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85화 (185/235)

<강철 소방대 185화>

185화. 특수공장 화재 (4)

LA카운티의 특수재난구조대는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차단, 대처하는 임무를 맡는 소방 특수부대였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구조대가 인명구조를 전담으로 한다면, 특수재난구조대는 그걸 베이스로 깔고 재난의 피해 범위 또한 최소화하는 것에도 집중하는 선제 진압형 구조부대.

그 때문에 현장에 출동한 2팀 대원들은 이성하와 헤어지자마자 불길이 가장 심하게 발생하는 공장 내부로 진입했다.

“요구조자 한 명 발견!”

“이쪽도 한 명 있습니다.”

“오케이, 더 이상 없지?”

“생명 반응 없습니다.

“좋아, 바로 요구조자 부축해서 빠져나간다.”

“옛썰!”

단번에 건물 내부를 수색해 남아 있는 요구조자 구조에 성공했고, 그다음으로 진행되는 건 사전 대비 작업이었다.

“발룬티어 팀에서 여덟 분만 지원해 주십쇼!!”

한국식으로 치면 의용소방대에 해당하는 VFD팀에게 여덟 명의 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카밀, 네가 대원들 이끌고 구조대로 지원 붙어.”

“알겠어!”

그에 따라 방화복을 입고 모래를 나르던 발룬티어 팀에서 여덟 명의 봉사자가 2팀에 합류했으며, 그렇게 인원을 불린 2팀 대원들은 바로 공장지대의 핵심구역으로 알려진 화학 공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이곳에 사전 방어선을 조직한다. 모두 포대 날라!”

“옛썰!!”

혹시라도 마그네슘 공장에 발생한 화재가 화학 공장에까지 번질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대원들을 이끌고 미리 방어선 조직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원들의 사전 조치 덕분에 마그네슘 공장에서 발생한 불길은 조금도 화학 공장에 접근하지 못했다.

치이이익.

화르르르르!

폭죽처럼 솟아오르는 섬광에 화학 공장 주변으로 순간순간 불길이 일어나는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덮어!”

“빨리 모래 덮어!”

화르르르…….

근처에 대기하던 2팀 대원들이 바로 주변의 모래로 불길을 뒤엎어, 화학 공장으로 불길이 번질 상황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상황이 금방 급변했다.

투욱. 투욱.

하필 마그네슘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상황에, 그 불길을 더 키울 수 있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 젠장.”

“모두 뒤로 물러나!”

그에 방어선을 조직하던 2팀 대원들이 기겁한 얼굴로 빠르게 대피에 나섰지만, 그 폭발을 완전히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콰콰쾅!

“끄아아악.”

“오, 오웬!!”

“캡틴, 내 다리가…… 끄으윽.”

“제길, 일단 옮겨! 일단 뒤쪽으로 옮겨!”

팀 내에서 힘이 가장 좋아 선두에서 방어선을 조직하던 오웬 라이트가 폭발로 튕겨 나온 잔해에 직격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 마크! 어떻게 된 거야!

“저지선이 뚫렸어.”

- 제길, 부상자는?

“오웬이 부상을 입은 상태다. 지원이 필요해.”

그 때문에 다급하게 상황을 묻는 진압대장의 무전이 울리자마자 마크가 바로 무전기를 잡으며 진압대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크, 파이프!!”

오웬을 뒤로 끌던 데일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뭐?”

“곧 폭발한다. 피해야 해!”

난데없이 하늘을 가리키며 기겁한 표정으로 오웬을 거세게 끌었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모습에 무전을 하던 마크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지만, 데일의 경고는 과장이 아니었다.

“아…….”

방금 폭발로 튕겨 나온 마그네슘의 잔해가 화학 공장을 연결하는 파이프 배관에 꽂혀 있었다.

치이이익.

그 잔해가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만나 불길한 섬광을 피워 내고 있었고.

“제길, 전부 물러나! 완전히 물러나!”

그에 경악한 마크가 고함을 지르며 전 대원의 대피를 명령했지만, 야속하게도 섬광을 피워 내던 마그네슘은 그런 대원들의 대피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드드드드드.

콰콰콰쾅!

화학 공장으로 원료를 공급하는 수십 개의 파이프 배관들이 모조리 터져 나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 때문에 대원들을 이끌던 마크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화르르르르르!

“아…….”

방금까지 열심히 구축해 놨던 방어선이 지금의 폭발로 완전히 날아갔다.

“커허어억…….”

“끄으으…….”

“로랜드!!”

게다가 방금의 폭발로 몇몇 대원들이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발생한 불길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온다는 점이었다.

콸콸콸콸!

“제, 제길.”

흘러내린 석유 원료를 통해 거센 불길이 구조대가 있는 화학 공장을 향해 천천히 좁혀 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터지진 않았어.’

화재가 발생하자마자 파이프 배관을 잠갔던 덕분에, 그 폭발이 화학 공장을 직접 타격하진 않은 상태였다.

화르르르르!

숨을 막히게 하는 불길이 앞을 막고는 있지만, 그 불길이 아직 화학 공장에 닿은 건 아니었고, 그렇다면 이렇게 가만히 있을 여유는 없었다.

“일어나!”

“캐, 캡틴.”

“아직 아니야. 뭐 하고 있어! 막아 내야 할 거 아냐!”

몇몇 대원이 부상을 입었지만, 지금이라도 방어선을 다시 조직하면 충분히 막아 낼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지시를 내리는 마크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제길…….’

그 지시가 자신과 대원들의 목숨을 담보로 해서였다.

화르르르르!

불길이 구조대의 모든 퇴로를 막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삐익, 삐익, 삐익.

꽤 오랜 시간을 이 자리에서 방어선을 조직하느라 소모한 만큼, 지금 경보음을 내뱉는 공기통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공기통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말에 반대하는 대원은 없었다.

