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13화 (213/235)

<강철 소방대 213화>

213화. 생명을 걸어야 할 때 (2)

산불이 강을 넘어 마을을 향해 다가오는 걸 확인한 라이언은 이성하와 함께 다시 본부로 돌아와 자신이 본 상황을 동료들에게 알렸다.

“대장…… 성하 말이 맞아. 정말 산불이 방화선을 넘었어…….”

“에이, 너까지 왜 그래? 이거 뭐 몰래카메라 아니야??”

“그래, 라이언. 쫄리게 왜 그래? 이런 장난 하나도 안 재밌어!”

“장난 아니고 정말이야! 산불이 넘어왔어! 이미 도로까지 먹혔다고!”

자신의 말을 장난 취급하며 끝까지 믿지 못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절규하듯 소리치며 자신이 본 암담한 상황을 알렸고.

“미치겠네. 샘, 네 차로 다녀오자.”

“에이 씨, 라이언 너 장난이면 가만 안 둘 거야.”

“쩝…… 분명히 나무 다 쳐 놨는데 무슨 산불이라는 거야?”

그 말에 메이닌 마운틴의 소방관들이 여전히 믿지 못하는 반응을 보이며 본부를 나섰지만, 그들이 운전대를 잡는 일은 없었다.

“어…….”

가장 먼저 본부에서 나선 소방관이 멍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멈춰 섰다.

“뭐야? 샘 왜 그래?”

“저, 저기…….”

“뭘 보고…… 저, 저게 뭐야……!?”

그 뒤로 따라나서던 소방관 역시 이내 같은 모습으로 멈춰 섰고, 그 모습은 다른 소방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아아아악!

“여, 연기…….”

“진짜였어…….”

“맙소사…… 어떻게 불길이 여기를…….”

어느덧 육안으로 보이는 자욱한 연기에 다들 이성하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제, 제길. 얼른 대피해야 해!”

그 광경에 지금까지 여유를 부리던 대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지만, 대피를 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아니요, 무리예요. 불길이 도로를 막았어요.”

언제 나왔는지 뒤에서 이성하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성하 말이 맞아. 도로가 있는 산 우측으로 이미 불길이 확산된 상태였어. 나갈 길이 막혔어, 대장.”

그 옆으로 라이언 역시 도로가 막혔다며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무슨 소리야! 어제까지만 해도 강 너머에 있던 불이야! 연소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벌써 도로를 잡아먹었을 리가 없어!”

그 말에 대장이 인정할 수 없다며 성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이어지는 이성하의 말에 아무 말을 못 했다.

“수관화라면요?”

“뭐, 뭐요?”

“수관화입니다. 벌써 연기가 보이는 걸 보면 분당 100미터는 넘을 겁니다.”

수관화는 나무의 가지나 잎이 무성한 부분을 태우며 빠르게 번지는 산불을 말했다.

천천히 지반을 통해 번지는 일반적인 산불이 아닌, 나무의 가장 높은 부분만을 우선적으로 태우며 빠른 속도로 번지는 산불을 말했고, 만약 저 산불이 그 말대로 수관화라면 지금의 상황이 설명이 됐다.

휘이이이잉.

불길이 지금 불고 있는 거센 바람을 타고 숲의 윗부분만을 태우며 빠르게 전진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장인 케르하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

정말 이성하의 말처럼 수관화라면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화아아아악!

육안으로 보이는 새카만 연기를 보면 당장이라도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대피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기, 길이 없어…… 길이 저쪽에 있는데…….”

그 대피를 해야 하는 길 쪽에서 산불이 번져온다는 것에, 깊은 패닉에 빠지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디! 너 빨리 가서 촌장님께 상황 알리고 마을 청년들 다 불러 모으도록 해!”

바로 단호한 표정으로 휘하 대원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 알겠어!”

“댄! 너는 애들 데리고 마을에 있는 기름들 다 모아서 오고, 라미 너는 방화선 구축하게 장비들 준비한다!”

“아, 알겠어요!”

다른 대원들 역시 그런 케르하의 지시에 대답하며 각자 부여받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렇게 잠시 후 다시 모인 대원들은 긴장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의기에 차 있었다.

“1팀은 나와 함께 나무들을 벤다. 2팀은 나가서 도랑을 파고. 3팀은 맞불 놓을 지역을 그려 놔. 알겠지?”

“옛썰!”

어떻게든 다가오는 불길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마을 주변으로 방화선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에 이성하는 답답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수관화는 방화선으로 막히는 불이 아니야. 방화선을 얼마나 두텁게 구축하든 소용없어.’

지금까지는 그들이 이 지역을 담당하는 소방관들이기에 믿고 맡길 생각으로 지켜봤지만, 저 불길을 방화선으로 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 위로 번지는 수관화는 방화선을 어떻게 구축하든 소용없어. 특히 이런 바람에서는 말이야.]

