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04화 (204/235)

<강철 소방대 204화>

204화. 미국의 영웅 (2)

‘성조기라니…….’

백악관 출장을 마치고 LA카운티로 돌아와 다시 현장에 복귀할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성하, 이번 주부터는 수난구조팀에 합류해서 수상 훈련받아.”

“수난구조대요?”

“어. 바로 바다가 옆에 있는 곳이 우리 LA인데 수상 교육을 빼놓을 순 없잖아. 이제 기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슬슬 시작해야지.”

본부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이성하의 소속을 수난구조대로 변경해, 다음으로 받게 될 훈련 과정을 정해 주는 마크의 지시하에.

“미스터 리, 드라이 슈트는 처음 입어 보나?”

“네, 드라이 슈트는 처음입니다.”

“그래? 배울 맛이 있겠네. 우선 물속에서 장비 탈 부착 훈련부터 해 보자고.”

“물속에서 말입니까?”

“당연히 물속에서지. 우리가 활동하는 곳은 물속이잖아.”

“네, 알겠습니다!”

바로 수난구조대가 활동하는 LA시의 해상 센터로 소속을 옮겨, 그에 따른 수상 훈련을 교육받느라 한창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와중, 갑자기 본부로 귀소 명령이 떨어졌다.

“미스터 리, 내일부터 다시 본부로 출근하라는데?”

“본부요?”

“어, 가 보면 알아. 재밌는 거야.”

자신을 담당하는 수난구조대의 팀장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본부의 복귀 명령을 전해 줬다.

‘아직 훈련이 남았는데 다시 본부로? 도대체 무슨 일이지?’

예정된 훈련을 다 채우기도 전에 떨어진 복귀 명령서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본부의 명령서였기에.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본부로 출근하겠습니다.”

별다른 의견 없이 다시 본부로 출근을 결정했고, 그렇게 복귀한 본부에서 이성하를 맞이한 건 대장 모스가 아니었다.

“오~ 미스터 리, 어서 오게. 수상 훈련은 받을 만했나?”

그동안 얼굴만 몇 번 본 적 있는 본부의 부국장이 환한 얼굴로 이성하를 맞이했다.

“네. 잘 받고 왔습니다. 그런데 부국장님이 저를 왜…….”

“왜긴 왜겠나? 보고 싶어서 불렀지. 참 커피 마시나? 일단 이쪽으로 앉게.”

“아, 네…….”

마치 친아들을 맞이하듯 환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반기며 직접 커피까지 타 주는 모습이었지만, 이성하는 그 커피를 제대로 마실 수 없었다.

“혹시 구조스포츠 대회라고 아나?”

“구조스포츠요?”

“그래, 세계 소방관들의 축제. 그게 마침 이번에 시카고에서 열리거든.”

난데없이 구조스포츠 대회를 언급하며 종이 한 장을 내미는 부국장의 행동 때문이었다.

<세계소방구조스포츠대회 참가신청서>

“쿨럭.”

그 종이 겉면에 쓰인 불길한 문구에 이성하가 마시던 커피를 그대로 뱉어 냈고.

“어이쿠, 손 안 데었나?”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부국장이 바로 곁에 있는 티슈를 뽑아 들며 이성하를 걱정했지만, 이성하는 그 마음이 전혀 고맙지 않았다.

“설마 저보고 여기에 출전하라는 말씀입니까…….”

예전 은평소방서의 대표로 서울소방대회에 참가하게 됐던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라서였다.

“혹시 자네 손가락 아플까 봐 내가 다 써 왔어. 그러니 사인만 하면 돼. 알겠지?”

이름까지 다 적혀 있던 참가신청서를 내밀며 음흉한 미소를 짓던 유상명 과장의 그 얼굴이.

“하하하. 들켰나? 이거 자네 눈치가 빠르구만.”

지금 멋쩍게 웃음을 터트리는 부국장의 모습과 똑같았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그런 부국장의 전혀 따라 줄 마음이 없었다.

