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05화>
205화. 미국의 영웅 (3)
어떤 이유로 이런 언쟁이 벌어졌는지는 지금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진짜!”
“눈 뜨고 말하라니까.”
흥분하는 최영인을 향해 이탈리아의 소방관이 계속 스스로의 눈을 가리키며 변죽을 울리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귀찮은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인종 차별이네요.’
자신이 가장 경멸하는 행위가 눈앞의 이탈리아 소방관들이 보이는 인종 차별이라서였다.
[이탈리아 애들이 좀 심하긴 하지.]
‘미국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 말에 렉스가 바로 이탈리아만의 문제라며 발을 빼는 듯 말했지만, 이성하 역시 LA에 와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접한 경험이 있을 만큼, 세계 곳곳에 종종 발생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저 인종 차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의 대처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만하지?”
잠깐 귀찮은 표정을 지은 이성하가 바로 최영인의 앞으로 막으며 이탈리아 소방관을 바라봤다.
“넌 뭐야?”
“나? 이쪽 동료. 그나저나 본부에서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을 보면 꽤 큰 문제가 발생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경기장 한편에 마련된 구조스포츠대회의 본부석을 가리키며 씨익 웃음을 지었고, 그에 이탈리아 소방관은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결국 아무 말을 못 했다.
“끄응…….”
이성하의 말처럼 그로 인해 벌어질 후폭풍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 좋게 가자고. 문제 만들면 너나 우리나 좋을 게 없거든. 물론 우리보다 네 쪽이 더 말이야.”
그런 이탈리아 소방관의 모습에 이성하가 바로 웃으며 말할 정도로, 지금의 상황이 본부 측에 알려지게 된다면 이탈리아로서는 전혀 득 볼 게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아니, 득 볼 게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대회 참가 권한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세계를 하나로!>
<건전한 스포츠 정신과 안전 정신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고생하는 소방관분들을 환영합니다!>
경기장 중앙에 크게 걸려 있는 현수막의 내용들처럼, 전 세계의 소방관들이 한 곳에 모여 화합을 목적으로 기술을 겨루는 게 이 구조스포츠 대회의 의의였으니까.
다행히 이탈리아 선수단 측도 머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세르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한국 팀에 사과하지 못해?”
한 이탈리아 소방관이 앞으로 나와 문제를 일으킨 소방관을 크게 윽박지르며 이성하를 향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우리 대원이 아직 어려서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빨리 사과드려, 세르조.”
“끄응…… 미안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이성하에게 사과를 함과 동시에, 바로 문제를 일으킨 대원의 팔을 잡아끌어 최영인에게 방금의 시비를 사과하게 만들었고.
“쩝…… 사과를 하시니 받긴 하겠습니다.”
그에 최영인이 마지못해 사과를 받으면서 상황이 마무리됐다.
[호, 영악한 놈이네.]
‘네, 한국식 사과 방법을 아네요. 먼저 고개를 숙여서 깔끔하게 정리했어요.’
렉스의 감탄처럼 영악하게 먼저 고개를 숙여서 한국 팀이 사과를 받게 해,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단순한 언쟁처럼 보일 수 있도록 상황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나선 이탈리아의 소방관은 상황을 정리하자마자 바로 이성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탈리아 로마 본부에 근무하는 브루노 베니니입니다. LA카운티의 성하 리 맞으시죠?”
오래전부터 지금의 만남을 고대한 것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하는 말이었다.
“아,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절 아시나요?”
“그럼요. 시카고를 구한 영웅인데 당연히 알아야죠. 성하 리의 이야기는 우리 이탈리아에서도 꽤 화제였거든요. 하하하.”
마치 지금의 순간을 위해 나서기라도 했다는 듯, 이성하가 내민 손을 감격한 얼굴로 흔들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 모습에 왠지 모를 껄끄러움을 느꼈다.
“아닙니다. 약간은 과장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과장인 건 압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대단한 일을 한 건 맞지 않습니까.”
칭찬을 하는 것 같지만, 은근슬쩍 이성하의 활약을 까 내리는 듯한 말투 때문이었다.
“그런가요.”
“네, 저도 몇 번 그런 재난에서 사람들을 구한 경험이 있다 보니, 성하 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잘 알거든요. 하하하.”
상대해 주고 싶지 않아 적당히 넘기려 해도, 끝까지 이야기를 이어 가며 마치 이성하를 아래로 보듯 웃음을 지었고, 그에 이성하는 묘한 향수를 느꼈다.
‘그 영철이란 사람 같네.’
마치 예전 위 워 솔져스로 인연을 맺었던 김영철을 보는 거 같았다.
[그러게. 이상하게 기분 나쁘네.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렉스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마음에 안 드는 듯 불쾌한 목소리를 토했고, 놀랍게도 그 둘의 느낌은 정확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성하 리. 정말 만나기를 기대했어요.”
환하게 웃으며 이성하의 손을 맞잡았던 이탈리아의 브루노는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이성하를 폄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키도 그렇게 큰 편은 아니고, 근육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야.’
맞잡은 손을 흔들며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는 이성하의 근력과 체구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고, 그렇게 해서 얻은 확신은 자신보다는 아래라는 거였다.
‘쳇, 이게 무슨 시카고의 영웅이야? 역시 소문이 좀 과장된 게 맞네.’
약간의 실력은 있을지 몰라도, 현장을 지휘하며 테러범들로부터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는 소문에는 조금 과장이 있다고.
