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07화>
207화. 미국의 영웅 (5)
이탈리아의 소방대는 그 어떤 나라의 소방대보다 국가적 성격이 강한 소방대였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 당시, 군부대와 함께 전장에 직접 투입될 정도로 국가에 소속된 경향이 강한 소방대였고 그 때문에 소방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소방관이 된 이후에도 강도 높은 훈련을 유지하기로 유명했다.
<5년 현장 소방 전문가 시스템>
약 1년여의 교육과 견습생 과정을 거쳐 소방관이 되는 건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지만, 진짜 소방관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실무에서 5년의 현장 경력을 갖춰야 한다는 이탈리아만의 실무 경력 시스템.
그리고 브루노는 그 5년의 기간을 누구보다 훌륭한 성적으로 이수한 소방관이었다.
“저 친구가 브루노지?”
“어, 5년 실무 경력 끝나자마자 바로 특수재해팀으로 배속받은 괴물.”
“경력 끝나자마자 바로 배속된 거면 진짜 괴물이네.”
“그럼 괴물이지. 거기 들어가려고 줄 서 있는 애들이 엄청 많잖아.”
경력 기간을 끝내자마자 이탈리아 소방대 최고의 조직이라 불리는 특수재해팀으로 배속된 인재가 그였으며, 그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 이탈리아에서는 나름 스타 소방관이라 불릴 만큼 인기가 있었다.
<올해의 이탈리아 최강 소방관은 특수재해팀의 브루노 베니니>
<브루노 베니니. 선박 유류 유출 사고를 막다.>
<특수재해팀의 역대 최연소 팀장. 브루노 베니니.>
여러 번 매스컴에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이탈리아의 재난들을 막아 낸 능력 있는 소방관이, 바로 이탈리아의 소방관 브루노 베니니였으니까.
그랬기에 브루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내가 밀리지?’
이탈리아의 최강소방관인 자신이 저 동양인 소방관보다 뒤로 밀리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처음의 달리기 부분이야 이성하가 자신보다 체구가 작아 늦을 수도 있지만.
- 미국의 리가 가장 먼저 첫 번째 가벽을 뛰어넘습니다!!
시작된 장애물 구간에서도 그런 이성하의 뒤를 바라보는 상황이었고.
쾅! 쾅! 쾅!
- 맙소사, 리가 해머치기를 단 세 번 만에 끝내고 넘어갑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힘을 쓰는 구간에서도 괴물 같은 속도로 미션을 마무리하는 것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이렇게 빨라!’
순발력만이 아니라 근력을 요구하는 해머구간에서도 괴물 같은 힘으로 앞서 나가는 이성하의 실력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를 아는 이들이라면 당연한 모습이었다.
“미친놈이 또 생태계 파괴하네.”
데일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더 세졌네. 저걸 어떻게 이겨.”
최영인 역시 당연하다는 듯 그 모습에 어깨를 으쓱했고, 관중석의 미국 시민들 역시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역시 리다!”
“가라! 시카고의 히어로!”
“그래, 이거지!”
마치 이 정도는 돼야 시카고의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는 말투였다.
“리! 리! 리! 리!”
“고! 고! 고! 고!”
자신들의 도시를 구한 이성하를 목 놓아 부르며 주먹을 치켜들었으며, 이성하 역시 그 함성을 듣고 있었다.
‘기분 좋네.’
전력을 다해 달리면서도 자신을 향한 함성에 씨익 웃음을 지었고.
파밧.
그 웃음만큼이나 힘차게 발에 힘을 줬다.
- 맙소사! 미국의 리가 사다리를 단번에 오르더니, 그대로 몸을 날려 3m짜리 가벽을 통과합니다!
- 지금 단 두 걸음 만에 나무로 만든 집을 바로 넘어갔어요! 엄청난 속도입니다!
흥분한 장내 진행자들의 목소리처럼, 두 번째로 등장한 3m짜리 가벽마저 단번에 사다리를 타고 뛰어넘는 엄청난 실력을 보여 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광경은 계속됐다.
