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90화 (190/235)

<강철 소방대 190화>

190화. 어떤 이유라도 (1)

출동 허가 권한을 얻게 된 후부터 이성하의 생활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쁘게 돌아갔다.

삐~빅! 빼액~

“출동!”

“가자고, 성하.”

“옛썰!”

당당히 현장소방관으로서 긴급하게 울리는 출동 벨에 대응했으며.

“헬기에서 이걸 타고 내려간단 말이지?”

“어, 공중에서 작업해야 하는 만큼, 안전줄은 3개를 달아야 해. 그리고 모든 작업은 이 윈치를 통해서 이뤄지고 말이야.”

“윈치를 통해서. 오케이, 이해했어.”

출동이 없을 때는 본부 내에 진행되는 각 팀의 훈련에 참가하는 바쁜 연수생으로서의 일정을 보냈다.

하지만 매일 바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다들 이번 주 쉬는 날에 뭐 해? 나랑 등산 갈 사람 없어?”

매일같이 바쁜 일정을 이어 가는 소방관도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쉬는 날이 존재했다.

“나는 캠핑.”

“난 여자 친구랑 낚시가기로 했어.”

“나도 안 돼. 이번 주는 아이들과 놀아 줘야 해.”

각자의 가족들과 여가를 보내는 휴일이 존재했고, 그건 이성하도 마찬가지였다.

“미스터 리, 너는?”

“나도 약속 있어.”

“뭐? 약속?”

“뻥치지 마. 네가 약속이 어디 있어?”

“성하가 약속이 있다고?”

이성하의 약속이 있다는 말에 다들 말도 안 된다며 피식 웃음을 지었지만, 이성하는 확실히 약속이 있었다.

“어허, 약속 있다니까 그러네.”

가방에서 비행기 티켓을 들어 보이며 하는 말이었다.

“이래 봬도 시카고에서 데이트가 있어. 캡틴이 허락해 줘서 월요일까지는 여기서 쉬다 올 거야.”

캡틴의 허락하에 주말만이 아닌, 월요일까지 시카고에서 푹 쉬다 올 거라고 말했으며, 그 말뜻을 모르는 동료들은 없었다.

“시카고? 그때 왔던 미스 킴?”

“오오, 성하. 여자 친구 만나러 가?”

“키야, 역시 성하도 남자구만. 즐겁게 보내다 오라고.”

이미 이성하의 여자 친구로 알려진 김민정이, 일 때문에 당분간 시카고에서 묶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다음 날 새벽 일찍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4시간이면 좀 걸리겠네. 한숨 푹 자라.]

‘그래야겠어요. 일찍 일어나다 보니까 너무 졸려요.’

시카고가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에 위치해 꽤 먼 거리에 있는 만큼, 비행기에 타자마자 바로 잠을 청했고, 그렇게 4시간 후 처음으로 맞이한 시카고의 광경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와, 대단하네.”

LA와는 다른 멋이 있는 도시였다.

[뉴욕 다음으로 마천루가 많은 곳이 여기야. 확실히 도시 느낌 나지?]

‘네, 고층빌딩들이 엄청 많네요.’

렉스의 말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고층빌딩들이 공항을 나오자마자 잔뜩 늘어선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한 가지 더 독특한 게 있었다.

‘이거 바다예요?’

그런 고층빌딩들이 늘어선 도시를 거대한 바다가 감싸고 있었다.

[바다 아니고 호수야.]

‘호수요?’

[응, 미시간호. 북아메리카 오대호 중 하나가 바로 이거야. 크기가 아마 네가 살고 있는 한국과 비슷할걸?]

렉스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바다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호수가 도시를 감싸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내 시카고의 광경을 정신없이 찍기 시작했다.

‘이야, 미국은 정말 도시마다 특색이 있네. LA는 고층빌딩들이 다 떨어져 있어서 도시 느낌이 전혀 안 났는데, 여긴 말 그대로 완전 도시야. 그것도 해안 도시.’