그랬기에 브루노는 눈앞의 이성하 때문에 속이 배배 꼬인 상태였다.
‘왜 이딴 새끼가 나보다 유명한 거야. 짜증 나게.’
자신 역시 그만한 재난을 몇 차례나 막아 낸 경력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표창을 받았는데 말이야.’
시어스 타워의 폭탄 테러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화재나 지진 같은 재난에서 많은 인명을 구조한 공로로 표창 정도야 널리게 받은 게 자신이었고, 그러다 보니 이번 시어스 타워의 재난으로 운 좋게 눈앞의 검은 머리 소방관이 유명세를 탄 게 너무 맘에 안 들었다.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소방관은 나지. 이런 냄새나는 동양인 말고. 쳇.’
외모나 체격 어디를 봐도 자신보다 못 미치는 이 동양인 소방관이 사람들에게 영웅이라고 칭송받는 상황이 너무 눈꼴 시려웠던 것이다.
당연히 이성하로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미친놈인가?’
오랜만에 동료들과 화포를 풀기 위해 왔는데, 웬 느끼하게 생긴 외국인 소방관이 계속 자신을 향해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성하 리라도 대회에서 봐드릴 순 없습니다.”
“……네?”
“성하 리가 맘에 들긴 하지만, 일부러 져 줄 순 없다는 거죠. 하하하.”
이제는 아예 작정했는지 완전히 자신을 아래로 보며 대회의 우승까지 자신하고 있었고, 그런 브루노의 터질 듯한 자신감이 이성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자신을 정말 한 수 아래로 보는 듯한 브루노의 말투 때문이었다.
처음 자신을 향해 대단하다고 칭찬한 걸 생각하면 수차례나 고층 타워를 오르내리며 헬기까지 타고 진입해 폭탄을 막아 낸 상황을 모두 알고 있다는 말인데.
[혹시 이탈리아에는 네가 구경만 하고, 미국 소방관들이 재난을 막은 걸로 소문난 거 아냐?]
‘에이…… 생방송으로 훈장까지 받았는데 설마요.’
[그럼 저놈 왜 저러는 거야?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널 무시해?]
렉스의 말처럼 그렇게 모든 상황을 아는데도 저런 자신감을 보일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뒤이어 들리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제가 바로 이탈리아의 최강소방관 출신이거든요.”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이탈리아의 최강소방관이라고 말하는 브루노의 모습 때문이었다.
“성하 리는 제가 알기로 지방 대회에서 우승은 했지만, 본 대회에서는 아무 기록이 없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이번에 입상을 못 한다고 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말았으면 해요.”
난데없이 이성하가 서울 소방대회에서 최강소방관을 수상한 걸 이야기하며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고, 그에 이성하는 브루노의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는 본선에서 최강소방관을 달았고, 나는 떨어졌다?’
[그래서 얕보는 거구나? 소문과 다르게 체력은 별거 없을 거라고.]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각 국가마다 동일하게 벌어지는 소방 본선 대회에서 입상을 하지 못한 자신의 기록을 확인하고 저렇게 낙승의 자신감을 보였다는 것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브루노의 착각이었다.
“참나. 성하는 최강소방관…….”
그 말에 옆에서 듣던 최영인이 제대로 알려 주려는지 입을 열었지만.
“형, 아니에요. 이야기하지 마세요.”
이성하는 그런 최성인에게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지었다.
“대단하네요. 이탈리아의 최강소방관이셨군요.”
“하하하, 그런가요.”
“네, 저도 지역 최강소방관 출신이다 보니, 그게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고 있거든요. 정말 대단합니다.”
누가 봐도 선망하는 표정으로 브루노를 향해 대단하다며 그 장단을 맞춰 줬고, 그 칭찬에 브루노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리는 건 당연했다.
“이거 자랑하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충분히 자랑할 만합니다. 멋있네요.”
“하하하. 고마워요. 성하 리도 언젠가 꼭 될 수 있을 거예요.”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인정받는 이성하가 자신을 대단하다고 칭송하는 것에, 마치 자신 역시 영웅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브로노는 이성하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하하하. 마음에 드네요. 우리 같이 좋은 성적 내 봅시다. 제가 응원하겠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아래로 생각하는 말투는 여전했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내미는 손이었다.
“브루노도요. 좋은 성적 기대하겠습니다.”
그 웃음에 이성하 역시 마저 웃으며 그 손을 잡았고, 그렇게 브루노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자신들의 막사로 돌아갔다.
“다들 봤어? 시카고의 영웅도 나를 인정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닙니까? 우리 대장이 어떤 사람인데?”
“맞습니다. 애가 대장을 알고 있는지 손을 잡는데 바싹 얼더라고요.”
“그렇지? 하하하.”
마치 주변을 향해 자신이 이성하보다 낫다는 걸 광고라도 하듯, 크게 웃고 떠드는 모습으로.
하지만 그 모습에 곁에 있던 최영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보들…… 성하는 부상 때문에 출전을 안 했던 건데…….”
사실을 잘못 알고 있는 이탈리아 소방관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출동 나갔다가 부상 입어서 포기한 거라고 바보들아. 어휴.”
그 역시 전남 지역의 최강소방관으로 본선 대회에 출전했던 만큼, 이성하가 어떤 이유로 본선 대회의 기록이 없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최영인은 저 멀리 걸어가는 브루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흐흐.”
이성하가 그 모습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기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환하게 웃는 브루노를 향해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