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89화 (189/235)

<강철 소방대 189화>

189화. 시민의 영웅 (3)

다음 날 아침, 일찍 정신을 차린 김민정은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저기 민정…….”

“아무 말도 하지 마요. 저는 어제 아무 일도 없던 거예요. 아니, 아예 LA카운티에 온 적이 없는 거예요. 알겠죠?”

“…….”

뭐라 말하려는 이성하의 입을 단호한 표정으로 막아 버리고는 도망치듯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고, 그 모습은 출근하며 마주한 로렌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헤이, 로렌스.”

“안 들려! 안 들려!”

“…….”

인사를 하기 위해 든 손이 무색하도록, 바로 고함을 지르며 시야 밖으로 사라진 그녀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어색함이 하루 만에 끝났다는 거였다.

- 휴, 겨우 짐 정리 다 끝냈어요. 고작 두 달만 있는 건데 짐이 왜 이리 많나 모르겠어요.

시카고로 간 김민정은 그다음 날 바로 전화를 걸어와 전날의 일은 까마득하게 잊었다는 듯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성하, 나 운동 좀 도와줘.”

“우, 운동?”

“어, 오늘 중량 치는 거 1RM 재는 날이라서 보조가 좀 필요하거든.”

마찬가지로 체력단련실에서 다시 만나게 된 로렌스 역시 스스럼없이 손을 들어 1회 최대 반복 운동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둘 다 이랬다저랬다 뭐 하자는 거야…….’

그에 이성하는 바로 속으로 불평을 토했지만, 겉으로는 웃음을 지었다.

“고생했네요, 민정 씨. 식사는 했어요?”

“알았어, 로렌스. 내가 도와줄게. 잠깐만.”

아직도 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신상에 좋을 거라는 만큼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특수재난구조대에서 근무하는 로렌스와의 관계는 중요했다.

“성하, 너 오늘부터 현장출동 허가 떨어졌다.”

지금껏 후보생 권한 정도로 참관만 가능하던 출동에, 현장직으로 활동해도 좋다는 참가 허가가 떨어졌다.

“현장출동이요?”

“응, 부국장님 지시야. 자격증은 없지만, 지난번 산타클라리타 화재에서 활약한 공로를 특별히 인정해서 현장참가를 허가하겠대. 그러니 오늘부터 떨어지는 모든 출동에 참가해도 좋아. 이걸 축하한다고 말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지난 산타클라리타 화재에서 이성하가 보여 준 활약이 인상 깊었는지, 본부 사령관인 부국장이 팀장 마크가 올린 이성하의 현장출동 허가서를 승인한 거였고, 그에 이성하는 소속된 도시구조대의 훈련만이 아닌, 다른 구조대의 특별 훈련에도 참가하게 됐다.

“그리고 성하, 이번 주부터는 주말마다 스모크 점퍼 팀에 합류해서 공수 훈련받아.”

“공수 훈련이요?”

“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종종 헬기 이용해서 현장에 접근하는 경우도 있거든. 그래서 스모크 점퍼 팀에서 공수교육 좀 받아. 너 낙하 경험 없다며.”

앞으로 2팀의 현장출동에 모두 현장직으로 참가하게 된 만큼, 헬기로 현장에 출동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스모크 점퍼 팀에서 교육 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성하의 교육 교관은 로렌스였다.

“안녕하십니까, 구조2팀의 이성하입니다.”

“오오오오! 미스터 리!”

“로렌스, 네 남편 왔는데?”

“시끄러워 새끼들아.”

“아, 왜 그래. 우리는 다 네가 잘되기를 바라는…….”

“아덴, 너 한마디만 더 하면 진짜 죽여 버린다.”

“어이쿠.”

지난 바비큐 파티 당시, 로렌스와 김민정이 이성하를 사이에 두고 묘한 신경전을 벌인 걸 알고 있는 스모크 점퍼 팀원들이 바로 장난을 쳐서였다.

“그럼 미스터 리 교육은 로렌스가 맡아. 교육은 친한 사람이 하는 게 낫겠지.”

“푸하하하.”

