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81화>
181화. LA카운티 특수재난구조대 (4)
“그, 근무는 아니라고?”
이해를 못 하는 듯한 이성하의 모습에 루벤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이어 갔다.
“성하. 한국은 모르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함께 동료로 일하려면 자격이 필요해.”
“자격?”
“응. 동료로서 최소한의 자격, 현장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자격이지. 한국에도 아카데미 시스템은 있지?”
루벤의 말에 이성하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필기시험과 악력, 배근력, 윗몸일으키기 등의 체력 시험을 통과하면 우리는 6개월의 아카데미 과정을 거쳐.”
언제라도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직업이 소방관이기 때문에, 그 자격 요건이 엄중하게 관리되는 게 한국의 소방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 뒤 현장으로 배치돼 3개월간의 견습 기간을 거치면 정식 소방관이 될 수 있지.”
이성하가 직접 경험하며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던 만큼, 한국 역시 소방관의 자격을 엄중히 따진다고 자신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루벤이 피식 웃었다.
“6개월, 꽤 길긴 하네. 하지만 그건 보여 주기식이잖아.”
“보여 주기?”
“그래. 사실 한국에서 연수생이 온다는 말에 나도 알아봤었어. 네 설명 들어 보니까 내가 알아본 게 맞네. 네 말대로라면 한국은 체력 시험을 장난으로 한다는 말이거든. 그런데 악력? 배근력? 왜 그런 걸로 테스트하지? 무슨 고등학교 체력 시험 봐?”
“우리가 하는 게 고등학교 체력 시험 수준이라고?”
인상을 찌푸리는 이성하의 말에 루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런 건 고등학교 때 소방관 적성 시험을 볼 때나 가볍게 하는 수준이야. 우리는 체력 시험을 그렇게 보여 주기식으로 테스트하지 않아. 방화복 무게의 조끼를 입고서 계단 오르기. 호스 끌기, 장비 운반, 사다리 전개, 강제 진입, 요구조자 검색, 요구조자 끌기, 천장파괴. 이렇게 총 8가지 과제를 10분 20초 내에 들어오는 게 우리 미국 소방관의 체력 테스트거든.”
천천히 손으로 해당 과제를 하는 듯한 모션을 취하며 미국 소방관들의 체력 테스트 시험을 설명했고, 그 모습을 본 이성하는 아무 말을 못 했다.
‘우리는 소방학교 들어가서 보게 되는 체력테스트 평가를 합격 테스트로 본다고…….’
한국의 경우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소방학교에서나 이루어지는 체력 테스트를, 미국에서는 응시자의 체력을 평가하는 기본 테스트로 진행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저놈 말이 맞아. 네가 미국 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서 딱히 말을 안 했었는데, 미국 모든 주에서는 체력 시험을 실제 훈련 방식으로 평가해.]
이야기를 듣던 렉스가 멋쩍은 목소리로 루벤의 말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기준도 엄격해. 한 번의 실수나, 주어진 시간 내에 8가지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면 그대로 탈락 처리하지.]
심지어 그 기준 또한 엄격하게 본다고 이성하에게 덧붙여 설명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잠깐만, 그런 테스트들은 일단 소방학교에 들어와야만 경험할 수 있는 거 아냐?”
지금 렉스와 루벤이 말한 테스트 과제들이 소방학교에 들어가야만 연습할 수 있는 과제라서였다.
“소방학교?”
“그래. 호스 끌기나 사다리 전개, 요구조자 구조, 천장파괴 이런 걸 어떻게 일반인이 경험해?”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자신이 말한 몇 개의 과제만큼은, 장비가 있는 소방학교에 가야만 훈련할 수 있는 과제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루벤이 피식 웃었다.
“그걸 우리가 왜 걱정해?”
“뭐?”
“우리는 지원자를 받는 거야. 그냥 책상에 앉아서 서류나 뒤적거리는 행정직을 뽑는 게 아니라, 조금만 교육을 받으면 언제든지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소방관을 뽑는 거라고. 집에서 혼자 기구를 만들어 준비를 하건, 소방국에서 운영하는 후보자 발전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준비하건, 그건 지원자의 몫인 거고.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후보생의 신분을 갖게 되는 거야. 그렇게 자격을 갖춘 후보생들을 소방관으로 만드는 게 아카데미인 거지.”
미국에서는 소방국에서 어떤 기준을 정하건 그걸 준비하는 건 지원자의 몫이었다.
