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23화>
223화. 인재 (1)
쌀쌀하지만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을이 찾아왔다.
“자기야! 여기야! 여기!”
“어! 자기야!”
거리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서로를 향해 방긋 웃음을 지었고.
“아빠! 나 핫도그 먹고 싶어.”
“그래? 우리 아들 핫도그 사 줄까?”
아들의 귀여운 요청에 웃음을 터트리며 지갑을 꺼내는 아버지도 있었다.
“야! 패스해! 패스!”
“이 새끼들아! 빨리 수비 안 돌아오고 뭐 해!!”
선선한 가을 날씨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그 분위기를 은평소방서 역시 실컷 만끽하고 있었다.
“어이, 구조대. 오늘 점심 족구 내기 어때?”
“3판 2승입니까?”
“당연하지. 듀스 룰은 없는 걸로.”
“콜입니다!”
항상 바쁘게 돌아가던 은평소방서 역시 선선한 날씨에 족구 공을 꺼내 들 정도로 한가로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일상에 이성하는 혼자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어? 이성하, 넌 족구 안 하냐? 다들 하던데?”
사무실 앞을 지나던 행정직원이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족구 경기가 펼쳐지는 밖을 가리켰지만.
“괜찮아요. 좀 쉬려고요.”
이성하는 지금처럼 지켜보는 게 좋았다.
[애들 잘하네.]
‘잘하죠. 우리가 할 운동이 족구밖에 없잖아요.’
저렇게 방화복이 아닌 당근복을 입고 일상을 즐기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고, 어차피 나가 봤자 껴 주지 않을 거라는 이유 때문도 있었다.
‘근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하네. 내가 잘하면 얼마나 잘한다고 바로 빠지라고 하냐.’
안 그래도 경기 시작 전 참가 의사를 밝혔다가 동료들에게 거절당한 상황이라서였다.
“저도 같이 뛰면 안 됩니까!”
“야, 이성하. 프로가 아마 경기에 끼면 반칙인 거 몰라?”
“에이, 제가 왜 프로입니까? 똑같은 아마지.”
“아무튼 안 돼. 너 끼면 내기 안 돼. 빠져.”
경기를 제안한 진압대나, 같은 팀인 구조대 역시 한 목소리로 이성하의 경기 참가를 배제한 덕분에.
“아, 커피 맛있다.”
이렇게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기 결과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 선배! 그걸 놓치면 어떻게 해요!”
허석훈이 공을 놓치는 장면에 득달같이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실수야, 실수.”
“아, 뻔한 공이었잖아요! 집중 안 해요! 집중!”
실수였다고 변명하는 허석훈의 말에도 집중하라며 고함을 질렀고, 그건 권일섭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민아, 때려 넣어! 스파이크! 스파이크!!”
경기를 뛰지 않음에도 자신이 뛰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으며, 그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어이쿠, 권 대장님. 점심 잘 먹겠습니다.”
“충일아, 아직 안 끝났다.”
“에이, 이 정도면 끝났죠. 애들 오늘 컨디션이 안 좋네요. 점심 진짜 맛있겠네.”
점점 구조대가 밀리는 경기에 진압대의 임충일 대장이 약 올리듯 웃음을 터트린 것처럼, 패배한 팀이 승리한 팀의 점심을 사는 게 오늘 족구 경기에 걸린 내기 내용이었으니까.
그리고 안타깝게도 경기는 구조대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집중해요! 집중!”
점점 말려 가는 경기에 이성하가 커피를 내려놓고 전력을 다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게임 셋! 2대0으로 진압대 승리.”
심판을 본 대원의 고함처럼 진압대가 2세트 모두 가져가며 완벽한 압승을 거두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방금까지만 해도 달게 느껴지던 커피에서 쓴맛이 올라옴을 느꼈다.
‘젠장, 피 같은 내 돈…….’
그냥 가벼운 점심 내기가 아니라, 고기가 걸린 점심 내기라서였다.
“막내야, 삼겹살이랑, 돼지고기 싹 시켜라.”
“얼마나 시킬까요?”
“우리 덩치가 있으니까 두당 3인분 정도씩은 시켜야 하지 않겠냐?”
신나서 대화를 나누는 진압대원들의 모습처럼 거의 회식이 걸린 점심 내기나 다름없었고.
“미, 미안하다. 내 실수가 너무 많았어.”
그에 이번 경기에 가장 패배 요인으로 꼽히는 허석훈이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다가와 사죄를 청했지만, 그 사죄를 받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자신 있다며!”
“그, 그게…….”
“네가 자신 있다고 고기 내기하자고 한 거잖아!!”
원래 도시락이었던 점심 내기를 고기로 몇 단계나 상승시킨 장본인이 눈앞에 있는 허석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이에에에엥!
긴급 출동을 알리는 출동벨 소리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소방관들의 귀에 요란스럽게 꽂혀 들어갔다.
“출동!”
“야, 뛰어!”
그와 동시에 족구장에서 웃음을 터트리던 모든 대원들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소방차가 있는 차고지로 달려갔고.
드르르륵.
그렇게 열리는 차고지 문을 보며 빠르게 방화복을 착용했다.
“화재다! 빨리 입어!”
“알겠습니다!”
아직 상황은 모르지만 출동벨 소리가 화재 상황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였기에.
부르릉.
“여기는 은평대. 출동 장소 알려 주기 바란다. 바로 출동하겠다.”
바로 차를 출발시키며 상황실에 자신들이 출동할 위치를 물었으니까.
하지만 울리는 상황실 무전에 출동에 나선 모든 소방관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은평대 전원은 빠르게 서초구의 동안터미널역으로 출동하기 바랍니다.
“뭐? 서초?”
