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18화>
218화. 생명을 걸어야 할 때 (7)
화염 폭풍이 주변을 잠식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화아아아악.
다들 텐트 안에 들어가 보이지는 않지만, 귓가를 울리는 불길한 소리를 보면 주변이 불길로 뒤덮인 건 확실했고, 그에 모든 소방관들은 최대한 얼굴을 바닥에 갖다 댄 채 몸을 고정하고 있었다.
“호흡해! 공기 마셔!”
“버텨! 버텨야 해!”
곳곳에서 들리는 동료 소방관들의 목소리처럼, 그나마 차가운 바닥이 전해 주는 공기를 흡입하며 조금이라도 더 긴 시간을 살아남기 위해.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공기가 차가워지는 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르!
오히려 뜨거운 불길에 공기가 거세게 달궈지는 상황이었다.
“물 부어, 물!”
“그래, 물!”
촤아아악.
그 때문에 각자 가지고 있는 수통을 열어 얼굴에 붓는 수를 써 봤지만.
“제, 제길.”
“그래도 뜨겁다고!”
그 효과 역시 오래가지 않아 다들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고, 그게 방어지를 설치한 지 단 5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공기…….”
“땅 파야 해! 차가운 공기가 필요해!”
뜨거운 불길로 마셔야 할 공기조차 뜨거워진 탓에, 버티기를 시작한 모든 소방관들이 격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데스 쉘터를 사용할 때, 절대 해서는 안 될 일 중 하나였다.
“어엇.”
조금이라도 차가운 공기를 마시기 위해 땅을 파려고 잠시 몸을 일으켰던 소방관이 금세 균형을 잃고 옆으로 넘어졌다.
화아아아악!
불길로 생성된 거센 바람에 텐트 채로 밀려나는 일이 벌어진 거였고, 그 모습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바, 바람이!”
“어어어어!”
몸을 일으킨 다수의 소방관이 동시에 밀려나며, 그들이 구성하던 삼각 배치가 무너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잠깐의 일이었다.
“균형 잡아요!”
한 은색 텐트가 옆으로 몸을 날리며 그렇게 밀려난 소방관들의 중심을 받쳐 냈다.
“옆으로 붙어요, 빨리!”
밀려난 소방관이든, 그렇지 않은 소방관이든 전부 가까이 붙을 것을 요구하며 밀려난 소방관들이 중심을 잡게 도왔고, 그에 잠시 흐트러졌던 대형은 다시 삼각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리!”
그 목소리의 주인이 지금까지 자신들을 이끌던 이성하의 목소리라서였다.
화르르르르!
“빨리!!”
가장 불길이 가까운 지점에서 든든하게 밀려난 소방관들을 받치며 고함을 지르는 이성하의 모습에.
“밀집해!”
“확실히 숙이고 중심 다시 잡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대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소방관들의 모습에도 이성하는 웃을 수 없었다.
‘제길, 겨우 10분 지났어.’
그 사단을 벌였음에도 흘러간 시간이 겨우 10분밖에 안 됐다.
통상 산불이 일어나면 완전 연소가 돼서 꺼지는 시간이 대략 1시간 정도 됐는데, 그중 겨우 1/6밖에 안 됐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텐트를 들며 대원들을 바라봤다.
‘버틸 수 있을까요?’
남은 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으으으으.”
“허억, 허억.”
각각의 텐트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를 보면 다들 현재 상황에 대한 공포심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고, 그런 경우 소방관들에게 때때로 짙은 어둠이 머무르곤 했다.
[글쎄. 공황장애가 오면 끝이야.]
렉스의 말처럼 극도의 공포심을 느낄 때 접하게 되는 공황장애였다.
이성하가 한때 오성수를 잃고 느꼈던 정신적 트라우마처럼 주변의 모든 것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느끼게 되는 불안 증상이 소방관들을 찾아왔으며, 안타깝게도 그런 증상을 보이는 대원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으으으…….”
지금 이성하가 대원들을 살펴보는 것처럼 텐트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는 대원들이었다.
촤아악.
금세 다시 텐트를 덮으며 몸을 숙였다가도.
“제, 제길…….”
불안했는지 다시 텐트를 열어 불길로 뒤덮인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고, 그런 소방관들의 대부분은 팀의 막내급 소방관이었다.
화르르르르르!
금방이라도 저 맹렬한 불길이 자신을 휘감을 것 같은 두려움에.
덜덜덜덜.
온몸으로 그 공포를 표출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소방관들 중에는 라이언도 있었다.
‘지금이라도 불길을 뚫는 게 낫지 않을까.’
몇 번이고 불길을 바라보며 생각해 봤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있다가는 죽게 될 거야.’
불길이 다가오는 이 현장에 그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불타 죽게 될 거라는 생각에.
촤아악.
텐트를 연신 들쳐 보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고.