그 기본 자격을 갖추고 통과해야만 비로소 후보생의 자격이 될 수 있었고, 그런 후보생을 소방관으로 만드는 게 미국의 아카데미 과정이었다.
“참고로 아까 네가 한 공기호흡기 조립. 그거 아카데미에서 2주차 훈련생들이 하는 훈련이야.”
“2주차…….”
“어. 현장은 항상 어둡잖아.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지는 과정에서 공기호흡기 세트가 부딪쳐 떨어질 때를 가정한 훈련이야. 감각에 의존해서 상태를 파악하고 다시 조립이 가능하면 조립, 불가능하다면 다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훈련이지. 물론 그것보다는 멘탈 훈련의 목적이 강하지만 말이야.”
루벤의 설명대로라면 단순히 체력과 장비의 습득 과정을 익히는 과정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현장 상황과 아직 덜 익은 후보생들의 멘탈 강화를 위주로 교육하는 게 미국의 아카데미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엄격한 과정을 통해 소방관의 자격을 얻다 보니, 미국 소방관들의 자부심은 그 어떤 나라의 소방관들보다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과정을 거친 동료들이 아니고서는 뒤를 맡기지 않아. 널 무시하는 게 아니라, 손발이 맞는 동료들에게만 뒤를 맡길 수 있거든.”
설명을 마친 루벤이 미안한 표정으로 이성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맞아. 루벤 말처럼 널 무시하는 게 아니니까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성하. 게다가 우리 특수재난구조대는 자격 요건 자체가 빡빡해서 다른 소방국 대원을 팀원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었거든.”
“정확히 말하면 형평성 문제야. 우리 팀에 들어오려면 수료해야 할 자격증이 좀 많이 필요해.”
다른 팀원들 역시 연수생의 현장 참가는 약간 애매한 문제였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전했고, 유일하게 데일만 괜찮다고 말했다가 동료들에게 면박을 당했다.
“나는 성하가 현장에 나가도 상관없는데.”
“야!”
“네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뭐가 돼.”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현장에서 이성하에게 목숨을 맡겼던 데일의 경우와 다르게, 한 번도 손발을 맞춰 보지 않은 이성하의 현장 참가는 대원들에게 민감한 문제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 괜찮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대원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서였다.
[그래. 구조대는 특히 그럴 수밖에 없지. 한국에서 너 구조대 처음 발령받았을 때도 요건 문제가 있었잖아.]
데일의 말처럼 자신이 있던 한국에서조차 구조대의 발령 문제로 빡빡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런 대원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확고해져 갔다.
‘특수재난구조대…… 소문대로 대단하네.’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LA카운티의 특수재난구조대는 그 이름값을 할 만한 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 소방관들의 계급 체계는 가장 밑의 직급부터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는데, 그런 단계별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근속 승진이라는 시스템이 없었다.
호봉에 따라 월급이 달라지긴 하지만 개월 수만 채우면 자동으로 계급이 올라가는 승진 체계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미국 소방관들의 계급 승진은 오로지 자격 평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데일, 뭐 해?”
“아, 다음 달에 위험물 대응 고급단계 시험이 있어서 그거 준비하고 있어. 그거 통과해야 장비를 다룰 자격이 생기거든.”
그 껄렁한 데일조차 틈틈이 쉬는 시간마다 연습하듯이, 본부에 있는 장비를 이용해 자격 시험을 준비하는 게 미국 소방관들의 일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젊은 소방관들만이 아닌, 모든 소방관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루. 저기 뛰는 사람은 누구야?”
“아, 저 양반? 우리 본부 부국장이야. 이곳 파코이마 최고 사령관. 너희 말로는 본부장 정도가 되겠네.”
“본부장? 본부장이 타이어를 달고 달려?”
한국식으로 따지면 노상일 본부장 정도 되는 노년의 소방관이 뒤로 거대한 타이어를 달고 운동장을 뛰고 있었다.
“뛰어야지. 매년 지휘자 자격 평가 시험이 있는데, 저 양반 지금 체력이 아슬아슬해서 위험하대. 작년에도 경고 조치 받아서 이번에도 적정 수준 안 되면 부국장에서 잘릴 수도 있거든.”
“잘려? 부국장인데?”
“그럼~ 부국장은 소방관 아니야? 재난 발생하면 호스 잡고, 로프 타고 다 해야 하는데.”
