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24화>
224화. 인재 (2)
대구 지하철 참사는 대한민국에서 철도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한 끔찍한 사고였다.
열차에서 불을 지른 방화범의 잘못된 행동으로 192명이라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기록한 인재 사고.
하지만 사망자가 많은 이유를 방화범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애초부터 잘못된 설비, 화재에 제대로 대처 못 한 철도공사의 무능 등 원인으로 꼽을 사항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화재로 발생한 유독 가스였다.
화아아아악!
전동차와 역사 내를 불태우며 발생한 유독 가스가 지하철역 전체를 휘감다 못해 역 외부로도 뿜어질 정도로 많은 양이 발생해서였고, 그 현상이 지금 눈앞에도 벌어지고 있었다.
“제길, 호흡기 착용해!”
대장인 권일섭이 바로 대원들에게 공기호흡기 착용을 지시할 정도로 이미 역 주변이 새카만 연기로 가득 뒤덮인 상태였다.
“사, 사람 살려!”
“콜록, 콜록. 모두 피해요!”
“흐아아앙. 엄마.”
그런 연기를 피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며 대피 중인 상황이었으며, 먼저 현장에 와 있던 소방관들은.
“제길, 지원 필요해!!”
그 새카만 유독 가스 속에서 지원이 필요하다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구급대! 부상자 인계 바란다!”
“들것! 들것 더 가져와!”
“이런 X발. 사람이 죽어 간다고! 빨리 오란 말이야!”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연기 속에서 하나둘씩 역사 내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끌고 나오며, 빨리 서둘러 달라고 지원을 요청하던 상황인 것이다.
그 때문에 바로 공기호흡기를 착용한 은평대는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역사 입구로 달려갔다.
“우리도 지원한다!”
“알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하는 동료들을 서둘러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허억, 허억. 구급대!”
“구해야 해! 좀 더 구해야 해!”
이미 역사 내에서 수차례나 고립된 요구조자들을 구조하면서도, 또다시 사람들을 구하러 들어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진입해!”
“악!”
바로 새카만 연기가 뿜어 나오는 지하철역으로 돌입을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 용맹한 발걸음과 다르게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 대장님 앞이…….”
김필주의 말처럼 앞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화아아아악!
얼마나 불길이 거센지, 정신없이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에.
“자세 낮춰서 들어간다!”
“아, 알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자세를 낮췄음에도 전진하는 속도는 계속 느려졌다.
“이거 너무 심한데?”
“네, 시야 확보가 아예 안 됩니다! 라이트가 소용이 없어요!”
다들 당황한 표정으로 팔을 뻗어 보는 것처럼, 생각보다 뿜어지는 연기가 너무 농후해 헬멧에 착용한 라이트가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은평대는 자세를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바닥에 붙어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촉감으로 수색하며 내려간다.”
혹시 모를 요구조자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화아아아아악!
이 새카만 연기에 역사 어딘가에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는 요구조자를 놓칠 수 있기에.
터억. 터억.
모두가 기다시피 손으로 주변을 훑으며 천천히 역사 내부로 진입했고, 잠시 후 은평대는 그렇게 손에 걸리는 감촉에 각자가 보유하고 있던 보조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제길, 요구조자 발견!”
첫 요구조자의 발견이었다.
“여기도 있습니다.”
“여기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지 곳곳에서 요구조자를 찾았다며 동료들이 억눌린 고함을 외쳤으며, 그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툭.
주변을 훑던 손에 무언가 툭 걸림에.
‘설마…….’
헬멧에 착용한 라이트를 그에 가까이 대었고, 그렇게 육안으로 보이는 사람의 형체에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
확인한 요구조자의 체구가 생각보다 작아서였다.
“하아…… 하아…….”
생명이 경각에 달한 듯 작은 체구의 형체가 힘겨운 숨소리를 내뱉는 것에.
“아이예요! 당장 끌고 나가겠습니다!”
바로 마스크를 씌운 채 둘러업고 밖으로 뛰어나가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일련의 행동을 이성하는 계속 반복했다.
“구급대! 아이입니다! 바로 병원으로 부탁합니다!”
나오자마자 밖에 있는 구급대에게 업고 온 아이를 인계하고는.
화아아아악.
검은 연기가 뿜어지는 역사 내로 다시 돌입했다.
‘더 있어! 살려야 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다시 악착같은 표정으로 바닥을 기며 역사 내부로 들어갔으며.
투욱.
다시 손에 걸린 요구조자의 감촉에.
“요구조자 발견. 다시 나갑니다!”
바로 그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고 등에 업었다.
“허억, 허억.”
쉬지 않고 움직인 덕분에 입에서 단내가 흘러나왔지만.
“구급대!!”
다시 구급대를 외치며 요구조자를 업고 역사 밖으로 나갔고, 그 모습은 은평대, 아니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소방관들의 모습이었다.
“빨리 밖으로!”
“살 수 있어! 아저씨! 살 수 있어요!”
“선생님, 나가기만 하면 돼요! 좀만 버텨요!”
어떻게든 요구조자를 살리기 위해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역사 내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밖으로 옮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 필사적인 구조는 어느덧 한계에 이르렀다.
화르르르르르!
불길에 달아오른 뜨거운 연기 때문이었다.
개방된 외부라면 몰랐지만, 밀폐된 지하 공간에서 일어난 화재였기에.
“제길, 너무 뜨거워…….”
“팀장님! 저 화상 입은 거 같습니다…….”
“끄응…… 젠장!!”
곳곳에서 뜨겁게 달궈진 열기에 비명을 지르는 소방관들이 속출했고, 그건 은평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단 물러나자!”
“대장님!”
“이 새끼야! 더 이상 있다간 죽어! 일단 위에서 재정비한다!”
