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83화>
183화. 특수공장 화재 (2)
다른 소방관들도 모두 비가 내린다는 걸 깨달았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맙소사…….”
미친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불길이 붙은 마그네슘에 수분이 닿지 않도록 발악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무심하게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지금까지 해 온 소방관들의 노력 따위는 듯 상관없다는 듯 굵은 빗줄기가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는 건 당연했다.
- 모두 대피해!!
진압대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울렸다.
“제길!!”
“빨리 피해!!”
그와 동시에 불길을 모래로 덮던 소방관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고, 그 모습은 공장을 둘러싼 모든 소방관들의 모습이었다.
“도망가!”
“하지만, 포크레인이…….”
“죽고 싶어!? 그냥 뛰어! 빨리 뛰어!!”
포크레인을 조종해 저지선을 만들던 소방관들이나.
“자, 잡아요!”
“부상자들부터 뒤로 옮겨!!”
뒤쪽에서 부상자들을 보호하던 구급대원들이나.
“제, 제길! 전부 대피해!”
“물러나!!”
모두 저 빗줄기가 불길을 토하는 마그네슘과 만나게 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잘 알았으니까.
하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보다 사람이 빠를 순 없었다.
쏴아아아아!
이미 공장 내부로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치이이익.
그 때문에 이미 공장 곳곳에서는 불길이 붙은 마그네슘들이 찬란한 섬광을 뿜어내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고.
“제길!”
“뛰어! 뛰어!!”
그 불안한 소리에 소방관들이 더 다급한 표정으로 공장과 거리를 벌렸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태였다.
치지지지직.
“아…….”
콰콰콰콰쾅!!
마치 지금만을 기다렸다는 듯, 수분을 흡수한 마그네슘이 엄청난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상황은 심각했다.
파가가가각!
순식간에 터져 나간 공장과 마그네슘의 파편들이 주변의 모든 걸 휩쓸어 버렸다.
콰르르르르!
그 충격으로 주변에 위치한 다른 공장들의 외벽들이 산산이 박살 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끄으으으으.”
“허억, 허억.”
“말도 안 돼…….”
대피하던 소방관들 역시 그 폭발에 휘말려 힘없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메킨!!”
“제길, 들것 가져와!”
“마이클! 마이클!!”
불길이 타오르던 마그네슘은 물론, 지금까지 소방관들이 모래로 덮었던 마그네슘들까지 모조리 터지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성하 역시 그 폭발에 휘말린 상태였다.
콰당탕!
“커헉.”
폭발의 반동으로 한쪽에 위치한 철조망으로 날아가 막대한 충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미스터 리!!”
[이성하, 괜찮냐!]
근처의 다른 소방관과 렉스가 동시에 고함을 지를 정도로, 큰 부상이 염려되는 상황이었지만, 이성하에게 그런 자신의 상태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아아아악.
얼마나 폭발이 대단했는지, 폭발한 공장 위로 영화에서나 보던 것 같은 짙은 버섯구름이 잔뜩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르르르르르!!
그 밑으로 지금까지 고생한 소방관들의 노력을 짓밟기라도 하듯 거센 화염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렇게 피어오르는 화염은 안타깝게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버, 번졌어…….”
[제길, 마그네슘이야. 터져 나간 마그네슘 파편이 주변의 공장을 폭격한 거야.]
렉스의 말처럼 터져 나간 마그네슘 파편들이 일제히 주변의 공장들까지 휩쓸어 불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부축한 소방관을 바라봤다.
“이, 이건…….”
공장에 있던 걸로 추정되는 마그네슘의 양은 어림짐작으로만 계산해도 무려 4천 톤이었다.
치이이익.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 어마어마한 양의 마그네슘이 주변으로 흩어져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로 인해 벌어질 결과가 최악이라는 건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대피해야 해요…… 빨리 대피해야 해!!”
이 구역에 모든 근방의 공장이 모여 있다는 마크의 말을 떠올려 보면, 방금 같은 폭발이 몇 번이나 더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를 잡아 손을 일으켜 준 소방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우리는 못 가.”
“네?”
“여길 포기했다가는 지역 전부가 날아갈 거야.”
이성하로서는 이해 못 할 말이었다.
‘지역 전부? 설마 지금 있는 산타클라리타 전체가 날아가기라도 한다는 거야?’
확실히 방금 폭발이 대단하긴 했지만, 수만 명의 시민이 살고 있는 도시가 날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야. 여기서 주택 구역까지 100미터는 떨어져 있었어. 거기까지 닿을 거리는 아니야.]
렉스의 말처럼 분명 출동을 하며 봤던 주택 구역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거기까지 이 폭발의 충격이 닿을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LA카운티의 소방관들은 눈앞의 소방관 말이 맞다는 듯, 모두 몸을 일으켜 삽과 곡괭이를 챙겨 들었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야 해!!”
“불길 차단해! 무조건 막아 내야 해!”
대피 따위는 생각도 않는 모습이었다.
“모래 들어!”
“아까처럼 한다! 어떻게든 저지선 만들어!”
부상 여부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소방관이라면 어떻게든 다음 폭발만은 막겠다며 다시 모래 포대를 들기 시작했고.
‘이건 아니야. 말려야 돼. 건물을 버리고 대피하는 게 맞아.’
이성하가 그런 소방관들의 모습에 이건 아니라며 고함을 지르려 했지만, 뭔가 이상한 게 있었다.
[잠깐만. 방향이 달라.]
‘네?’