‘안 돼. 절대 싫어.’

훈련을 따라가기도 벅찬 상황에서, 스포츠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서울 소방대회를 준비할 때도 밤낮으로 출전 종목에 관한 훈련을 진행하느라 많은 시간을 쏟았던 걸 생각하면, 이 국제라는 단어가 붙은 스포츠대회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게 뻔했고, 그렇다면 절대 참가해서는 안 됐다.

“싫습니다. 아직 받을 훈련도 많은데, 거기까지 가서 고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 이곳에 교육을 받으러 왔지,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부국장님.”

어느덧 6개월이라는 연수 기간이 거의 다 지나가는 시점에서, 이런 대회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말에 부국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걱정 말아요. 미스터 리가 못 받은 훈련은 연수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다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네?”

“대통령께서 직접 지시한 사항입니다. 이걸 위해 한국에도 직접 부탁하셨죠. 우리 미국과 한국의 돈독한 관계를 위해 미스터 리가 우리 미국의 대표 중 한 명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걸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흐, 흔쾌히요?”

“네, 연식이 좀 되긴 했지만, 아직 훌륭히 사용이 가능한 피어스 차량 세 대를 한국에 앞으로의 우호증진을 위한 선물로 증정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은 당연히 허락했고요. 하하.”

이미 사전에 한국과 연락을 취해 결정된 사안이라는 말이었다.

이성하의 구조스포츠대회 참가. 그것도 성조기를 입고 대회에 참가하는 걸 양국의 우호증진을 위한 이벤트라는 말로 교묘히 엮어 진행했고, 그 선물의 증표가 한 대당 한화로 20~30억 정도 한다고 알려진 피어스 사의 펌프차 증여였다.

[돈에 팔린 거네…….]

‘끄응…….’

렉스의 말처럼 이성하의 대회 참가를 조건으로 두 국가가 돈으로 협의한 상황이었으며, 그 마침표를 부국장이 찍어 줬다.

“그러니까 그 아래 사인하면 돼요. 만약 사인 안 하면 앞으로의 훈련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에 맡길게요.”

씨익.

네가 원하는 것처럼 제대로 훈련을 받고 싶다면 눈앞의 참가신청서에 사인하라고.

* * *

그 때문에 이성하가 지금 경기장에 서 있는 거였다.

“야, 좀 진심으로 웃어라.”

“조용히 해라…….”

귓가로 속삭이는 데일의 비웃음을 살기 어린 웃음으로 대답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 가슴에는 미국 대표로 참석했다는 걸 알려 주는 성조기가 걸려 있었다.

“와아아아아!!”

“미국! 미국!”

“미스터 리! 파이팅!!”

피어스 차량 세 대와 앞으로 받게 될 훈련 교육을 담보로 잡고, 미국의 국가대표 소방관으로 세계구조스포츠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악에 받쳐 있는 상태였다.

‘돌아가면 가만 안 둘 거야.’

한국에 있는 선배들이 이 협의를 몰랐을 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미국 소방관 파이팅!

- 피어스 잘 쓰마. 한 대는 은평소방서로 준단다.

- 가서 망신시키지 말고 잘하고 ㅋㅋㅋㅋ

참가를 결정한 저녁, 웃음 섞인 선배들의 메시지가 핸드폰으로 물밀 듯이 도착했기에.

빠드득.

이 협의를 알고서도 묵인한 게 분명한 선배들의 배신감에, 치가 떨리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소한 광경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와아아아아!”

수만 명의 관중들이 자신이 포함된 미국 대표팀을 향해 열렬히 자신들의 국기를 흔들고 있었다.

“이탈리아!!”

“독일! 독일!”

“프랑스가 우승한다!!”

그 외에도 소수지만 자신들의 국기를 흔들며 자국의 소방관들을 응원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그치?]

‘네, 세계 소방인들의 축제라고 불릴 행사답네요.’

저도 모르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그러다 보게 된 광경에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미스터 리!!”

