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16화 (216/235)

<강철 소방대 216화>

216화. 생명을 걸어야 할 때 (5)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올라와, 라이언! 올라와!!”

라이언이 헬기에서 뛰어내린 모습에 메이닌 마운틴의 동료 소방관들 역시 성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라이언은 그런 동료들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씨익.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가지고 온 짐을 모두 버렸음에도 헬기가 뜨지 않는다면 그다음 차례는 사람이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렇다면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난 소방관이니까.’

그 어떤 순간에도 시민들의 생명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게 자신이 택한 소방의 길이기에.

탕! 탕!

자신은 괜찮으니까 어서 올라가라며 헬기의 발판을 거세게 두드렸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라이언이 그런 결심을 쉽게 내린 건 아니었다.

‘많이 뜨겁네.’

내리자마자 주변으로 거세게 좁혀 오는 불길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화르르르르!

맹렬히 불길을 토하며 주변을 휩쓰는 불길에.

덜덜덜덜.

손발이 겁에 질려 덜덜 떨리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지금이라도 헬기에 다시 올라타고 싶은 게 라이언의 마음이었다.

‘다시 올라갈까…… 솔직히 난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소방관이 된 거잖아. 게다가 나는 Type2 소방관이라고.’

얼른 올라가라며 용감하게 헬기의 발판을 두드린 것과 다르게 사명감이 아닌 돈을 위해.

게다가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 아니라는 것에 소방관의 길을 택한 사람이 바로 라이언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뛰어내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제길, 이성하.’

자신을 향해 그게 소방관이라고 말했던 이성하 때문이었다.

“겨우가 아니라 그게 전부예요. 제가 마을에 다시 돌아온 이유도 그거고요.”

사람들에게 선망을 받는 것보다 그런 사람들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어야 된다고 말했던 이성하의 말을 기억했고.

“그리고 실제로 당신들도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잖아요.”

‘…….’

자신이 속한 메이닌 마운틴 역시 그런 소방관이라고 말하는 것에 뜨끔했다.

“저런 불길을 처음 마주했을 텐데도 무섭다고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려고 했어요. 주변의 숲이 모조리 불타는 상황인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마을에 남는다. 그거 아무나 못 하거든요.”

“…….”

정말 존경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 이성하의 모습에 당황해 아무 말을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라이언의 폐부를 찌르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보니까 예전의 메이닌 마운틴도 당신들과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버지인 알렉산더가 이끌던 시기의 메이닌 마운틴의 이야기였다.

“예전의 메이닌 마운틴도 그랬을 거라고요?”

“뭐, 그렇지 않을까 추측한다는 거죠.”

“에이, 그게 뭐예요?”

“하하, 그냥 제 생각입니다.”

“쩝, 전 다시 가 볼게요.”

웃으며 넘긴 이성하의 모습에 그냥 넘어가긴 했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라이언의 마음에 꽂혀 들어왔었다.

‘아버지라고?’

안 그래도 몇 년 전부터 아버지가 사망했던 벨로우 화재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거론되는 상황이라서였다.

<애리조나의 그래닛 마운틴 삿샷. 화재 진압 도중 19명 순직>

<고향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방화선을 구축하던 그래닛 마운틴>

<1994년 벨로우 화재 이후, 최악의 산불 참사로 기록되다>

4년 전 아버지가 사망했던 벨로우 화재와 유사한 참사가 또 한 번 발생된 탓에 다른 지역은 몰라도 이곳 콜로라도만큼은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다시 슬금슬금 거론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라이언은 이성하의 말이 너무 신경 쓰였다.

“라이언, 사실 우리 선대의 메이닌 마운틴 말이야. 도망이 아니라 방화선을 구축하려던 게 아닐까?”

“방화선?”

“그렇잖아. 분명히 불길이 엄청난 속도로 확산됐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게 우리 마을만 빗겨 갔어. 사실 그게 말이 안 되는 거거든. 그 확산 경로에 분명히 우리 마을이 포함됐는데 말이야.”

이성하에게 말은 안 했지만, 동료들도 간간이 술을 먹으면 그때의 이야기를 거론할 정도로,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라이언은 산을 오르며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보이는 벨로우 산에 시선을 둘 수밖에 없었다.

‘정말일까?’

동료들에게는 들었을 때는 절대 그럴 리 없다며 웃어넘겼지만, 이성하에게까지 그런 말을 듣다 보니 혹시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진짜 도망이 아니라 방화선을 구축하러 들어간 거예요?’

정말 아버지가 도망이 아닌 방화선을 구축하러 들어갔냐고.

하지만 그 생각은 금세 접어 버린 상태였다.

‘방화선은 무슨. 보이지도 않구만.’

조사 당시에도 발견되지 않았던 방화선이 지금 와서 보일 리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그보다 오래된 아버지의 일을 떠올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라이언!”

“알겠어요! 갈게요!”

뒤를 쫓아오는 불길에서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아버지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오, 오빠. 헬기가 안 떠. 어떡해.”

불길이 다가오는데 헬기가 뜨지 않는 것에 겁을 집어먹는 동생 때문이었다.

“우리 어떡해? 불길이 엄청 빠르게 오고 있잖아…….”

겁에 질려서 자신을 붙잡고 울먹이는 동생의 모습에.

“저런 산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빠가 약속할게. 아빠는 하나도 안 다치고 무사히 돌아올 거야. 그래서 우리 라이언과 엄마를 언제나 지켜 줄 거야. 알았지?”

