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98화 (198/235)

<강철 소방대 198화>

198화. 어떤 이유라도 (9)

“제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만 해도 엿 같은 상황에 이성하가 분노를 터트렸지만, 건물 상층부에 폭탄이 있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네가 그 미스터 리인가.”

웃음을 터트렸던 테러범이 그런 이성하를 바라보며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날 알아?”

“당연히 알지. 네가 있는 LA카운티는 우리가 이번 작전을 시행하면서 가장 주의 깊게 살펴본 기관 중 하나야. 그리고 이번 테러 목표 중 하나기도 하고 말이야.”

“테러 목표? 지금 그 말은 우리를 일부러 기다렸다는 거야?”

그 말에 이성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지만, 테러범은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폭탄 두 방으로 시어스 타워가 무너지길 바란다면 사치 아니겠나? 그건 이미 월드 트레이드 센터 때 경험한 사실이야. 그걸로 무너져서도 안 되고 말이야.”

테러범은 광기 어린 표정으로 마치 게임을 하듯 테러에 대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걸로 무너지면 안 된다고?”

“당연하지. 시어스 타워가 무너지는 순간은 서방 세계의 모든 시선이 집중될 때야. 너희 자본주의자들의 자부심인 특수재난구조대가 모두 건물에 올라가고, 그 순간 화려한 폭죽이 피어오른다. 이게 우리의 계획이거든. 그리고 그건 아무도 막을 수 없어. 이번 작전을 위해 우리 형제 스무 명이 목숨을 버린 작전이야. 너희는 지금까지 해 온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 우리 신의 이름으로 말이야. 하하핫.”

건물을 무너트리는 것만이 아닌, 미 정부가 인정한 두 개의 특수재난구조대 역시 그 목표였다고 말했으며, 그 말에 옆에 있던 FBI의 남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이놈들 사무실에서 그동안 미국 전역에 위치한 특수재난구조대를 감시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전부요?”

“네, 일단 드러난 가담자만 50명에 가깝습니다. 지난 911테러 때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사전답사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계획한 테러라는 문건 역시 발견됐고, 그 폭탄의 존재 역시 사실로 드러난 상황입니다.”

단순히 즉흥적으로 시행된 테러가 아닌, 철저한 사전답사를 통해 진행된 테러가 이번 시어스 타워에 가해진 폭탄 공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대로라면 아직 테러는 끝난 게 아니었다.

“시어스 타워의 붕괴…….”

테러범들의 최종 목표는 시어스 타워의 붕괴였다.

“그래. 그게 우리의 목표다. 게다가 너희 특수재난구조대 놈들까지는 덤이고 말이야.”

이성하의 멍한 읊조림에 비릿하게 웃는 테러범의 말처럼 LA카운티와 버지니아 카운티까지 노린 연쇄 테러 공격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다급하게 무전기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모스 치프! 이성하입니다. 잔해 제거 얼마나 남았습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건물 안에 있는 특수재난구조대원들을 대피시키기 위함이었다.

- 시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시어스 타워 상층부에 또 다른 폭탄이 있다고 합니다. 확인한 정보로는 앞으로 1시간. 아니, 정확히 47분 남았습니다.”

건물 안에 진입한 특수재난구조대가 현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만, 대피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 47분? 치프, 무리입니다. 아직 반도 못 뚫었습니다. 다 뚫는 데 30분은 걸릴 겁니다.

2팀 팀장 마크의 당황한 목소리가 무전을 울렸다.

- 마크의 말대로 시간이 부족합니다. 버지니아 팀 만나서 빠져나가는 시간 고려하면 절대 그 시간 안에 대피는 무리입니다.

심지어 버지니아 팀과 접선해 빠져나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그 시간 안에 대피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오웬의 목소리도 들렸고, 중요한 건 건물에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였다.

“사람들은 못 구하나?”

방금까지 테러범에게 잔뜩 성을 내던 부국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잡았다.

“부국장님…….”

