이만 150미터야.”

힘없이 이어지는 양유철의 설명 때문이었다.

“3호선 지하상가 전체를 리뉴얼 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어. 7호선과 9호선 역도 일부지만 마찬가지인 상황이고.”

그 문제의 공사가 3호선만이 아닌 환승으로 붙어 있는 7호선과 9호선에도 같이 이루어졌다고 말했으며, 그 말은 소방관들의 역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걸 뜻했다.

“지하상가 전체가…….”

그 지하상가를 통과해야만 고립된 시민들이 있을 걸로 여겨지는 대합실과 승강장으로의 진입이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성하 스스로가 역사 내부로 직접 들어가 봤던 만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화아아아악!

불길이 아닌, 그 불길에 달궈진 지독한 열기 때문에 잠시 재정비를 위해 나온 상황이었기에.

‘안 돼…… 지금 들어갔다가는 진입한 소방관이 위험해.’

현재로서는 소방관의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잘 알았으니까.

그래서 더 반박할 수 없었다.

구조를 떠나 진입한 동료 소방관들이 사망할 경우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방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소방관이 된 이후에도 항상 수없이 되뇌며 명심해야 할 게.

[요구조자는 둘이다, 성하야.]

지금 렉스가 경고하는 저 말이었기에.

‘제길…….’

차마 동료 소방관의 희생이 담보될 수도 있는 진입작전을 강행하자고 말을 꺼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분위기 더럽네.”

막사 바깥에서 둔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촤아악.

닫혀 있는 막사 입구를 거칠게 열며 몇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고, 그중 가장 앞에 있는 인물에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보, 본부장님?”

들어온 사람이 경기재난본부장인 노상일이라서였다.

“그래. 노상일이라고 하네. 처음 보는 친구들이 꽤 많구만.”

경기지역의 최고 책임자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소방본부의 다음 대 청장으로 유력한 노상일의 등장에.

“안전!”

“안전!!”

모두 기겁한 표정으로 경례를 올렸으니까.

하지만 권일섭과 이성하만은 경례를 올리지 않았다.

끄덕.

지금 자신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노상일본부장과 친분이 있어서?

아니었다.

알고 지내며 친한 사이일지라도 현장에서 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례를 올리지 못한 건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그런 노상일과 함께 있어서였고.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 자네가 직접 하게.”

“알겠습니다.”

그 사람이 앞으로 나섬에 권일섭과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십니까. 은평소방서 구급대 주임 박민규입니다.”

현재 암 치료 때문에 병원에 있어야 할 박민규가 근무복을 입은 모습으로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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