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14화>
214화. 생명을 걸어야 할 때 (3)
한편, 콜로라도주를 담당하는 국토관리부는 난리가 난 상태였다.
“불길이 메인 브릿지 위쪽을 넘었습니다!”
“현재까지 피해 상황은 2000에이커!”
“불길이 벡스터 피그 쪽으로 빠르게 번집니다.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머리에 헤드셋을 낀 직원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고.
<로키산맥 화재 상황>
그들의 머리 위로 콜로라도주의 지도를 띄운 거대한 모니터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광원이 번쩍이고 있었다.
“왜 아무도 예상 못 한 거야? 분명히 산맥 위쪽으로 불길이 번질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했잖아!”
쾅!
한 남성이 성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며 책상을 내리친 것처럼, 이번 여름 산불에 대한 초동 조치에 실패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을 낼 때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을 내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부서장님, 경로에 포함되는 마을들의 대피 순서를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곁에 있는 직원의 말처럼 산불의 확산 경로에 포함되는 마을들의 대피를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었고.
“제길!”
그에 성을 내던 남성은 이내 지도에 표시된 마을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 가며 지원팀이 투입될 순서를 정해 갔다.
“가장 먼 플랫 마을은 루즈벨트 마운틴을 보낸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이니 마을은 데인리 마운틴을. 반대편의 트라이앵글엔 크레이그 마운틴을 투입하도록 해.”
“옛썰!”
직원의 말처럼 지금은 화를 내기보다는 산불에 의해 피해가 예상되는 마을들을 대피시키는 게 최우선인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끄응…… 여기는…….’
산불 경로에 그 어떤 마을보다 가까이 있는 한 마을의 존재 때문이었다.
<메이닌>
모니터상으로 번쩍이는 빨간 광원에 포함된 한 마을의 이름 때문이었고, 그 마을은 안타깝게도 지원팀의 배정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메이닌으로 차가 들어갈 수 있나?”
“안 됩니다. 불길이 완전히 먹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메이닌으로 통하는 출입구는 그 도로 하나뿐입니다.”
모니터에 표시된 상황처럼 이미 산불에 대한 위험에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포기할 수 없었다.
“부서장의 직권으로 서부의 모든 헬기 팀을 메이닌으로 보낸다.”
본부를 담당하는 부서장의 직권을 이용해, 본부에 소속된 헬기 팀 모두를 메이닌으로 배정했다.
“헬기 팀 전부를요? 설마 현재 투입된 헬기 팀까지 모두 말입니까?”
“그래.”
“안 됩니다! 이미 현장에 투입된 헬기를 빼면 산불이 더 커질 위험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부서장님. 대피 경로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 투입된 헬기를 모두 빼는 건 너무 섣부른 판단입니다. 다른 지역도 헬기가 필요한데 그걸 전부 메이닌으로 빼면 공백이 생길 겁니다.”
그 지시가 현장에 투입된 헬기 팀까지 모두 동원하라는 것에 듣고 있던 직원들이 난색을 표했지만, 남성의 의지는 확고했다.
“아니, 투입시킨다. 우리는 메이닌에게 빚이 있어.”
다른 마을도 아니고 메이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로키산맥을 뒤덮었던 거대한 산불로부터 희생된 다섯 소방관이 그 이름을 앞에 달고 있었고, 역사에는 기록되지 못했지만 부서장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콜로라도는 황무지에 불과해. 우리 콜로라도는 그들에게 큰 빚을 졌단 말이야.’
그 다섯 소방관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콜로라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랬기에 부서장에게 메이닌은 어떠한 이유를 대서라도 지켜야 할 마을이었다.
<메이닌 마운틴 핫샷>
한 팀이 통째로 사망하며 유명무실해진 덕분에 현재는 최하위에 속하는 Type2 소방대로 기억되지만, 한때 콜로라도 서부를 지키던 최고의 소방대가 거주하는 마을이 이 메이닌이었고, 그런 그들이 지키는 마을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생존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시해야 할 게 인명 피해를 막는 일이야. 현재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을 메이닌 마운틴을 빠르게 지원한다.”
단지 메이닌만을 위해서가 아닌, 그들이 지키고 있을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헬기 팀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부서장의 생각처럼 메이닌 마운틴은 마을 사람들의 대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여, 여기를 어떻게 올라가요.”
“갈 수 있어요. 제 손 잡고 올라오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르신.”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힘들어하는 노약자들을 옆에서 보조하며 마을 사람들이 빠르게 산을 오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왔고, 그런 메이닌 마운틴의 도움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꽤 깊숙이 산을 오른 상태였다.
“저, 정상이다!”
“다 왔어!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돼.”
“다들 조금만 더 힘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어느덧 눈앞으로 다가온 산 정상에 고함을 지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처럼, 이제 옆으로 돌아서 산을 내려가기만 하면 자신들을 쫓아오는 불길의 위험에서 좀 더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감격한 표정으로 각자의 곁에 있는 메이닌 마운틴의 소방관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샘, 고맙네.”
“아닙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니야. 자네들 덕분에 안전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어. 다 자네들 덕분이야.”
당신들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안전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 광경에 뒤쪽에서 사람들을 신경 쓰던 라이언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아니야. 성하가 한 거지.’
자신보다 뒤에 있는 이성하를 흘깃 보며 하는 생각이었다.
“어르신, 짐 좀 들어 드릴까요?”
“아, 자꾸 미안해서 어떡하지.”
