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19화>
219화. 생명을 걸어야 할 때 (8)
“으음…….”
이성하가 눈을 뜬 건 병원으로 이송되고 하루가 지난 후였다.
“리! 일어났어요?”
“미스터 리, 괜찮아요? 저 누군지 알겠어요?”
“하하하. 당연히 알죠, 케르하. 그리고 샘도.”
눈을 뜨자마자 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반기는 메이닌 마운틴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고, 그에 옆에서 자리를 지키던 한 소방관이 바로 핀잔을 던졌다.
“웃음이 나오냐?”
LA카운티의 스모크 점퍼 로렌스였다.
“어? 너도 왔었어?”
“너도? 이 새끼가 진짜.”
퍼억.
길가다 우연히 만난 친구 대하듯 여유로운 이성하의 모습에 로렌스가 바로 주먹으로 배를 가격했고.
“아! 로렌스! 나 환자야!”
그 충격에 이성하가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지만, 로렌스는 멈추지 않았다.
“이게 한두 번이냐 새끼야!”
퍼억.
이런 상황이 벌써 두 번째라서였다.
“시카고 때도 이러더니, 너 진짜 죽고 싶어!”
퍼억. 퍼억.
“아파!!”
시카고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에서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몸을 안 사리고 재난 현장에 남았던 이성하의 무모함을 탓한 거였고.
‘남고 싶어서 남은 게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남은 거라고!’
그런 로렌스의 고함에 억울한 마음이 들어 항변하려 했지만.
“미안해, 로렌스.”
이성하는 바로 반성하는 표정으로 사과의 말을 전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 내가 너무 큰 잘못을 했어.”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몸까지 일으키며 사과했으며, 그 이유는 로렌스의 손에 들린 의자 때문이었다.
시익. 시익.
[너 저걸로 맞으면 죽어.]
‘알아요…….’
렉스의 말처럼 화를 참지 못한 로렌스가 옆에 놓여 있던 의자를 집어 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저기, 의자는 좀 내려놓고 말하시는 게 어떨까요…….”
“맞아요. 화 푸세요, 로렌스 소방관…….”
다행히 같이 있던 메이닌 마운틴의 대원들이 빠르게 말려 준 덕분에 유혈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이성하로서는 식은땀을 흘린 순간이었다.
‘진짜로 휘두르려고 했어…….’
[나도 봤다…….]
대원들이 말리기 직전, 로렌스의 팔에 힘이 실리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빠르게 말을 돌렸다.
“근데 로렌스. 호넬이랑 다른 대원들은?”
성난 로렌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다 이미 돌아갔지, 아직 있겠냐?”
“그럼 너만 남은 거야?”
“그래. 나랑 헬기 2팀 대원들이 남았어. 여기 현장 마무리할 겸 너랑 같이 돌아가려고.”
그 말에 잠시 인상을 찌푸린 로렌스가 남은 인원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고.
“마무리? 산불은 전부 진화된 거야?”
그에 이제야 생각이 난 듯 산불 상황을 묻는 이성하의 모습에.
“그걸 이제 묻냐?”
로렌스가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이성하는 조심히 눈치만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어차피 반문해 봤자 몇 대 맞을 일만 늘어나기에, 그저 로렌스의 기분이 풀리기만 바라며 웃음을 지은 것이다.
다행히 로렌스는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화가 좀 풀렸는지, 더 이상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불은 전부 꺼졌어.”
“전부?”
“어. 우리가 가져온 747에. 콜로라도가 보유한 에어탱크까지 전부 가동됐어. 근방의 핫샷 크루도 전원 동원됐고 말이야.”
까칠한 말투는 여전했지만, 가용 가능한 항공기와 근방의 모든 핫샷이 동원돼 산불이 진압된 상황을 알려 줬고, 잘 마무리된 상황을 들은 이성하는 슬며시 웃음 지었다.
“다행이네.”
여전히 로렌스의 눈치를 보긴 했지만, 진심에서 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좋냐?”
“어. 그럼 더 이상의 피해는 없다는 거잖아. 사실 수관화라서 엄청 걱정했거든.”
자칫하면 콜로라도 전체로 번질 뻔한 불길이, 빠르게 진압됐다는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마을이 아깝긴 하네.’
렉스의 고향을 지키지 못한 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건 차후의 일이었다.
“헤헤헤.”
로렌스의 뒤에서 자신을 보며 활짝 웃는 메이닌 마운틴 소방관들의 얼굴을 보면, 그 정도로 끝난 것에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고, 그래서 마음 놓고 웃었다.
“아, 이제 좀 쉬어야겠다.”
“어쭈?”
“때리든 말든 맘대로 해라. 일도 끝났는데 좀 쉬자. 흐흐흐.”
기쁜 소식을 들었으니, 기분이라는 생각에 얼마든지 맞아 주겠다고.
“참나.”
그 모습에 로렌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지만, 주먹을 들진 않았다.
“그래. 너 짱이다, 인마.”
걱정되는 마음에 화를 내긴 했지만, 자신도 그 상황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거란 걸 잘 알아서였다.
‘아무튼 능력 하나만큼은 기똥 차단 말이지.’
이성하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메이닌 마운틴을 통해 대피 과정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고, 그랬기에 로렌스는 이성하를 더 괴롭히지 않았다.
“쉬어라.”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한 동료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푹 쉬고 일어나. 내일은 돌아가야 하니까.”
돌아가면 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가혹한 현장에 던져질 동료에게, 조금이라도 더 회복할 시간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로렌스의 배려를 이성하는 거절하지 않았다.
“저기 밥 좀 더 주시면 안 됩니까?”