자신과 눈을 맞추며 환하게 웃는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에 자연스럽게 그 말이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가 약속할게. 우리는 하나도 안 다칠 거야.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행복하게 다시 살 거야.”

겁에 질려 하는 동생을 꽉 안으며 환한 웃음을 지었고, 조금도 고민 없이 헬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오빠!!”

그런 자신을 향해 울먹이며 소리치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지만.

탕! 탕!

미련 없이 헬기의 발판을 크게 두드렸으며.

화아아아악!

그에 따라 주변으로 거친 바람을 뿜어내며 기체를 공중으로 상승시키는 헬기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메리! 나가서 보자.”

“안 돼! 오빠!!”

“괜찮아! 먼저 가고 있어! 꼭 찾아갈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선 일반인인 동생을 대피시키기 위해 자신이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진짜 소방관의 모습이었다.

화르르르르!

사방에서 다가오는 불길 속에서도 홀로 의연히 서 있는 라이언의 모습은 그 누가 봐도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소방관의 모습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참나. 욕먹을 만했네.’

열 받으면서도 씁쓸한 감정이 묘하게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라이언!”

“야 이 새끼야!”

불길이 다가오는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라이언의 모습을 보고 헬기에서 뒤따라 뛰어내리는 메이닌 마운틴의 모습에.

씨익.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 역시 더 이상의 생각을 멈춘 채 몸을 움직였다.

“장비 좀 쓸게요, 제이미.”

“아…….”

헬기에 같이 타고 있는 한 대원의 장비 가방을 뺏듯이 집어 들었다.

“LA카운티에 전해 주십쇼. 제가 여기 있다고.”

“자, 잠깐.”

터억.

그러고는 헬기 팀 대원이 말릴 새도 없이 지상을 향해 몸을 던졌고, 그렇게 지상으로 발을 디딘 소방관의 수는 총 열둘이었다.

“치사하게 저만 빼고 가실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올 줄 알고 있었죠.”

“맞습니다, 미스터 리! 올 줄 알았어요!”

“하하하, 이렇게 또 함께 하게 되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리.”

어떻게든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무려 열둘이나 되는 소방관이 의기에 찬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 것이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울음을 터트린 건 당연했다.

“랜디!”

“라미! 안 돼!”

그 소방관들 모두가 그들에게는 둘도 없는 가족이라서였다.

타타타타타!

- 올라갑니다!

귓가로 들리는 헬기 기장의 목소리처럼 모든 헬기들이 성공적으로 기체를 띄우는 상황이지만.

“나, 나도 내릴게요!”

“멈춰요! 마이클을 놓고 갈 수 없어요!”

“안 돼, 샘! 올라와! 샘!!”

가족들을 놓고 간다는 생각에 모두 슬픔의 눈물을 흘렸고, 그건 지원을 결정한 헬기팀의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화르르르르르!

착륙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주변을 가득 덮은 흉악한 불길에.

- 대장님, 두고 갈 순 없습니다!

- 맞습니다. 대원들만으로 자력 탈출은 힘듭니다. 불길이 너무 빨라요!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며 모두가 각자의 기장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헬기팀의 팀장 코니 레이플이 고함을 질렀다.

- 시끄러워! 그걸 저들이 모를 거 같나? 그럼에도 결정한 일이다. 미스터 리와 메이닌 마운틴 핫샷이 그렇게 정했다면 우린 믿고 간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는 거야.

메이닌 마운틴의 이름 뒤로 최정예 소방대를 뜻하는 핫샷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 미스터 리, 무운을 빌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확실히 대피시키겠습니다.

화아아아악.

자신들이 맡은 메이닌 마을의 사람들은 확실히 책임지겠다며 그대로 기수를 높였고, 그에 이성하는 경례로 화답했다.

처억.

걱정 말라고.

그 말처럼 우리는 무조건 살아서 보게 될 거라고.

하지만 그 대답과 달리 상황은 최악에 가까웠다.

“미스터 리, 불길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확산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한 대원의 고함처럼 불길이 이미 주변을 잔뜩 뒤덮은 상태였다.

화르르르르르!

나무의 위쪽에 해당하는 가지와 잎을 통해 번지는 수관화 화재답게 어느새 사방이 불길로 뒤덮여 퇴로가 보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메이닌 마운틴의 소방관은 내심 이곳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은 하고 죽고 싶었는데.”

“야, 그럼 너랑 결혼하는 여자는 무슨 죄냐?”

“그런가? 하긴 그렇긴 하네. 나랑 결혼했으면 생과부 됐겠네. 큭큭.”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헬기에서 뛰어내리긴 했지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결혼하셔야죠. 그리고 저도 결혼해야 해요.”

아무 생각 없이 현장에 남을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르!

어차피 퇴로가 있다 해도 어차피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수관화 화재기에 처음부터 대피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성하가 생각한 건 대피가 아닌 버티기였다.

“지금부터 이곳에 방어지를 구축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대원들에게 방화선이 아닌, 방어지 구축을 명령했다.

“한번 해 보자고요.”

헬기에서 내리며 챙겨 들었던 장비 가방을 집어 들며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며, 그에 대원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데쓰 쉘터…….”

“오, 맙소사.”

이성하가 산림소방대에게는 죽음의 덫이라고 불리는 은색 텐트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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