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97화 (197/235)

<강철 소방대 197화>

197화. 어떤 이유라도 (8)

‘제길, 이게 무슨 일이야.’

버지니아 팀과의 무전은 계속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위를 바라보니 짙은 흙먼지가 하늘을 메워 보이지 않는 상황.

그랬기에 이성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미스터 리, 방금 그거 혹시…….”

“……네, 내부 붕괴입니다. 층이 무너지면서 버지니아 팀이 휩쓸린 거예요.”

짐작이 아니라 확신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그그그극.

방금 느꼈던 진동이 거짓이 아니라고 말하듯 건물 외벽에서 불길한 소리가 토해지고 있었고, 그 원인은 건물 곳곳을 휘감고 있는 불길이었다.

화르르르르르!

[제길, 외부 기둥들이 건물 안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어. 불길 때문에 타워의 철골 강도가 약해지고 있는 거야.]

렉스의 말처럼 시어스 타워에 발생한 화재의 열기로 인해, 건물을 지탱하는 철골 트러스가 천천히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아닌 듯했다.

“구조팀, 전원 장비 점검하고 진입 준비합니다!”

붕괴에 휘말린 걸로 보이는 버지니아 카운티를 지원하기 위해 쉬고 있던 구조팀을 다시 소집한 순간.

- 여기는 버지니아. 본부 응답 바란다.

연락이 끊어졌던 패트릭의 무전이 다시 연결됐다.

“미스터 리, 자네가 받게.”

그에 이성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부국장의 모습에.

“패트릭, 미스터 리입니다. 상황 어떻습니까?”

이성하가 대신 무전을 받아 상황을 물었고.

- 요구조자와 대원 몇 명이 좀 다치긴 했지만, 다행히 모두 무사해.

“정말입니까?”

- 그래. 이런 걸로 농담하겠나.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층 전체가 한 번에 내려앉아서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

그렇게 듣게 된 대답에 모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휴우…….”

“다행이네.”

“네, 정말 다행입니다.”

지반이 흔들릴 정도로 큰 붕괴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안 좋은 소식도 있었다.

-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력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지만, 버지니아 카운티는 자력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혹시 매몰된 겁니까?”

- 그래. 주변이 전부 건물의 잔해로 막혔어. 상부 역시 마찬가지다. 꽤 깊게 떨어졌는지 위쪽으로 보이는 천장이 까마득하다. 지원이 필요하다.

무전의 내용대로라면 주변이 모두 잔해로 막혀, 외부의 도움이 있어야만 탈출이 가능한 상황.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지, 목숨이 위급한 상황은 아니야.’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그그극.

여전히 건물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가 귀를 자극하고 있지만, 시어스 타워는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철골이 휘는 상황이긴 하지만 건물이 기울지는 않았어. 이 정도로는 무너지지 않아.]

렉스의 말대로 외부 기둥은 휘어도, 건물이 기울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화르르르르르!

거센 불길을 뿜어내며 새카만 연기를 뿜어내고 있음에도 시어스 타워는 오롯이 서 있었고, 그 이유는 마천루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911테러 때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도 비행기로 들이받았음에도 한참을 버텨 냈어. 겨우 두 번의 폭파 테러 정도로 마천루는 무너지지 않아.’

100층이 넘는 높은 층수만큼이나 그 면적도 어마어마해, 어떤 상황에서도 건물의 붕괴만큼은 막도록 횡력에 강한 튜브 구조로 지어진 게 미국의 고층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퍼퍼펑!

물론 지금처럼 불길이 계속 거세진다면 결국 건물이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지긴 하겠지만, 이곳에 그걸 두고 볼 소방관들은 없었다.

“집중 주수로 하나씩 확실히 잡는다!”

“옛썰!”

쏴아아아아아!

사태가 일어났을 때부터 꾸준히 불길을 잡기 위해 관창을 들고 물을 주수하는 시카고 소방관들이 있었고, 이런 붕괴 상황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구조대를 이성하는 알고 있었다.