“집중해, 라이언!! 몸 확실히 숙이고 버텨 내야 해!”
그런 라이언의 모습에 옆에 있던 한 대원이 고함을 질렀지만, 라이언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콰콰쾅!
불타는 나무가 옆으로 쓰러져 거대한 충격음을 토해 냈다.
화아아아악!
그로 인해 번쩍이는 불꽃이 사방으로 몰아쳤으며, 그에 라이언은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돼. 못 하겠어.”
데스 쉘터를 사용하다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나서였다.
화르르르르르!
저 새빨간 불길에 싸늘한 주검이 되었던 아빠를 기억했기에.
“아빠도 이걸 믿었다가 돌아오지 못했어. 이건 데스 쉘터야. 죽음의 덫이라고!”
겁에 질린 얼굴로 소리치며 텐트를 뒤집었으니까.
하지만 몸을 일으키진 못했다.
“라이언.”
순간 라이언의 발을 움켜쥔 이성하 때문이었다.
“놔! 가야 해! 성하!”
그 억센 손길에 가야 한다며 고함을 질렀지만.
꽈악.
이성하의 손은 그런 라이언의 발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고.
“왜 이러는 거야!”
그에 억지로라도 그 손을 풀기 위해 몸을 돌렸던 라이언은.
“아…….”
그대로 멈춰 버렸다.
화르르르르!
자신을 붙잡은 이성하의 텐트가 거센 불길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치이이익.
불길에 가장 가깝게 있다 보니 한계 열기를 버티지 못한 외부 알루미늄이 섬유 유리로부터 갈라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 이건.”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텐트가 갈라지고 있잖아. 열기가 지금 그대로 들어가는 거잖아!”
그에 라이언이 이성하의 손을 잡아채며 성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반면 이성하의 표정은 평온했다.
“할 수 있어요. 우리 버틸 수 있어.”
자신의 텐트가 불길에 녹아내리는 상황인데도 라이언을 향해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금만 버티자고요. 곧 지원팀이 올 거예요.”
확실하지도 않은 지원팀의 존재를 언급하며 라이언을 향해 따뜻한 눈빛을 보냈고, 그에 라이언은 결국 다시 텐트를 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좀 더 가까이 붙어!”
“네?”
“가까이 붙으라고! 불길에서 좀 더 멀어지란 말이야!”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불길에 접하는 면적이 넓어질 이성하에 대한 걱정에,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성하는 그 배려를 거절하지 않았다.
끄덕.
덮고 있는 텐트를 앞으로 잡아끌며 좀 더 몸을 웅크렸다.
“우리도 밀집해!”
“가까이 붙어! 가까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다른 대원들 역시 웅크리며 서로의 몸을 가까이 붙였으며, 그에 대원들은 잠시 불길에 대한 공포를 이겨 낼 수 있었다.
“콜록, 콜록.”
여전히 뜨거운 공기에 연신 기침을 토해 냈지만.
꽈악.
텐트 너머로 느껴지는 서로의 몸들을 붙잡으며, 그 고통을 견뎌 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는 소방관은 없었다.
“텐트 갈라진다…….”
순서의 차이일 뿐이지, 대원들이 덮고 있는 텐트 역시 하나둘씩 갈라지는 상황이라서였다.
치이이익.
오랫동안 노출된 열기에 방염 텐트를 구성하는 알루미늄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고, 그에 대원들은 삶에 대한 바람을 서서히 내려놓고 있었다.
“지원팀은 없구만…….”
“지금 온다고 해도 구조는 불가능해. 불길 위로 착륙은 힘들잖아.”
소식이 없는 지원팀의 존재도 그랬지만, 만약 지원팀이 온다 해도 아직 불길이 꺼지지 않아 헬기의 착륙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웃음을 지었다.
“아니요. 착륙은 필요 없어요.”
팔목에 찬 시계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콜록, 콜록. 화재가 확산된 지 이미 6시간이 지났어요. 그렇다면 제가 속한 LA카운티가 와 있을 겁니다. 도착해서 본부와 무전을 하고 있을 거예요.”
자신이 속한 LA카운티라면 이미 도착해 본부와 무전을 하고 있을 거라고 말했으며, 그 생각은 거짓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아.
딱 봐도 거대한 사이즈의 항공기 하나가 콜로라도 상공을 엄청난 속도로 비행하고 있었다.
타타타타타!
그런 항공기의 주위로 열 대의 헬기가 호위하듯 날고 있었고, 그렇게 호위하는 헬기들의 색깔은 노란색이었다.
미국 전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특수재난구조대답게, 이번 산불에 대처하기 위해 LA카운티의 모든 항공기가 콜로라도로 지원을 온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파견된 대원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 여기는 콜로라도. 고립된 대원들 중에 LA카운티의 대원이 있다고 한다.
지원을 오던 도중 전해진 콜로라도의 무전 때문이었다.