[얘들 오른쪽은 버리고 왜 왼쪽만 막는 거지?]
렉스의 말처럼 방금까지만 해도 전 방위로 저지선을 만들던 작업이 한쪽으로 편향돼 있었다.
“무조건 막아!”
“여기서 끊어야 돼!!”
오로지 그 방향만 지키면 된다는 듯 LA카운티의 소방관들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며 악착같이 모래 포대를 나르고 있었고, 그렇게 소방관들이 막는 방향에는 동그란 형태의 구조물들이 서 있었다.
‘서, 설마…….’
불현듯 치솟는 불길함에 다급한 표정으로 그 방향을 향해 뛰어가 본 이성하였지만, 안타깝게도 그 짐작은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
불길에 취약하다고 할 수 있는 화학 공장이 대규모로 늘어서 있던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주택이 늘어선 도시 마을에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화학 공장이 있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산타클라리타…… 내가 이걸 왜 잊었지…… 여기 공업 도시야…….]
망연자실한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허탈한 목소리로 자책했다.
‘공업 도시요?’
[그래. 한때 대량의 금광 때문에 골드러시로 커진 도시야. 그 뒤로 대규모의 유전까지 발견되면서 유명해진 곳이었는데…… 하, 너무 오래돼서 잊고 있었어.]
이성하는 모르겠지만, 산타클라리타는 금맥과 유전으로 발전한 공업 도시였다.
‘유전이면 석유 말하는 거예요?’
[맞아. 최초의 석유 마을이 여기야. 금은 대부분 고갈됐지만 석유는 아직 채굴된다고 들었는데, 그걸 이용하는 공장이 저것들이네. 끄응…….]
렉스의 말대로라면 아직까지도 유전이 남아 있어 석유가 채굴되는 곳이었고, 그렇다면 대규모의 화학 공장이 위치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석유…… 그 말대로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어.]
실제로 도시가 날아갈 정도는 아니겠지만, 정말 100미터 밖에 있는 주택 단지까지 영향이 미칠 수 있는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아니, 영향이 미칠 게 분명했다.
‘그럼 유독성 가스가…….’
화학 공장은 대부분 사람의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화성 물질을 다뤘다.
몇 분만 흡입해도 사람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벤젠, 자일렌, 사이안화물 같은 화학물질을 다뤘고, 그런 공장들이 터질 경우 이곳 산타클라리타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예측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수천, 아니 정말 수만 명의 사람이 사망할지도 모르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다는 것을.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바로 근처의 모래 포대를 들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제길!”
LA카운티 소방관들의 말처럼, 더 이상 대피할 상황이 아니었다.
“으아아아아.”
다른 공장은 몰라도 저 화학 공장만은 안 된다는 일념으로 모래 포대를 날랐고.
콰당탕.
그러다 넘어지는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이를 악물고 달렸다.
“안 돼!”
오로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제길, 막아야 돼!”
자칫하면 수만 명의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는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처럼 안간힘을 써 가며 저지선을 만드는 소방관이 수백 명이었다.
“날라!”
“버텨!! 무조건 사수한다!”
도시에 살고 있는 수만 명의 시민이 바로 그들의 가족이기에. 그 도시를 지키기 위해.
“끄아아아아!!”
필사적으로 저지선을 만들어 갔으니까.
그리고 그런 소방관들의 노력 덕분인지 불길은 간신히 2차 저지선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화르르르르!!
꺼지지 않는 마그네슘의 특성 때문에 화학 공장 곳곳에 불길이 침범하긴 했지만.
“모래 뿌려!”
“이쪽부터! 이쪽 먼저 해!”
파악! 파아악!
모두가 필사적으로 불길을 저지한 덕분에 공장에 직접적으로 불이 닿는 것만은 막아 낸 상황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힘들지만 더 온 힘을 다해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좀만 더, 이 상태로 몇 시간만 버티면 돼.’
점차 모래로 다시 덮여 가는 마그네슘의 모습 때문이었다.
- 버텨! 할 수 있어! 고착 상황만 만들면 돼!
귓가로 들리는 진압대장의 고함처럼 이 상태로 조금만 시간을 버틴다면, 처음 불길을 공장에 가뒀던 것과 같이 고착 상대로 접어들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콰콰쾅!
순간 거대한 폭발음이 공장 주변을 흔들었다.
“제길!”
이성하가 놀라서 뒤돌아보니 2차 저지선 중 가장 깊숙한 위치에서 또 한 번의 폭발이 발생했고, 그에 근처에 있던 진압대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무전을 잡았다.
“마크! 어떻게 된 거야!”
난데없이 2팀 팀장인 마크의 이름이 호명됐다.
‘마크…….’
그에 멍한 표정으로 폭발한 장소를 바라봤지만, 들려오는 무전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 지지직. 저지선이 뚫렸어.
“제길, 부상자는?”
- 오웬이 부상을 입은 상태다. 지원이 필요해.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말과 함께 지원을 요청하는 마크의 목소리가 다급히 울렸고.
“알았어. 바로 보낼 테니까. 잠깐 대기…….”
그에 진압대장이 지원을 보내겠다며 무전을 보내려는 순간, 아까와 같은 폭발음이 들렸다.
콰콰콰쾅!
방금 전 폭발이 발생한 위치에서 다시 한번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으며.
“제길, 마크!!”
그에 진압대장이 다급히 무전기를 잡아 봤지만, 들려오는 건 공허한 침묵뿐이었다.
-…….
“마크!!”
따로 개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LA카운티 구조대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