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84화>
184화. 특수공장 화재 (3)
하지만 지금은 2팀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크으윽.”
“허억, 허억.”
방금 폭발로 저지선을 쌓던 진압대 쪽에도 큰 피해가 발생한 상태였다.
“제길! 대원들부터 구해!”
“들것! 들것 가져와!!”
그 광경에 폭발에 휩쓸리지 않은 소방관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뛰어갔지만, 폭발에 휘말린 소방관들의 피해는 생각보다 심했다.
“끄으으으. 다리가…….”
“란도!!”
“눈이 보이지 않아…… 내 눈…….”
“제길, 일단 이동하자. 이동부터 해!!”
사전에 폭발이 발생할 걸 알고 미리 대피에 나섰던 1차 폭발과 달리, 전혀 예상도 못 한 상황에서 터진 2차 폭발에 꽤 많은 소방관들이 휘말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소방관들의 부상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아…… 불길이…….”
이번 폭발로 방금까지 열심히 만들던 저지선이 완전히 박살 났다.
컨테이너 형식의 다른 공장들과 달리 그들이 저지선을 만들던 화학 공장은 동그란 구조물 주위로 석유를 공급하는 수십 개의 파이프가 감싸는 형태로 지어졌는데, 그 파이프들이 방금 폭발로 모두 터져 버렸다.
콸콸콸콸!
그 때문에 파이프를 통해 화학 공장으로 공급되던 석유 원료가 바닥을 향해 와르르 쏟아졌고, 안타깝게도 석유는 불이 붙는 인화성 물질이었다.
화르르르르!
바닥에 쏟아진 석유 원료들에 폭발로 발생한 불길이 그대로 옮겨붙어,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는 거대한 장막이 만들어진 것이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 안 돼!”
“저지선!! 저지선 복구부터 해!”
어떻게든 무너진 저지선을 복구하기 위해 몇몇 소방관들이 고함을 지르며 불길 위로 다시 모래 포대를 날랐지만, 한 번 무너진 저지선을 복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화르르르르!!
이 정도로는 안 된다고 말하듯 저지선을 감싼 불길은 전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더 큰 문제는 그 불길이 이동까지 한다는 거였다.
“제길, 물러나!”
“석유가 흐른다! 전부 뒤로 물러나!!”
불길의 매개체가 흐르는 성질을 가진 석유다 보니, 바닥을 메운 불길이 차츰차츰 소방관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안 돼, 모래 더 날라!”
“어떻게든 불길 막아!”
“끄아아아아아!”
다가오는 불길 때문에 뒤로는 물러날지언정, 모래를 나르는 것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 우리가 꺼내 줄게!”
저 불길 안에 2팀이 있었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방금의 무전으로 보면 다수의 동료들이 저 방어선을 위해 안쪽에 고립된 상황이었고, 그걸 알게 된 이상 LA카운티의 소방관은 물러날 마음이 없었다.
“우리는!”
“화이트 헬멧!”
LA카운티 소방관의 심볼 마크의 하얀 헬멧을 외치며 여전히 모래를 날랐다.
“유고(네가 가면)!”
“위고(우리도 간다)!”
절대 동료를 버리고 가지 않겠다는 그들만의 은어를 외치며 투지를 불태웠고, 그 마음은 진압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트럭 31팀, 62팀 호스 들고 내 뒤로 붙는다!!”
뒤쪽에서 지휘해야 할 진압대장이 호스를 가지고 앞으로 나섰다.
“물 틀어!!”
쏴아아아아!!
수십 명의 대원들 앞에서 몸소 호스를 들고 불길 앞으로 나아갔으며.
치이이이익.
그렇게 뿜어지는 물줄기에 근처에 있던 마그네슘들이 불길한 섬광을 뿜어내긴 했지만, 진압대장은 더 이상 그런 섬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수압 올려! 더 올려!!”
저 안에 고립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감수할 마음이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 베인…….
잠시 연락이 끊겼던 2팀 팀장 마크의 목소리가 다시 무전을 통해 울렸다.
“마크? 괜찮은 거야? 어떻게 된 거야?”
- 제대로 당했어. 사망자는 없지만 대원 세 명이 추가로 부상을 입은 상태야. 현재 지원팀 세 명의 화상이 심해.
추가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다는 마크의 보고였다.
“좋아, 그럼 조금만 버텨. 지금 길 뚫고 있으니까 금방 도착할 거야. 어떻게든 버텨 내고 있어.”
그 반가운 소식에 진압대장이 환한 표정으로 곧 구조하러 가겠다는 목소리를 내뱉었지만.
- 아니, 오지 마.
놀랍게도 마크는 그 구조의사를 거절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 방금 폭발로 저지선 날아갔잖아. 너희가 오면 공장은 어떻게 할 건데? 공장을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오지 마. 우릴 구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면 도시 전체가 피해를 입을 거야. 그러면 안 돼, 베인. 도시가 먼저야.
진압대는 자신들을 구하는 게 아니라, 저지선 복구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우릴 구하자고 도시를 날려 버리는 건 안 될 일이야. 지금 상황에서 대피 명령은 의미가 없는 거 알잖아?”
몇 안 되는 자신들을 구하자고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을 버리지 말라고 말했으며.
“너 이 새끼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날 보고 너희들을 포기하라는 거야!!”
그 말에 진압대장이 격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마크의 대답은 여전했다.
- 하하.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그게 가능성이 제일 높은 거 알잖아? 어차피 너희들이 구하러 들어온다고 해도 우리는 살 수 없어. 우리가 자리를 비운다면 화학 공장이 바로 터질 거야. 이래도 저래도 죽는다면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우리는 안에서. 너희는 밖에서. 서로의 위치에서 어떻게든 저지선을 사수하고. 운 좋으면 밖에서 볼 수 있겠지. 안 그래?