“……벌써 세 공기 짼데 더요?”
“그게 원래 많이 먹습니다. 한 공기만 더요.”
빠른 회복을 위해 식사를 가져다주는 간병인에게 당당하게 밥 추가를 외쳤다.
“저기 케르하. 근데 여기 햄버거 배달됩니까?”
“햄버거요!?”
“네, 아까 좀 부족하게 먹었나 봐요. 두 개는 더 먹어야 할 거 같은데…….”
그럼에도 부족하다며 병실을 같이 쓰는 케르하에게 당당하게 고칼로리의 햄버거를 찾았으며, 그렇게 만족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준비됐냐?”
“어, 가자. 덕분에 푹 쉬었어.”
“오케이, 가자.”
예상 못 한 산불로 잠시 지연되긴 했지만, 이제 진짜 LA카운티로 복귀하기 위해 걸음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를 배웅하기 위해 헬기가 있는 옥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소방관님, 감사했어요!”
이성하의 도움으로 무사히 대피에 성공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살았어요, 미스터 리.”
“다음에 꼭 다시 들러 주세요. 제가 근사한 저녁 대접할게요.”
“저도요. 마을에 오면 꼭 연락 주세요!”
전부는 아니지만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을 구해 준 이성하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옥상에 모인 거였으며, 그중에는 메이닌 마운틴의 소방관들도 있었다.
“리, 덕분에 살았어.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잘 배웠어, 리.”
“미스터 리. 네가 아니었다면 못 했을 거야. 다음에 또 보자!”
살려 줘서 고맙다고.
포기하지 않게 옆에서 힘을 넣어 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제가 한 게 아니에요. 같이한 거지.”
메이닌 마운틴만이 아닌, 마을 사람들 모두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우리가 같이한 거예요. 거세게 다가오는 불길에도 침착하게 서로를 챙기며 대피에 나선 게 여러분이었고, 그래서 모두가 살 수 있던 거예요. 바로 예전의 메이닌 마운틴처럼요.”
지금이 아니라 34년 전, 벨로우 화재의 이야기였다.
[야!]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산을 오를 때처럼 다시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성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예전이요?”
“네. 예전의 메이닌 마운틴. 라이언의 아버지가 있던 시기의 메이닌 마운틴도 여러분과 같았을 거예요. 저 산이 그때 그 산 맞죠? 벨로우 산.”
저 멀리 화재로 인해 반쯤 타다만 벨로우 산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여기서 보니까 저 산등성이에서 여러분이 사는 마을로 넘어가는 부분에 경계선이 그려진 거 같지 않아요?”
“겨, 경계선이요?”
“네. 멀리서 보니까 보이네요. 타다 만 나무들의 높이가 달라요. 누군가 저곳에서 전진해 오는 불을 막기 위해 방화선을 쳤다는 거죠. 그리고 그럴 만한 사람들은 한곳밖에 없어요.”
현재 있는 산과 나무 높낮이가 확연하게 차이 나는 산의 광경을 언급하며 누군가가 한쪽에서 방화선을 쳤을 거라고 언급했고, 그에 한쪽에 서 있던 라이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버지가…….”
그 당시 저곳에 있을 만한 사람들은 아버지가 이끌던 메이닌 마운틴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요. 그 당시 조사결과는 분명히 불길에 겁을 먹어 도망을 쳤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그랬을 리 없어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실을 깡그리 무너트리는 이성하의 말에 라이언이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라이언, 알잖아요. 불길에 도망쳤다면 그곳에서 프라이 씨가 마지막까지 있었을 리 없단 거…… 무엇보다 경계선을 다시 잘 봐요.”
툭 내어지는 이성하의 말은 자신의 아버지인 알렉산더가 정말 저곳에 있었다는 걸 증명했다.
“그럴 리가…….”
아니라고 부정해 봤지만 뚜렷한 경계선의 흔적은 누가 봐도 방화선의 흔적이 명확했고.
“라이언.”
그런 라이언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인 케르하가 다가갔지만, 이성하가 그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두세요. 저도 라이언의 사정을 알거든요.”
생각에 잠긴 라이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
금방이라도 욕설을 터트릴 것 같던 렉스가 조용해진 것처럼 라이언 역시 머리가 복잡한 듯 보였고, 그 생각처럼 라이언은 오래토록 아니라고 부정하던 진실이 사실이 된 것에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아빠가…….”
저 멀리 보이는 경계선이 그걸 증명했다.
지금은 불탔지만 그 아래로 보이는 마을의 흔적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아버지의 행적을 뚜렷이 증명하고 있었으며, 그에 라이언은 결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메리…… 아빠가 약속을 지킨 거였어…….”
“오빠…….”
“아빠는 끝까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흐윽.”
오랜 세월 원망했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자신과 엄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는 것을 알게 됨에 깊은 회한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라이언에게 이성하는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투욱.
그저 라이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그대로 헬기에 올라탔다.
“아…….”
“다음에 또 올게요. 다들 나중에 봬요.”
그런 라이언과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을 짓는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으며.
타타타타타.
그렇게 솟구치는 헬기에서 후련한 웃음을 지었다.
[제길, 말하지 말랬잖아. 흐윽.]
진실을 말한 것에 성을 내면서도 훌쩍거리는 렉스 때문이었다.
[으허허헝. 라이언, 메리. 아빠가 또 올게.]
이렇게 자식들과 다시 멀어지는 것에 눈물을 토하는 렉스의 목소리에.
‘좋으면서 뭘.’
씨익 웃음을 지었고, 그러다 보니 이성하는 문득 고향에 있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우리 엄마. 또 아빠 사진 보고 있으려나.’
아빠의 사진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