그 모든 게 소방관으로서 근무하기 위한 적정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이었고, 그렇게 가장 직급이 높은 부국장마저 훈련에 매진하는 게 미국의 소방시스템이다 보니, 이곳에 있는 모든 소방관들은 다 괴물이었다.
“네가 한국에서 온 그 연수생이지?”
팀원들과 얘기를 마친 이성하가 본부 헬스실로 운동하러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누가 봐도 섹시해 보이는 여성 소방관이 이성하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동양인치고는 키도 크고 잘생겼네. 너 나중에 나랑 맥주 한잔할래?”
슬쩍 이성하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윙크를 보내며 반갑다며 한 손을 들어 보였고, 그 모습에 이성하는 설렘보다는 당황을 느꼈다.
“후우…… 후우…….”
지금 여성 소방관이 풀업을 하며 말을 걸고 있는 상황이라서였다.
“스모크 점퍼 4팀에 있는 로렌스야. 후욱…… 나중에 우리 팀에 한번 놀러 와. 잘 대해 줄게.”
“어…….”
양손으로 철봉을 당기다가 중간에 멈춰 서 인사를 하는 게 아닌, 그대로 한 손으로 철봉을 계속 당겨 가며 이성하에게 인사를 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이 LA카운티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풀업? 그 정도는 기본이지. 우리는 체력 시험 기준에 남녀구별 같은 거 없어. 로렌스만이 아니라 우리 LA카운티의 모든 여성 소방관들은 그 정도는 기본으로 해.”
자신이 본 여성 소방관만이 아니라, LA카운티의 모든 여성 소방관이 그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후우, 샘. 거기 바벨 원판 좀 굴려 줄래?”
“몇 파운드?”
“45파운드 두 개만 굴려 줘.”
게다가 전에 본 노년의 부국장처럼 나이에 상관없이 노년의 소방관들도 틈틈이 몸을 단련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현장에 출동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배울 거 엄청 많지?]
‘네, 장난 아닌데요? 시스템도 시스템이지만, 처음 본 장비들이 너무 많아요. 마음 같아서는 한국으로 귀국할 때 전부 챙겨서 가져가고 싶어요, 하하.’
출동을 나가지 않더라도 배울 게 너무 많은 LA카운티 소방국의 분위기에 황홀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거기다 2팀 대원들의 배려가 있었던 것도 있었다.
“헤이, 성하. 이거 앞으로 네가 착용할 방화복이야.”
“방화복이요?”
“어, 상부에 이야기해서 구조 작업 참가는 안 돼도, 진압 보조 작업 정도는 경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어. 한마디로 후보생 권한 정도는 허락이 떨어진 거지.”
팀장 마크가 이성하의 상황을 상부에 보고해, 장비를 다루는 진압조의 역할 정도는 참여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 줬다.
“후보생? 그럼 현장 접근도 가능한 거예요?”
“응. 함께는 안 되지만, 좀 더 가까이서 볼 수는 있을 거야. 후보생들에게 진입로 확보 정도까지는 허락하거든.”
한국식으로 따진다면 소방사시보의 역할로 좀 더 현장에서 LA카운티 특수구조대의 작업 상황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상황이었고, 며칠 안 돼 그 순간은 빠르게 찾아왔다.
삐익! 삐익!
‘출동이다!’
[빨리 장비 챙겨!]
지금까지보다 좀 더 근접해서 동료들의 구조 작업을 본다는 생각에, 흥분된 표정으로 게 구조 트럭에 올라 방화복으로 갈아입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출동한 현장은 이성하가 생각한 것처럼 멋지거나 아름답거나 하는 등의 교육 현장이 아니었다.
* * *
화르르르르르!!
금방이라도 모든 걸 태울 것 같은 거대한 불길이 엄청난 크기의 공장을 휘감고 있었다.
“모래 가져 와!!”
“제길!”
“부족해! 더 가져 와!!”
그 불길을 잡기 위해 수백 명의 소방관이 호스를 잡는 게 아닌, 묵직한 모래 포대를 나르고 있었고, 그 소방관들 중에는 이성하도 있었다.
“미스터 리! 당장 저 위로 올라가서 불길 덮어!!”
“저, 저 말입니까?”
“그럼 누가 해! 지금 사람 부족한 거 안 보여!”
급박한 상황인 만큼, 후보생이 아닌 특수재난구조대의 소방관으로서 불타는 공장 안으로 진입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