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17화 (217/235)

<강철 소방대 217화>

217화. 생명을 걸어야 할 때 (6)

미국은 넓은 국토만큼이나 많은 산불이 발생하는 나라였다.

건수로만 따지면 매년 7만 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해, 약 23,500㎢의 토지를 잃는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산불이 일어나는 나라.

그리고 그런 많은 산불 때문에 산림소방대가 직접 불길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적으로 산불이 일어나는 지역으로 헬기를 통해 공수 진입하는 스모크 점퍼나, 불길을 직접 마주하며 방화선 작업을 하는 핫샷 크루가 그 예에 속했으며, 그런 소방대원들을 위해 산림본부에서는 한 가지의 특수 장비를 지급했다.

열을 반사하는 알루미늄 호일과 내열 기능이 들어간 유리섬유로 구성돼, 제대로만 덮으면 열기에서만큼은 안에 있는 소방관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일종의 방염 텐트를.

하지만 이 방염 텐트는 사용에 꽤 많은 운이 따라야 하는 장비였다.

“불길이 닿으면 그대로 타 버리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야?”

소방관 개개인이 소지하고 다닐 수 있을 만큼 경량화 된 장비다 보니, 열기는 보호해도 직접적인 화염 접촉에서 보호하는 건 불가능해서였다.

화르르르르르!

한마디로 불길이 근접한 상태가 되면 텐트를 뒤집어쓴 채로 불덩이가 되는 상황이 벌어져서였고, 그 때문에 소방대원들은 이 장비를 연습할 때 흔들어서 굽는다고 냉소적으로 묘사하곤 했다.

“이거 내 묫자리를 직접 설치하는 기분이네.”

“그래도 잘 흔들어서 펴. 열기가 안으로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그대로 사망이라고.”

“열기는 무슨, 그냥 운이지. 불길이 튀게 되면 아무리 잘 흔들어도 죽는 거잖아. 산채로 구워지는 거라고.”

슈퍼에서 파는 우비처럼 작은 주머니 형식으로 지급돼 텐트를 설치하려면 잘 흔들어서 펴야 했는데, 아무리 잘 펴도 불길만 닿으면 그대로 불타 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냉소를 아무도 뭐라 하지 못했다.

“…….”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었다.

<벨로우 화재, 수십 명의 소방관들 사망>

<야넬 화재, 애리조나의 그래닛 마운틴 핫샷 19명 사망>

최근 회자되는 두 개의 산불 참사만 봐도 방염 텐트에 대한 실효성이 떨어지는 건 확실했고, 그중 4년 전 발생한 애리조나 화재는 그런 방염 텐트에 대한 소방관들의 신뢰도를 더 최악으로 떨어트렸다.

- 저, 전부 사망했습니다…… 19명 모두 방염 텐트를 사용한 듯 보이지만 생존자 없다고 합니다…….

불길을 막기 위해 최전선에 남았던 19명의 소방관들이, 방염 텐트를 사용했음에도 싸늘하게 주검이 된 모습으로 미국 전역에 방송됐던 것이다.

그 때문에 산림소방관들 사이에서는 죽음의 덫으로 불리는 게 이 방염 텐트였다.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텐트를 펼치지만, 그 행동이 죽음으로 더 가깝게 이르게 된다는 비판의 뜻을 담아 부르는 이름이었으며, 실제로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걸 증명하다 보니 훈련을 담당하는 감독관들도 피치 못할 최후의 수단에만 사용하도록 권고하는 게 이 방염 텐트였다.

“무조건 활로를 찾는 데 집중해. 정말 방법이 없다거나 지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태일 때만 사용하는 거야.”

어떤 수를 써서라도 불길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만 도박의 심정으로 사용되는 게 이 방염 텐트였으니까.

그 때문에 메이닌 마운틴의 소방관들이 방어지 구축을 명령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난색을 표하는 건 당연했다.

“그, 그거 쓸 시간에 차라리 불길을 뚫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서였다.

“맞습니다, 리. 차라리 불길을 뚫는 건 어떠세요?”