그런 장난에 피식 웃은 팀장이 바로 이성하의 훈련 교관으로 로렌스를 지목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주말만 되면 이렇게 헬기를 타고 로렌스와 공수 훈련에 나가게 됐다.

“하, 역시 좋다.”

“좋아?”

“어. 이렇게 하늘에서 도시 경관을 보는 게 장관이란 말이지.”

헬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 아름다운 도시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뭐라 설명할 수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처음 탈 때만 해도 벌벌 떨던 놈이 허세는.]

피식 웃는 렉스의 목소리처럼 처음 공수 훈련을 진행할 때 이성하의 모습은 그야말로 겁보였다.

“장관? 빨리 낙하산 펼쳐야 한다고 고함지르던 놈 어디 갔더라?”

“끄응…….”

마찬가지로 옆에서 웃는 로렌스의 말대로, 처음 경험하게 된 공수 훈련에서 같이 뛰어내린 로렌스에게 빨리 낙하산을 펼쳐야 한다고 울부짖듯 고함지른 게 이성하의 첫 공수였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당당했다.

“처음은 원래 그런 거야. 공수는 한국에서도 안 해 봤다고.”

일반 육군 출신인 이성하로서는 헬기를 탄다는 경험 자체가 생소했다.

에베레스트 사고 때, 헬기로 이송된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때는 기절해 있다 보니 아예 그에 대한 기억 자체가 없었고, 낙하산을 메고 뛰는 경우는 더 그랬다.

‘아마 권 대장님이 뛰셔도 그랬을 거야. 어떤 소방관이 낙하산을 메고 현장에 출동하겠어?’

헬기에서 로프로 출동하는 경우는 있어도, 군인처럼 낙하산을 이용해 현장으로 출동하는 경우는 한국에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내가 한국 최초라고. 오케이?”

툭툭.

당당하게 가슴을 치며 공수 출동을 하는 최초의 한국 소방관은 자신이라고 흐뭇하게 웃었고, 그 말에 렉스와 로렌스는 트집을 잡지 않았다.

[뭐, 그건 인정.]

“이제 1인분은 한다고 인정할 정도는 되지.”

단 세 번 만에 기초를 떼고 개인 낙하를 시작한 이성하의 빠른 습득력 때문이었다.

“성하, 오늘 네 차례는 세 번째야. 오케이?”

“라져!”

스모크 점퍼 팀의 팀장이 스스럼없이 이성하의 낙하 순번을 정해 주는 모습처럼 이제는 훈련 때마다 개별 낙하를 진행하는 상황이었고, 그런 이성하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스터 리, 고고.”

“옛썰!”

화아아악.

팀장의 낙하 지시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공중으로 몸을 날릴 정도로 스모크 점퍼 팀의 공수 낙하에는 완벽하게 익숙해진 이성하였으니까.

군대에서 공수 훈련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깟 공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모크 점퍼 팀의 공수 낙하는 단순히 뛰어내리는 거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번지!”

휘이이익.

가볍게 낙하산만 등에 메고 단번에 뛰어내리는 게 군인의 공수 낙하라면.

“후우, 후우.”

화아아악.

낙하산만이 아닌, 무거운 방화복에 도끼와 같은 생존 장비들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뛰어내리는 게 스모크 점퍼의 공수 낙하였고, 그렇게 낙하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일이 시작되는 게 스모크 점퍼였다.

휘익, 휘익.

‘넌 좌측으로.’

세 번째로 낙하한 이성하에게 팀장이 왼쪽으로 향하라며 손을 흔들었다.

끄덕.

그에 고개를 끄덕인 이성하가 바로 몸을 기울여 팀장이 말한 위치로 착륙 방향을 잡았으며, 그게 스모크 점퍼 팀의 공수 낙하였다.

- 오케이, 전부 예쁘게 벌어졌다. 대원 전원 안전 포인트 착륙 완료. 나무에 걸린 인원 없는 걸로 확인된다.

