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95화 (195/235)

<강철 소방대 195화>

195화. 어떤 이유라도 (6)

타타타타!

엄청난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아가는 여덟 대의 헬기가 있었다.

화아아아악!

기체의 한계 속도를 모두 끌어올렸는지, 마치 하늘의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모습으로 비행을 하는 헬기들이었고.

우웅우웅.

그로 발생하는 엔진의 소음 때문에 귀가 따가울 정도였지만, 안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소음에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 2차 구조팀이 막 진입 시도했다고 한다.

귓가로 들리는 상황실의 무전 때문이었다.

- 진입? 진입이 가능한 건가?

- 정확히 말하면 진입로 확보지. 그 소문의 한국 소방관이 팀을 이끈다고 들었어.

- LA카운티의 그 친구인가?

- 그래. 모스가 말한 그 동양인 소방관이야. 너희가 가기 전까지 길을 확보하겠다고 했다는군.

자신들의 대장과 대화를 나누는 상황실 지휘관의 무전에 귀를 기울이는 상황이었고, 그 내용에 다들 열 받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

‘아직도 30분이나 남았어.’

‘좀 더 빨리 가야 해. 시간이 지체될수록 사상자 수가 늘어나게 될 거야.’

테러가 발생한 현장에는 한창 구조가 진행 중인데, 정작 그런 중요한 상황에 가장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신들이 아직 도착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져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진정시키려는 목소리가 있었다.

- 미리부터 힘 빼지 마라.

상황실과 대화를 나누던 대장의 목소리였다.

- 지금 필요한 건 긴장이 아닌 여유다. 긴장은 현장에 도착해서 해도 늦지 않아.

헬기가 고속으로 이동 중이기에, 대장이 헬멧에 부착된 무전을 통해 대원들에게 여유를 요구했지만, 그게 힘들 거라는 건 명령을 하달한 대장 스스로가 너무 잘 알았다.

‘또 테러인가.’

이미 911테러를 통해 이런 상황을 한 번 뼈저리게 겪은 상황이라서였다.

“허억, 허억.”

“구급대! 들것 가져와!”

“안 돼, 제임스…… 안 돼!!”

자신 역시도 아직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에 이를 악물 때가 있었고, 지금 헬기를 통해 이동 중인 모든 대원들이 그랬다.

‘X 같은 테러범 놈들.’

‘이번엔 안 돼.’

‘구할 거야. 한 명이라도 더 구할 거야.’

수백 명의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사망한 그 테러 참사에 지원을 나갔던 대원들이 바로 지금 출동을 나가는 버지니아 카운티의 태스크포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이끄는 게 버지니아 특수재난구조대의 대장 패트릭 루이스였다.

끄덕.

아직까지 감정은 주체하지 못하지만 알아들었다는 대원들의 끄덕임에.

끄덕.

패트릭 역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 도착! 시어스 타워가 보인다!

드디어 테러 현장에 도착했다는 헬기 기장의 말에, 패트릭은 로프를 잡았다.

“좋아, 대교 다리 위에 그대로 정지해.”

- 대교? 설마 그대로 내려갈 셈이야?

“그래, 주변 건물 옥상에 내려서 다시 현장 이동하려면 시간 너무 걸려. 그냥 이대로 내려간다.”

주변 고층건물의 헬기 착륙장이 아닌, 하강을 통해 현장으로 바로 가겠다는 말이었다.

철컥.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듯, 그대로 헬기 문을 열어젖혔으며.

타타타타!

- 제길. 꼭 무사 귀환하길 바란다.

그 모습에 대교 다리 위로 헬기를 긴급 정지시키며 안전을 비는 기장의 말에 패트릭은 행동으로 답했다.

“하강해!”

“옛썰!”

촤라라라락.

휘하에 있는 대원들과 함께 그대로 로프 하강을 이용해 시어스 타워 근처로 바로 이동한 것이다.

“시카고 소방국의 아드리드 부국장이오. 현장 상황은…….”

그런 구조대의 모습에 현장을 지휘하는 부국장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바로 다가왔지만, 패트릭은 그대로 손을 들었다.

“상황은 무전으로 듣겠습니다. 지금 한시가 급합니다.”