“그, 그래요. 여기서 3km만 가면 강이 나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아래쪽으로 빠지는 길도 있습니다. 바람 방향을 보면 그쪽도 괜찮을 수 있어요.”

방염 텐트를 꺼내는 이성하의 모습에 모든 대원이 하나같이 질린 얼굴로 다른 방법을 내놓았으며.

“거리가 너무 멉니다. 이동 중에 불길에 휩싸일 확률이 너무 높아요.”

그런 대원들의 말에 이성하가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대원들의 거부는 여전했다.

“그, 그래도 그게 나을 거 같습니다.”

“맞아요, 미스터 리. 데스 쉘터는 500도까지밖에 방어가 안 돼요. 하지만 산불의 온도는 800도가 넘습니다.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아요.”

너무도 실패할 확률이 높은 방법이기에, 차라리 불길을 뚫어서 생로를 찾자고.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아까도 말했지만, 산불의 확산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이동이 문제가 아니라 도중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질 확률이 너무 높아요.”

미국의 산림소방대는 애초부터 화재 예방과 방화선 구축을 주 임무로 삼다 보니, 공기통과 같은 생존 장비가 아예 없었다.

그저 방화선 구축에 필요한 작은 삽과 도끼, 그리고 며칠을 산속에서 지낼 수 있는 식량들이 전부인 상황이었고, 그런 상태에서 불길 속을 돌파하는 건 자살과 같았다.

‘아무리 입을 막고 이동한다 해도 못 버텨. 그러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몰살이야.’

한 번 중독이 시작되면 수 분 내로 의식을 잃게 되는 게 일산화탄소 중독인 만큼, 공기통 없이 불길을 빠져나가는 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메이닌 마운틴 소방관들도 알고 있을 사실이었다.

“콜록, 콜록.”

“랜디, 괜찮아?”

“끄응, 괜찮아요.”

이미 대원 몇 명이 주변을 뒤덮은 거센 불길에 기침을 토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메이닌 마운틴 소방관들이 데스 쉘터를 싫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시, 싫어. 난 산채로 불타는 건 싫어…….”

산채로 불탄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성하, 데스 쉘터는 좀…….”

가장 먼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헬기에서 내렸던 라이언조차 데스 쉘터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었으며, 그 이유가 그들의 방화 재킷에 적혀 있었다.

<메이닌 마운틴 크루>

바로 그들의 선대에 해당하는 옛 선배들이 데스 쉘터를 사용하다가 사망한 기록이 있기에, 그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그들의 심장을 깊게 움켜쥔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대원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거 다들 왜 이래요? 자꾸 그러시면 저도 고백하고 싶어지잖아요.”

“뭐라고요?”

“저 사실 아까부터 무서워서 살짝 오줌 지린 상태거든요. 이 데쓰 쉘터. 저도 사용해 보는 건 처음이라서요.”

대원들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서였다.

“……미스터 리가 무서워서 오줌을 지렸다고요?”

“네. 안 보이세요? 여기 축축한 거.”

벙 찐 표정을 짓는 대원을 향해 손으로 자신의 바지를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웃음을 지었고,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는 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저도 무서워 죽을 거 같아요. 단지 여러 번 겪어 봐서 티만 안 낼 뿐이지, 여러분들과 똑같아요. 헬기에서 괜히 뛰어내렸나?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 살고 싶다. 누가 나 좀 살려 줬으면 좋겠다 하고요.”

불길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 역시 메이닌 마운틴과 같다며 대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봤으며.

“그러니까 저 좀 믿어 줬으면 해요.”

그러고는 자신을 믿어 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선 이게 유일하게 살 방법이에요. 분명히 지원팀이 다시 올 겁니다. 그때까지 버티는 게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이 데스 쉘터입니다. 그러니까 해 봐요. 이래 봬도 제가 시카고의 영웅 아닙니까?”

이게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 못 믿겠으면 자신의 별명인 시카고의 영웅을 믿어 달라고 웃으며 가슴을 두드렸고, 그에 메이닌 마운틴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살 수 있는 겁니까?”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우리 살 수 있는 거죠?”

“나 결혼할 수 있어요?”

“다시 자식 얼굴 볼 수 있겠죠?”