달리기 – 가벽(1)
해머치기 – 가벽(2)
평균대 통과 – 가벽(3)
소화기 진화 – 가벽(4)
달리기 – 가벽(5)
이번에 새로 신설된 500m 철인 달리기는 앞서 진행한 달리기와 해머치기처럼 가벽을 넘기 전에 근력과 순발력을 테스트하는 미션들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렇게 남은 미션들 역시 이성하는 괴력을 발휘하며 놀라운 속도로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균형 확실히 잡아!]
‘네!’
두 개의 호스를 양손에 든 채,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떨어질 정도로 좁은 평균대 위를 단번에 건너갔다.
촤악!
그렇게 들고 간 호스를 바닥에 놓인 연결관에 결합하고는.
[빨리!]
‘갑니다!’
바로 등장한 4m가벽을 그 전 가벽을 넘을 때처럼 사다리를 통해 단번에 넘어갔고, 이어서 나타난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하는 미션도 완벽하게 수행했다.
- 대단합니다! 총 4군데의 진화 포인트를 단번에 잡아냈어요!
- 이제 마지막입니다! 10m짜리 로프를 타고 올라가 가벽 뒤에 있는 종을 치면 첫 번째 그룹의 승자는 리로 결정 납니다!
흥분한 장내 진행자들의 목소리처럼 어느덧 마지막 가벽을 앞에 둔 채, 마무리를 준비하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수들이 그 모습을 병풍처럼 구경만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으아아아아!”
이성하와 같은 그룹으로 함께 경기를 치르던 터키의 소방관이 고함을 지르며 4번째 가벽을 넘어왔다.
“허억. 허억.”
“끄으응!”
그 옆으로 다른 국가의 소방관들 역시 악에 받친 비명을 지르며 가벽을 넘어왔고, 그중에는 이탈리아의 대표 브루노도 있었다.
“끄아아아!!”
그 역시 괴성과 함께 4m짜리 가벽을 뛰듯이 넘어왔으며, 그 모습에 진행자들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 브루노가 막판 스퍼트를 합니다!
- 아, 이거 이러면 아직 모릅니다! 역전할 가능성이 있어요!
여전히 이성하가 선두를 달리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따라붙은 다른 선수들의 필사적인 모습을 보면 얼마든지 반전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진행자들의 생각처럼 브루노는 충분히 역전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놈, 지쳤구나.’
가장 먼저 마지막 가벽에 도착했음에도 아직 출발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이성하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성하가 바로 앞에 있는 로프만 잡고 올라가면 그대로 경기가 끝날 상황이지만.
“후우, 후우.”
이성하는 그게 무리라고 말하듯 크게 심호흡하며 몸을 들썩이고 있었고, 그 모습은 브루노가 가벽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 아! 브루노가 먼저 로프를 잡습니다!
진행자들의 고함처럼 브루노가 먼저 로프를 잡는데도 이성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 리는 여전히 호흡을 고르고 있네요.
- 네, 이로써 선두가 이탈리아의 브루노 소방관으로 바뀝니다! 브루노 빠르게 발로 로프를 감으며 올라갑니다.
그 로프를 잡고 브루노가 등반을 시작함에도 이성하는 출발을 하지 않았으며, 그에 브루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새끼, 역시 무리한 거였어. 그럼 그렇지. 그 속도는 말이 안 됐다고. 하하하.’
누가 봐도 페이스 분배에 실패해 한계에 이른 것 같은 이성하의 모습에, 승리는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페이스 분배에 실패한 게 아니었다.
[슬슬 해도 되지 않냐?]
‘네, 이제 가야죠.’
페이스 분배를 제대로 못 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른 것뿐이었다.
우두득. 우둑.
그랬기에 이제 준비가 됐다는 듯 팔을 크게 흔들며 로프를 잡는 이성하였고.
“으라차!!”