“이거 놔! 아직 상층부에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말리는 한 소방관의 손을 뿌리치며 무전기를 향해 고함을 내지르는 모습처럼, 상층부에 천 명이 넘는 요구조자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모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 구해야죠.

담담한 투로 하는 말이었다.

- 시간이 부족하면 앞당기면 됩니다. 20분 내에 뚫겠습니다. 안에서 버지니아도 같이 뚫는 중이니 충분할 겁니다. 20분 내에 뚫고 상층부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쇼.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은 사람들을 구해 오겠다며 회신을 해 왔고.

“치프, 절대 무리입니다. 위로는 어떻게 올라가려고요. 버지니아만 구하고 빠져나오셔야 합니다.”

그에 이성하가 말도 안 된다며 고함을 질렀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거절이었다.

- 기다리는 사람들을 버릴 순 없어. 끝에 남는 게 절망만이 있더라도 시도는 해야 한다. 우리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다, 미스터 리.

끝에 최악의 결과가 찾아오더라도, 남아 있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건물에 남아 작업을 계속한다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성난 표정으로 테러범을 돌아봤다.

“큭큭큭, 역시 서방 세계의 자존심 특수재난구조대야.”

그 무전에 웃음을 터트리는 테러범의 모습 때문이었다.

“너 이 새끼!!”

“왜 그래? 난 친절하게 대피하라고 남은 시간까지 알려 줬잖아. 그런데 결정한 건 너희야. 너희들의 자존심 태스크포스가 결정한 거라고.”

성난 표정으로 분노틀 터트리는 부국장을 향해 유들유들한 모습으로 웃는 걸 보면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한 듯 보였고, 그 생각처럼 테러범은 이런 특수재난구조대의 선택을 예상한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특수재난구조대가 대피했으면 했어. 시민들을 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나온 특수재난구조대! 이 그림이 내가 원하는 그림에 더 가깝거든. 하하하!”

특수재난구조대가 둘 중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자신들이 싫어하는 미국에 피해를 입히는 건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희가 원하는 대로는 안 될 거야.”

“뭐라고?”

“폭탄이 문제라면, 그 폭탄을 치워 버리면 그만이야.”

그전까지는 테러범들의 계획을 모르다 보니 그 의도에 끌려다녔지만, 이제는 그 계획을 알게 된 이상 마음대로 판을 짤 수 있었다.

“폭탄을 치운다고? 어떻게? 날아서라도 갈 셈인가? 큭큭큭.”

그 말에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던 테러범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이성하는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맞아. 잘 알고 있네. 날아서 진입할 거야.”

“뭐라고?”

“헬기를 통해 건물 상층부로 직접 진입할 거다. 로프 하강 말이야.”

고층 빌딩이라면 필수로 있는 헬기 착륙장으로 로프 하강을 시도해, 문제의 폭탄을 직접 회수할 마음을 먹었으니까.

하지만 테러범으로서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미친놈, 헬기? 헬기가 저곳에 접근할 수 있다고?”

초고층 건물 화재에 헬기를 동원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화아아아악!

화재 현장에서 올라오는 엄청난 기류를 헬기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거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조종이 불가능해지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 바람에 실린 열기로 인해 헬기의 엔진 온도가 올라가는 경우가 발생했고, 이런 문제들 때문에 고층 빌딩 화재에는 헬기의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미스터 리. 지난 911테러 때도 수차례 시도한 방법이지만, 헬기 구조 작업은 실패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이성하의 말에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FBI대원의 모습처럼, 지난 911테러 때도 성공하지 못한 방법이 헬기를 통한 상공 진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가능합니다.”

“가, 가능하다고요?”

“네. 상공에 도착해서 로프 하강하는 게 아니라, 미리 로프에 매달린 채 진입할 겁니다. 헬기가 착륙장을 지나가는 중에 뛰어내리는 거죠.”

엄밀히 말하면 로프 하강이 아닌, 낙하 번지에 가까웠다.

