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86화 (186/235)

<강철 소방대 186화>

186화. 특수공장 화재 (5)

방열복은 대형 화재 현장이나 고온의 작업이 필요한 산업공장 같은 곳에서 사용되는 보호 의류였다.

적절한 불길과 온도, 외부의 충격 등 다방면으로 착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화복과 달리, 오로지 고온의 불길과 열기 등을 차단하는 데만 모든 걸 집중한 내열 의류.

그리고 그런 특성 덕분에 방열복은 방화복에 비해 한 가지 특출나게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었다.

화르르르르!

불길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온의 수증기 등을 방어하기 위해, 신체의 모든 부위를 꽁꽁 감싸야 한다는 거였다.

그 때문에 고성능을 발휘하는 방열복일수록 착용자의 활동성이 무척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고, 소방관이 사용하는 방열복이 그에 속했다.

[엄청 불편해 보이는데?]

‘네, 이거 입고만 있는데도 엄청 덥네요. 움직이는 것도 엄청 힘들고요, 끙.’

방열복으로 갈아입은 이성하가 조금 움직여 보고는 바로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활동성을 극도로 제한하는 제품이 소방관이 사용하는 방열복인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잠깐 희망에 찬 눈빛을 지었던 진압대장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기껏해야 한 명인데 도움이 될까?’

고립된 구조대를 구하러 가는 불길 속으로 진입하는 인원이 이성하 혼자라는 점 때문이었다.

타타타탁.

“으차.”

어떻게든 방열복에 익숙해지기 위해 이성하가 열심히 몸을 풀고 있지만, 확실히 방화복을 입었을 때보다 움직임이 둔한 건 어쩔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RIT팀을 조직해 지원을 보내도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원을 몇 명 더 보충해서 보낸다 해도, 방열복을 입은 상태로는 실린더 몇 개 가져가는 게 전부겠어.’

실제로 고립된 소방관들에게 필요한 건, 사람보다도 불길을 제압할 수 있는 진압 장비일 테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진압대장의 우려를 한마디로 종식했다.

“가져가야죠, 화학 소화제, 소화기, 모래 포대. 불길 잡을 수 있는 건 뭐라도 다 챙겨갈 겁니다.”

자신이 방열복을 꺼내 온 구조 차량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스쿼드 차량으로 가겠다는 거야?”

“네, 군인이 전쟁에 나서는데 총알 없이 나설 순 없잖아요.”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진압대장을 향해 한국식 농담을 내뱉으며 씨익 웃음을 지었고.

“허, 이놈도 미친놈일세.”

그 모습에 진압대장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주변의 소방관들을 둘러보며 고함을 질렀다.

“구조대가 사용할 지원 장비 전부 스쿼드 차량에 때려 박는다. 죄다 실어 보내!”

차량 한 대 정도야 고립된 동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줄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미친 짓이었다.

퍼버벙!

저 폭염처럼 피어오르는 불길을 통과해야 하는 일이었다.

[끄응…… 진입하다가 중간에 불붙어서 그대로 폭발하는 거 아냐?]

소방차 자체가 휘발유를 사용하는 인화성 물질이라는 걸 생각하면, 렉스의 말처럼 진입 도중 폭발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 말에 혀를 찼다.

‘요즘 들어 꼭 그러더라. 진짜 진입 전에 불길한 소리 좀 하지 마요.’

언제는 이게 소방관이지라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던 렉스가 언제부턴가 불길한 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안 나오게 생겼냐? 지금까지 네가 해 온 건 생각도 안 해?]

‘그럼 어떻게 해요? 당장 사람을 구해야 하니까 일단 하고 보는 거지. 안 그래요? 흐흐.’

렉스의 걱정을 웃음으로 일축하며 그대로 구조 차량의 운전석으로 올라탔고, 다른 소방관들 역시 같은 마음인지 이미 차량에 장비들을 때려 박고 있었다.

“죄다 실으란다!”

“옛썰!”

