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09화>
209화. 약속 (2)
“도, 돌아가셨다고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남성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마는 10년 전에 돌아가셨어. 안타깝게도 암이었지.”
이미 10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상황이라고 말했고, 그런 남성의 말에 렉스가 멍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리, 리나가 떠났을 줄이야…….]
자신이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렉스…….’
[좀 더 일찍 올걸 그랬어…… 리나가 암으로 죽다니…….]
행복하게 잘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아내가 이미 목숨을 달리했다는 말에,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10년 전에 돌아가셨다잖아요. 그런데 렉스가 어떻게 와요.’
렉스의 아내가 사망한 시기는 이성하가 렉스를 알기도 더 전의 일이었다.
[하, 하지만…….]
‘자책하지 마요. 알았어도 올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렉스가 장갑에 묶여 그저 존재만 하던 시기에 사망했기에, 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아내분도 이해하실 거예요. 자책하지 마요, 렉스.’
그 때문에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도 이해해 줄 거라며 렉스를 향해 따뜻한 위로를 건넸고.
[……그럴까?]
그 말에 우울한 목소리로 되묻는 렉스의 말에 힘차게 말했다.
‘그럼요. 그러니 쭉 있었겠죠. 집이 그대로 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우리도 그랬거든요. 항상 아빠를 그리워했으니까.’
자신도 직접 겪어 봤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지금은 화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했지만, 그 전까지는 오래도록 아빠와 함께한 추억이 있는 집에 계속 거주해 왔다.
집 곳곳에 아빠의 사진을 걸어 둔 것처럼 언제나 가족으로서 함께 하기 위함이었고, 그건 렉스의 집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쭉 이곳에…….]
렉스의 말처럼 그가 죽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이사를 가지 않은 집만 봐도 알 수 있었으며, 남성의 뒤로 보이는 사진이 그걸 증명했다.
‘저게 렉스예요? 아들분이 많이 닮았네요.’
남성의 뒤로 하나의 가족사진이 크게 보였다.
“흠…….”
자신들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남성과 닮은 한 남성의 얼굴이.
씨익.
크게 웃는 모습으로 집 안 거실 벽에 걸려 있었고, 그 옆으로 아이 하나를 품에 안고 활짝 웃는 여성이 있었다.
[그런가…….]
‘네. 우리 가족이랑 같아요. 다들 렉스를 그리워하네요.’
이성하의 집이 아빠인 이성훈을 그리기 위해 가족사진을 벽에 걸어 둔 것처럼, 렉스의 집 역시 그를 그리기 위해 거실 벽에 가족사진을 걸어 둔 것이다.
그 때문에 렉스는 앞의 남성을 보며 감격한 목소리를 흘렸다.
[많이 자랐구나, 라이언.]
처음으로 보는 장성한 아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놀라서 잠깐 잊고 있었지만.
“일단 들어오시죠. 어머니 손님이라고 하시니 그냥 보내기는 좀 그러네요.”
놀랍도록 장성한 아들이 이성하를 향해 집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하고 있었고, 그렇게 들어간 집 안에서 렉스는 또 한 번 놀랐다.
“오빠 누구야?”
아들인 라이언을 향해 오빠라고 부르는 한 여성의 모습 때문이었다.
“엄마 손님.”
“엄마?”
“어. 아버지 인연 때문에 찾아왔다는데 그냥 돌려보내기는 뭐 해서.”
“에이, 그럼 당연히 그냥 보내면 안 되지. 이쪽으로 앉으세요. 커피가 좋으세요? 아니면 오렌지 주스?”
무심한 라이언의 말에 바로 힐난하며 이성하를 향해 환하게 웃는 여성이었으며, 놀랍게도 그 여성의 얼굴은 가족사진에 있는 렉스의 아내와 많이 닮아 있었다.
‘렉스, 딸도 있었어요?’
이성하가 딸이라고 말할 정도로 아내인 리나와 닮은 여성이었다.
[서, 설마…….]
그 때문에 렉스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여성의 주위를 맴돌았고, 이어서 듣게 된 여성의 대답에 당황한 목소리를 흘렸다.
“혹시 두 분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남매예요.”
“남매요?”
“네. 오빠가 좀 삭아서 딸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긴 해요.”
[맙소사…….]
혹시나 했는데 남매가 맞았다.
“미쳤냐?”
“왜? 틀린 말 아니잖아. 내 친구들이 오빠 처음 보고 뭐라고 한 지 잊었어?”
“그만해라.”
“노안의 암살…….”
“아, 진짜!!”
게다가 서로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면 꽤 친한 남매 사이로 보였으며, 그 때문에 렉스는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보기엔 이래 보여도 남매 맞아요. 라이언 프라이. 메리 프라이. 열한 살 차이죠.”
[흐윽.]
‘울지 마요.’
[딸이 있었어. 나한테 딸이 있었다고…… 흐윽.]
생각지도 못한 딸의 등장에 새삼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이다.
그 때문에 렉스는 세상에 없는 아내가 너무 보고 싶었다.
[미안해, 리나…… 내가 너무 미안해…… 흐윽.]
자신 없이 혼자 딸을 키운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혼자서 애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자신이 맥없이 세상을 떠나 힘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들과 딸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 준 아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랬기에 렉스는 한참을 딸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를 닮아서 예쁘게 자랐어.]
만질 수는 없지만, 처음으로 보게 된 딸이 그렇게나 예뻤는지 그 주위를 맴돌았다.
[남자 친구는 있니? 학교는 어디 다니니? 아니면 직장을 다니나?]
