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06화 (206/235)

<강철 소방대 206화>

206화. 미국의 영웅 (4)

세계구조스포츠대회는 예전 이성하가 참가했던 서울소방기술경연대회와 같이 소방관들의 실력 향상과 사기 고취를 위해 진행되는 대회였다.

각국을 대표하는 소방관들이 한 곳에 모여 소방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포츠 경기를 통해, 국가 간의 소방 기술 교류와 관련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회.

하지만 그렇게 같은 목적을 가지고 열린 대회에도 불구하고, 두 대회가 대회를 엶으로써 얻고자 하는 의의는 달랐다.

소방 기술경연대회가 대회 이름에 경연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처럼 참가 소방관들끼리의 경쟁을 좀 더 우위에 두었다면, 구조스포츠대회는 스포츠란 단어가 의미하듯 서로 간의 화합에 더 큰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대회였다.

스포츠의 의의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며 건강한 경쟁을 하는 것이니만큼, 참가 소방관만이 아닌 구경하는 모든 이들이 즐기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대회였고, 그 때문에 구조스포츠대회는 다른 말로 소방 축제라 불렸다.

“아빠, 나 핫도그 사 줘!”

“맥주 두 팩 주세요.”

여느 축제가 그렇듯 경기장 바깥에는 각종 먹거리를 먹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번잡했으며.

“소화기 사용해 보실 분은 이쪽으로 오세요!”

“사다리차 탑승하실 분은 대기표 받아가 주세요!”

한쪽으로는 각종 소방장비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테스트 부스들이 설치돼 있었다.

“아빠, 이걸 뽑으면 되는 거야?”

“옳지. 그렇게 핀을 뽑고 당기는 거야. 얼른 당겨 봐.”

“되, 된다! 아빠 나 했어!”

소화기를 직접 뿌려 보고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처럼, 경기에 참가하는 소방관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계획된 게 이 구조스포츠대회.

그리고 그런 의의만큼이나 소방관들이 겨루게 될 경기 역시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게 구성돼 있었다.

“으라차!”

늘어선 소방관들이 힘찬 기합과 함께 들고 있던 사다리를 머리 위를 향해 수직으로 던졌는데, 그 사다리의 끝에는 어딘가에 걸 수 있도록 긴 걸쇠 하나가 튀어나와 있었다.

처억.

그 걸쇠가 바로 위에 있는 통로에 걸림과 동시에.

“빨리, 빨리!”

그렇게 고정된 사다리를, 던진 소방관이 빠르게 타고 올라갔고.

“한 번 더!”

소방관들은 그런 행동을 반복하며 타이머 시계가 걸려 있는 4층까지 빠르게 올라갔다.

“으아아아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사다리를 이용해 얼마나 빨리 목표 층수까지 오르는지를 겨루는 스피드 경기였으며, 그런 볼거리가 많은 경기에 사람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삐빅.

“12초 35!”

“와아아아아!!”

“봤어? 자로 잰 것처럼 사다리 딱딱 던져 가면서 바로 타고 오르는 거?”

“진짜 빠르다. 어떻게 저렇게 올라가냐?”

“그레이트! 다람쥐보다 더 빨라! 완전 멋있어!!”

소방관들이 사다리를 공중으로 휙휙 던지며 마치 날아서 오르듯 빠른 속도로 스피드 경쟁을 벌이는 모습에 왠지 모를 시원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경기들 역시 이와 같이 스피드 경쟁을 위주로 리드미컬하게 구성돼 있었다.

<100m 장애물 달리기>

<2인 사다리 오르기>

<400m 장애물 릴레이>

<단체 8인 화재 진압>

<500m 철인 달리기>

제목만 본다면 올림픽에서 나올 법한 평범한 경기를 떠올릴 수 있지만.

“호스 잡아!!”

“불 제대로 꺼야지!!”

“아, 넘어졌어!”

불을 끄라며 고함을 지르는 관중들의 열띤 응원처럼, 중간중간 소방 기술을 응용하며 통과하는 재밌는 경기들이.

그리고 그중 이성하가 참가하는 종목은 500m 철인 달리기였다.

