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94화>
194화. 어떤 이유라도 (5)
* * *
불길을 제압하며 계단을 통해 올라간 이성하와 소방관들의 행적은 그대로 건물밖에 자리하고 있는 지휘막사에 보고되고 있었다.
수백 명의 소방관들이 생명을 잃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소방관들은 이런 대형 재난 발생 시 본인들의 위치를 발신하는 GPS장치를 착용하고 출동했는데, 그로 인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휘막사에서 대원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삑. 삑. 삑. 삑.
“현재 8층 통과 중입니다!”
지휘막사 한편에 설치한 상황 모니터를 통해 대원들 한 명 한 명의 위치가 GPS로 표시되고 있었고, 그에 상황을 주시하던 지휘관들은 흥분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벌써 9층. 이 속도대로라면 버지니아 팀이 도착하기 전에 우리 애들을 구할 수 있겠어요.”
“산타클라리타의 영웅이라는 게 헛소문은 아니었나 봐. 역시 LA카운티의 특수재난구조대 출신이야. 믿고 맡길 만해. 모스가 괜히 자신 이름을 걸고 추천한 게 아니었어.”
이성하가 산타클라리타의 영웅이라는 말에 흔쾌히 지휘권을 넘기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 나이에 대한 불안감에 조금 걱정을 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걱정이 지금 완전 종식됐다.
“이제 10층입니다!”
상황 모니터를 담당하는 대원이 격양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현장의 모두가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어 따로 카운트를 안 해도 되는 상황이지만, 주체할 수가 없었는지 계속 구조팀의 위치를 고함치듯 말했다.
“11층! 12층!! 됩니다! 계속 올라갑니다!”
구조팀의 GPS신호가 높이를 계속 올려 가는 모습에 기쁨에 찬 환호성을 질렀고, 모니터를 주시하던 다른 소방관들 역시 같은 표정으로 고함을 지른 건 당연했다.
“좋았어.”
“가라, 가!”
“할 수 있어. 가 버려. 단번에 올라가!”
거침없이 목표 지점으로 알려진 30층을 향해 전진하는 구조팀의 모습에, 모두 이 작전은 될 것 같다는 희망적인 느낌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어? 뭐지? 왜 나눠지지?”
하나로 뭉쳐서 계단을 올라가던 구조팀 대원들의 GPS가 계단 밖으로 분산되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여덟 명은 계속 올라가고, 나머지 대원들은 전 층에 남았습니다. 위치는…… 13층, 13층입니다.”
GPS를 분석하는 대원들의 말대로라면 여덟 명을 제외한 전원이 13층에 잔류한 상황이었고, 그에 이성하에게 지휘권을 넘기는 데 허락한 부국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무전을 잡았다.
“LA카운티. 지금 무슨 상황인가? 현재 대원들이 나뉘었다고 나온다. 혹시 계단이 무너지기라도 한 건가?”
잘 올라가던 구조팀이 2개로 나눠진 모습에, 혹시 화재로 인해 계단이 무너진 게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로부터 듣게 된 대답은 그런 추가 재난 같은 게 아니었다.
- 이상 없습니다. 선발대는 길을 뚫고 후발대는 요구조자 수색 중입니다.
2개로 나눠진 구조대는 진입로 확보와 요구조자 수색을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뭐요? 요구조자? 아직 남아 있을 요구조자를 수색한다는 말입니까?”
- 네, 뒤에 도착할 버지니아 팀이 온전히 상층의 수색에 전념할 수 있게, 저층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걸 위한 구조대가 우리입니다, 부국장님.
애초부터 그 두 가지를 목적으로 한 구조대가 자신들이라는 이성하의 대답이 들려왔고, 실제 이성하는 애초부터 그럴 마음으로 건물에 진입한 거였다.
‘계단을 뚫는 데는 어차피 많은 대원이 필요 없어. 진압대에게는 계단을. 구조대는 미처 다하지 못한 저층 수색을 마무리한다.’
처음부터 마흔 명이나 되는 대원들을 지원받아 팀을 만든 데는, 처음 건물에 진입한 시카고 소방국의 임무였던 요구조자 수색도 감안하고 움직인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계획은 나중에 도착할 버지니아 카운티의 작전을 더 용이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움직임이었다.
“이쪽 없습니다.”
“저희 쪽도 없습니다.”
“오케이, 다음 층 수색합니다.”
수색을 마친 대원들의 요구조자가 없다는 보고에, 바로 고개를 끄덕인 이성하가 들고 있던 도끼로 벽면에 그 정보를 기록했다.
카가가각.
<13층 생존자0 / 수색 완료>
해당 층에는 생존자가 없고 모든 구역을 수색했다는 정보를 남긴 거였으며, 그 방법은 네팔에서 국제구조대로 파견 나갔을 당시, 전 세계의 특수재난구조대가 사용하는 표식법이었다.
“좋아, 다음 층!”
“알겠습니다!”
나중에 도착할 특수재난구조대가 요구조자 수색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기 위해, 미리 층 수색을 마치고 그 정보를 벽면에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단순히 후발대로 도착할 특수재난구조대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 요구조자 발견. 생존자입니다. 시카고 소방관 두 명. 성인 여성 한 명, 아이 한 명으로 총 네 명 발견했습니다!
귓가로 들리는 무전의 내용처럼 아직 남아 있을 생존자의 구조를 위해서였다.
“바로 이송조치 가능합니까?”
- 가능합니다.
“그럼 요구조자 이송 마치고 해당 대원들은 다시 건물 올라옵니다.”
무전을 해 온 대원에게 발견한 요구조자들을 바로 밑으로 이송시키고 다시 건물을 오를 걸 지시했고, 그렇게 구조되는 요구조자들의 모습에 바깥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요, 요구조자다!”