늦게 도착한 만큼, 그 시간을 앞당겨야 할 의무가 자신에게 있었다.

“라미.”

“옛썰!”

“너는 1팀과 2팀 데리고 13층부터 20층까지 수색한다. 그리고 벤터.”

“옛썰!”

“너는 21층부터다. 3팀은 나랑 같이 그대로 올라가고. 알겠나?”

“알겠습니다!!”

“좋아, 진입해!!”

휘하의 팀장 두 명에게 층별 수색 지시를 내리며 바로 건물 안으로 진입했고, 그런 패트릭의 눈에는 뜨거운 열기가 어려 있었다.

‘1분 늦을 때마다 10명이 죽는다. 그러니 소모한 시간을 우리가 최대한 만회해야 해.’

시어스 타워로 이동하는 데 소모한 시간만큼, 희생될 부상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눈빛의 열기가 13층에 도달한 순간 흐트러졌다.

‘이, 이건…….’

<13층 생존자0 / 수색 완료>

13층 벽면에 특수재난구조대만 사용하는 구조 마크가 표시돼 있었다.

“캐, 캡틴! 위에도 있습니다!”

휘하 대원의 말처럼 그다음 층인 14층에도 수색을 마무리했다는 구조 마크가 표시돼 있었고, 그게 누구의 짓인지는 보나마나 뻔한 상황이었다.

‘LA카운티의 미스터 리.’

먼저 진입로를 뚫겠다고 말한 그 동양인 소방관이, 길만 뚫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해야 할 요구조자 수색까지 진행한 상황이었다.

“방금 내린 수색명령 취소하고 전원 계단 올라간다.”

그랬기에 바로 사전에 내린 명령을 취소하며 바로 계단을 뛰어오른 패트릭이었고.

<18층 생존자 3 / 수색 완료>

<19층 생존자 0 / 수색 완료>

<20층 생존자 1 / 수색 완료>

.

.

.

계단을 오를수록 보이는 구조표시에 더 발걸음에 힘을 넣었다.

“뛰어! 뛰어! 좀 더 빨리!”

“으아아아아!”

먼저 진입한 구조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30층에 도달하는 게 최선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 소방관과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가 왔다!’

소문대로 검은 눈의 소방관이 구조팀을 이끌고 있었다.

“버지니아입니까?”

“그래, 우리가 버지니아다. 지금까지 정말 잘해 줬다, 미스터 리.”

그 때문에 단번에 그 소방관의 곁으로 다가가 그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고, 그러고는 바로 휘하 대원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1팀과 2팀은 구조팀 도와서 부상자 수송하고, 3팀은 나와 상층부의 길을 뚫는다. 이제부터 우리 버지니아가 한다!”

“악!”

이제부터는 자신들 버지니아 카운티가, 이 재난의 구조작전을 진행하겠다고.

그리고 그 지시에 이성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이제 자기들 왔으니까 우리보고 물러나라는 거야?]

그 모습에 렉스가 불만 어린 목소리를 토했지만, 이건 버지니아 팀의 배려였다.

‘함께하고 싶어도 못해요. 저 이제 한계라고요. 하하하…….’

어떻게든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너무 빠른 시간 내에 온 힘을 쏟아붓다 보니, 체력이 완전히 바닥이었다.

“부상자 우리가 맡을게. 수고했어.”

“고맙습니다.”

부들부들.

버지니아 팀의 대원에게 부상자를 인계하자마자 팔다리가 부들거릴 정도로 이미 체력을 다 쏟은 상황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미련 없이 건물을 내려왔다.

‘내 일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버지니아가 할 차례야.’

자신에게 배정된 역할을 다한 것도 있었지만, 고집을 부려 위에 남아 봤자 작전을 진행할 버지니아 팀에게 방해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후련한 마음으로 내려온 건 아니었다.

‘아무리 버지니아라도 할 수 있을까요?’

처음 폭발이 일어나고 수백 명의 시카고 소방관들이 건물에 진입을 결정했을 만큼, 아직 건물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과 구조팀이 구한 건 그 건물에 진입한 소방관들이었지, 애초부터 건물에 고립된 일반인들이 아니었고,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는 건 건물의 크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건물 층수가 108층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 명 이상은 건물에 있을 거야. 대충 한 층당 백 명 정도는 사람이 있었을 테니까 말이야.]