원래는 없던 종목이지만 이번 대회부터 새로 신설된 종목이었고, 그 내용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괴랄했다.

‘2m짜리 가벽이라. 시작부터 힘 빼고 들어가네.’

장애물의 시작이 자신의 키보다 높은 2m짜리 가벽이었다.

[2m는 쉽지. 그다음부터 점점 높아지는 가벽 4개가 문제지.]

그 뒤로도 혀를 차는 렉스의 말처럼 100m마다 높아지는 4개의 가벽이 있었고, 그 최종 높이는 이성하도 살짝 고민해야 할 정도로 높은 높이었다.

‘10m라…….’

멀리서 보는데도 까마득할 정도로 높은 10m의 가벽이 세워져 있었으며, 그 가벽 앞으로 로프가 세팅돼 있었다.

‘하…… 군대에서나 하던 걸 여기서 하네…….’

[한국은 군대에서 저런 걸 해?]

‘수색대 훈련을 받는 부대는 가끔 해요. 암벽등반 훈련 과정에서 간간이 하거든요.’

가끔 산악 훈련장에서나 보던 밧줄타기 설비가 경기장 트랙 위로 설치돼 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속으로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한쪽에 마련된 단상 위를 바라봤다.

‘하…… 무슨 변태 취미 있는 거 아니야? 이름처럼 진짜 철인 종목으로 만들어 놨네.’

이 종목을 만들자고 건의한 사람이 단상 위에서 연설을 하는 중이라서였다.

- 앞으로 누구나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미국! 저는 그런 미국을 만들 겁니다!

한창 대회가 진행 중인데도 뭐가 그리도 기쁜지 근처의 사람들을 향해 열띤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말할 거면 경호원이나 떼 놓고 오지.]

‘그러게 말이에요. 축제인데 좀 민폐 같아요. 대통령이 여길 왜 와요. 불편하게.’

이번 대회에 이성하의 참가를 강제로 진행했던 미국의 대통령이 경기장에 와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 불만을 전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 저기 제 친구가 저를 향해 웃고 있네요. 저의 절친한 친구 미스터 리입니다. 하하하.

순간 자신을 가리키며 크게 손을 흔드는 대통령의 모습에.

“영광입니다. 하하하.”

큰 소리로 화답하며 손을 흔들었고.

[와…… 너도 참 대단하다.]

그에 혀를 내두르는 렉스의 말에도 얼굴에 웃음을 유지했다.

‘제 월급 주는 사람이잖아요.’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저 대통령의 말 하나에 자신의 월급이 줄어날 수도 늘어날 수도 있었다.

[…….]

‘떠나기 전까진 잘 보여야죠. 내 물주인데.’

불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번에 훈장을 수여받으며 받은 공로금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씨익.

이런 가짜 웃음 정도는 얼마든지 지어 줄 용의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생각보다 대회의 상금이 컸다는 점도 그 웃음에 한몫했다.

‘3등 안에만 들어도 5천 달러라. 흐흐흐.’

최소 3등만 해도 한국 돈으로 600만 원이 넘는 거금을 받았다.

1등 - 2만 달러

2등 – 1만 달러

3등 – 5천 달러

대회장 한편에 걸린 현수막의 내용처럼 1등을 하게 되면 그 배가 넘는 상금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귀찮다고 생각하면서도 대회에서 빈손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었다.

‘민정 씨랑 이 돈으로 여행 가야지.’

LA카운티에서 생각보다 많은 월급을 받아 돈에 여유는 있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돈이라는 걸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승이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와, 근데 괴물들이 많네.]

렉스가 감탄한 것처럼 이번 대회에 참가한 소방관들은 자신이 봐도 괴물 같은 이들이 많았다.

“독일! 독일이 화재 진압 종목의 우승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거머쥡니다!!”

“이예에에에!!”

지금 막 8인 화재 진압 종목의 우승을 확정 지으며 포효하는 독일의 선수들이 그랬고, 맘에 안 들었지만 그 전에 열린 400m 장애물 릴레이의 우승을 따낸 이탈리아 팀도 그랬다.

“성하 리, 힘내요. 열심히 하자고요. 하하.”

