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91화 (191/235)

<강철 소방대 191화>

191화. 어떤 이유라도 (2)

창가 너머로 보이는 고층빌딩에서 난 폭발은, 멀리 떨어진 레스토랑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될 정도로 강한 진동을 일으켰다.

“엄마!”

“제시, 머리 숙여.”

쨍그랑.

탁자에 놓인 접시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휘잉, 휘잉.

“전등 밑에서 나와요. 빨리요.”

“으아아아아.”

천장에 장식된 샹들리에 조명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에, 레스토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겁하며 벽 쪽으로 물러날 정도로 건물이 격하게 흔들린 상황.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진동이 한 번으로 끝났다는 거였다.

“끄, 끝난 거예요?”

“그런 거 같아요. 나와도 될 거 같아요.”

흔들림을 멈춘 건물의 움직임에, 천천히 탁자 밑에서 나와 몸을 일으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창가 너머로 방금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건물이 새카만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화르르르르!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은 듯 보였지만, 연기 너머로 조금씩 보이는 새빨간 불길과 주변의 비명 소리를 들어 보면 보통 상황은 아니었고, 그런 이성하의 생각은 정확했다.

“저, 전화가 안 터져!”

911에 신고라도 하려고 했는지, 핸드폰을 꺼낸 한 남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이, 인터넷도 안 되는데?”

“왓더 퍽.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지금 다 안 되는 거예요? 전화되는 사람 없어요?”

연달아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 근방의 모든 통신이 마비된 상황 같았고, 이성하가 알기로 그런 경우라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도시 메인 건물에서 폭발이 일어난 거야. 통신 설비가 망가졌어.’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설치되는 통신 장비의 손상이었다.

일명 마천루라고 불리는 까마득하게 높은 건물에는 해당 구역의 전파를 송출, 이용하는 통신 안테나가 설치돼 있는데, 시카고에는 그런 메인 건물이라고 칭해질 건물이 하나 있었다.

[시어스 타워야.]

‘시어스 타워요?’

[그래. 방금 방향이면 시어스 타워가 맞아. 지상 108층의 마천루. 존 핸콕센터와 함께 시카고의 랜드마크야.]

렉스의 말대로라면 시카고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시어스 타워라는 고층빌딩에서 폭발이 발생한 상황인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김민정을 바라봤다.

“민정 씨, 죄송한데 가 봐야 할 거 같은데요.”

특수재난구조대의 소속 대원은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근처에 있다면 현장으로 이동해 상황을 파악할 의무가 있었다.

“저곳에요?”

“네, 특수재난구조대 매뉴얼이에요. 소속 대원은 재난 발생 시 모든 일을 제쳐두고 현장에 합류한다. 저도 일단은 현장직이라서요.”

단순히 연수생 신분이라면 모르지만, 현재는 현장직으로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만큼, 특수재난구조대의 매뉴얼대로 그 의무를 다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말에 김민정은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들고는 바닥으로 내리쳐 힐 부분을 부러트렸다.

빠각.

구두를 신기 편하게 뾰족한 힐 부분을 부러트린 거였고, 그렇게 부러트린 구두를 다시 신고는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내 긴 머리를 정리했다.

“그럼 가야죠. 근데 성하 씨는 그 매뉴얼이 아니었어도 바로 달려갔을걸요?”

“하하…….”

“그리고 저도 같이 가요.”

“민정 씨도요?”

“한국은 아니지만, 저는 이런 상황에 필요한 의사잖아요. 예전 놀이공원 때처럼요.”

이성하와 함께했던 놀이공원 때의 이야기를 입에 올리며, 자신도 이성하의 곁에서 함께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거부할 사안이 아니었다.

[김민정이라면 훌륭한 파트너지.]

렉스의 말처럼 김민정이 이런 상황에서 꼭 필요한 의사라는 걸 잘 알아서였다.

“붕대 있어요?”

“여, 여기요.”

“환자분 일단 소독부터 할게요. 조금 쓰라려요.”

치이익.

예전 동아랜드 화재 당시, 현장에서 화상 환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했기에.

“좋아요, 가요.”

“그래요.”

김민정과 함께 레스토랑 건물을 나섰다.

탁탁탁탁.

다른 선택은 없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장으로 뛰는 두 사람이었고, 그러던 와중 서로 눈빛을 마주친 두 사람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민정 씨, 꽉 잡아요.”

“아시잖아요. 제 걱정 안 해도 되는 거.”

예전 동아랜드 때도 이렇게 손을 잡고 달려간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엄마. 흐윽.”

“루니, 빨리! 빨리 피해야 해!”

“대피해!! 모두 물러나!”

“꺄아아악.”

건물로 다가가기 위해 달려가는 두 사람과 달리, 수천 명의 사람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건물에서 멀어지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삐뽀삐뽀!

이에에에엥!

차도로는 경찰차와 소방차들이 쉴 새 없이 사이렌을 울리며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고, 그렇게 잠시 후 도착한 현장은 말 그대로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성하 씨, 건물이…….”

“네, 보고 있어요…….”

폭발이 발생한 시어스 타워의 60층 정도 높이 외벽 부분이 큰 상흔을 보이며 갈라져 있었다.

화르르르르!

그 상흔 사이로 거대한 화염이 용솟음치듯 피어오르고 있었고, 문제는 그 상흔에서 떨어져 내리는 외벽 잔해의 존재였다.

콰르르르!

붕괴가 진행 중인지,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들이 빌딩 주변으로 계속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콰쾅!

“사, 살려 줘요.”

“으아아아앙.”

“제길, 일단 물러나!”

“저 사람 구해야 해!”

