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87화>
187화. 시민의 영웅 (1)
산타클라리타 공장 구역에 발생한 화재는 항공구조대의 지원에 힘입어 순식간에 진압됐다.
- 여기는 TF4. 파이어 완료. 임무 완수하고 돌아가겠다.
- TF7. 파이어 완료. LA카운티의 무사 임무 완료를 기원한다.
쏴아아아아아!
각자의 소속을 밝히며 연달아 물을 투하하는 소방헬기들의 지원에.
치이이이익.
물을 사용할 수 없는 금속공장을 제외하고는 전부 진화됐고, 당연히 그 과정은 실시간으로 미국 전역에 대서특필됐다.
- 안녕하십니까. BBC 앵커 메이첼입니다. 오늘 오후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리타 공장 지대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알려 드렸는데요. 방금 그 화재가 모두 진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자연 소화 방식으로만 진화가 가능한 금속공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불이 꺼진 상태이며…….
- ABC의 케이티 기자입니다. 오늘 발생한 캘리포니아 공장 화재는 화학 공장에까지 불이 옮겨붙어 대형 재난을 예고했는데요. 이 재난을 우리 소방관들이 훌륭하게…….
- 환상적인 순간입니다. 지금 불이 꺼지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현장에 먼저 도착한 LA카운티 소방관들이 시간을 끌고, 그 뒤로 전 지역에서 날아온 항공구조대가 멋지게 공장구역에 발생한 화재를 제압했습니다! 정말 이 광경은 놀라운 광경으로…….
이미 몇 번의 대형폭발로 언론의 관심을 끈 것도 있었지만, 그 폭발로 대형 인명 피해를 발생시킬 수도 있는 화학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미국의 모든 방송사들이 현장을 주목하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미국 전역은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 그렇지! 바로 이거지!!
- 역시 LACOFD. 이번에도 해낼 줄 알았다고!
- 얼마나 뜨겁고 무서웠을까? 그럼에도 그들은 그 불길 속에서 물러서지 않았어. 저들이 진짜 영웅이야.
- 맞아, 역시 우리의 영웅들이야. 모두가 공장이 폭발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겁에 질렸을 텐데, 그들만이 그 폭발을 막아 내기 위해 공장으로 달려갔다고.
- BBC에서 공장이 폭발하는 광경을 내보낼 때만 또 무슨 일이 일어나나 걱정했는데, 그 폭발 앞에 노란 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 난 걱정을 내려놨지. 왜냐고? 곧 그깟 폭발 따위는 그들이 막아 낼 거라는 걸 너무 잘 알았으니까.
- 지금쯤 다들 손에 맥주를 들고 있겠지? 안 들고 있다면 당장이라도 냉장고를 열어. 오늘은 파티야.
- 당연한 소리. 난 이미 헬기가 등장했을 때 두 병을 그대로 원샷했다고. 오늘도 우리를 구원해 준 영웅들에게 건배를.
자칫하면 대형 재난이 발생할 뻔한 상황을, 그들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소방관들이 훌륭하게 막아 냈다는 소식에 모두 고함을 지르며 축배를 들어 올렸으니까.
그리고 모두 기대하는 표정으로 곧이어 발표될 LA카운티의 소방국의 입장표명을 기다렸다.
“아, 왜 안 올라와? 시간이 몇 시인데?”
항상 이런 재난을 막아 내면 그 지역의 소방국 홍보부에서 자신들의 공로를 자랑하는 SNS를 올리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영웅입니다. - 뉴욕 소방국>
<안심하세요, 오늘도 지켜 냈습니다. - 시카고 소방국>
<우리는 슈퍼맨을 친구로 두고 있죠. - 보스턴 소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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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역의 소방국들은 서로가 자신들이 최고라며 재난을 해결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현장 사진과 함께 자신들의 공로를 자랑하는 멘트를 남기는 게 일상적이었고, LA카운티 역시 그 유행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파격적이었다.
“영상…….”
그들이 올린 건 사진이 아니라 영상이었다.
콰콰쾅!
<지옥에서 영웅들이 불길을 제압하고 돌아왔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공장이 폭발하는 장면과 함께 빨간색으로 자극적인 타이틀 자막이 떠올랐으며, 그 뒤로 나오는 영상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화르르르르!
부르릉!!
완전히 불바다가 된 화학 공장으로 거대한 소방차량이 돌진하는 장면이 나왔다.
콰콰쾅!
엄청난 속도로 질주한 소방차량이 불길로 뒤덮인 돌벽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이 그대로 이어졌으며.
쏴아아아아아!
잠시 후, 헬기들이 나타나 불길을 꺼 버린 화학 공장 안에서 몇몇 소방관들이 걸어오는 장면이 나왔다.
