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10화 (210/235)

<강철 소방대 210화>

210화. 약속 (3)

이성하로서는 이해를 못 할 말이었다.

“약속이요?”

렉스에게는 듣지 못한 이야기라서였다.

‘저게 무슨 말이에요? 아들과 약속한 거 있어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렉스에게 약속에 대해 빠르게 물었지만.

[나, 나도 몰라. 약속? 내가 라이언과 약속한 게 뭐가 있지?]

렉스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기억을 못 하는 상황이었고.

“정말 언제까지 그럴 거야? 미스터 리 당황하게 왜 그래?”

“아니에요, 메리. 저는 괜찮아요.”

그 때문에 괜한 이야기를 꺼내 분위기를 망쳤다고 라이언을 타박하는 메리를 향해 빠르게 웃어 보였다.

“진짜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아니. 오히려 궁금한데요? 혹시 어떤 약속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렉스가 기억 못 하는 약속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약속을요? 들어 봤자 별로 재미없을 텐데요?”

“아니에요. 저도 아버지가 소방관이셨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괜히 궁금하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듣고 싶어요.”

그 때문에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언급하며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라이언은 잠깐 고민하고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죠. 어차피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라 딱히 비밀은 아니니까요.”

이성하는 모르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가 자신과 아버지의 이야기였으니까.

“하…… 또 왜 아빠 이야기로 가는 거야.”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옆에 있던 메리가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이성하는 상관하지 않고 라이언의 말에 집중했다.

‘뭐 때문에 그런 거지?’

이성하가 알기로 렉스는 그 어떤 소방관보다 용감하게 산불을 진압하다 눈을 감았다.

‘도대체 아들과 무슨 약속을 했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 거예요.’

그런 렉스의 아들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것에 아픈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 * *

렉스는 미국 산림소방대의 최정예 엘리트라 불리는 핫샷 멤버였다.

수만 명의 산림소방관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서 엄선된 약 2,000여 명의 특급 소방관 중 하나.

그 때문에 렉스는 마을의 자랑으로 불리는 소방관이었다.

“메이닌 마운틴? 그들이 있어서 우리 중서부가 안전할 수 있지.”

“그 정도예요?”

“그럼~ 메이닌 마운틴이 지키는 산만 수십 개야. 그들이 이 로키산맥을 지킨다고!”

마을의 주민들이 그 이야기만 나와도 앞다투어 엄지를 치켜든 모습처럼, 주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로키산맥을 산불로부터 지켜 내는 삼림소방대가 바로 렉스가 소속된 메이닌 마운틴이었으니까.

그리고 렉스는 그런 메이닌 마운틴의 팀장 중 한 명이었다.

보통 20~22명 정도로 구성되는 핫샷 크루는 7명당 한 팀으로 구성되곤 했는데, 그중 한 팀의 팀장이 렉스였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팀의 팀장인 렉스는 당연히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렉스! 어디 가나?”

“플레그폴 산에 경계선을 그어 둘까 해서요.”

“플레그폴에?”

“네, 곧 산불이 몰아치는 가을이잖아요. 미리 대비해야죠.”

화재가 있든 없든 매일 산을 돌아다니며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관이 바로 메이닌 마운틴의 팀장인 알렉산더 프라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들인 라이언은 그런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했다.

“아빠! 오늘도 사람 구했어?”

슈퍼맨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빠인 렉스였다.

“그럼~ 오늘도 멋지게 산불을 막아서 이렇게 돌아왔지.”

“우와, 진짜? 아빠가 산불 막았어?”

“당연하지. 우리 메이닌 마운틴이 아니면 못 막을 정도로 큰 산불이었어. 아빠가 완전히 진압하고 왔어.”

활짝 웃으며 자랑하는 모습처럼 그 어떤 거대한 산불도 출동만 하면 제압하고 돌아오는 아빠는 라이언에게 영웅이었고, 그 때문에 라이언의 꿈은 어릴 적부터 아빠와 같은 소방관이 되는 거였다.