“X발,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클럽이나 다녀오는 건데.”

“아, 이래서 내가 2라는 숫자가 싫다니까. 툭하면 왜 우리만 이러는 건데.”

“캡틴 잘못 만나서 이래. 재수가 없어. 재수가.”

다들 볼멘소리를 내뱉으면서도, 하나같이 마크의 곁으로 섰다.

“이 새끼들.”

“울지 마. 남자가 울면 재수가 없어.”

“맞아. 그건 살아나가면 하고, 일단 이거부터 막자고, 캡틴.”

불길을 응시하며 모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각자의 장비를 들었고, 그에 마크는 후련한 표정으로 무전을 잡을 수 있었다.

“베인…….”

보나 마나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진압대장에게 무전을 보내 자신들의 각오를 알렸으며.

- 너 이 새끼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날 보고 너희들을 포기하라는 거야!!

그에 진압대장의 성난 고함을 듣게 됐지만, 그 역시 지금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잘 아는 소방관이었다.

- 살아 나오면 맥주 한잔 사지.

이래도 저래도 구조대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면, 그나마 도시를 살릴 수 있는 방어선을 조직하는 것에 모든 걸 올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대답에 마크는 회신을 하지 않은 채, 씨익 웃으며 무전기의 전원을 그대로 종료했다.

삐빅.

‘그래. 나가면 보자고, 친구. 나가면.’

마음이 약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삐빅, 삐빅.

다른 대원들 역시 그런 마크의 뒤를 따라 차고 있는 무전기의 전원을 종료했고, 그 뒤로 이어지는 건 대대적인 방어선 조직 작업이었다.

“서둘러!!”

“빨리 움직여!!”

외부에 있는 진압대장에게 말한 것처럼, 기필코 살아서 모든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불길은 보통의 불길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르!

모래를 아무리 쏟아부어 봤자 석유를 매개체로 타오르는 불길은 더욱 거세게 용트림했다.

“제길!!”

“더 부어! 더 부어!!”

그에 필사적으로 대원들이 발악해 봤지만.

퍼버벙!

그 정도로는 안 된다는 듯 더욱더 기승을 드러내며 대원들을 압박한 불길이었고, 그에 대원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제길…….”

“개 같네, 진짜. 제발 좀 꺼져라, 제발!!”

방어선을 조직하기는커녕 계속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에, 절규의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마지막이 다가왔다.

“저기, 미안한데 이제 무리인 거 같은데?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까만 얼굴의 루벤 폴러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허억, 허억.”

“끄으으으…….”

그런 루벤의 뒤로 부상을 입어 열외된 대원들이 보였으며, 그에 대원들은 모두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끝이네…….”

“열심히 했는데, 안 되네.”

“제길, 이러면 좀 억울한데…….”

어떻게든 불길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봤지만, 결국 그 한계선에 이른 모습에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상황에 대원들 중 가장 어린 찰리가 자조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데일, 우리 아까 나갔다면 살 수 있었을까?”

후회가 어린 목소리였다.

“아까?”

“진압대장 무전 왔을 때 말이야. 그때 그 도움 받고 나가겠다고 했으면 살 수 있었나 해서.”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는지 몸을 덜덜 떨며 억지웃음을 짓는 모습이었고.

“큭.”

그에 무슨 생각이 났는지 데일이 피식 웃었다.

“왜, 웃어?”

“나도 예전에 너처럼 후회할 때가 있었거든.”

“후회? 그 에베레스트 말하는 거냐?”

“어, 올라오지 말걸. 그냥 밑에 있을걸. 왜 괜히 올라와서 지랄하다가 죽게 됐을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게 다 쓸데없는 생각이더라고.”

찰리의 어깨를 팔로 감싸며 하는 말이었다.

“겁에 질리고 후회하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더라. 오로지 살기 위해 발악하고 그걸 붙잡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구원을 해 주거든.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곡괭이나 잡자. 어떤 상황에서도 맡은 바 임무를 다 하는 거. 그게 우리 LA카운티 아니냐? 흐흐.”

“미친놈.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냐? 난 진짜 죽을 거 같은데, 쳇.”

불길의 열기 때문에 턱턱 막히는 상황에서도 농담을 내뱉는 데일의 모습에 찰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지만, 데일은 진심이었다.

‘그때는 진짜 천사로 보였지.’

머릿속으로 이성하를 떠올리며 하는 말이었다.

‘그놈 등에서 뿜어지는 후광 때문에 아예 눈이 머는 줄 알았는데.’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지원팀에게 구조를 받을 당시.

“이성하!”

“데일!!”

콰르르르르!

쏟아지는 빙괴더미에서 자신을 구해 내던 이성하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했으니까.

물론 오늘도 그럴 일이 발생할 리는 없었지만, 그때 안 건 후회를 할 시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게 낫다는 거였다.

“기적은 말이야. 움직이는 자들에게만 오는 거거든.”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깡!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곡괭이로 바닥을 다시 내려치는 순간.

빠앙! 빠앙!

거센 불길 너머에서 자동차의 크락션 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은 건가?’

바라본 방향에 불길이 휩싸인 돌벽이 서 있는 모습에 환청을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빠앙! 빠앙!

다시 한번 그 크락션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고, 이내 보게 된 광경에 데일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콰콰쾅!

불길이 타오르는 돌벽을 거대한 무언가가 단번에 부수며 공장 안으로 진입했다.

화르르르르!

<캘리포니아 태스크포스 2>

새빨간 불길 너머로 자신들이 타고 온 구조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걸 몰고 나타난 건 놀랍게도 이성하였다.

“이, 이성하!”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봤던 그 미친 천사가 이번엔 화염 속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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