착륙장 상공에 멈춰 서 로프로 진입하는 게 아닌, 미리 로프에 매달린 채 헬기가 착륙장을 지나가는 찰나에 줄을 끊고 뛰어내리는 걸 말했고, 그 말에 현장 지휘관들이 기겁한 건 당연했다.

“뛰어내린다고? 말도 안 됩니다.”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서 뛰어내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자칫하다가는 그대로 타워를 넘어가 공중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맞습니다, 무리입니다. 희생자만 늘어나게 될 겁니다. 이건 아닙니다. 절대 불가능해요.”

인형 뽑기를 시도하는 것도 아니고 빠르게 비행하는 헬기에서 좁은 착륙장에 맞춰 로프를 끊고 낙하하는 건, 말 그대로 실패할 확률이 높은 작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상황에 가능한 부대가 있었다.

“가능합니다. LA카운티의 스모크 점퍼라면 그 정도 타이밍은 얼마든지 맞출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상공에서 정확한 지점을 파악해 수시로 방향을 바꿔 하강하는 스모크 점퍼라면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 패드, 좌측 45도 지점 들판으로 하강해라.

- 옛썰!

- 미스터 리, 넌 우측 강가 앞에 보이는 파란색 표적이 착륙 지점이다.

- 옛썰!

언제든지 낙하 이후 공중에서 낙하 타깃을 바꾸는 그 훈련을 직접 경험했기에.

끄덕.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휘관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 스모크 점퍼라면 가능합니다. 미스터 리의 의견대로 해 주십쇼.

그에 대한 연락을 받은 모스 역시, 그런 이성하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 네, 그 친구들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마침 현장에 스모크 점퍼 팀도 대기하는 중이고요.

의견을 물어보는 부국장을 향해, LA카운티의 스모크 점퍼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대답을 전해 온 것이다.

“너희들 미쳤어? 로프에 매달린 채 진입한다고? 절대 무리야! 그건 불가능해!!”

그런 지휘 막사의 분위기에 테러범이 불안함을 느꼈는지, 바로 난리 치며 악다구니를 질렀지만, 이미 모두의 마음은 굳혀진 상태였다.

“해 보시죠.”

“저는 찬성입니다.”

“맞습니다. 시도라도 해 봐야 합니다. 그냥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부국장을 비롯해 확신을 가진 현장 지휘관들이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됐군요.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안 돼! 폭발은 막을 수 없어! 시어스 타워는 무너질 거라고!!”

“시끄럽기는. 끌고 가!”

결정된 헬기 진입 작전에 FBI의 사람들이 테러범을 막사 밖으로 끌고 나가며 상황은 정리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는 총 다섯 대의 헬기가 준비됐다.

타타타타타!

“작전에 사용할 헬기 전부 도착했습니다!”

“오케이, 윈치 확실히 점검해 주게.”

“알겠습니다!”

LA카운티의 스모크 점퍼 팀이 작전에 사용할 헬기가 모두 도착해 장비 점검에 들어갔으며, 그런 헬기 앞으로 다섯 명의 대원이 앞으로 나섰다.

“참나, 이런 상황은 생각도 안 해 봤는데 말이야.”

스모크 점퍼 팀의 팀장 호넬 카리스였다.

“미스터 리, 다시 말하는데 우리 팀에 안 올래? 잘해 줄게.”

옆에 선 이성하를 향해 씨익 웃음을 지으며 자신들의 팀으로 올 걸 제안하는 모습이었고, 그에 대답하는 이성하는 방화복을 입고 있었다.

“이번 작전 성공하면 생각해 보죠.”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화르르르르!

거센 불길을 피워 올리는 시어스 타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다섯 대원이 헬기에 탑승하며 작전이 시작됐다.

- 해 보자. 그리고 이왕 할 거면 즐겁게 하자고.

“옛썰!”

타타타타!

드디어 시어스 타워의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LA카운티의 스모크 점퍼 팀이 허공으로 비행을 시작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