LA가 아기자기한 단독주택들과 영화마을이라는 특색으로 이성하의 눈을 사로잡았다면, 말 그대로 미국 본토의 도시 느낌으로 이성하의 눈을 사로잡은 게 시카고의 매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 민정 씨.’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이 김민정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걸 상기하고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사진은 나중에도 찍을 시간 있으니까. 일단 민정 씨에게 집중하자.’

모처럼의 휴일을 김민정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이성하는 차도 렌트하는 등 많은 걸 준비한 상태였다.

“민정 씨, 알려 준 숙소까지 10분이면 도착할 거 같아요.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공항에서 멋들어진 SUV차량을 렌트해 김민정을 직접 데리러 가는 중이었으며, 그런 이성하의 등장에 김민정이 배시시 웃은 건 당연했다.

“성하 씨, 렌트했어요?”

“네, 며칠 같이 돌아다니려면 차가 필요할 거 같아서요. 예쁘죠?”

“호호호. 네, 예뻐요.”

김민정이 기쁜 듯 웃는 건 차가 예뻐서가 아니라, 이성하의 마음이 예뻐서였다.

‘구두 신을 거 알고, 차까지 렌트해 왔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자신이 신은 구두를 슬쩍 보며 웃는 이성하의 모습에 자신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이성하의 준비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일단 타요, 우리 식사부터 하러 가요.”

한국에서는 김민정이 대부분의 데이트 계획을 짜 왔다면, 오늘은 자신이 준비한 데이트라는 생각에 식사부터 돌아다닐 곳까지 일정을 촘촘하게 짜 왔다.

“식사요? 어디요? 시카고에 아는 곳 있어요?”

“아는 곳은 없지만 공부해 왔죠. 일단 타요. 좋아할 거예요.”

궁금해하는 김민정을 향해 일단 타 보면 안다며 씨익 웃음을 지었고, 그렇게 이성하가 김민정을 데리고 간 곳은 시카고 강 중앙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이었다.

“예약하셨습니까?”

“네. 성하 리, 1시입니다.”

“오케이, 이쪽으로 오세요.”

정장을 입은 여성 웨이터가 정중한 모습으로 안내해 주는 호텔 분위기의 레스토랑이었으며, 그에 김민정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성하 씨, 여기 너무 비싸지 않아요?”

“와 본 적 있어요?”

“아니요, 와 본 적은 없는데. 알기는 하죠.”

와 보지는 못했지만, 워낙 유명했기에 알고 있는 곳이었다.

“시카고에 왔으면 거긴 꼭 가 봐야지. 깁슨 이탈리아.”

“깁슨 이탈리아요?”

“응. 가격이 좀 비싸긴 한데. 스테이크 맛도 좋지만 일단 분위기가 장난 아니야. 멋들어진 시카고 강을 보면서 스테이크를 즐기는 맛이 최고거든. 그리고 만약 가게 되면 코스 요리로 예약해서 꼭 3층 창가 자리로 가야 해. 거기서 보는 풍경이 정말 끝내줘. 꼭이야, 3층.”

지금 논문 작업을 같이하는 시카고 대학 병원 동료들이 꼭 한 번은 가 봐야 한다며 극찬하는 레스토랑이 바로 이 깁슨 이탈리아였고, 마침 앉게 된 자리 역시 그 3층 창가 자리였다.

“말씀하신 코스 요리 그대로 준비해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동료의 말처럼 요리 중에서 가장 비싼 코스 요리로 예약해,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김민정은 들뜬 마음보다는 걱정이 됐다.

“성하 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이성하가 자신 때문에 생각보다 큰돈을 쓴다는 생각에서였다.

“무리요?”

“네, 가뜩이나 미국 물가도 비센데, 성하 씨 여기에 돈을 너무 쓰면 어떡해요. 전 괜찮으니까 우리 다른 데 가요. 얼른요.”

이성하가 연수 중에도 한국에서 월급을 받는 건 알고 있지만, 그 돈으로 미국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이렇게 한 번에 돈을 많이 쓰면 남은 생활을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저 미국에서 따로 특별수당 받는 게 있어서 그 정도는 아니에요.”

