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12화 (212/235)

<강철 소방대 212화>

212화. 생명을 걸어야 할 때 (1)

상황은 심각했다.

“뭐, 뭐가 저리 빨라…….”

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한 불길이 어느새 마을을 향해 빠르게 번져 가고 있었다.

화르르르르!

그것도 마을 방향으로만 번져 가는 것만이 아닌, 마치 마을을 감싸듯 사방으로 번지며 주변의 푸르른 녹음을 불길로 물들이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다급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제길, 라이언에게 알려 줘야 해.”

산불이 일어난 사실을 마을에 있는 라이언에게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빨리 알려 줘! 산 능선에서 발생한 불길은 마을에서 확인이 되지 않아!]

‘알아요!’

렉스의 말처럼 산 능선을 넘어오는 불길을 밑에 있는 마을이 알아차리기에는 그 위치가 너무 좋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라이언과의 통화는 불가능했다.

삐삐삐삐.

“……!”

통화음이 들려야 할 핸드폰이 통화 불능의 신호음을 정신없이 울려 댔다.

“어? 전화가 안 돼!”

“저, 저도 그래요. 911에 전화가 안 걸려요!”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들 역시 같은 상황인지 다들 자신들의 핸드폰을 붙잡은 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통화권 이탈>

핸드폰에 떠 있는 문구처럼 통신망이 붕괴된 상황이라서였다.

‘렉스, 이거 설마…….’

[지역 전신망이 끊어진 거야! 가서 직접 알려 줘야 해!]

‘젠장.’

위치는 모르지만, 눈앞으로 보이는 불길이 산맥 어딘가에 있을 지역 전신망을 마비시킨 상황인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바로 짐을 챙기며 고함을 질렀다.

“아저씨, 문 좀 열어 주세요!”

렉스의 말처럼 마을로 직접 달려가 상황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민간인을 끌어들일 순 없어. 내가 가야 해.’

버스를 타고 그대로 돌아가 상황을 알린다면 더 좋겠지만, 민간인인 버스기사와 승객들을 위험에 끌어들일 순 없기에.

“무, 문이요?”

“네, 소방관입니다. 마을로 가서 알려 줘야 해요!

소방관의 신분을 밝히며 버스의 승하차 문을 열어 줄 걸 요구했고.

촤아악.

그렇게 열린 버스 문에 고민도 하지 않고 뛰어내렸다.

“자, 잠깐만요. 여기서 마을까지 돌아가려면 5km가 넘어요!”

그 뒤로 버스기사가 따라 내리며 당황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이성하의 몸은 이미 불길을 향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통화가 가능해지면 바로 911에 신고만 부탁드립니다!”

그저 지금 상황에 대한 신고만을 부탁하며 그대로 불길이 위협하는 마을을 향해 달렸고, 그 속도는 놀랄 정도로 빨랐다.

‘무조건 20분, 그 안에 도착해야 해. 그래야만 불길이 마을을 감싸기 전에 대피할 수 있어.’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시켜야 마을 사람들의 대피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화르르르르!

금방이라도 마을을 휘감을 것처럼 넓게 번지는 불길의 모습에.

“끄아아아아.”

체력의 분배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비명과 같은 고함을 지르며 내딛는 발에 힘을 가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에 마을에 도착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직이야. 아직 불길이 내려오려면 시간이 있어!]

안도에 찬 렉스의 말처럼 불길이 아직 마을의 주변을 감싸기 전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됐어, 허억, 허억.”

그 때문에 도착한 마을의 입구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안도할 수 있었으며, 이어서 할 일은 라이언을 만나는 거였다.

“라이언!!”

라이언이 근무하고 있는 메이닌 마운틴 본부를 찾아 고함을 질렀다.

“성하? 아까 간 거 아녔어요?”

“허억, 허억. 산불이에요!”

“네?”

“사, 산불이 마을을 향해 번져 와요! 빨리 대피해야 합니다. 사람들 데리고 전부 대피해야 해요!”

원래 마을로 돌아온 목적처럼 라이언에게 산불의 존재를 알리며 마을 사람들이 대피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주지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라이언이 피식 웃었다.

“아, 보셨구나. 괜찮아요. 그거 알아서 꺼질 거예요.”

산불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 스스로 꺼질 불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알아서 꺼진다고요?”

“네. 이틀 전에 발생한 산불인데. 본부에서 불길은 세지만 확산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우선순위에서 배제된 산불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알아서 꺼질 거예요. 주변에 강과 협곡이 있어서 여기까지 번지지는 않아요. 난 또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확산 가능성이 없어 마을까지는 번질 수 없는 산불이라며 이성하의 어깨를 장난치듯 툭툭 쳤고, 그 모습은 다른 소방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시 소문으로 듣던 거만큼이나 사명감이 투철한 분이시네. 메이닌 마운틴의 대장 케르하 달리스요. 만나서 영광이오.”

“샘 로빈슨입니다. 안 그래도 라이언에게 듣고 엄청 궁금해했는데 이렇게 보게 됐네.”

“저도요. 생각했던 것보다 덩치가 엄청 크시네. 나는 에디 미켈슨이라고 해요.”

“댄 슈와츠예요. 이 팀의 장비 정비를 맡고 있는…….”

우선 순위에서 배제된 산불보다는 다들 시카고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성하에게 자신들을 소개하기 바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짜증이 확 치솟는 순간이었다.

‘다들 미친 거 아냐?’

산불이라는 경고를 해 줬음에도 여유가 넘치는 소방대원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잠깐만요, 스스로 꺼질 수준이 아니에요. 이미 마을 근처까지 다가온 상황이에요. 빨리 주민들 대피시켜야 합니다.”

그런 소방관들의 모습에 다시 한번 산불의 규모를 설명하며 마을 주민들의 대피를 건의했지만.