각자가 어떻게든 살겠다는 개개인의 마음을 고백하며 이성하를 향해 웃음 지었으며, 그에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방어지 구축한다!!”

메이닌 마운틴의 대장 케르하의 고함이었다.

“좋아, 해 보자고!”

“그래! 삼각형 만들어!”

“묫자리가 안 되도록 확실하게 만든다!”

그 고함에 다른 대원들 역시 크게 화답하며 자신의 들고 있던 삽을 머리 위로 들었고, 그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무 제거부터!”

카각!

케르하의 고함에 우선해야 할 작업을 알리며, 가지고 있던 도끼로 근처의 나무를 찍어 내려 간 것이다.

하지만 그 우렁찬 고함과 다르게 이성하의 속은 창피해 죽을 지경이었다.

[조금 많이 오글거렸다…….]

‘시끄러워요.’

렉스의 떨떠름한 말이 아니더라도, 방금 자신의 한 말이 떠올라 몸이 근질거리는 상황이었다.

“좀 더 빨리!”

“미스터 리, 믿고 갑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 소방관들의 모습에.

카각! 카각!

스스로 찔끔해 누구보다 강하게 도끼를 찍어 가고 있었고, 그 찍어 가는 힘만큼이나 이성하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을 깊게 후회하고 있었다.

‘제길, 다른 멋있는 말도 있었는데, 시카고의 영웅이 뭐야!’

카각!!

어떻게든 메이닌 마운틴에 용기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 나서긴 했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니 정말 렉스의 말처럼 밤마다 이불킥을 할 것 같은 대사에 손발이 오그라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그렇게 핀잔을 던졌던 렉스는 그런 이성하가 대견스러웠다.

[진짜 많이 컸네.]

처음에는 겁도 없이 불길만 보면 날뛰던 게, 어느덧 진짜 소방관이 됐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람이 있잖아요. 그러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구해야죠!”

그저 사람을 구해야 한다며 무턱대고 현장으로 뛰어들던 철부지가 예전의 이성하였다면.

“나무 다 잘라 냈으면 맞불 핍니다!”

“어느 방향으로 핍니까!”

“전부 태워요. 주위에 아무것도 없게!”

화르르르르!

지금의 이성하는 다른 소방관들이 따라 할 수 있게 솔선수범하며 앞에서 이끄는 베테랑 소방관이었고, 그러다 보니 렉스는 문득 잊고 지내던 오래전의 친우를 떠올렸다.

[약속은 지킨 거 같네.]

이성하의 아버지인 이성훈이었다.

“제가 먼저 갑니다!”

“이성훈!!”

“이게 맞아요! 따라오세요!”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몇 년을 옆에서 붙어 다녔던 옛 친구의 모습이.

“덤불 같은 거 다 긁어 내요! 불길 접근 가능성 자체를 차단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이성하의 모습과 겹쳐서 보이고 있었으며,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겨 있던 렉스는 목소리를 높였다.

[흙도 파내야 해!]

이성훈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였다.

[쉘터의 위치는 불길보다는 밑으로 가야 해! 최대한 땅으로 파묻어야 생존 확률이 높아!]

이성훈이 바랐던 이성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한 거였고, 그 바람에는 자신의 아들인 라이언도 있었다.

[발은 불 쪽으로! 그리고 신입들은 안쪽으로!]

이성훈과의 약속은 물론, 항상 지켜 주겠다는 아들과의 약속 역시마저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런 렉스의 바람을 이성하는 거부하지 않았다.

“발은 불 쪽! 신입들은 안쪽! 그리고 라이언! 라이언은 내 앞으로 와요!”

방어지 구축이 끝나자마자 한쪽에 서 있던 라이언을 자신의 앞으로 이끌었다.

“전부 방어합니다!”

그와 동시에 대원들에게 텐트 설치를 명령하며, 펼쳐든 텐트 안으로 몸을 넣었으며.

“방어!!”

그렇게 텐트를 뒤집어쓴 열두 명의 소방관 위로 불길이 휘몰아쳤다.

화르르르르르!

“버텨!”

“으으으!”

드디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길 안에서 버티기 위한 죽음의 기다림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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