마치 소방관을 모집하는 광고 같은 영상이 LA카운티 소방국의 SNS를 통해 올라온 것이다.
당연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미친, 개 멋있어.
- 와, 소방차로 돌진한 거야? 이놈들 진짜 미친놈들인데?
- 저런 과정을 통해 산타클라리타 화재를 진압했다는 거지?
- 영상 설명 보니까 안에 폭발로 고립된 소방관들이 있어서 저런 식으로 진입했다고 하네. 진짜 대단하다. LA카운티 너희가 최고다.
- 저런 위험한 과정을 통해 화재를 진압했다는 사실에 진짜 소름이 돋는다. 산타클라리타 주민들은 정말 소방관들에게 너무 감사할 듯.
- 남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던질 각오로 살아가는 그들의 각오가 느껴짐. 너희들이 진짜 영웅이다, LACOFD.
공장에 발생한 대형화재가 소방관들이 단순히 호스만 잡고 물만 뿌려서 제압된 게 아닌, 몇몇 소방관들의 목숨을 건 헌신을 통해 이뤄진 결과라는 사실에 모두가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주목받는 건 소방차량을 몰고 돌진하는 소방관이었다.
- 어디 소속 소방관이야?
- 미스터 리. LA카운티 소방국에 전화했더니 특수재난구조대 소속이라는데?
- 미스터 리라고?
- 한국의 소방관이래. 노스 코리아.
- 바보야, 노스가 아니라 사우스다.
많은 소방관과 대중들은 LA카운티 소방국에 문의해 영상에 나오는 소방관의 이름을 물었으며, 그에 이성하의 정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 한국? 한국 하면 예전의 에베레스트 히어로가 떠오르는데. 그 친구는 아니겠지?
- 그 에베레스트 히어로가 맞아. 내가 한국어를 좀 아는데 이름이 같네. 성하, 이.
- 미친! 진짜야? 영상에서 운전하는 친구가 그 친구야?
- 기사 보니까 그 친구가 맞아. ‘LA카운티는 예전 공로에 감사한 마음으로 한국의 이성하 소방관을 연수생으로 받아들였다’라고 하는데?
- 대박, 나 그 친구 팬인데.
- 나도 팬이야. LA카운티는 이런 중요한 사실을 왜 안 알려 준 거야.
- 미스터 리, 이 글 보면 꼭 연락 줘. 내가 정식으로 우리 펍에 초대하지.
- 나도! 나는 집으로 초대할게. 저 친구라면 내 딸이 결혼할 때 마시려고 아끼던 술을 개봉할 용의가 있다고!
한국이라면 금방 잊혔을 사건이지만, 소방관과 군인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미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에베레스트에서 자국 소방관을 구해 준 이성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날 이후로 이성하가 출근하는 특수재난구조대에는 시민들의 많은 선물이 쏟아졌다.
“마크, 이거 전부 2팀에 온 소포예요.”
“전부? 이거 전부 우리 거라고?”
“네, 시민들 선물이라는데 잘은 모르겠어요. 대부분 미스터 리 이름으로 왔대요.”
많은 시민들이 이성하가 보여 준 용기에 감탄한다며 택배로 선물을 보내왔다.
“마크.”
“왜 또?”
“밖에 나가봐. 누가 TV 기부한다고 왔어. 그 대신 미스터 리랑 사진 한 장 찍겠대.”
이성하의 얼굴을 볼 겸, 기부를 하겠다며 TV를 들고 오는 사람도 있었고.
“다들 점심 안 드셨죠?”
“점심? 점심은 왜?”
“방금 본부로 피자 배달 왔대요. 시민단체에서 미스터 리 이름으로 피자 100판. 배달원 말로는 주문자가 저녁에는 햄버거도 보내겠다고 했대요.”
고생했다고 대량의 음식을 보내오는 시민들도 있었다.
“마크, 이거 나중에 문제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기부는 괜찮은데, 위에서 이걸 기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네. 끄응…….”
원래대로라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을 선물이지만, 팀장인 마크가 곤란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너무 많은 양의 선물이 도착한 상황.
다행히 문제 될 건 없었다.
“뭐, 어때? 시민들 선물이잖아. 선물이면 그냥 마음 편히 즐기라고.”
마크의 고민을 들은 본부의 부국장이 선물인데 무슨 상관이냐며 크게 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크게 일도 치렀는데, 이번 주말에 다 같이 식사나 하는 게 어떨까?”
“식사요?”
“어, 요즘 파티 안 한 지 오래됐잖아. 간만에 다들 공원에 모여서 바비큐 파티나 하자고.”