낙하한 모든 대원의 귓가로 들리는 무전 내용처럼, 단순한 평지에서 낙하가 이뤄지는 게 아닌, 실제 산불이 일어난 걸 가정해 숲이 우거진 삼림에서 낙하 훈련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삼림에서 개별 공수 훈련이 가능하다는 건, 언제든 산불이 일어나면 스모크 점퍼팀의 대원으로 출동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퍼펙트! 미스터 리. 도시구조대 발로 차버리고 이쪽으로 올 생각 없어?”

“스모크 점퍼로요?”

“그래. 자격증이고 뭐고 책임지고 내가 전부 발급해 주지. 훈련 과정은 지금 진행하는 걸로 커버하면 되고 말이야.”

스모크 점퍼 팀의 팀장이 이성하를 보자마자 바로 엄지를 치켜드는 모습처럼, 이미 공수 낙하의 기술만큼은 현장 대원이 인정할 정도로 완벽하게 습득한 이성하였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 말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 일찍 죽기 싫어요, 캡틴.”

“일찍 죽어?”

“여긴 미친놈들만 오는 데잖아요. 하하.”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럼 미친놈들이지. 여기 들어왔다가는 너, 제 명에 못 죽을 확률이 높아.]

렉스의 말처럼 죽지는 않겠지만, 들어왔다가는 한두 군데는 부러질 각오를 해야 할 곳이 이 스모크 점퍼 팀이었다.

임무 자체에 위험한 고공 낙하가 포함되다 보니, 장난을 쳐도 그 스케일이 다른 소방관들보다 더 큰 곳이 이 스모크 점퍼 팀이었고, 그 광경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한다.”

“어? 오늘은 내 차례지.”

“야이 미친놈아. 너 저번 주도 했잖아.”

“쉣, 야 그냥 가위바위보 해. 단판 승부야.”

“콜.”

“그럼 단판이지.”

낙하산과 장비를 회수한 스모크 점퍼 팀 대원들이 언성을 높이며 가위바위보에 들어갔다.

“가위바위보!”

“아…….”

“오케이. 에릭 빠지고 다시.”

몇 번의 가위바위보를 통해 한 명의 승자를 가려내는 혈투를 펼쳤으며, 이번 혈투의 승자는 로렌스였다.

“좋았어!!”

“아…….”

네 명의 남자 대원들에게서 멋지게 승리를 쟁취하고 거침없이 포효를 내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 모습을 전혀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부 미쳤어…….’

승자가 하게 될 행위를 잘 알아서였다.

“오케이, 패트릭. 출발해.”

쾅! 쾅!

낙하산을 맨 채 픽업트럭의 트렁크 함에 올라가 빨리 출발하라며, 차 천장을 거침없이 두들기는 그녀였고.

부아아앙!

그 신호에 차가 속도를 올리며 도로를 질주하는 순간, 로렌스는 낙하산 줄을 당겼다.

촤아아악.

“끼야호!!”

방금의 낙하로도 성이 안 차는 듯, 자동차의 가속력을 이용해 낙하산으로 행글라이더 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히 추락이었다.

“어엇!”

콰당탕!

보는 이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도로 한편으로 처박힌 로렌스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로렌스는 웃고 있었다.

“로렌스 괜찮아?”

“그럼, 문제없지.”

탁! 탁!

팔에 차고 있던 팔목보호대를 손으로 탁탁 치며 씨익 웃었고, 그에 이성하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확실히 정했다.

‘절대 안 가. 갔다가는 어디 하나 무조건 골절 확정이다.’

[그럼 그럼~]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장난을 펼치는 미친놈들의 부대에는 절대 갈 수 없다고 굳게 다짐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스모크 점퍼 팀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 * *

“CF2의 스모크 점퍼. 방금 훈련 마치고 본부로 돌아가는 중으로 보입니다.”

망원경을 든 채, 무전으로 스모크 점퍼 팀의 행적을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광경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 NF1. 도시구조대 합동훈련 중이다.

- 펜실베니아 구조대, 오늘은 휴무임.

- 플로리다의 FF2는 오늘 파티 중이다.

- 매리언 카운티, 현재 합동 훈련 중.

.

.

.

미국 전역에 위치한 특수구조대의 행적들이 낱낱이 한 사람에게 보고되고 있었으며, 그 사실을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케이, 계속 수고 바란다.”

지직.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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