“특별수당이요?”

“네, 전에 이야기했죠? 연수 기간 동안 현장직으로 근무하게 됐다고. 그래서 저 미국에서도 따로 월급이 나오게 됐어요. 특수재난구조대 연봉으로 따지면 9만불 정도인데 저는 6개월만 있으니 반 정도는 받을 거 같아요.”

이성하는 단순히 연수생 신분만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LA카운티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관으로서도 활동하기에 그에 따른 월급을 받게 된 상태였다.

특수재난구조대의 연봉이 한국 돈으로 대략 1억인 만큼, 연수 기간에 따라 그 연봉의 반은 받게 된 것이다.

원래 미국 소방관들의 연봉은 평균 5만불 정도지만, LA카운티의 소방관들은 시민들의 숫자와 산불이 많은 지역의 특성상 다른 지역보다는 더 높은 연봉을 받았고, 이성하 역시 같은 LA카운티의 소방관으로 인정돼 그 높은 연봉을 받게 됐다.

“저도 월급을 줘요?”

“당연하지. 널 안 주면 다른 소방관들에게 월급을 어떻게 줘? 무료 봉사는 있을 수 없어. 목숨 걸고 일한 만큼 당연히 받아야지. 그러니까 다음 주까지 통장 만들어서 사무과에 제출해. 2주마다 입금될 테니까.”

찡긋.

도시구조대를 담당하는 모스대장이 월급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사무과에 통장을 만들어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이 정도 지출 정도는 상관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있어도 괜찮았다.

“그리고 민정 씨한테 쓰는 돈은 아깝지 않아요. 절 보려고 일부러 미국까지 왔다면서요.”

오로지 자신을 보기 위해 꼬이는 근무일정까지 감수하며 미국으로 날아온 사람이 김민정이었다.

[뻥치시네. 그때 여자들 사이에 정신 못 차린 모습 보인 거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하는 거면서.]

‘…….’

물론 렉스의 말처럼 살짝 찔리는 마음에 이렇게 준비한 거긴 했지만,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편하게 드세요. 정말 괜찮으니까.”

따뜻한 눈빛으로 예쁘게 꾸미고 나온 김민정을 바라봤고, 김민정 역시 그 눈빛에 미소를 지은 건 당연했다.

“좋아요,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요. 안 그래도 한번 와 보고 싶던 곳이긴 했거든요.”

단순히 이성하의 얼굴을 보기 위해 미국행을 선택한 그녀였던 만큼, 자신을 챙기는 이성하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어지는 식사 자리는 두 사람 모두 굉장히 즐거웠다.

“달리는 트럭에서 낙하산을요?”

“그런다니까요.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데 제정신이 아니에요, 다들.”

“호호호, 이야기 들으니까 또 가 보고 싶어요.”

“왜요? 와서 또 토하려고요.”

“아, 진짜!”

“푸하하하.”

아름다운 경치에, 맛있는 음식. 거기에 좋아하는 사람까지 앞에 있다 보니, 즐거울 수밖에 없는 자리가 지금의 데이트였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참, 그 데일은 잘 지내요?”

“너무 잘 지내서 탈이죠. 심심하다고 시카고 따라온다고 하는 걸 말리…….”

김민정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하는 순간.

“……!”

오랜만에 심장을 옥죄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서, 성하 씨, 왜 그래요?”

그 모습에 김민정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잠깐만요.”

계속해서 빨라지는 심장 소리에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고, 그렇게 잠시 후 눈에 들어온 광경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콰콰쾅!

“아…….”

창가 너머로 한 고층빌딩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화르르르르!

한눈에도 보일 정도로 새빨간 화염이 한 건물을 휩싸고 있었으며, 그에 건물이 무섭게 떨리기 시작했다.

“민정 씨, 탁자 아래로!”

“아…….”

“빨리요!!”

드드드드!

이유는 모르지만, 주변의 건물 모두를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시카고에서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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