딸에 대해 궁금한 게 그렇게 많았는지, 그 주위를 계속 맴돌며 한참을 듣지도 못할 질문을 던졌고, 그에 이성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라이언과 메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제 아버지를 대신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아버지끼리 친한 친구 사이였다는 말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뵀는데, 제가 너무 늦은 거 같습니다.”
두 사람과 친분을 쌓기 위해서였다.
“아닙니다. 근데 아버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외국에 친구분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서요.”
“저도 프라이 씨를 뵌 적은 없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콜로라도에 잠깐 여행을 가셨었는데, 그때 큰 신세를 졌다고 종종 이야기만 들었어요.”
“여행이요?”
“네, 차 사고가 나서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프라이 씨가 도와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일로 서로 친해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님이신 미세스 프라이도 함께요.”
완전히 거짓이지만, 두 사람과 친분을 쌓기 위해 사전에 렉스와 꾸며낸 이야기를 풀어 놨다.
“아, 그래서 엄마한테 인사하러 온 거구나.”
“네. 이곳 콜로라도에 계실 때 친구처럼 지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찾아왔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예전 프라이 씨가 돌아가셨을 때 못 가셔서 너무 후회하셨다고 저에게 자주 이야기하셨거든요. 미국에 갈 일 있으면 꼭 한번 들러서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라고요.”
아버지인 이성훈을 대신해 이 집에 찾아오게 된 경위를 두 사람에게 설명했으며, 그에 두 사람은 납득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종종 찾아오는 분들이 계셨어요. 꽤 오래전 일이지만요.”
“맞아요.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아빠 친구분들은 꽤 많이 찾아오셨어요.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하면서요.”
렉스가 사망한 게 꽤 오래전의 일이긴 했지만, 이렇게 옛 동료의 집에 찾아와 안부를 전하는 일은 소방관의 가족들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두 사람은 이성하에게 남아 있던 약간의 경계심을 완전히 풀었다.
“많이 찾아오셨구나. 참, 우리 아버지도 소방관이세요.”
이성하의 아버지 역시 소방관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소방관이요?”
“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안 계세요. 제 아버지도 16년 전 현장에서 순직하셨거든요.”
그 역시 자신들의 아버지와 같이 현장에서 순직했다는 말에.
“이런…… 안타깝네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우리도 조의를 표할게요.”
남매 역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으니까.
게다가 이성하의 신분이 확실했던 것도 있었다.
“어? 그런데 혹시 TV 나오지 않았어요?”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동생인 메리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이성하를 가리켰다.
“TV? 갑자기 무슨 말이야?”
“나 이 사람 TV에서 봤어! 며칠 전 구조스포츠대회! 거기 대표로 나간 소방관 맞죠? 시카고의 영웅!”
이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방방 뛰며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이성하를 보며 고함을 질렀고.
“영웅까지는 아니지만 구조스포츠대회에 출전한 건 맞아요.”
“……진짜예요?”
“네…….”
그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정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남매는 바로 시끄러워졌다.
“그거 봐. 맞다니까!”
“미친! 진짜 시카고의 영웅이에요?”
콜로라도에서도 산간벽지에 가까운 곳이 그들이 사는 로메노였지만, 한 달 전 미국을 구한 시카고 영웅의 이야기는 이곳에서도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성하에 대한 두 사람의 호감도는 단번에 최고치를 찍었다.
“대박! 나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 주면 안 돼요?”
“악수 한번 해요. 기사 봤어요.”
소문으로만 듣던 시카고의 영웅을 실제로 봤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엠마! 우리 집에 누가 왔는지 알아? 그 시카고의 영웅이 왔어. 그 한국 소방관!”
동생인 메리는 사진을 찍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자랑했고,
“미스터 리.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나 해요.”
오빠인 라이언은 완전히 경계심을 지웠는지, 이성하에게 식사까지 청했다.
“식사요?”
“네, 곧 저녁 시간이잖아요.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식사나 해요. 괜찮으면 맥주도 함께 하고요.”
“저도 찬성! 같이 식사하고 가세요!”
부모님끼리의 인연도 있었지만, 눈앞의 남성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는 것에 남매 모두가 깊은 호감을 표한 것이다.
그리고 이성하는 그런 남매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하하하,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괜찮으시면 신세 좀 질게요.”
라이언의 말처럼 곧 식사 시간인 것도 맞았지만,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 렉스를 위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시간을 통해 한 가지를 더 알 수 있었다.
“라이언도 소방관이라고요?”
렉스의 아들인 라이언 역시 소방관이었다.
“네, 미스터 리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하지만, 삼림 소방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삼림 소방대요?”
“네, 8년 정도 됐습니다. 아직 타입 2에 해당하는 후발대지만 말이죠.”
그것도 8년 차에 속하는 베테랑 소방관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를 존경해서 소방관이 되셨군요. 저랑 같네요. 저도 아버지를 따라서 소방관이 됐거든요.”
그 역시 자신처럼 아버지를 존경해 소방관이 됐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라이언은 잠깐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멀리 이곳까지 방문한 미스터 리에게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전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아요.”
“오빠!”
“거짓말을 할 순 없잖아. 난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아. 미워하면 미워했지.”
지금까지 웃던 모습과 달리 인상을 찌푸리며 하는 말이었다.
[미, 미워한다고…….]
난데없는 라이언의 말에 렉스가 멍한 반응을 보였지만, 라이언의 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약속을 안 지켰거든요. 엄마가 돌아가신 것도 아버지 때문이고요.”
벽에 걸려 있는 렉스의 사진을 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