이 방법이 모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리고 그런 마크의 전언에 진압대장은 아무 말을 못 했다.
“제, 제길…….”
내부의 상황은 모르지만, 정말 마크의 말처럼 그게 최선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화르르르르!!
저 거센 불길 속에서 화학 공장을 보호하기 위해선, 되든 안 되든 저지선을 다시 펼쳐야 한다는 건 명확했고, 그에 진압대장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살아 나오면 맥주 한잔 사지.”
가슴 아프지만, 동료인 마크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화르르르르!
그게 마크의 마지막 각오였던 듯, 들려오는 건 주변을 거세게 태우는 불길 소리뿐이었으며, 그에 진압대장은 조용히 호스를 내려놨다.
“저지선 작업 다시 한다! 우리가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만은 막는다.”
희생을 각오한 2팀 대원들의 의기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기필코 다시 저지선을 만들어 화학 공장만큼은 지켜 낼 마음을 먹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치프, 그럼 제가 가는 건 어떻습니까?”
한 소방관이 그런 진압대장의 고함에 손을 들었다.
“저 한 명이라면 괜찮을 겁니다. 이쪽의 인원을 줄이지도 않으면서 안에 있는 구조대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 2팀 소속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제가 가겠습니다. 베인 치프.”
자신을 2팀 소속이라고 밝히며 구조대의 지원을 자원하겠다고 말했으며, 현재 현장에 있는 인물 중 2팀 소속이라고 할 수 있는 소방관은 단 한 명뿐이었다.
“미스터 리. 자네가 가겠다고?”
“네. 저뿐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빠져도 티 안 나는 존재가. 그러니 제가 가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쇼, 치프.”
한국에서 연수생으로 현장에 참가한 이성하가 당당히 자신이 불길 속으로 가겠다며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압대장으로서는 가당치도 않을 말이었다.
“미친, 자네 혼자 지원을 가겠다고? 그게 제정신으로 할 소리야?”
개인적으로는 누구보다 반가운 말이지만, 현장지휘관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의견이라서였다.
“자네는 연수생이야. 지금까지 현장에 참여시킨 것도 위에서 문책을 받을 판국에 저 불길 속으로까지 집어넣을 순 없어. 만약 그러다 자네가 잘못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나?”
“…….”
“우리 LA카운티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 나. 교육을 받으러 온 소방관이 현장에서 죽음에 처하게 될 때까지 현장의 소방관들은 아무것도 못 했다는 바보 같은 소리가 흘러나온단 말이야!”
혼자서 저 불길을 뚫고 가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만약 그러다 이성하가 심한 부상을 입기라도 한다면 국제적인 문제로도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깟 이미지 한 번 버리는 걸로 동료들을 구한다면 싸게 먹히는 거 아닙니까?”
“뭐?”
“방금까지 치프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도시를 희생해서라도 동료들을 구하려고요. 제가 알기로 그 어떤 소방관도 동료의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 작전이 변경이 됐다 하더라도 내부에 고립된 동료들의 지원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소방입니다, 치프.”
어떤 일이 있어도 동료들의 지원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으며, 그걸 자신이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정식으로 RIT팀을 발족하라는 건가?”
“네, 제가 가겠습니다. 절 지원팀으로 선정해 주십쇼. 가야 합니다.”
단순한 연수생의 개인 독단이 아닌, 동료 소방관 구출팀인 RIT팀의 조직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의견은 이런 상황에서 표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의견이 맞았다.
“끄응, 제길…….”
방금까지만 해도 절대 안 된다고 망설이던 진압대장이 그런 이성하의 의견에 골치 아픈 표정을 지을 정도로, 갑작스런 위험 상황이 발생해 동료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방인력에서 동료 구출 팀을 조직해 보내는 게 LA카운티의 핵심 구조매뉴얼 중 하나.
하지만 그것도 해당 대원들의 안전이 담보될 때의 문제였다.
화르르르르르!
방금까지 모든 대원들이 모래를 날랐음에도 길을 만드는 걸 실패했을 정도로 불길이 너무 두터웠다.
“석유 더 다가옵니다!”
“빨리 모래 쌓아!!”
게다가 흐르는 석유의 특성 때문에 그 불길이 더욱 넓게 퍼지는 중이었고, 그런 위험지역을 이성하 혼자서 돌파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안 돼, 가능성이 너무 낮아. 자네가 진입도 하기 전에 타 버릴 거야. 혼자서 저 불길을 어떻게 뚫는다는 거야!”
아무리 방화복이 그 불길을 막아 낸다 한들, 그 뜨거운 열기까지 완전히 보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의견을 낸 게 아니었다.
“있습니다, 뚫을 방법이.”
이성하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에 서 있는 구조 차량으로 다가갔다.
<캘리포니아 태스크포스 2>
자신이 출동할 때 타고 왔던 LA카운티의 특수구조대 차량으로 다가간 이성하는 차 안에서 한 가지 물품을 꺼내 왔다.
“이거면 되지 않겠습니까?”
은색으로 반짝이는 소방의복을 진압대장에게 보여 줬으며, 그 의복에 진압대장의 눈빛의 화색이 어렸다.
“이건…….”
“네, 방열복입니다. LA카운티 특수구조대 팀은 항상 만약을 대비해 4벌의 방열복을 챙겨 다니거든요.”
드디어 불길 속에 고립된 구조대원들을 지원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겨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