“소방관도 있어!!”
“마, 마이클? 진짜 마이클이야?”
구조대가 투입되고 처음으로 구조되는 요구조자들이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하, 하하하…….”
고통 어린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이제는 살았다며 웃음을 짓는 요구조자들의 모습에.
“맙소사, 기적이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감격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고.
“더 나온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그런 요구조자들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사람들을 구해 나오는 구조대의 모습에,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건물을 바라봤다.
‘할 수 있어!’
‘소방관님들 부탁해요.’
‘제발 조금 더 힘내 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진입한 구조대가 다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도록, 마음 깊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응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구조대는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불길 다 진압했습니다!”
“좋아, 지금부터 길 뚫습니다. 가져온 드릴 전부 이용해서 다 뚫어 내요!”
“옛썰!”
카가가가각!
드디어 목표로 했던 30층에 도착해, 폭발로 무너진 잔해들을 드릴로 뚫어 내며 길을 만들고 있었고.
“좀 더!!”
“부서진 잔해들 날라!”
그런 작업을 40명이 한 몸이 돼 움직인 덕분에, 마침내 빛을 만들어 냈다.
콰콰쾅!
“구, 구조대?”
“사이먼, 괜찮아?”
“빌?”
“그래, 우리가 왔다. 다들 괜찮은 거 맞아?”
“니들이 왔는데 당연히 괜찮지. 이 새끼들, 진짜 와 줘서 고맙다. 진짜 고마워.”
와락.
폭발 때문에 30층 부근에 고립돼, 추가로 파견될 구조대만 기다리던 시카고의 소방관들을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일렀다.
‘제길, 부상자가 너무 많아.’
혹시나 했지만, 시카고의 소방관들은 폭발의 충격을 직격으로 맞은 듯 보였다.
“도로시!”
“케이트!!”
와락.
무사하다는 기쁨에 구조대원을 껴안을 정도로 괜찮아 보이는 소방관도 있었지만.
“왔구나…….”
“콜록, 콜록. 고마워, 짐.”
피범벅이 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소방관들이 더 많았고, 그에 내려지는 이성하의 지시는 당연히 부상이 심한 소방관들의 이송이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합니다! 체력이 빠진 5팀만 남아서 현장 지키고. 나머지는 전부 부상자들 밑으로 이송합니다!”
“옛썰!”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해 보이는 소방관들의 숫자가 꽤 많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제길…… 부상자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캡틴!”
30층에서 폭발이 일어날 당시, 건물로 진입한 소방관들의 숫자는 대략 400명이었다.
“대피해!!”
“제길, 모두 건물에서 물러나!!”
전부 30층에 있던 건 아니다 보니 폭발이 일어나고 많은 수의 소방관들이 건물을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 수를 감안하더라도 최소 200명 이상의 소방관들이 건물에 갇힌 상황이었다.
“끄으으으…….”
“허억, 허억.”
한마디로 그 반수 이상의 소방관들이 부상으로 30층 부근에 모여 신음을 토해 내는 상황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제길, 부상자가 너무 많아. 우리로는 역부족이다.’
처음에는 잔해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 파악을 못 했지만, 생각보다 긴급 이송이 필요한 부상자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올라온 구조팀은 40명이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우리 팀은 우리가 챙길게!”
“이드리스! 나랑 같이 내려가자. 얼른!”
안에 갇혀 있는 대원들 중 상태가 좋은 몇몇이 같이 부상자들의 이송을 돕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부장자에 비해 훨씬 부족했기에 최소 두세 번은 이 건물을 오르내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된다면 사망자의 숫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몰랐다.
[부상자 데리고 내려갔다 올라오려면 20분 정도 걸리려나?]
‘아뇨, 최소 30분은 걸릴 거예요. 상태가 안 좋은 부상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냥 부상자를 냅다 둘러메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게 아닌, 그 부상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집중을 요하며 부상자들을 옮겨야 하는 게 지금 구조대의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했다.
“여기는 구조대. 1층 내부로 엠뷸런스 팀의 진입을 요청한다. 부상자들 숫자가 너무 많은 상황이다.”
무전기를 들어 외부의 현장지휘관에게 건물 내부로 구급대의 진입을 요청했다.
“1층에 대기할 앰뷸런스 팀에게 부상자들 넘기면 바로 올라옵니다. 좀 힘들겠지만 그렇게 두 번만 왔다 갔다 하자고요.”
자신을 바라보는 시카고 소방관들에게 웃음을 지으며 해 보자고 말했고, 그에 우는 소리를 하는 소방관은 없었다.
“해 보죠.”
“얼른 갑시다, 시간 아깝습니다.”
“세 번 정도면 껌 아닙니까. 시작하시죠.”
자신들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끄덕.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부상자들을 한 명씩 일으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진입로를 뚫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요구조자를 옮긴 상황인 만큼, 부상자들을 부축하는 소방관들의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제길…….”
“허억, 허억.”
그 때문에 계단을 내려가는 소방관들의 발걸음은 천근만큼 무거웠고, 그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끄응…….’
부상자를. 그것도 그냥 부상자가 아니라 방화복까지 착용해 무게가 나가는 부상자를 각자 한 명씩 맡아서 이동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두 명씩 한 명을 날라야겠어.’
이렇게 계단을 내려가다가는 부상자를 옮기는 도중에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뛰어! 뛰어!”
계단 밑쪽에서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좀 더 빨리!”
“으아아아아!”
방화복을 입은 수십 명의 소방관들이 뛰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고, 그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왔다!’
‘왔구나, 버지니아!’
드디어 기다리던 버지니아 카운티의 특수재난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