그런 잔해 더미의 낙하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고함이 울부짖듯 외쳐지고 있었으며, 그에 이성하는 단호한 표정으로 김민정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절대 다가오지 마요. 여기 있어요.”

“서, 성하 씨는요?

“저도 건물로 들어가지는 않을 거예요. 일단 근처의 사람만 구할 겁니다.”

모두를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살릴 수 있는 사람만은 확실히 살려야 했다.

“끌어내!”

“사람 더 없어! 일단 밖으로 옮겨!”

먼저 도착한 소방관들과 경찰관들이 사력을 다해 부상자들을 건물 멀리 끌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죽을 거야…….”

“으허허헝.”

“허억, 허억.”

건물 입구와 그 주변 도로로 부상을 입어 쓰러진 사람들이 너무 많은 상태였고, 그에 이성하는 망설임 없이 눈에 보이는 부상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사, 살려 줘요…….”

“알았어요, 가고 있어요!”

건물 내부의 부상자들까지는 힘들더라도, 도로 주변으로 쓰러져 있는 부상자들에 대한 구조만큼은 진행할 마음으로 몸을 움직인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콰르르르!

“성하 씨!”

김민정이 다급히 고함을 지를 정도로, 계속해서 건물의 잔해들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상황이었다.

콰쾅!

큰 잔해는 아니었지만 떨어지며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 잔해의 모습을 보면, 직격이라도 당했다가는 큰 부상을 입을 게 분명한 상황.

하지만 이성하에게는 렉스가 있었다.

[위는 내가 본다. 확실히 집중만 해.]

‘네!’

자신은 부상자를 본다면, 허공에서 떨어지는 잔해의 움직임은 렉스가 봐 줄 수 있었다.

[오른쪽!]

‘으차!’

콰각!

근처로 잔해가 떨어질 때마다 귓가를 울리는 렉스의 지시에, 떨어지는 잔해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부상자들에 대한 접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디 다치셨어요?”

“허리, 허리가 아파…….”

“알겠어요. 제가 팔 잡고 끌게요.”

질질질질.

부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체크하며 그들의 몸을 천천히 건물에서 멀어지게 도왔으며, 그렇게 몇 명의 사람들을 건물 멀리 대피시키는 데 성공했다.

“민정 씨!”

“이쪽이요, 이쪽으로 눕혀 주세요!”

“네!”

대피는 물론, 김민정과 함께 근처의 한 가게 안으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부상자들을 안전하게 이송시킨 것이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이성하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성하 씨, 더 이상은…….”

“알아요, 여기까지가 한계예요.”

김민정의 걱정처럼 더는 무리할 마음이 없었다.

애초부터 비번 상황에서 특수재난구조대의 역할은 상황에 대한 파악이지, 직접적인 구조 진행은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현재 이성하에게는 보호장구가 없었다.

[들어가면 죽는다.]

‘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이죠.’

방화복을 입어도 무사하다고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아무 보호 장비 없이 폭발이 발생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을 시도하는 거나 다름없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이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이에에에엥!

‘왔다. 시카고 소방국.’

시카고 소방국을 상징하는 ‘Chicago Fire Dept’라는 명칭을 차에 새긴 소방차들이 속속들이 현장에 도착하고 있었다.

“우리는 5층으로 올라간다.”

“사다리차 준비시켜!”

“팀별로 들어간다, 방심하지 마라!”

도착과 동시에 장비를 챙겨 들며 바로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소방관들이었고, 그 수는 눈으로 보이는 숫자만 수백 명이 넘었다.

[역시 시카고 소방국. 뉴욕 소방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시립 소방국답다.]

‘네, 엄청나네요.’

뉴욕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가 시카고인 만큼,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달려온 소방관들의 숫자가 엄청났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구해 온 부상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만 집중했다.

“앰뷸런스 팀, 저쪽에 부상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상자요? 어느 쪽이죠?”

“저기 사거리 돌면 보이는 녹색 가게입니다.”

“녹색 가게.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구급 막사를 설치하는 앰뷸런스 팀을 찾아가, 자신과 다른 시민들이 구해 온 부상자들의 존재를 알렸고.

“CF2의 이성하 소방관이라고 합니다. 혹시 위성 전화 좀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아, LA카운티.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옆에 지휘 막사에 들러 전화가 가능한 위성 전화기를 빌렸다.

- 여보세요?

“오웬? 나 성하야.”

- 미스터 리?

“그래. 현재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에 있는데 현장 상황 보고하려고 전화했어.”

특수재난구조대의 일원으로서 근처에서 발생한 재난 상황에 대해 보고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리고 그 내용은 당연히 긍정적이었다.

- 문제없을 거 같단 말이지?

“어, 건물이 무너지거나 한 상황은 아니야. 그리고 시카고 중심지에서 발생한 사고다 보니, 방금 수백 명의 시카고 소방국 소방관들이 건물 안으로 진입했어. 고층빌딩 폭발이라 사망자 숫자는 좀 돼 보이지만, 더 큰일은 없을 거 같아.”

섣부른 판단은 이르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더 이상의 큰 사고는 없을 듯 보였다.

- 역시 시카고 소방국이란 건가?

“그래, 대처가 굉장히 빠르더라고. 바로 근처에 있었는데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시민들 대피를 바로 시도하면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어.”

귓가로 들리는 오웬의 감탄사처럼, 놀라운 속도로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시카고 소방관들의 대처에 속으로 감탄을 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콰콰쾅!

드드드드드.

순간 시어스 타워의 30층 높이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성하, 무슨 소리야?

“지금 시어스 타워에 2차 폭발이 일어났어……. 30층 정도 되는 높이야.”

수백 명의 소방관들이 건물에 진입한 상황에서, 또 한 번의 2차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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