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22화>
222화. 복귀 (3)
“인준이요?”
떨떠름해하는 이성하의 말에 권일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특수재난구조대 건은 노 본부장님이 다음 소방총감으로 거의 확정된 만큼, 본부에서도 강력하게 밀어붙인 사안이야. 늘어나는 재난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특수재난구조대의 설립은 재난 안전에 집중하겠다는 이번 정부의 공약에도 맞아떨어지는 사안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왔어.”
“불가능하다고요?”
“어. 특수재난구조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위쪽의 대답이 왔다. 한마디로 예산이 부족하다는 거지.”
권일섭의 말에 이성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산이요? 설마 돈 문제라는 겁니까?”
“그래. 정권 초기이다 보니 다른 쪽으로 들어갈 예산이 많아서 좀 보류하잔다. 그 대답에 노 본부장님이 노발대발했지만 어쩔 수 있겠냐? 다른 부서에도 예산이 부족해서 소방본부에만 밀어줄 수 없다는데.”
“하…….”
몇 달 전 청운호 인양이라는 지난날의 과오를 떠올리게 하는 큰 사건을 맞이했음에도, 특수재난구조대의 설립을 뒤로 미룬다는 정치인들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말도 마라. 취소 안 된 게 다행이라는 말도 있어.”
“취소요?”
“그래. 몇몇 돌대가리들이 중앙구조본부가 있는데 그걸 왜 만드냐고 했대. 이미 전국의 특수구조대를 관할하는 중앙구조본부가 있는데 왜 쓸데없는 기관을 또 만들어 돈을 쓰냐는 거지.”
심지어 옆에서 말을 더하는 허석훈의 말을 들어 보면 보류 정도가 아니라 취소 의견까지 나온 상황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미친놈들 아니에요!?”
“야, 인마. 목소리 너무 커.”
“아니, 그렇잖아요. 작년 동아백화점 사건이 얼마나 지났다고 그래요. 가뜩이나 인재로 발생한 사고를 왜 더 큰 인재로 만드냐고요!”
벌써 몇 번이나 인재라고 불릴 수 있는 대형 사고들을 겪었음에도 벌써 까먹고 답답한 이야기를 하는 윗대가리들이 너무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거기다 지금 있는 중앙구조본부를 말하는 그들의 가증스러움 때문도 그랬다.
“그리고 중앙구조본부요? 그게 지들이 할 말이에요? 집행할 예산 다 깎아서 반쪽짜리로 만들어 놓고 뭐요? 충분하다고요?”
지금처럼 정치인들이 예산을 핑계로 설립 당시부터 온갖 태클을 걸어 권한을 축소시킨 기관이 소방본부의 중앙구조본부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국가적인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특수 창설됐지만, 그 취지에 걸맞지 못하는 대접을 받는 기관이 중앙구조본부였고, 그건 작년에 동아백화점 사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떤 나라의 특수구조대가 재난현장에 헬기가 아닌 차로 출동합니까?”
양유철이 이끌던 서울특수구조대는 물론이고, 중앙구조본부 휘하의 수도권특수구조대 역시 당시 현장에 차로 출동한 상황이었다.
“헬기가 한 대밖에 없답니다! 원래 두 대 있는데 한 대는 고장 나서 한 대만 사용 가능하다는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말 그대로 그냥 응급환자 수송용 아닙니까. 헬기장도 다른 곳에 있고.”
심지어 보유 헬기의 숫자도 적었지만, 그 위치 또한 따로 운영해 협력이 안 되는 게 한국의 특수구조대 시스템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래서 헬조선이라고 하는 겁니다. 미국은 안 그랬어요. 그쪽도 비리가 판치는 건 똑같지만,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소방조직만큼은 전적으로 밀어줬다고요!”
쭉 한국에 있었다면 모르지만, 소방 선진국에 해당하는 미국의 시스템을 직접 경험하고 오다 보니 너무 비교되는 마음에 창피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권일섭 역시 그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뭐, 그렇긴 하지. 내가 생각해도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어.”