“엄마! 나도 핫샷 될래!”

“핫샷? 그거 엄청 힘든데?”

“그래도 될래. 나도 아빠처럼 사람들 많이많이 구해 줄 거야. 그래서 사람들한테 고맙다는 말 들을래.”

그 어떤 산불이라도 훌륭히 막아 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렉스의 모습은 어린 라이언의 눈에 슈퍼맨과 같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콰콰콰쾅!

라이언이 열 살이 되던 해 가을에, 콜로라도 서부 전역에 수 시간 동안 번개가 내리치는 일이 발생했다.

화르르르르르!

그 번개로 인해 콜로라도의 벨로우 산기슭에서 큰 산불이 발생했고, 그에 서부지역의 모든 삼림소방대에는 비상이 걸렸다.

“제길, 비상이야! 벨로우 산의 불길이 사우스 캐넌 쪽으로 번졌대.”

“뭐? 사우스 캐넌은 협곡 때문에 번지는 경로가 아니었잖아.”

“불씨가 튄 모양이야. 사우스 캐넌은 물론이고, 그 위쪽의 백스터 피크로도 불길이 번졌대. 로키산맥 전체로 빠르게 번지고 있어!”

그들이 살고 있는 로키산맥 전체가 불길에 휩싸일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 긴급한 상황에 콜로라도의 모든 삼림소방관들에게 집결명령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 콜로라도의 전 대원들에게 알린다, 등급을 막론하고 모든 크루는 산불이 일어난 벨로우 산으로 집결해 방화선을 만든다. 다시 한번 알린다. 콜로라도의 전 대원들은…….

등급에 상관없이 삼림소방대에 적을 두고 있는 소방관이라면 모두 방화선을 만들기 위해 현장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며, 그에 렉스가 속한 메이닌 마운틴 역시 길을 떠나게 됐다.

“리나, 라이언. 다녀올게.”

“아빠, 안 가면 안 돼?”

“왜 그래, 아들? 언제나처럼 금방 다녀올 거야. 아빠 못 믿어?”

“하지만…… 뉴스에서 그랬어. 산맥 전체를 삼킬지 모를 정도로 큰불이라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안 가면 안 돼? 나 아빠가 다치는 거 싫단 말이야! 흐윽.”

라이언의 눈물 섞인 고함처럼, 천하의 렉스조차 다치는 걸 감수해야 할 정도로 큰불을 막기 위해.

하지만 그 말에 렉스는 웃음을 지었다.

“아들, 이거 실망인데? 아빠가 이 정도 산불로 다칠 거 같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으로 라이언의 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었다.

“아빠는 안 다쳐. 아빠가 뭐라고 했지?”

“슈퍼맨…….”

“그래, 아빠는 슈퍼맨이잖아. 저런 산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빠가 약속할게. 아빠는 하나도 안 다치고 무사히 돌아올 거야. 그래서 우리 라이언과 엄마를 언제나처럼 지켜 줄 거야. 알았지?”

아들인 라이언과 눈을 맞추며 언제나 라이언과 엄마를 지켜 줄 거라고 환하게 웃었고, 그렇게 렉스는 집결명령이 떨어진 벨로우 산으로 떠났다.

“아빠, 꼭 약속 지켜야 해.”

“응! 금방 돌아올게! 그때까지 엄마 잘 지켜야 해. 라이언!”

걱정하는 라이언에게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며, 로키산맥을 위협하는 불길을 잡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렉스는 돌아오지 못했다.

- 속보입니다. 로키산맥을 위협하는 불길이 완전히 제압됐습니다.

산불은 꺼졌지만, 그 산불을 끈 렉스는 돌아오지 못했다.

“리나…… 미안해. 렉스가 돌아오지 못했어…….”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와야 할 렉스가 아닌, 다른 동료 소방관이 렉스가 사용하던 눌어붙은 헬멧을 들고 와 그 부고를 전했으며, 그에 리나와 라이언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흐윽. 렉스.”