그렇게 로프를 잡고 오르는 이성하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로프를 오르기 위해 준비하던 다른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
“소, 손만을 이용해서 올라간다고?”
이성하가 그저 순수한 손의 힘만으로 로프 등반을 시도하고 있어서였다.
출렁출렁.
방금의 심호흡은 마치 이를 위한 잠깐의 휴식이었다는 듯 성큼성큼 로프를 잡아가며 올라가는 이성하의 모습에.
“하하하…….”
“참나, 진짜 괴물이었네.”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고, 관중들 역시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일제히 일어나 우레 같은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리! 리! 리! 리!”
“고! 고! 고! 고!”
지금까지 엄청난 속도로 경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 줬음에도, 여전히 괴물 같은 체력으로 다시 경기를 압도해 나가는 이성하의 모습에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른 것이다.
한창 로프를 잡아가던 브루노로서는 환장할 일이었다.
‘야이, 미친놈아!’
체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이성하가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로프를 오르고 있었다.
처억, 처억.
그것도 약이라도 먹었는지 손의 힘만으로 로프를 오르며 어느새 자신의 턱밑까지 올라온 상황이었고.
‘안 돼. 조금만 가면 돼…… 조금만 가면 내가 이겨!’
그 때문에 어떻게든 지금의 리드를 가져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봤지만.
“……!”
안타깝게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천천히 오세요.”
그런 브루노에게 이성하가 스치듯 지나가며 조용히 인사를 건넸으며, 그에 브루노는 손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마, 망할…….’
다 이겼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다시 이성하에게 선두를 내줬다는 충격에.
촤아아악.
비참하게 밑으로 떨어졌으니까.
“브루노, 괜찮나?”
“어디 다친 데 없나? 다리 안 다쳤어?”
그런 브루노의 모습에 대회의 진행요원들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달려왔지만, 브루노는 그게 더 싫었다.
딸랑딸랑.
머리 위로 이성하가 울린 걸로 짐작되는 종소리가 들려서였다.
- A그룹 1등으로 미국의 성하 리가 우승선을 끊습니다. 기록은 5분 22초. 엄청난 기록입니다!
그런 종소리와 함께 흥분한 장내 진행자의 음성까지 귓가를 울렸고, 그에 브루노는 더 이상 이성하의 앞에서 깐죽댈 수 없었다.
‘망할…… 개망신이네…….’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모습과 1등으로 들어가 주먹을 치켜드는 이성하의 모습이 너무 비교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참함은 나머지 그룹의 경기가 다 끝난 뒤에는 더 그랬다.
1등 – 리 (05 : 22 16)
2등 – 프란츠 (05 : 42 : 31)
3등 – 크리스 (05 : 43 : 52)
이성하의 기록이 500m 철인 달리기의 1등 기록이었다.
- 1등은 미국의 리 소방관이 차지합니다! 2등인 독일의 프란츠 선수보다도 20초나 빠른 엄청난 기록입니다.
장내 진행자의 발표처럼 단순히 그룹에서의 1등만으로 끝난 게 아닌, 모든 참가자 중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세운 거였고, 그에 브루노는 새빨개진 얼굴로 빠르게 경기장 밖으로 사라졌다.
‘아우, 쪽팔려.’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우승은 자신의 거라고 큰소리를 쳤음에도, 완주도 못 한 자신의 실력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브루노의 모습을 보며 이성하는 활짝 웃음을 지었다.
동료들과 자신을 무시한 건방진 코쟁이 놈에게 본때를 보여 줬기 때문에?
아니었다.
‘흐흐흐, 이게 얼마야?’
자신의 손에 쥐어질 1등 우승 상금 때문이었다.
<철인 달리기 우승 - $ 20,000>
1등이 확정되며 받게 될 그 큰 금액에 활짝 웃은 거였고, 그렇게 이성하는 행복했다.
‘드디어 민정 씨랑 여행을.’
생각만 해도 즐거운 핑크빛 미래에, 살며시 므흣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