누구보다 오래 소방관으로 근무했던 만큼 잘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방화복 비싸다고 우비 입고 화재 진압하라고 할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생각만 해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소방관에 대한 처우가 개판인 나라가 이 대한민국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도 너희 세대에는 좀 낫지 않냐?”
생각만 해도 정말 욕이 나오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제는 장비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급해 주잖아. 그러니까 너무 우울해하지는 마라. 우리가 그랬듯이 너희들도 조금씩 바꿔 가면 돼.”
옛 세대부터 지금까지 버텨온 소방관으로서 조금씩 바꿔 가면 된다고 말했고, 그게 권일섭의 각오였다.
“특수재난구조대 설립. 보류는 됐지만 절대 무산되는 일은 없을 거야.”
정년퇴직을 하기 전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번 특수재난구조대의 설립은 책임지고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노 본부장님도. 그리고 현역에 있는 소방간부들 모두 이 일에 달라붙고 있거든.”
그 때문에 노상일을 비롯한 모든 소방간부들이 이 일에 달라붙고 있다고 말했으며.
“흠…… 위에서 예산 문제로 질질 끌면 지금의 중앙구조본부처럼 반쪽짜리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걱정하는 이성하의 물음에는.
“아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확언했다.
“없다고요?”
“그래. 아직 발표는 안 났지만, 너도 알다시피 노상일 본부장님이 다음 대 소방총감이 되는 건 거의 확실하잖냐.”
아직 취임식만 안 열렸을 뿐이지, 다음 대의 소방총감은 노상일이 확실하다고.
그리고 그건 빈말로 하는 게 아니었다.
“어제 노상일 본부장님이 대통령님을 만나서 확답을 받아 오셨다. 이번 특수재난구조대 설립. 소방총감으로 취임하면 바로 진행하겠다고.”
서랍에서 한 서류철을 꺼내며 하는 말이었다.
<은평소방대 피어스 펌프차 인계서>
“이성하가 이번 미국 연수에서 얻어온 피어스 펌프차 중 두 대가 우리 은평소방서로 인계될 예정이다. 총 세 대 중 두 대가 이곳에 배속되고 그 두 대는 차후 우리가 직접 특수재난구조대로 옮겨 갈 때 같이 넘어갈 거야. 이 정도면 믿을 수 있겠지?”
서류철에 적힌 제목처럼 은평소방서로 이성하가 받아온 피어스 차량 중 두 대를 인계한다는 정식 인수서였고, 그 말에 이성하도 마음을 풀 수 있었다.
“두 대라면 뭐.”
한 대면 몰라도 두 대라면 믿을 수 있었다.
[합해서 40억인가? 확실히 피어스 두 대를 은평소방서로 내준 거면 특수재난구조대 설립 건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
렉스의 말처럼 한 대당 20~30억이 나가는 피어스 펌프차를 특수구조대도 아닌 은평소방서로 두 대나 배속한다는 건, 정부 역시 노상일 본부장과 한 약속을 지킬 마음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당장은 아니었다.
“에이, 그래도 한 달 뒤 아닙니까?”
“그러네요. 아직 한참 멀었네요.”
실망하는 도성민과 마동민의 모습처럼 정식 배속까지는 아직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은 상황이었다.
“아니지, 점검 마치고 우리 식으로 개조하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한 달은 더 잡아야지.”
“그럼 두 달입니까?”
“짧으면 두 달. 길면 세 달이라고 봐야겠지.”
그에 웃으며 정정하는 김필주의 말처럼 차량 정비까지 생각하면 최소 정식 배속에 두 달은 더 걸리는 상황.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딱 좋네. 정식 배속 전까지 훈련하면서 기다리면 딱이네요.”
안 그래도 자신이 연수를 가서 익혀온 LA카운티의 교육 방식을 대원들에게 전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참이었다.
“……뭐? 훈련?”
그 말에 허석훈이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지만.