“모스 치프, 지금 어디십니까?”

지금쯤 정신없이 날아오고 있을 자신의 팀 LA카운티였다.

- 앞으로 10분. 안 그래도 공항에 막 착륙해서 가는 중이다.

그런 이성하의 전화에 이미 도착해 달려오고 있다는 모스의 음성이 위성 전화기를 울렸으며, 그렇게 잠시 후.

부르르릉.

녹색의 짙은 군용트럭 수십 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의료팀, 막사 설치해!”

“구조대는 배터리와 산소통 확실히 점검해. 바로 진입한다!”

노란 헬멧을 착용한 소방관들이 바로 차에서 뛰어내리며 트럭에 실린 장비들을 내리기 시작했고, 그에 현장엔 열기가 치솟았다.

“CF2! 모스 부대가 왔다!”

“LA카운티! 드디어 노란 헬멧 녀석들이 왔어!

드디어 기다리던 LA카운티의 특수재난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모습에, 시카고의 소방관들이 열화와 같은 함성을 내지른 것이다.

하지만 LA카운티 대원들에게 그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진입한다!”

“옛썰!”

앞장서는 모스의 뒤를 따라 수십 명의 대원들이 그대로 건물로 향했다.

“치프,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아니, 넌 밑에서 우리의 소통을 담당한다. 고생했다, 미스터 리.”

“그래, 밑에서 쉬고 있어.”

“아무튼 욕심도 많아. 그냥 밑에 있어. 다음은 우리가 할 테니까.”

장비를 챙겨서 합류하려는 이성하의 모습에 가벼운 웃음으로 만류한 대원들은 그대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그에 이성하는 아쉬운 모습으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하,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은가?”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이런 자리보다 현장이 더 편해서 그렇습니다, 부국장님.”

옆에서 농담을 건네는 시카고 부국장의 웃음처럼, 현장에 남아서 지휘본부와 팀의 소통을 담당해야 할 대원도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둘째치고 상황이 끝났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 패트릭, 많이 기다렸나?

- 많이 기다렸지. 왜 LA카운티는 항상 늦는 거지?

무전으로 들리는 두 대장의 음성 때문이었다.

- 미친놈이 와도 X랄이네.

- 좀 빨리 다니란 거지. 매일 우리만 다치잖아.

- 너 자꾸 그러면 우리 그냥 포기하고 돌아간다.

- 또 삐졌냐?

- 아, 입 좀 그만 털어! 힘들어 죽을 거 같으니까.

자신과 이야기할 때만 해도 근엄하던 각 구조대의 대장들이 마치 아이처럼 다투고 있지만.

[저놈들 여유 부리네.]

‘신뢰인 거죠. 많이 친한가 봐요.’

그 둘의 목소리에 어린 신뢰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느낌은 거짓이 아니었다.

- 시카고, 여기는 LA카운티. 현 위치 39층인데, 이곳부터 잔해로 길이 막혀 있습니다. 지금부터 잔해 제거 시작하겠습니다.

“버, 벌써 말인가?”

- 네, 금방 퇴로 확보하고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상층부에 고립된 요구조자들 모두 구해서 내려가겠습니다.

올라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잔해로 막힌 층에 도달하는 건 물론, 상층부에 고립된 요구조자들까지 구해서 내려오겠다는 모스의 믿음직스러운 무전이 전해진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 여기에 없어도 될 거 같습니다. 우리 쪽 지원 막사로 가 보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변수는 없어 보였다.

“하, 이것 참.”

“무전은 열어 둘 테니 일 있으면 연락 주십쇼, 부국장님.”

“그렇게 하지. LA카운티……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 대단하긴 하구만.”

지휘 막사에서 나가 보겠다는 자신의 말에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부국장의 모습처럼, LA카운티가 도착하며 드디어 길고 긴 테러 재난이 모두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민정 씨, 괜찮아요?”