렉스의 말처럼 불길이 위로 번지는 수관화의 특성 때문이었다.

서로가 맞닿아 불길이 확산되는 게 아닌, 불씨가 바람에 휘날려 주변으로 불길이 확산되는 게 수관화 화재의 특성이었고, 그래서 현재 불길의 확산 속도는 엄청났다.

화르르르르르!

어느새 연기만이 아니라 빨갛게 일렁이는 불길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불길이 번지는 속도는 그야말로 어마무시 했으며,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바로 손을 들어 의견을 제시했다.

“케르하 대장님. 무리입니다. 방화선이 먹힐 불길이 아니에요.”

“뭐, 뭐라고요?”

“바람을 타고 번지는 산불이 수관화입니다. 평소라면 먹힐지 모르지만, 이런 바람에서는 공중 헬기팀이 아니라면 방법이 없습니다. 무조건 대피를 하는 것만이 최선입니다.”

지금은 방화선 구축만이 아닌, 사람들을 이끌고 불길에서 멀어지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하지만 그 말에 케르하는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로 대피합니까? 저 산으로요? 마을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 줄 알아요?”

그 역시 대피를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알고 있어, 산불이 이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 상황이라면 대피를 하는 게 맞아.’

삼림소방대의 매뉴얼에서는 이렇게 마을까지 불길이 다가올 경우 사람들을 이끌고 대피를 하는 걸 최선으로 권유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대피로가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직접 확인은 못 했지만, 이성하와 라이언의 말대로라면 이미 도로는 불길에 막혀 대피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대피를 하려면 도보로 대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하려면 마을 뒤쪽으로 보이는 산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안타깝게도 그렇게 산을 넘어 대피를 하기에는 마을 주민들의 연령층이 좋지 못했다.

“대피해야 할 주민들의 숫자가 213명입니다. 그중 반이 아이들과 노인들이고요. 그런데 어떻게 대피를 합니까? 저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라고요!”

엄청난 주민들의 숫자도 문제지만, 그중 반이나 해당하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길조차 제대로 나지 않은 산을 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방화선을 구축할 계획을 짜는 건 아니었다.

“이런 경우에는 방화선을 구축하는 게 최선입니다. 본부는 분명히 지금 상황을 파악했을 거예요.”

통신은 불가능했지만, 본부는 위성을 통해 이 지역으로 불길이 번진 걸 확인했을 터였다.

마을을 향해 불길이 번지는 걸 봤다면 지원팀을 파견했을 게 분명했고, 그렇다면 최선은 그 지원팀이 도착하기까지 버티는 거였다.

“지원팀이 올 겁니다. 근방에 있을 루즈벨트 팀과 크레이그 팀이 올 거예요.”

미리 본부를 통해 전달받은 이번 산불의 대처방안대로라면 분명히 근방에서 다른 산불을 진화하던 핫샷 팀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이성하로서는 너무 안일한 생각처럼 보였다.

[너무 흥분했어. 겉으로는 침착해 보여도 갑작스런 산불에 당황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내리는 상태야.]

렉스의 말처럼 메이닌 마운틴의 대장 케르하는 겉으로 의연한 모습과 달리,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대장, 뭐 해! 빨리 방화선 구축해야 해!”

“댄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빨리 가야 하는데!”

그 휘하의 대원들 역시 말로는 서두르지만 미묘하게 떨고 있는 몸들을 보면 다들 생각지도 못한 산불의 확산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이성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버틴다고요? 저 불길에서요? 지원팀이 도착할 때까지 저 불길 속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겁에 질린 메이닌 마운틴 소방관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버틴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다음은요? 마을은 지켰다고 해도 불길이 마을을 감싸는 건 못 막을 겁니다. 그러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원팀이 불길을 뚫고 다시 들어올 때까지 이 안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

“아니요. 절대 못 버팁니다. 방화선은 이 지역 전체를 방어할 때나 가능한 거지, 마을만 지키는 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사방을 태우는 불길의 열기에 탈진하는 사람들이 나올 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릴 겁니다. 전부 불길에 고립돼 죽게 될 거라고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마을을 지켰다 하더라도 불길에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으며, 그에 케르하를 비롯한 소방관들은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하라고!”

“제기랄! 이런 상황은 매뉴얼에 없었잖아!”

“맙소사,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왜!!”

이성하의 말에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정말 번져 오는 불길의 속도를 생각하면 방화선을 구축하다가는 그 말대로 불길에 고립된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월급을 받는 소방관이라는 걸 생각하면 참 한심한 모습이었다.

“제길…… 틀렸어…….”

“어, 어떻게 하지. 어머니랑 아버지가 집에 계신데.”

