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15화>
215화. 생명을 걸어야 할 때 (4)
기다리던 지원팀 헬기의 등장에 산 중턱이 마을 사람들의 기쁨 어린 고함으로 가득 찬 건 당연했다.
“와, 왔다!”
“헬기 소리다! 정부에서 진짜 우리를 구하러 왔어!!”
“어머니, 이제 끝났어요! 우리 모두 살았어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저 헬기를 타고 이 지옥 같은 피난길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화아아아악!
이성하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짙은 연기를 가르고 모습을 드러내는 헬기들의 모습에.
“이예에에에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기쁨에 찬 고함을 질렀고, 메이닌 마운틴은 그 광경에 아예 눈시울을 붉혔다.
“됐어…… 드디어 됐어.”
“흐윽, 대장 우리 산 거지? 이제 끝난 거 맞지?”
“그래. 끝났어. 이제 모두 끝난 거야.”
어떻게든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겉으로는 의연한 척 담대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그들 역시 처음으로 맞닥뜨린 제대로 된 산불에 겁을 집어먹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아직입니다! 헬기 타기 전까지는 방심해서는 안 돼요!”
그런 메이닌 마운틴의 모습에 이성하가 무전으로 고함을 질렀다.
“곧 불길이 상승 기류를 타고 엄청난 속도로 올라올 겁니다! 끝까지 집중하세요!”
불길로 뒤덮인 뒤쪽을 가리키며 자신을 바라보는 메이닌 마운틴의 소방관들에게 단호한 표정으로 경고했고, 그런 이성하의 말을 메이닌 마운틴은 무시할 수 없었다.
“굴뚝효과야.”
“그래. 곧 굴뚝효과가 온다.”
산불에 대한 경험은 부족하지만, 온도 차이에 따라 공기를 밀어내는 굴뚝효과는 그들 역시 잘 아는 현상이었다.
불길로 인해 가열된 공기가 온도 차이로 인해 상승하며 유동하는 효과를 굴뚝효과라 말했고, 그 굴뚝효과를 통해 일어나는 현상이 지금 이성하가 말한 상승 기류였다.
화르르르르르!
지금 그들의 뒤로 보이는 저 맹렬한 불길이 바로 그 상승 기류를 통해 빠르게 번지는 상황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메이닌 마운틴은 다시 집중하는 표정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서두르세요! 언제 불길이 우리 뒤를 따라잡을지 모릅니다! 지금보다 더 빨리 이동합니다!”
근처에 있는 아이들을 안아 들며 하는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에만 집중했다면.
“엘레나, 꽉 잡아야 해.”
“전부 뛰세요! 무조건 빨리 내려가야 해요!”
이제는 속도를 내기 힘든 아이들을 안아 들며 사람들을 직접 이끌기 시작했고, 그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 제가 들게요!”
“어, 하지만 이미…….”
“괜찮아요, 아이 한 명 정도는 더 안고 가도 괜찮습니다. 빨리 서둘러요.”
이미 등에 한 아이를 업고 있음에도, 마을 사람들의 빠른 대피를 위해 아이를 한 명 더 안아 든 것이다.
그 때문에 산을 내려가는 마을 사람들의 속도는 거침이 없었다.
“제 손 잡아요!”
“여기 내려올 때 조심하세요! 나무뿌리 있어요!”
가장 속도가 느린 아이들을 소방관들이 책임져 준 덕분에 서로 도와가며 산 밑을 향해 열심히 달릴 수 있었다.
“어엇!”
콰당탕!
워낙 산길이 험하다 보니 몇 명이 넘어져 바닥을 구르긴 했지만.
“일어나. 조금만 더 가면 돼!”
“네!”
산만 내려가면 저 불길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다시 일어나 달렸고, 그 노력은 결국 보상받을 수 있었다.
“이쪽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산 밑에서 헬기 팀으로 보이는 소방관들이 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에.
“소방관들이다!”
“끝났어! 이제 끝났다고!!”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모두 끝났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헬기 팀 역시 그런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마찬가지였다.
“휴. 다행이야, 모두 무사해.”
“네, 다들 제때 피한 거 같아요.”