언제 왔는지 옆에서 깐죽대는 저 브루노의 이탈리아 팀이 400m 릴레이에서 자신이 소속된 미국 팀을 따돌리고 우승을 거머쥐었으니까.

그리고 그 성적은 이탈리아 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증명했다.

‘데일이 있었는데도 졌단 말이지.’

자신보다는 못해도 체력만큼은 LA카운티에서 수위에 드는 데일이 있었음에도 이탈리아 팀이 우승해서였고.

“글랜 패브로! 미국의 글랜 패브로 선수가 100m 장애물 릴레이에서 가장 먼저 우승선을 끊습니다!”

미국 역시 버지니아의 소방관이 100m 장애물 릴레이에서 우승을 하긴 했지만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하하, 우리가 최고다!”

“400m 릴레이 우승이면 끝난 거지!”

“멋있다, 이탈리아! 늑대들이 최고다!!”

“오우!”

신나서 마구 소리치는 이탈리아 소방관들의 분위기가 증명하는 것처럼, 구조스포츠대회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종목이 그들이 우승한 400m 릴레이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진심으로 제대로 할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LA카운티를 위해서라도 확실히 해야지’

상금도 상금이지만 소속된 LA카운티의 자존심을 위해서였다.

“미스터 리, 힘내!”

“전부 박살 내 버려. 가자 리!”

저렇게 응원을 하는 동료 팀원들의 자존심을 위해 꼭 이번 종목의 우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하야, 힘내!”

“잘하자, 성하야!”

그런 미국 팀의 옆에서 말로는 힘내라고 하지만, 아무 종목에서도 수상을 하지 못해 살짝 쳐져 있는 한국 팀을 위해서도 더더욱 그랬다.

“빡세게 할게요!”

“파이팅!!”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 경기장에 오른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한국 소방관으로서 동료소방관들의 자존심을 지켜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은 이탈리아 팀의 대표로 출전하는 브루노로서는 우스운 광경이었다.

‘참나, 패배자 놈들끼리 뭐 하는 거야? 꼴사납게 이미지 관리라도 하는 거야?’

같은 나라라고 아무 기록도 못 낸 한국 팀과 고함을 이르는 이성하의 모습이 같잖아 보였다.

- 미국은 LA카운티의 이성하 소방관이 500m 철인 달리기의 선수로 출전합니다!

“와아아아아!”

“리! 리! 리!”

게다가 뭐 보여 준 게 있다고 경기장으로 오르는 이성하를 향해 열렬한 함성을 지르는 관중석의 분위기도 마음에 안 들었고, 그 때문에 막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옆으로 자리하는 이성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하세요. 너무 뒤떨어지면 비교됩니다. 하하.”

자신과 비교당하고 싶지 않으면 열심히 하라고.

그러고는 바로 관중석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브루노!!”

“이탈리아 파이팅!!”

“늑대들의 힘을 보여 줘라!!”

자신을 응원하는 이탈리아 관중들의 함성을 만끽하며 웃음을 지었으며.

“자, 모두 제자리에 서세요. 신호탄이 울려야만 출발이 가능하고 그전에 움직이면 다시 시작합니다!”

곧이어 들리는 심판의 지시에 자신의 트랙 위로 자세를 잡았다.

‘시작부터 치고 나간다. 시작부터 압도적인 속도로 1등 하는 거야.’

많은 이들에게 장담한 것처럼 압도적인 실력으로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 집중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시작된 경기의 그림은 자신의 생각과 달랐다.

타앙!

“하압!”

울리는 총소리에 누구보다 빠르게 발을 구르며 스타트를 끊은 브루노였지만, 그보다 더 빠른 사람이 있었다.

“……!”

한 사람이 바람처럼 자신의 옆을 스쳐 가며 총알처럼 튀어 나가고 있었다.

휘이이잉.

빠르게 출발한 자신보다 한발 더 앞서 나가며 등을 보이고 있었고, 그 등에 적힌 이름에 브루노의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리?’

자신이 무시했던 이성하가 시작부터 자신보다 앞서는 속도로 빠르게 달려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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