“사용 가능한 소화기 전부 때려 박아!”

동료들을 구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도라도 해 보는 게, 나라를 막론하고 공통으로 발휘되는 소방관의 동료애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 생각은 아니었다.

“지원 잊지 마십쇼, 저 죽기 싫거든요.”

휘발유를 사용하는 차량의 폭발을 막기 위해서는 진압대의 보조 지원이 필요했다.

“지원은 끝내주게 해 주지. 부탁한다, 미스터 리.”

그런 이성하의 지원 요청에 진압대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이성하는 바로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화르르르르르!

“후우, 후우.”

맹렬하게 피어오르는 불길을 노려보며 출발을 준비했으며.

“미스터 리! 전부 실었어!”

“오케이!”

장비를 전부 실었다는 소방관들의 고함에 과감하게 엑셀을 밟았다.

‘갑니다!’

부르릉!

[제길.]

준비가 됐다는 소방관들의 말에, 조금도 고민 없이 불길 속으로 돌진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르!

석유를 매개체로 삼아 커진 불길이 완전히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한마디로 섭씨 천도가 넘는 불길이 끝없이 펼쳐진 상황이었고, 그런 곳을 제아무리 방열복을 입었다 하더라도 폭발물이 될 수도 있는 소방차를 탄 채 돌진 중이었다.

‘끄응, 생각보다 더한데?’

출발을 하긴 했지만, 저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아찔한 두려움에 침을 삼켰으니까.

그리고 사실 이성하가 나설 일이 아니었다는 점도 그 두려움을 더 키웠다.

‘내가 왜?’

연수생인 자신이 나설 일은 아니었다.

‘난 현장 참가를 허락받은 소방관이 아니야. 단순히 교육을 위해 왔고, 게다가 이 나라 사람도 아니야. 그러니 가만히 있어도 돼.’

자신은 이 나라의 국민도 아니고, 단순히 교육을 받으러 온 외지인이었다.

‘그래,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그 때문에 마음속에서 새어 나오는 두려움에 동조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LA카운티 소방관들의 절박함이 그런 이성하의 고개를 다시 들게 만들었다.

‘성수 선배…….’

혼자 요구조자 수색을 나섰다 순직한 오성수의 존재였다.

“안 돼, 모래 더 날라!”

“어떻게든 불길 막아!”

“끄아아아아아!”

필사적으로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모래를 나르는 LA카운티 소방관들의 처절한 사투에.

“성수 선배, 어디 있어요! 성수 선배!!”

“오성수 대답해! 제발 대답해! 대답하라고, 이 새끼야!! 으아아아아!!”

오성수를 찾기 위해 고함을 지르던 자신과 동료들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이성하가 나선 거였다.

‘내가 왜 상관도 없는 곳에 목숨을 거는 거지?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해.’

아직도 마음속의 두려움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지만.

꾸욱.

엑셀을 밟는 발에 실린 힘은 더욱 강해졌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야!’

자신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할 일이었다.

동료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RIT팀의 조직은 필연적이었으며, 그렇다면 그 RIT팀으로 들어가야 할 존재는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데일, 이 새끼 넌 진짜 나중에 살아 나오면 죽여 버릴 거야.’

부르릉!

친구인 데일의 존재도 그렇지만, 엄연히 현재 이성하의 소속은 불길 속에 고립된 2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성하가 모는 스쿼드 차량이 돌진하는 방향을 향해 수십 개의 물줄기가 쏘아졌다.

치이이익.

곳곳에 떨어진 마그네슘들이 그 물줄기에 다시 화학반응을 일으켰지만.

“힘으로 밀어붙여! 더 주수해!!”

쏴아아아아!!

LA카운티의 소방관들은 그걸 물량으로 해결했고, 그런 소방관들의 지원하에 이성하는 고립된 2팀 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끼이익.

“늦어서 죄송합니다, 마크. 지원 왔습니다.”