“아닙니다, 괜찮아요. 가방 정도는 들어 드릴 수 있어요.”
아이를 등에 업은 상태에서도 산을 오르는 걸 힘들어하는 노인을 위해 가방 하나를 흔쾌히 집어 드는 이성하였고, 그런 비슷한 광경을 라이언은 산을 오르며 수없이 옆에서 지켜봐 왔다.
“꼬마야, 삼촌이 올려 줄게. 이리 와.”
“어르신, 뒤에서 제가 밀어 드릴게요.”
“자, 좀만 더 힘냅시다. 잘하고 있는데 좀 더 빨리 가야 해요. 다들 힘내요.”
소방관들의 인원 배치만이 아니라, 일행의 가장 후미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도와가며 산을 오르도록 힘을 쓴 게 자신의 뒤에 있는 이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잠시 걸음을 멈춰 이성하의 옆으로 다가갔다.
“성하, 왜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라고 한 거예요?”
이성하가 마을 사람들에게 본인이 메이닌 마운틴을 이끌고 있다는 걸 비밀로 했기 때문이었다.
“왜 비밀로 하라고 했냐고요?”
“네. 이런 말 하기 창피하지만, 솔직히 지금 성하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대피를 시도조차 못 했을 거예요. 뒤늦게야 산불이 넘어온 걸 알고 이제야 방화선을 만들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왜 우리에게 공을 넘겨요? 지금 사람들이 안전할 수 있는 건 다 성하 때문이잖아요.”
말하기만 한다면 저 선망 어린 사람들의 눈초리가 다 자신을 향할 게 분명한데도, 묵묵히 뒤에서 사람들의 안전만 챙기는 이성하의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피식 웃었다.
“소방관이니까요.”
“뭐라고요?”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우리가 저 불길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벗어나는 거예요. 그러려면 사람들이 전적으로 우리 소방관들을 신뢰해야 하고. 그래서 말 안 했어요. 사람들이 우리 모두를 신뢰해야 좀 더 대피를 시키는데 용이하잖아요.”
“……겨우 그것 때문에요?”
그 말에 라이언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성하는 바로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겨우가 아니라 그게 전부예요. 제가 마을에 다시 돌아온 이유도 그거고요.”
소방관은 어떤 상황에서도 일반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아야 했다.
이성하가 불길을 보자마자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마을로 돌아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고, 그 점을 생각하면 메이닌 마운틴 역시 소방관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당신들도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잖아요.”
경험이 적어 본부의 지시만을 안일한 모습을 보여 지금의 상황을 만들긴 했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마을에 남았다.
“저런 불길을 처음 마주했을 텐데도 무섭다고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려고 했어요. 주변의 숲이 모조리 불타는 상황인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마을에 남는다. 그거 아무나 못 하거든요. 저도 처음에 저런 불을 목격하고 바짝 얼어 버려서 아무것도 못 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하하.”
처음 접하는 대형 산불에 겁을 먹으면서도 끝까지 마을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마을에 남은 게 현재 사람들을 도와서 산을 오르는 메이닌 마운틴의 소방관들인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기분이라는 생각에 한 가지를 더 말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보니까 예전의 메이닌 마운틴도 당신들과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렉스의 이야기였다.
[야!]
‘알겠어요. 안 해요. 안 해.’
바로 귓가를 울리는 렉스의 고함에 더 이상 말은 안 했지만 이성하로서는 그걸로 충분했다.
“예전의 메이닌 마운틴도 그랬을 거라고요?”
그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라이언의 모습 때문이었다.
“뭐 그렇지 않을까 추측한다는 거죠.”
“에이, 그게 뭐예요?”
“하하, 그냥 제 생각입니다.”
렉스 때문에 더 이상의 말은 못 하고 웃으며 넘어가긴 했지만.
“쩝, 전 다시 가 볼게요.”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앞서 나가는 라이언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했던 말이 라이언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듯 보였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앞서 나간 라이언이 자꾸 옆으로 보이는 산을 바라봐서였다.
‘라이언이 보는 산이 그 산이죠?’
[끄응, 너 진짜.]
‘알았어요, 더 이상 말 안 할게요. 아무튼 저 산이 벨로우 산은 맞나 보네요. 라이언이 저렇게 착잡한 눈으로 보는 걸 보니까 말이에요.’
자신이 말한 게 신경 쓰였는지, 산을 오르던 라이언이 중간중간 렉스가 사망한 걸로 알려진 벨로우 산을 쳐다봤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저거면 됐어.’
렉스의 방해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알려 주지는 못했지만, 라이언이 지금처럼 렉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야이 씨. 그러니까 말하지 말랬잖아! 그걸 왜 이야기해!]
물론 그 때문에 렉스가 성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지만, 이성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에요. 그럴 거면 조금이라도 빨리 아는 게 좋잖아요.’
지금처럼 라이언이 소방관으로서 근무한다면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이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지금은 이 문제로 머리를 싸맬 때가 아니었다.
‘왔나.’
피어오르는 불길 너머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타타타타타!
LA카운티에서 스모크 점퍼 교육을 받으며 수없이 들었던 로터 소리가 불길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고함을 질렀다.
“헬기입니다! 조금만 더 빨리 내려갈게요.”
드디어 자신들을 쫓아오는 지긋지긋한 불길의 위협에서 벗어날 시간이었다.
- 메이닌 마운틴. 여기는 서부의 하이랜드 팀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지원하겠다.
드디어 본부에서 보낸 지원팀이 메이닌 마을을 구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