출동 장소가 자신들의 담당 구역이 아닌 서초구라서였다.
“지금 무전에 혼선 있는 거 아닙니까? 여기는 은평대입니다. 출동 장소가 서초의 동안터미널이 맞습니까?”
그 말에 구조 버스에 탑승한 김필주가 잘못 송신된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무전 내용은 변함이 없었다.
- 서초구의 동안터미널역이 맞습니다. 현재 지하철역에 화재가 발생한 상태입니다.
다시 한번 서초의 동안터미널역이 출동 장소라는 상황실의 무전이 울렸다.
그것도 지하철역에 화재가 발생한 상태라고 알려 왔고.
우웅.
그와 동시에 모든 대원의 핸드폰이 거친 진동음을 토했다.
“화, 확인하겠습니다.”
그에 막내인 마동민이 당황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 서울의 모든 소방인력에 비상 출동 명령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그러니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다급한 음성으로 현 상황을 정확히 알려 주는 상황실의 무전 때문이었다.
은평소방서만이 아닌 서울의 모든 소방인력에 비상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고 말했으며, 은평대가 알기로 그런 상황은 하나밖에 없었다.
<광역 3호 발령>
“과, 광역 3호…….”
“진짜야? 모든 인력 동원이라고?”
망연자실한 대원들의 모습처럼 서울의 모든 소방인력을 총동원하는 광역 3호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권일섭은 성난 표정으로 무전을 잡았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무리 지하철 화재라도 갑자기 광역 3호라뇨.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지하철 화재가 중대 재난에 포함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단번에 3호 발령으로 올라가는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팀장님, 지하철역에 3호 발령이 떨어지는 게 가능한 겁니까? 옛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불가능하잖아요. 대부분이 불연재일 텐데.”
옆에서 멍한 표정으로 김필주에게 물어보는 마동민의 모습처럼, 현재 서울의 지하철역은 대부분의 화재에서 완전한 방비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하철역에서 3호 발령이 떨어질 정도의 화재가 났다고? 그게 말이 돼?’
동안터미널역은 아니지만, 은평구 관할의 지하철역은 이미 몇 주 전에 확인해 본 적이 있었기에,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동차 좌석 전부 알루미늄으로 바뀐 거 아니었어?]
‘맞아요. 좌석만이 아니라 내부 전체를 불연재로 바꿨어요.’
렉스 역시 의문을 표할 정도로 가장 화재 위험이 높은 전동차에 대한 대비가 완벽하다는 걸 이미 확인한 상태였고, 그런 대비는 지하철 역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이 날 수는 있어도 3호 발령까지가 가능한 건가? 보안요원들도 꾸준히 돌아다니고 제연 설비들도 다 설치돼서 큰불이 나기 전에 진화 가능한 거 아니었어?”
허석훈의 떨떠름한 목소리처럼 화재 위험이 있는 역사 또한, 큰불에 대한 대비가 완벽한 건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안터미널역에 화재가 난 건 실제 상황이었다.
“뭐, 뭐야. 이거…….”
한쪽에서 핸드폰을 만지던 도성민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 대장님. 이거 심각한데요.”
“어느 정도인데 그래?”
“이미 역 전체가 연기로 뒤덮인 상황 같습니다. 시민이 찍은 영상인 거 같은데. 완전 새카매요.”
어느새 지하철역 상황을 검색해 봤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이 보던 핸드폰을 권일섭에게 넘겼고.
“대장님. 저도 보여 주세요.”
그에 영상을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던 이성하는 재생되는 영상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지금 뭡니까? 설마 환풍구가 작동 안 하는 겁니까?”
설마 했지만 정말 도성민의 말처럼 역 내부가 이미 새카만 연기로 뒤덮인 상황이라서였다.
- 사, 사람 살려!
- 불이에요! 모두 올라가요!
- 빨리빨리 올라가라고!
역 내에 가득 차는 연기를 피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오르는 모습이 영상으로 나왔고, 그런 사람들의 뒤로 새빨간 불길이 거세게 일렁이고 있었다.
화르르르르!
[진짜 지하철 내부에 화재가…….]
렉스의 말처럼 정말 역사 내부에 큰 화재가 발생한 상황인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바로 운전대를 잡은 허석훈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님, 진짜 3호 상황입니다. 더 서둘러야 해요!”
정말 지하철 역사 내부에 화재가 일어났다면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이었다.
‘10년 전 대구에서도 200명 가까운 사람이 사망했었어. 근데 그게 서울에…….’
바로 대구 지하철 사고.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의 소방관이라면 수없이 공부하고 영상으로 봐야 했던 그 처참한 재난이 다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배, 더요!”
“알고 있어!”
부르릉.
안 그래도 엑셀을 밟고 있는 허석훈에게 더 간절한 마음으로 서두를 것을 부탁했으니까.
하지만 현장 상황은 최악이었다.
“연기, 보입니다!”
동안고속터미널역 도착까지 5km나 남은 상황인데도 멀리서 새카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차에서 보였다.
이에에에엥.
도로에는 저 지하철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속이 다른 수십 대의 소방차들이 즐비한 상황이지만.
화아아아악!
그런 소방차들의 지원 따위는 겁 안 난다는 듯 새카만 연기가 하늘을 자욱하게 물들이고 있었고.
“제길, 여기서부터 뛴다.”
“여기서부터 말입니까?”
“그럼 앉아서 기다릴 거야? 전부 장비 들고 뛰어!”
“알겠습니다!”
그 때문에 어떻게든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권일섭이 소방차를 버리고 도보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지만, 그 명령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
이미 역사 주변이 새카만 연기로 가득 찬 상황이라서였다.
‘또, 똑같아,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상황이야…….’
영상으로만 봤던 대구 지하철 참사의 현장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