“네, 훈련해야죠. 특수구조대 같이 안 가실 거예요?”
이성하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그건 나중에 특수재난구조대 설립되고 난 이후에 해도 괜찮…….”
그 때문에 허석훈이 다급한 표정으로 권일섭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지만.
“안 되죠.”
이성하는 단번에 그 앞을 막으며 말을 잘랐다.
“저 8개월 배웠습니다. 그거 다 익히려면 오늘부터 밤새도 부족합니다, 선배.”
일부러 호칭에 님자를 빼가며 훈련의 당위성을 설명했으며, 그 말을 권일섭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제대로 가르쳐. 이 기회에 배워야지.”
어차피 자신은 안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암, 대장님 말이 맞아. 젊을 때 훈련 많이 해야지. 나중에 나이 들면 못해.”
김필주 역시 흡족한 미소로 권일섭의 말에 찬성표를 던졌고.
“아, 안돼요. 안 그래도 와이프가 퇴근 매일 늦는다고 구박하는데 개별 훈련까지 하면 저 쫓겨나요!”
“티, 팀장님. 저 다음 주에 소개팅 있습니다. 그거 펑크 내면 저 죽습니다!”
“저는 저번 주 화재현장에서 다친 거 아직 다 안 나았는데…….”
그에 세 사람이 각자의 이유를 대며 이성하의 훈련제안에 강한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이미 이성하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주말을 포기할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민정 씨도 당분간 밀린 근무 채워야 해서 만나기 힘들다고 했는데, 잘됐어.’
어차피 김민정 또한 당분간은 펠로우 근무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고 했기에.
“이번 주부터 주말도 건강한 소방 생활을 위해 주말을 저에게 양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전!”
세 사람을 향해 활짝 웃으며 각이 서린 동작으로 경례를 올렸고, 그렇게 구조3팀은 당분간 훈련 모드로 들어갔다.
“아…… 내 즐거운 주말이…….”
“내 소개팅…….”
“전근 신청할까…….”
작년 주말만 되면 하루 종일 북한산을 뛰어다니던 그 지옥 같은 나날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런 훈련은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에에에엥!
“출동!!”
“다들 일어나!!”
항상 쉬지 않고 출동 벨이 울리는 건 매일 같았지만.
“다들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행히 큰 건 아니었네요.”
재난이라고 칭할 정도의 큰 사고는 없는 나날이 이어졌기에.
“어때요? 선배. 할 만하죠?”
“할 만은 개뿔! 넌 내가 나중에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선배님.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으아아아아!”
이렇게 주말마다 웃으며 훈련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를 비롯한 대원들은 몰랐다.
* * *
“빌어먹을 세상! 왜 나에게만 그래!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세상을 향해 누구보다 성난 모습으로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열심히 살았어! 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어! 근데 국가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사기를 당한 거잖아. 그럼 국가가 책임져 줘야지!”
국가의 책임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사연을 적은 팻말을 든 채 울분의 고함을 세상에 외치고 있었고, 그 내용은 어이없게도 주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책임져라! 정부 이 새끼들아! 니들 말 믿고 투자했다가 망한 거잖아!”
본인이 직접 결정해서 하는 투자 행위가 주식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손해를 입자 나라 탓을 하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고함은 오늘이 마지막이 될 예정이었다.
“뭘 봐! 그따위 표정으로 쳐다보지 마!”
안타까움보다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자신은 위로를 원했는데 대부분이 위로가 아닌 경멸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남자는 결국 세상을 크게 불태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이 더러운 세상. 내가 불태워 주마. 너희들은 꼭 누가 죽어야 정신 차리지.’
오직 자신만 안 되는 이 쓰레기 같은 세상을 화려한 불빛으로 깨끗하게 불태울 것을.
하지만 그 아집에 찬 고함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사람 뭐야?”
어이없이 남 탓이나 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어서였으며, 그렇게 남성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고 보자.’
오직 상처 입은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본인 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