꽤 늦게 출발했음에도 무사한 마을 사람들의 상태 때문이었다.
“뭐라고요? 이미 불길이 마을을 침범한 상황이라고요?”
- 그래. 마을을 완전히 뒤엎은 건 아니지만, 이미 불길이 마을로 퍼진 걸 확인했네. 그러니 빨리 가 줘야 해. 그래서 자네들을 포함한 서부의 모든 헬기 팀에 지원을 내린 상태야.
“끄응.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 부탁하네. 분명히 대피를 진행 중이긴 할 거야.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야 해.
“알겠습니다. 최대한 구해 보겠습니다.”
최악을 각오하며 마을 사람들의 구조를 부탁하던 본부의 목소리를 선명히 기억했기에.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거 같아.”
“그래, 다들 가벼운 탈진 외에는 없어. 하늘이 도왔어.”
큰 부상 없이 산 밑까지 도달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헬기 팀은 막 산 밑으로 내려오는 메이닌 마운틴을 경외감에 찬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들이 Type2라고?’
‘대단해, 완벽한 판단이었어. 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희생자가 있었을 거야.’
그들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생각에서였다.
“허억, 허억.”
“엘레나, 이제 괜찮아. 내려와도 돼.”
“끝났어, 아기야. 이제 울지 마. 콜록콜록.”
한 명도 빠짐없이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산속을 내려온 그들이 있었기에.
“내 딸 괜찮아?”
“엄마, 난 괜찮아.”
“아버님, 괜찮아요?”
“난 괜찮아. 안 다쳤지?”
“네, 고생하셨어요. 아버님. 흐윽.”
지금처럼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안도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거였고, 그에 헬기 팀의 한 소방관이 벅찬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대단해! 최고입니다!”
이번 헬기 팀의 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코니 레이플이라는 소방관이었다.
“이번 지원팀의 팀장인 코니 레이플입니다. 케르하 대장이 누굽니까?”
환한 표정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내려온 메이닌 마운틴의 대장인 케르하를 찾았으며.
“허억, 허억. 제가 메이닌 마운틴의 케르하입니다.”
그에 앞으로 나서는 케르하를 향해 감탄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존경합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네?”
“사람들을 대피시킨 것 말입니다. 당신의 빠른 판단 덕분에 사람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신과 구조 작업을 할 수 있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케르하.”
단 한 사람의 피해도 없이 빠른 판단으로 사람들을 구한 메이닌 마운틴의 실력에, 가슴이 벅차올라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케르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닙니다. 대피 판단을 내린 친구는 따로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며 하는 말이었다.
“저 친구 덕분에 빠르게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칭찬을 하시려면 저 친구에게 하셔야 합니다.”
뒤쪽에 앉아서 잠시 숨을 고르는 한 소방관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고, 그 얼굴에 코니 라이플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 미스터 리?”
화면으로만 몇 번 봤던 시카고의 영웅이 그 자리에 서 있어서였다.
“하하하…….”
“맙소사. 진짜 미스터 리입니까?”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다시 물었지만.
“네. LA카운티의 이성하입니다.”
“미스터 리가 여기에 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휴가 중이었거든요.”
눈앞의 소방관은 스스로를 LA카운티의 이성하라고 분명히 밝혔고, 그에 코니 라이플은 다시 벅찬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여, 영광입니다, 미스터 리! 정말 뵙고 싶었는데 여기서 뵙게 될 줄이야!”
그들 헬기 팀 사이에서 전설로 추앙되는 존재가 눈앞의 이성하이기 때문이었다.
“시카고에서 보여 준 고공낙하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갑습니다, 미스터 리!”
지난 시카고 재난에서 헬기를 타고 고공에서 폭탄을 처리한 모습은 지금도 계속 헬기 팀 사이에서 자주 언급될 정도로 엄청난 광경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영광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곳에서 벗어나서 했으면 합니다.”
아직 완전히 불길을 피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 그렇죠. 죄송합니다. 미스터 리.”
그 말에 바로 헬기팀 팀장이 사과를 한 것처럼 아직 마을 사람들의 대피는 진행 중이었고, 생각보다 시간의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불길이 덮치기까지 얼마나 여유 있을까요?’