렉스의 말처럼 최소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건물에 고립돼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많은 사람들을 지금 올라간 버지니아 팀이 구조한다?

아무리 특수재난구조대로 이름 높은 버지니아 카운티라 하더라도, 그 많은 요구조자들을 밑으로 대피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요구조자들에 부상자가 많을 거야. 그런 부상자들을 버지니아 팀이 일일이 데리고 내려오는 건 힘들어.’

자신이 이끄는 구조팀도 고작 수십 명의 부상자들을 데리고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 자신들을 대신해 올라간 버지니아 팀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추가로 구조할 요구조자들의 대피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

그 때문에 이성하는 시어스 타워를 내려온 지 얼마 안 돼, 다시 문제의 타워를 올려다보며 무전기를 들었다.

“LA카운티의 이성하입니다.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저랑 구조팀은 충분히 쉬어서 이제 다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상황 부탁드립니다.”

요구조자 구조에 난항을 겪고 있는 버지니아 카운티를 지원하기 위해, 다시 건물을 올라가겠다고.

하지만 그 말에 들려온 건 거절이었다.

- 아니, 올라오지 않아도 돼. 네가 이끄는 구조팀은 거기서 만약을 대비해 대기했으면 좋겠어.

방금 봤던 버지니아 카운티의 대장 패트릭이 이성하의 구조팀에 대기를 요청했다.

“정말 괜찮습니까? 저희 충분히 쉬었습니다. 실린더도 교체했고, 바로 올라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혹시 버지니아가 자신들의 부상을 염려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성하가 언제든지 올라갈 수 있다고 재차 말했지만.

- 괜찮아,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아냐. 지금은 우리만으로도 충분해.

그 무전에 들려온 건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자신에 찬 대답이었고, 실제 패트릭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인원이 아니야. 인원이 더 필요한 건 60층 이후부터다.’

지금 막 60층까지 모든 요구조자 수색을 완료한 상황이었다.

“캡틴! 60층까지 수색 모두 마쳤습니다! 요구조자 정확히 103명입니다!”

휘하 팀장의 보고처럼 총 103명의 요구조자를 구조해, 수색 지역의 중간에 해당하는 45층에 구조한 요구조자를 모두 대피시킨 상황이었고, 여기서 요구조자를 밖으로 내보내는 건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요구조자 이송 시작한다. 모두 준비해!”

“악!”

대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자신이나, 그에 대답하는 대원들이나 이 정도는 자신들 버지니아 카운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해도 해야 했다.

‘고작 103명이야. 이 숫자의 요구조자밖에 없다는 건 대부분 60층 위에 있다는 뜻이야.’

발견한 요구조자의 숫자를 보면 아직 까마득한 숫자의 요구조자가 상층부에 고립돼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폭발로 매몰된 60층의 잔해를 치워야 하는 선결 조건이 남았기에 구조팀의 지원은 나중에 필요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이 정도도 버지니아 카운티만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금 무전을 하고 있는 이성하에게 면목이 서지 않았다.

“보고 있도록 해. 네가 아껴 준 시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 주지.”

그저 진입로 확보만을 기대했던 이성하가 시간이 걸리는 층별 수색까지 모두 마무리한 상황인 만큼, 자신들 역시 그만한 실력을 보여 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성하로서는 전혀 짐작이 안갈 상황이었다.

‘추, 충분하다고? 정말로?’

아무리 생각해도 40명 정도 되는 버지니아의 대원들이 그 배나 되는 요구조자들을 건물 밖으로 이송시킨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 밑에 대원들 전원 건물에서 거리 벌리도록 해. 창문 부순다.

‘창문?’

와장창창!

패트릭의 무전이 울림과 동시에 45층 부근의 창문이 모조리 깨졌다.

파각, 파각.

“파편 떨어진다. 물러나!”

“모두 물러나!”

그로 인해 창문의 깨진 파편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지켜보던 대원들이 좀 더 거리를 벌렸고, 그 뒤로 보이는 광경에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요, 요구조자?’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깨진 창문 앞으로 요구조자로 보이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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