“대장, 어떻게 해요? 우리 어떻게 해요!!”

“…….”

방금까지만 해도 방화선을 막겠다며 의기에 차 있던 소방관들이, 그 방법으로는 답이 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패닉에 빠지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소방관들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타입 2 소방관이라면 어쩔 수 없어. 처음 접하는 상황일 거야.’

메이닌 마운틴은 산림소방대의 Type2 소방관이었다.

산림소방대는 Type1, Type2-A, Type2라는 3개의 등급으로 구성됐는데, 그중 Type1이 핫샷이라고 불리는 최정예 소방대라면 Type2 소방대는 현장에서 보조요원으로 불렸다.

불길이 치미는 공간으로 직접 진입해 산불을 제압하는 핫샷과 달리, 안전한 후미에서 방화선을 조직하는 것만이 그들의 역할이었으며, 그 때문에 메이닌 마운틴은 이런 산불을 접해 볼 경험이 전혀 없었다.

[한국이라면 의용소방대랑 같아. Type2에서 경험을 쌓고 그 위인 Type2-A로 올라가곤 하거든.]

렉스의 말처럼 제대로 된 산림소방대로 발전하기 전에 머무르며 경험을 쌓는 곳이 일명 보조요원이라고 불리는 Type2 소방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메이닌 마운틴의 경우는 그 Type2에서도 가장 하위 평가를 받는 소방대였다.

[경험자가 없어. 케르하 저 녀석도 내가 있던 시절에는 소방관이 아니었어.]

렉스의 말대로라면 대장인 케르하 역시 그 경험이 그리 길지는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케르하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케르하, 실례될지 모르겠지만 소방대 지휘를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메이닌 마운틴의 지휘권 이양이었다.

“우, 우리 팀의 지휘를요?”

“네, 산림소방대의 정식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스모크 점퍼 교육은 이수했습니다. 산불에 대한 경험도 몇 번 있고요, 그러니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LA카운티 대원으로서 현장에 합류하고 싶습니다.”

특수재난구조대인 LA카운티 대원으로서 신분을 언급하며 지휘권 이양을 요청했고, 그 말에 케르하는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거부해서는 안 됐다.

“……부탁드립니다.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어떻게든 우리 소방대를 지휘해 주십쇼.”

일반 소방대원이라도 도움을 청해야 할 판국인데, 그 대상이 특수재난구조대. 그것도 그중에서 최근 이름을 날린 이성하가 그 대상이라면 무릎을 꿇고서라도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게 지금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메이닌 마운틴의 다른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스터 리,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대피하면 되겠습니까?”

“말씀만 해 주십쇼. 무슨 말이든 따르겠습니다.”

“저도요.”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성하가 어떤 말을 하든 따르겠다며 간절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지휘를 맡아 주길 요구했고, 그에 이성하는 바로 계획을 설명했다.

“자, 지금부터 팀을 나누겠습니다. 케르하가 이끄는 1팀이 선두로 나아가며 길을 뚫고, 2팀 팀장이 샘이라고 했나요?”

“맞습니다.”

“샘이 이끄는 2팀이 중간에서 사람들이 산을 올라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제가 포함된 3팀이 후미를 맡으며 어떻게든 뒤처지는 사람들을 챙깁니다.”

대장인 케르하가 건넨 마을 지도를 대원들의 앞으로 펼치며 어떤 식으로 대피를 진행할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몸이 불편한 노약자는 우리 소방관이 직접 들어서 옮기고, 그 외의 노약자는 시민들이 챙깁니다. 절대 뒤처져서는 안 됩니다. 앞뒤로 조를 정해 서로가 도우며 올라갈 수 있게 중간에서 계속 관리해 주고, 그게 안 될 때 우리가 나섭니다. 불길이 쫓아오기 전에 무조건 산을 넘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소방관들과 시민이 해야 할 일을 엄격히 구분하며 계획의 최우선 목표를 무조건 산을 넘는 걸로 정했고, 그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최소한의 짐만 챙긴 채 불길을 등졌다.

“전부 이쪽으로 오세요!!”

“데이빗, 네가 후미 맡아!”

“다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필요 없는 건 다 버리세요!”

“탈출이 우선입니다! 다들 소방관들 말만 따라 주세요!”

곳곳에서 고함치는 메이닌 마운틴의 보호 아래 모두 함께 산을 올랐으며, 그런 메이닌 마운틴의 가장 뒤에는 이성하가 있었다.

“마틴이라고 했지? 아저씨 목 꽉 잡아야 해.”

“네!”

한 소년을 등에 업은 상태였다.

화르르르르!

그런 상태로 마을 너머로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고, 그 앞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가요.’

[그래.]

다가오는 불길을 피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을 책임진 채,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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