[아마 10분?]
‘그렇게 빨리요?’
[이미 불길이 산 중턱까지 번진 상태야. 바람에 날리는 불씨를 생각하면 불길이 이 밑까지 번지는 건 금방일 거야. 그게 수관화 화재의 가장 무서운 점 중 하나거든.]
최대한 속도를 내서 산을 내려오긴 했지만, 불길 역시 그런 사람들의 뒤를 매섭게 추격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원팀이 온 이상 이제 끝이야.’
드디어 자신들을 도와줄 지원팀이 온 상황이었다.
타타타타타.
그것도 맹렬히 돌아가는 로터의 소리가 증명하는 것처럼 단번에 하늘을 날아 불길을 떨칠 수 있는 헬기 팀이 지원으로 도착했고, 그에 이성하는 사과를 청한 헬기 팀 팀장을 향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대피를 서두르자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사람들 전부 탑승시킨다! 최대한 빨리 정비해서 출발한다!”
헬기 팀 팀장 역시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원들에게 마을 사람들의 헬기 탑승을 지시했으며.
“이쪽으로 오세요!”
“여성분 한 분은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으로 한 명 더 탈 수 있습니다. 한 명만 오세요!”
그 지시에 헬기 팀 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인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헬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타타타타타!
- 오케이, 출발합니다!
“모두 꽉 잡으세요! 올라갈 거예요!”
“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불길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위이이이잉.
헬기가 요란한 엔진음을 토하며 기동을 시작했지만.
‘아, 안 떠?’
헬기는 여전히 지상에 머물러 있었다.
타타타타타!
어떻게든 상승을 위해 로터가 매섭게 돌았지만.
- 제길! 안 올라가!!
귓가로 들리는 무전의 내용처럼 여전히 지상에 머물러 있었고, 그 이유는 사람들의 무게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너무 무거워요!”
“뭐라고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한계 무게를 넘어서 비행이 불가능합니다!”
당황한 표정으로 말하는 헬기 팀 대원의 모습처럼 탑승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헬기가 못 뜨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제길, 짐 다 버려요!!”
“뭐라고요?”
“사람들이 챙겨 온 짐 전부 버리게 해요!!”
“아, 알겠습니다!”
그 때문에 헬기의 기장이 사람들의 짐을 다 버리게 하라는 극단적인 수를 내놓았지만, 상승에 성공한 헬기는 몇 대 되지 않았다.
- 1호 상승!
- 10호 올라갑니다!
- 7호도 성공했습니다!
- 8호 비행준비 완료!
총 열 네 대의 헬기 중에 상승에 성공했다고 알려 온 헬기는 겨우 네 대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 헬기들은 여전히 기체를 띄우지 못하고 있었다.
위이이이이잉!
“안 됩니다! 더 버려야 해요! 지금보다 더 올라가야 해요!”
“젠장!”
절망에 찬 기장의 목소리처럼 아직도 오르락내리락하는 헬기의 상태를 보면 무게를 더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그 때문에 이성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내려야 하나…….’
어떻게든 무게를 줄이기 위해 헬기에서 내려야 할지를.
하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화르르르르!
어느새 불길이 산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위이이이이잉!!
헬기의 엔진이 거센 소리를 토하면 토할수록.
화르르르르르르!
불길은 더욱더 거센 소리를 내며 헬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더 버릴 거 없어?]
‘없어요. 이미 가져온 짐은 다 버렸어요.’
[끄응.]
그 때문에 이성하는 렉스와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끄응. 제가 내릴게요!”
“뭐라고요?”
“제가 내린다고요! 제가 빠지면 가능할 겁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이것밖에 없잖아요! 일단 살 사람들은 살아야 하잖아요!”
어떻게든 헬기를 공중으로 띄우기 위해서는, 헬기에 탄 탑승 인원의 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성하보다 먼저 헬기에서 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터억.
이성하가 탄 헬기가 아니라 그 앞으로 있는 헬기에서 한 사람이 뛰어내렸고, 그에 이성하와 렉스는 동시에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라이언!”
[라이언!!]
렉스의 아들인 라이언이 헬기를 띄우기 위해 불길이 다가오는 지상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