누구보다 사람의 생명을 최선으로 하는 권일섭조차 잠깐 밖으로 나가 재정비를 지시할 정도로, 지하철 내부의 공기가 잔뜩 달궈진 상태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접근이 가능한 지역의 요구조자만큼은 밖으로 모두 끌어낸 상황이었다.
“마동민! 나랑 마지막 수색한다!”
“알겠습니다.”
그 때문에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요구조자 수색을 위해 이성하와 마동민만이 마지막으로 그 주변을 훑었고.
“대장님, 나가도 됩니다! 일단 이 구역에 더 이상 사람은 없습니다!”
마지막 확인을 마친 이성하의 고함에 은평구조대는 겨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좋아! 잠깐 올라가서 재정비한다!”
“허억, 허억. 알겠습니다!”
미흡할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접근이 가능한 지역의 수색만큼은 모두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안도할 상황은 아니었다.
“제길, 아직 사람이 더 있을 게 분명한데.”
올라오자마자 머리에 물을 뿌린 허석훈이 분통을 터트렸다.
“구급대!!”
“조심해! 조심히 옮겨!”
아직 구조가 진행 중인 다른 역사 입구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으며, 그 말을 이성하 역시 부정하지 않았다.
‘제길, 수색할 구역이 너무 많아.’
지금 화재가 발생한 동안고속터미널역은 3호선, 7호선, 9호선이라는 3개의 노선이 합쳐진 대형 지하철역이었다.
한마디로 그에 연결된 출입구가 거미줄 같이 뻗어진 게 지금 화재가 발생한 지하철역의 상황이었고, 문제는 그 외에도 확인되지 않은 출입구가 너무 많다는 거였다.
- 나라백화점으로 지원 인력 더 필요합니다.
- 동아마트도 인원 부족합니다. 도착한 소방대 이쪽으로 보내 주십쇼.
- 데니트호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쪽은 불이 번지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무전의 내용처럼, 기존의 역사 입구 외에도 지하상가를 통해 건물로 연결되는 입구가 너무 많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면에 그를 수색할 소방관들은 너무 적었다.
[인원이 너무 부족해. 대형 빌딩이 너무 많아. 저걸 다 수색하려면 소방관이 천 명은 있어야 해.]
렉스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 대형 빌딩들이 대부분 연결된 게 동안고속터미널역이다 보니, 그 많은 빌딩들까지 수색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할지 가늠이 안 가는 상황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나오는 건 분노였다.
‘한국철도 이 답답한 새끼들.’
이렇게 불이 커질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한 철도공사에 열불이 터져 나왔고.
“대장님, 특수재난구조대 설립에 반대한 정치인들 누굽니까?”
이런 상황에 꼭 필요한 특수재난구조대 설립에 반대한 정치인들에 분노가 흘러나왔다.
“왜? 알면 찾아가서 조지려고?”
“네, 아주 아작을 낼 겁니다. 특수재난구조대가 있었다면 이렇게 사태가 커지기 전에 봉합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1시간 걸려서 온 거리. 단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요.”
LA카운티와 같이 백여 명에 달하는 소방관들이 현장에 바로 투입되는 특수재난구조대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될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 특수구조대의 양유철 팀장입니다. 잠시 긴급회의를 할 테니, 각 구조대에서 두 명씩 참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니 각 구조대의 긴급회의를 알리는 양유철의 무전에도 그 목소리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팀장님이라도 빨리 왔어야죠.’
이번에도 역할을 해 줘야 할 특수구조대의 도착이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울시 특수구조대>
지휘막사 옆으로 보이는 특수구조대 마크가 적힌 버스를 보면, 이번에도 차로 출동해 현장에 도착한 게 분명했고.
“이성하, 네가 나랑 가자.”
“제가 갑니까?”
“그래, 필주는 여기 남아서 상황 정리해야 할 거 아냐?”
“하…….”
그 때문에 평소였다면 반가워할 회의 참석 지시도 그리 내키지 않았다.
“뭐가 그리 불만이야?”
“지휘막사에 철도공사 놈들 있을 거 아닙니까? 그놈들 보면 때릴 거 같아서 그래요.”
보통 대책회의가 열리는 이유가 현장을 담당하는 책임자의 설명을 듣기 위해 열리는 자리인 만큼.
“아, 씨.”
답답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상 자신이 가야 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석훈이 말고 너 데려가는 거야, 인마. 저놈 갔다가는 몇 놈 죽는 거 몰라?”
권일섭의 말처럼 성격 더러운 허석훈이 갔다가는 바로 철도공사 책임자들의 목이 졸라질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끄응, 가시죠.”
그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권일섭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걸음을 옮기며 마음속에 쌓인 화를 내려놓기 위해 노력했다.
[참아, 구조가 먼저야.]
렉스의 말처럼 책임보다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구조가 급한 상황이라서였다.
“실린더 좀 더 갖다 줘!”
“들어가! 아직 사람 더 있어!”
아직도 역사 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동료 소방관들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그래. 참자. 책임은 나중에 묻자.’
그들에 대한 책임은 구조를 끝내고 묻자고.
하지만 그건 괜한 수고였다.
“이 X새끼들아. 니들이 사람이야!”
회의가 열린다는 지휘막사에서 잔뜩 열이 받은 한 남성의 목소리가 밖으로 고함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이거 좀 놓고…….”
“우리가 수차례 경고했잖아!”
그에 당황해 막사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 소방관이 철도공사의 책임자로 보이는 남성의 멱살을 잡은 채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그 소방관의 입에서 다시 울리는 말에 이성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X발…….’
사고의 원인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설 정비 몇 번이나 경고했잖아! 왜 수리 안 했냐고!!”
혹시나 했지만 정말 인재로 화재가 발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