“LA카운티요?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난데없이 전해진 소속 대원의 고립 소식에, 파견 팀장을 맡은 스모크 점퍼의 호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전을 받았고.
- 성하 리라고 합니다.
“어…….”
생각도 못한 대원의 이름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리요? 설마 시카고의 리입니까?”
잘못 들었나 싶어 모두가 알고 있는 시카고를 언급하며 이성하가 맞냐고 물었지만.
- 맞습니다. 공교롭게도 미스터 리가 그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
이어서 들리는 무전에 격한 한숨을 쉬었고, 그 모습은 다른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X새끼.”
“어휴, 재난 덩어리 새끼.”
“아니, 휴가를 가도 하필 산불이 발생한 곳에 가고 X랄이야!”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하필 휴가를 간 장소 또한 산불이 발생한 콜로라도였다는 것에 자연스럽게 욕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구할 수는 없었다.
“젠장, 다들 빨리 장비 챙겨!”
“에휴.”
그래도 동료기에 도착도 전에 미리 장비를 챙기며 공수 준비에 들어갔다.
콰아아아.
타타타타타.
그렇게 서두르는 대원들의 모습처럼 항공기와 헬기들 역시 콜로라도를 향해 빠른 속도로 비행했고, 마침내 그 울림이 이성하에게까지 이어졌다.
- 여기는 LA카운티. 미스터 리, 거기 있나?
불길에 고립된 대원들의 귀로 이성하를 찾는 호넬의 무전이 울렸으며, 그 목소리에 이성하가 기침을 토하며 웃음을 지었다.
“콜록, 콜록.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LA카운티답지 않게 구하러 오는데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론 친분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늦어?
“늦었죠. 서둘렀으면 4시간이면 올 거리인데. 아무튼 빨리 구해 주십쇼.”
무전을 보내는 이가 시카고에서도 같이 행동한 호넬이었기에, 편한 목소리로 구조를 요청했으니까.
그리고 그 무전에 대한 답변은 간단했다.
- 시끄럽고 준비나 해. 바로 간다.
바로 구조를 시작한다는 말이었다.
“주, 준비?”
“미스터 리. 아직 불길이 안 꺼졌는데, 그냥 내려오는 겁니까?”
그 무전에 이해를 못한 메이닌 마운틴의 대원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성하로서는 익숙한 무전이었다.
[미친놈. 항공기로 그대로 퍼부을 생각이네.]
혀를 차는 듯한 렉스의 말처럼 이미 경험해 본 일이라서였다.
콰아아아아아.
무전이 끝나기 무섭게 들리는 항공기 소리를 보면 렉스의 말이 맞는 듯 보였으며, 그에 이성하는 고함을 질렀다.
“텐트 닫으세요.”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항공기에 텐트를 움켜쥐며 하는 말이었다.
촤아악.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할 말은 다했다는 듯 텐트로 몸을 감았으며.
“그, 그게 무슨.”
“저기 리……”
그에 대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이성하를 부르는 순간.
콰르르르르르!
하늘에서 거대한 물벼락이 쏟아졌다.
- 2만 4천 갤런 전부 쏟아 낸다. 어지러울 수 있어.
무전으로 들리는 호넬의 말처럼 방금 모습을 드러낸 항공기가 반경 5km 지역에 완전 진화가 가능한 엄청난 양의 물을 일제히 쏟아 낸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상황이 완전히 종료됐다.
화르르르…….
모든 산불이 꺼진 건 아니지만, 이성하와 메이닌 마운틴이 있는 지역만큼은 불길이 완벽하게 잡혔다.
- 오케이, 번지!
- 고고!
그와 동시에 수십 명의 스모크 점퍼 대원들이 일제히 지상을 향해 낙하했으며, 그렇게 메이닌 마운틴의 소방관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콰르르르르르!
엄청나게 쏟아진 물에 원래 있던 자리보다 한참을 쓸려나가긴 했지만.
“괜찮습니까? 하퍼! 여기 수건 좀 가져와!”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흐윽, 정말 감사해요.”
자신들을 도우러 온 LA카운티의 대원들의 손을 잡으며, 살려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전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대원들의 모습을 이성하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몸부터 좀 정리하지 그러냐.]
렉스가 몸부터 추스르라고 조언할 정도로 정통으로 쏟아진 물벼락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한쪽에 처박혀 엉망이 된 상태였지만, 이성하는 상관하지 않았다.
“조금만 있다가요.”
대원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아서였다.
“샘, 살았어! 우리가 살았어!”
“그래. 잘해 줬어. 우리 전부 잘 해냈다고!”
잠시만 이렇게 즐거워하는 저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싶었고.
[미친놈. 안 춥냐?]
그 말에 렉스가 별말을 한다는 듯 바로 핀잔을 내뱉었지만, 그 말에 대답은 없었다.
코오오오오.
이제 모두 끝났다는 안도감에,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