관중석에서 자신을 향해 신나게 손을 흔들며 밝게 웃는 꼬마 숙녀 때문이었다.

“가 봐.”

“가도 돼요?”

“그럼~ 축제잖아. 시민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도 우리 소방관이 할 일이야. 그러니까 얼른 가 봐.”

다행히 미국 소방관들의 단장 자격으로 자리한 마크가 슬쩍 웃으며 허락해 준 덕분에 잠시 자리를 이탈해 관중석으로 다가갈 수 있었고, 그렇게 만나서 듣게 된 귀여운 꼬마 숙녀의 말에 이성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랑 같이 사진 찍어 주면 안 돼요?”

“사진?”

“네, 나 나중에 크면 미스터 리랑 결혼할 거예요. 도시를 구한 영웅!”

“하하하. 생각해 볼게.”

“진짜예요! 꼭 생각해 봐요. 헤헤.”

자신이 뭐라고 나중에 크면 꼭 결혼하겠다며 활짝 웃는 아이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선배들의 배신에 대한 처우를 조금 낮추기로 했다.

‘죽이는 건 그렇고 괴롭히는 거 정도로 해야겠어요.’

[그래. 조금은 봐줘라. 한 번 정도는 이런 대회에 참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네, 그런 거 같아요. 보기 좋네요. 소방관들이 일반 시민들과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게.’

렉스의 말처럼 한국에 있었다면 보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과 소방관들이 어울리는 대회의 광경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하나 더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게 있었다.

- 다음은 한국의 소방관들입니다. 모두 성대한 박수 드립니다.

아나운서의 함성에 맞춰 경기장의 트랙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한국의 소방관들 때문이었다.

“와아아아아!”

“멋있다, 한국!”

“한국, 힘내라!!”

관중들의 열렬한 함성에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단 한국의 소방관들이 손을 흔들며 경기장의 트랙 위를 걷기 시작했고, 그들 중에는 이성하가 아는 인물들이 있었다.

‘양 팀장님이네요.’

[국제구조대 때 그놈들도 있는데?]

‘네, 영인이 형이랑 근석이 형도 있어요. 간만에 열린 국제대회라서 각 지역 최강소방관들 위주로 선발됐다고 들었거든요.’

양유철과 함께 네팔에 국제구조대로 같이 파견됐던 각 지역의 최강소방관들이 이번 대회의 한국 대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그런 동료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환영했다.

“한국 파이팅!!”

짝짝짝짝!

뒤돌아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한국 팀을 향해 크게 응원하며 박수를 쳤고.

“이상입니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각 국가의 선수 분들은 배정된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시면 됩니다.”

잠시 후, 이성하는 개회식이 끝나자마자 잠시 팀을 이탈했다.

“마크, 데일, 저 친구들에게 인사 좀 하고 올게요.”

“그래, 가서 좀 놀다 와.”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다들 몸이 엄청 달라졌어요.’

[당연하지. 다들 못 본 지 거의 반년이 다 됐는데, 그동안 그냥 있었을까?]

‘하하하. 하긴, 그렇죠?’

렉스의 말처럼 이미 한국을 떠난 지 반년이 다 된 상황이었기에, 빨리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한국 막사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너 뭐라고 했냐?”

잔뜩 열이 받은 한 남성의 목소리가 막사 밖으로 고함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 말 안 했는데?”

“이 새끼야. 네가 방금 냄새난다고 욕했잖아!”

“내가 언제?”

“이 새끼가 진짜.”

그에 당황해 막사 안으로 들어가 보니 평소 성질이 괄괄한 최영인이 한 외국인과 언성을 높이고 있었고, 그 외국인의 가슴에는 이탈리아의 국기가 달려 있었다.

“눈 뜨고 말해. 안 했다니까 자꾸 그러네.”

이탈리아 국적의 소방관이 얄미운 미소로 스스로의 눈을 가리키며 최영인과 언쟁을 벌이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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