오히려 대형 재난을 막아 낸 겸 주말에 작은 파티를 즐기자는 제의를 했고, 그에 이성하는 다가온 주말, 본부 바로 옆에 있는 로저 제섭 공원에서 여유롭게 앉아 맥주를 기울이게 됐다.
“헤이, 미스터 리. 고기 맛은 어때?”
“맛있어, 고기가 엄청 부드러워.”
“다행이네. 지금 네가 먹고 있는 고기, 옆 팀의 마이클이 네 환영파티 제대로 준비한다고 밤새 숙성시킨 고기거든.”
“진짜?”
“어, 그 녀석 아버지가 요리사라서 말이야. 이따 가서 고맙다고 말이나 한번 해.”
“하하, 알겠어. 루벤. 고마워.”
옆에서 친근하게 챙겨 주는 데일의 말처럼, 이성하가 팀에 들어온 걸 환영하는 기념을 겸해 본부 소방관들이 모두 참석하는 작은 파티가 벌어졌으니까.
그리고 그런 파티 분위기에 이성하는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파티 좋네요.’
공원에서 파티가 이뤄지다 보니, 근처의 시민들도 모두 나와 파티를 즐기는 중이었다.
“아저씨, 엄마가 도시를 구해 줘서 고맙다고 전해 달래요.”
“하하하, 그래. 엄마에게도 고맙다고 전해 줘.”
“네! 헤헤.”
그 때문에 중간중간 귀여운 아이들이 찾아와 감사하다며 애교를 부리는 일이 있었고, 그보다 더 좋은 건 볼거리가 많다는 거였다.
[야, 저 여자 끝내주지 않냐. 완전 섹시한데.]
‘흠흠.’
렉스의 말에 이성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영상에 나온 소방관이죠?”
“아, 네.”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 주면 안 돼요?”
아이들처럼 미모의 여성들도 이성하를 알아보고 슬쩍 다가와 사진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 요청에 이성하는 거절을 못 했다.
“사, 사진이요?”
“한 장만 찍어 줘요. 부탁해요.”
와락.
“그, 그래요. 얼마든지요.”
바로 옆으로 다가와 팔짱을 끼는 여성들의 육탄공세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성하에게 관심을 표하는 여성들은 시민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헤이, 성하! 친구들 데려왔는데 옆에 앉아도 되지?”
운동을 하며 몇 번 말을 섞은 적이 있던 스모크 점퍼 팀의 로렌스가 반가운 표정으로 친구들을 이끌고 옆에 앉았다.
“이 친구들도 전부 우리 소방국에 같이 근무하는 친구들이야. 다들 성하는 알지?”
“알지. 난 항공구조팀의 제시야. 출동을 나갈 땐 로렌스랑 같이 활동하고 있어.”
“난 화학구조대의 셀리나.”
“난 미셸. 수난구조대의 잠수사로 있어.”
인사를 하는 여성들 모두가 하나같이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소방관들이었고, 그런 환대에 이성하의 마음은 이미 천국을 노닐고 있었다.
“너 제법이더라, 아주 멋있던데?”
“에베레스트 이야기 들었을 땐 과장이 아닌가 했는데, 역시 소문대로였어. 너 진짜 대단하더라.”
“내가 아는 동양인들은 대부분 키가 작던데, 넌 좀 크네. 혹시 이번 주말에 뭐 해? 나랑 데이트 안 할래?”
여성 소방관들이 옆에 앉자마자 자신에 대해 관심을 표하고 있어서였다.
스윽.
“얘 몸 좋은 거 봐. 우연으로 나온 실력이 아니야.”
“아…….”
자유로운 문화 차이 때문인지, 스스럼없이 가슴에 손을 대며 호감을 표하는 여성도 있었고.
‘이성하. 나도…… 나도 껴 줘…….’
‘나도 껴 줘. 미스터 리.’
그런 므훗한 분위기에 이성하는 멀리서 자신을 향해 간절한 표정으로 눈빛을 보내는 데일과 루벤을.
휘익.
그대로 무시했다.
‘미안, 너희들이 앉을 공간이 없네.’
데일과 루벤이 앉을 공간이 없던 것도 있었지만, 이런 미녀들의 관심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야, 너 X된 거 같은데…….]
이성하와 같이 천국을 노닐던 렉스가 갑자기 떨떠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엥,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뒤 봐 봐. 뒤…….]
‘뒤? 뒤에 뭐가 있는데요?’
갑자기 뒤를 보라는 렉스의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고, 그렇게 보게 된 사람의 얼굴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 좋네요.”
“…….”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말없이 몰래 온 건데, 이러고 있을 줄이야.”
빠드득.
한국에 있어야 할 김민정이 뒤에서 무서운 표정으로 이성하를 보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