“아니야. 그거 아빠 거 아니야. 아빠는 안 다치고 온다고 했단 말이야. 으아아앙.”

다치지 않고 돌아온다는 약속과 달리, 싸늘한 주검이 돼서 돌아온 렉스의 모습에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모자를 더 충격에 빠트리는 소식이 있었다.

“렉스가 불길을 피해 도망을 쳤다고요…….”

동료가 전해 준 렉스의 사망 사유였다.

“그래. 이유는 모르겠지만 렉스가 명령이 떨어진 위치와 다른 곳으로 이동했어. 본부에서는 렉스가 갑작스런 불길에 겁먹어서 잘못된 위치로 대피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추측이긴 하지만, 렉스가 불길을 진압 도중 겁먹고 도망을 치다 사망했다고 말했다.

“말도 안 돼요. 렉스가 그럴 리가…….”

그에 아내인 리나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정황이 그래. 렉스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명령이 떨어진 위치와 완전히 반대편이야. 명령을 무시한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

대원이 전해 주는 정황상 렉스의 도주는 명확했고, 그 때문에 모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이가…….”

“아니야. 아빠가 도망쳤을 리 없어. 아빠가 그럴 리 없다고요!”

언제나 마을의 자랑으로 산불을 진압하던 렉스가 불길을 피해 도망을 쳤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다.

“증거는 없지만 도망친 게 분명해요. 아니면 겁에 질려서 방향을 착각했던가요. 시신이 발견된 위치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마지막 조사를 위해 나온 현장 조사관이, 렉스가 도망은 안 쳤더라도 겁에 질렸다는 건 확실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그럼…….”

“네. 순직으로는 인정되겠지만, 이 행동은 기록으로 남을 겁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니까요.”

한마디로 한 팀을 맡아 작전을 수행하는 팀장에게는 말 그대로 최고의 불명예나 다름없는 조사 결과가 나온 거였으며, 그에 렉스는 한순간 마을의 자랑에서 원망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메이닌 마운틴 총 5명 사망>

렉스가 이끌던 팀원들의 전체 사망이라는 결과 때문이었다.

“내 아들…… 내 아들 돌려줘.”

“크루엘…… 크루엘…… 흐윽.”

“엄마, 아빠 왜 안 와? 아빠 보고 싶어. 히잉.”

렉스의 위치가 대원들을 이끄는 팀장의 위치다 보니, 그가 지휘하던 대원들 역시 같이 사망한 상태였으니까.

그 때문에 그날부터 리나와 라이언은 마을 사람들의 눈총에 시달려야 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쟤랑 놀지 마.”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아직도 마을에 붙어 있는 거야?”

겉으로 말은 안 해도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원망에 오랜 시간 고통받았고, 그 이후 라이언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다.

아니, 미워했다.

“흐윽. 오빠. 엄마 죽은 거야?”

“울지 마. 메리.”

“흐아아앙. 엄마 어디 갔냐고. 나 엄마 보고 싶다고.”

“이렇게 울면 엄마가 슬퍼할 거야. 그러니까 울면 안 돼.”

곁에서 자신과 엄마를 지켜 주기는커녕, 사랑하던 엄마마저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언은 아빠를 미워했다.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죠? 사실 저 사진도 엄마 유언이 아니었으면 바로 빼 버렸을 거예요. 그렇게 고생하다 가셨으면서도 저 사진이 그렇게 좋다며 꼭 걸어 놨으면 좋겠다고 말했거든요.”

한편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눈앞에 놓인 맥주를 비웠으며, 그에 이성하는 아무 말을 못 했다.

[으허허허헝. 내 잘못이야…… 미안해, 리나. 내가 그때 어떻게든 끝내고 돌아왔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미안해. 흐으윽.]

귓가를 하염없이 울리는 렉스의 슬픔에 찬 목소리에.

“하…….”

답답한 감정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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