“네, 저는 별로 힘든 거 없어요. 이쪽 의료진이 많이 고생하고 있죠.”

이미 상황이 끝났다고 판단했기에, 다른 지원 막사에 있는 김민정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부르릉.

두 대의 군용트럭이 빠른 속도로 바리케이드를 통과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정장? 어디서 온 거지?’

[뭐? 정장?]

소방관이나 경찰이면 상관없지만, 현장과는 상관없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리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러다 보게 된 한 사람의 모습에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린 사람만 유일하게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복장만 다른 게 아니라 수건으로 가려져 있지만 손을 모은 모습을 보면 마치 수갑을 찬 듯 보였고, 그에 예상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테러범…….’

[수갑 찬 거 보니까 맞는 거 같은데? 그럼 저 친구들은 FBI겠네.]

직접 테러를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수갑을 찬 모습을 보면 지금의 재난을 만드는 데 일조한 걸로 보이는 테러범이 현장에 잡혀 온 상황.

그러다 보니 이성하는 의문을 느꼈다.

‘뭐지? 왜 테러범을 이곳으로…….’

테러범을 잡은 건 좋았지만, 그 테러범을 이곳으로 끌고 올 이유는 없었다.

“저거 테러범 아냐?”

“저 X새끼 죽여야 돼. 저 새끼 때문에 몇 명이 죽었는데!”

그 모습에 분노를 느끼는 몇 명의 모습처럼 현장에 테러범을 데려와 봤자 괜히 사람들의 분노만 일으킬 상황이었고, 결정적으로 이성하가 알기로는 미국은 자신의 치부를 겉으로 드러내길 싫어하는 성향이 있었다.

“카메라 내리세요.”

“찍지 마세요! 지금 내용 전부 엠바고입니다.”

역시나 바로 현장 상황을 통제하는 FBI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시피, 미국의 약한 모습이 될 수도 있는 테러범의 존재를 외부에 공개하는 건 미국 정부가 가장 꺼려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다급한 표정으로 막사를 나섰다.

“민정 씨, 저 잠깐만 다녀올게요.”

FBI들이 테러범을 이끌고 부국장이 있는 지휘 막사로 가는 모습 때문이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뭔가 더 있어.’

원칙대로라면 당장 수사국으로 끌고 가서 취조를 해야 할 테러범을 재난이 벌어진 현장까지 데려왔다는 건 그에 관련된 뭔가가 있다는 이야기였고, 그 예상은 맞는 듯 보였다.

“야이, 개새끼야!”

지휘 막사 안에서 잔뜩 성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는 시카고 부국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LA카운티의 특수구조대원입니다. 들어가게 해 주십쇼.”

그 때문에 앞을 가로막는 FBI대원들에게 신분증을 들어 보이고는 바로 막사로 들어갔고,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 보게 된 모습에 표정을 굳혔다.

“큭큭큭, 이럴 시간 없을 텐데.”

부국장에게 멱살을 잡힌 테러범이 음흉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시간 얼마 안 남았어. 조금 있으면 터질 거야. 그러면 완전히 무너지는 거지. 하하하.”

뭐가 그리도 좋은지 멱살을 잡힌 모습으로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고, 그 모습에 옆에 있는 검은 정장의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알아낸 바로는 1시간입니다. 오후 5시. 정확히 그 시간에 3번째 폭탄이 터질 겁니다.”

폭탄이 아직 남아 있었다.

“사, 사실입니까?”

그 말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으로 검은 정장의 사내를 바라봤지만,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상층부에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 테러범이 한 명 있습니다. 그 테러범이 1시간 뒤에 세 번째 폭탄을 터트릴 거요.”

“…….”

아직 천여 명의 요구조자들이 남아 있는 건물 상층부에, 테러범 한 명이 폭탄을 들고 남아 있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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