돌벽을 부수느라 타고 온 스쿼드 차량이 엉망이 되긴 했지만, 무사히 불길을 통과해 화학 공장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모습에 마지막까지 불길을 잡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이던 2팀 대원들이 멍한 표정을 지은 건 당연했다.

“이성하…….”

“네, 네가 왜…….”

갑자기 자신들의 차량이 불길 속을 뚫고 나타난 것도 놀라웠지만, 그 차량을 몰고 나타난 게 이성하라는 사실에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으니까.

하지만 고민은 나중에 할 일이었다.

“불길부터 잡아요!”

운전석에서 뛰듯이 내린 이성하가 장비 창을 열며 대원들을 바라봤다.

철컥!

열린 장비 창 안에는 금속화재에 효과적인 D급 소화기부터 시작해, 그들이 운동하듯이 갖고 놀던 소화탄 등, 이런 특수화재에 어울리는 장비들이 잔뜩 실려 있었고, 그에 대원들은 지체 없이 장비 창으로 달려갔다.

“데일과 루벤이 방열복 입고 선두에! 나머지는 그 뒤를 받친다!”

“옛썰!”

이성하의 말처럼 일단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불길부터 잡아야, 치솟는 의문도 풀고 말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비들이 도착했다고 해서 불길 진압이 가능한 건 아니었다.

“던져!!”

“소화기 뿌려!!”

“모두 밀어붙여!!”

화아아아악.

대원들이 사방으로 화학 소화탄과 금속화재에 탁월한 성능을 보이는 침윤 소화약제가 담겨 있는 D급 소화기를 사방으로 뿌렸지만.

화르르르르르!

여전히 불길은 거세게 타올랐고, 그 상황에서 대원들이 할 수 있는 건 현 상황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모래 부어!!”

“담만 확실히 쌓는다! 불길만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

“후욱, 후욱.”

조금씩 거리를 좁혀 오며 대원들의 목숨을 위협하던 불길이, 더 다가오지 못하게만 하는 게 한계인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대원들의 얼굴은 밝았다.

“좋아, 고착되고 있어!”

“버텨! 버텨야 해!!”

어디까지나 2팀의 임무는 시간을 버는 거였다.

“존! 시간은?”

“메뉴얼대로라면 10분 남았습니다!”

마크의 지시에 이름을 불린 존이 시계를 확인하고는 10분이라며 고함을 질렀고, 그 의미를 모르는 소방관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10분이다, 10분이면 지원팀이 온다! 그때까지 버텨 낸다!”

“오우!!”

시간으로 계산하는 LA카운티의 구조 매뉴얼대로라면, 앞으로 10분이면 전 지역에서 출발한 긴급 지원팀이 도착할 시간인 것이다.

이성하 역시 요즘 그 LA카운티의 구조 매뉴얼을 닳을 정도로 외우던 상황인 만큼, 그 10분의 의미를 잘 알았다.

‘공중 지원팀! 공중 지원팀이 온다!’

이런 특수화재가 발생할 경우, 캘리포니아 전 지역에서 급수가 가능한 헬기들이 총출동하도록 설계된 게 LA카운티의 구조 매뉴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희망처럼 약속된 10분이 된 순간.

타다다다다다.

공중에서 수십 대의 헬기들이 거친 소리를 뿜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쏴아아아아아!!

나타나자마자 담고 온 물들을 일제히 화학 공장 주변으로 쏟아 내며 불타오르는 석유원료들을 단번에 씻어 내는 진풍경이 벌어졌으며.

“어…….”

쏴아아아아!

콰당탕!

원래 불길이 너무 가깝다 보니 쏟아지는 물벼락에 맞아 한곳으로 나뒹구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이성하는 아프지 않았다.

치이이익.

그 쏟아지는 물벼락에 자신들을 위협하던 불길이 단번에 씻겨나가기에.

“하하하하!!”

[좋냐.]

‘그럼요. 끝났잖아요, 하하하.’

그대로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며 시원한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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