“하하하, 알고 있어요. 곧 꺼질 산불이라니까요.”

“그래요, 미스터 리. 안 그래도 어제 이미 방화선을 구축해 놔서 괜찮습니다. 안심해도 돼요.”

“이미 넘어왔다고요! 불길이 마을 주변으로 번지고 있다니까요!”

끝까지 그 말을 농담으로 알아들으며 웃음을 터트리는 소방관들의 모습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물론 메이닌 마운틴의 소방관들이 어떤 이유 때문인지 그러는지는 알고 있었다.

[우선순위 목록. 본부에서 내려 준 우선순위 목록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어.]

렉스의 말처럼 메이닌 마운틴은 본부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미스터 리. 진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미 국토관리국 지시에 따라 우리는 초기 공격 작업을 끝내 놨어요. 여름이 되기 전에 그쪽으로 이미 방화선을 구축해 둔 상태고, 산불이 일어난 걸 알자마자 방금 로빈슨의 말처럼 어제 그 구역의 나무를 전부 베어 둔 상태예요. 그러니 진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여기까지 올 일은 없을 겁니다.”

답답해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메이닌 마운틴의 대장이 웃으며 자신들의 작업 상황이 정리된 문서 하나를 건넸고, 그 문서에는 그들의 작업 상황뿐만 아니라 이번 산불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사진으로 표시돼 있었다.

* 콜리나 산불은 초기 공격 우선순위에서 제외.

* 동쪽과 서쪽 두 개의 협곡으로 타 지역으로의 확산 가능성 낮음.

* 초속 2m의 바람. 자연 진화 가능성 높음.

* 메이닌 마운틴은 방화선 구축만 확인하고 뒤로 빠질 것.

* 만약을 대비해 비상대비 체제로만 근무.

* 루즈벨트 핫샷과 크레이그 핫샷이 담당 지역 진화하고 넘어오면 보조 예정.

“국토관리부에서 사용하는 위성 분석 그래프입니다. 위성의 분석 결과로는 불길이 번지더라도 아래 위치한 강을 넘을 수 없다고 했어요. 게다가 우리가 그 주변에 위치한 나무까지 베어 냈기에 그 가능성은 아예 제로로 떨어졌고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문서의 내용을 설명하는 메이닌 마운틴 대장의 모습처럼, 미국 전역을 감시하는 위성을 통해 결정되는 게 그들이 산불 진압 방향을 결정하는 우선순위 목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아니야. 그랬다면 애초에 산불 자체를 저렇게 방치할 리도 없지.’

메이닌 마운틴의 대장이 우선순위 목록을 이야기한 걸 보면 산불은 하나가 아니었다.

최소한 동시다발적으로 이 구역에 3~4개의 산불이 일어나 그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걸 의미했고, 그런 우선순위에서 밀린 산불이 있다는 건 산불 진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걸 뜻했다.

[그래. 내 경우처럼 말이야. 조만간 비상사태가 떨어질지도 몰라. 또 로키산맥 전체에 집결명령이 떨어질지도 모르지.]

씁쓸한 목소리로 말하는 렉스의 말처럼 옛날 그걸 겪은 산증인이 곁에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니, 옛날이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미국의 산림소방대는 이미 그 처참함을 4년 전 뼈저리게 겪은 적이 있었다.

‘네. 애리조나의 핫샷 멤버 19명이 사망한 그 화재처럼요.’

바로 2013년 애리조나주에서 발생한 야넬 산 화재였다.

사방으로 빠르게 번지는 불길에 차마 빠져나오지 못한 19명의 소방관이 그대로 불길 속에서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아직도 웃고 있는 라이언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왜, 왜 이래요?”

“직접 봐요.”

“뭐라고요?”

“직접 보고 확인하라고요. 지금 당신 마을이 어떤 상황인지.”

안 된다면 억지로라도 확인시킬 맘이었다.

“성하.”

“운전해요! 보고 이야기하자고요. 제발!”

라이언을 몇 번 본 적 있는 그의 트럭에 강제로 밀어 넣고는 직접 확인하자며 조수석에 올라탔으며, 그에 잠깐 망설인 라이언은 한숨을 내쉬며 운전대를 잡았다.

“하, 거참. 알겠어요. 가 보죠. 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안 그래도 담배 사러 나갈까 했는데, 나온 김에 담배나 사 가야겠다.’

안 그래도 담배가 떨어져 슈퍼에 나갈까 고민했는데,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마을을 나선 지 얼마 안 돼, 울창한 나무 사이로 짙은 연기가 보였다.

화아아아악!

보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검은 연기가 나무 뒤로 자욱하게 보였고.

“서, 설마…….”

부아아앙.

그 광경에 바로 엑셀을 밟아 완전히 마을을 벗어난 라이언은 멍한 표정으로 차를 멈췄다.

“불길이 어떻게 여기까지…….”

원래대로라면 넘어오지 못할 불길이 강을 넘어 마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화르르르르르!

마을을 보호하던 가림막 역할을 하던 숲이 새빨간 불길을 토하고 있었으며, 그에 라이언은 다급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봤다.

“대, 대피! 빨리 대피해야 해요!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해요!”

정말 이성하의 말처럼 산불이 마을로 다가오는 것에, 빠르게 대피해야 한다며 고함을 지른 것이다.

하지만 그에 이성하는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늦었어요.”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가능했겠지만, 길이 없었다.

“네?”

“도로가 막혔어요. 길이 없다고요.”

멀리 보이는 도로의 끝을 가리키며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고, 그에 고개를 돌려 본 라이언은 멍한 표정으로 아무 말을 못 했다.

화르르르르!

“아…….”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도로가 어느새 불길에 휘감기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