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78화 (178/235)

<강철 소방대 178화>

178화. LA카운티 특수재난구조대 (1)

로스앤젤레스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경우, 비행시간만 온전히 12시간에 달할 정도`로 먼 거리에 있는 도시였다.

심지어 그것도 직항의 경우만 12시간이었지, 샌프란시스코나 달라스를 경유해 가는 일반 항공기를 이용하게 되면 대략 20시간의 비행시간이 소모됐고, 그 때문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한 이성하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필 덩치들 사이에 끼어 올 줄이야…… 좌석 운이 너무 안 좋았어…….”

긴 비행시간도 문제였지만 하필 양옆으로 덩치 좋은 백인 남성 둘이 탑승해, 그 옆에 짐처럼 끼다시피 이동해 온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표정이 밝아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야! 괴물!!”

입국장을 나오자마자 데일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슈퍼소방관 이성하를 환영합니다.>

‘끄응…… 창피하게 뭐 하는 거야.’

조금은 낯 뜨거운 플래카드를 흔드는 모습에는 한 대 때려야 하나 싶었지만, 바로 반갑게 손을 내미는 모습에 피식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잘 지냈냐? 흐흐.”

“야, 창피하게 이건 뭐야?”

“손님에 대한 예의 몰라?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그나저나 LA에 처음 온 소감은 어때?”

“소감은 무슨. 이제 공항에 발 디뎠는데 무슨 개소리야.”

1년 만에 보는 얼굴인데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수다를 떠는 모습에 역시 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인사를 나눈 이성하는 바로 짐을 챙겨 이동부터 서둘렀다.

“그나저나 일단 공항부터 나가자. 피곤해 죽을 거 같아.”

너무 오랜 시간 비행에 시달리다 보니, 온몸이 찌뿌둥했다.

꼬르륵.

“뭐야? 밥도 안 먹었냐?”

“그래, 안 먹었다. 아니 못 먹었다. 하필 덩치들 사이에 껴 가지고 에휴.”

배 속에서 요동치는 소리에 데일이 피식 웃을 정도로, 온몸이 공복과 피로감에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데일 역시 그런 이성하의 상태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그래. 비행기 타면 힘들지. 일단 집부터 가자. 주차장 이쪽이야.”

이성하가 가져온 짐 몇 개를 번쩍 들며 자신이 몰고 온 차 쪽으로 앞장서 걸어갔고.

“벨트 매라.”

“네네, 맵니다.”

그렇게 탄 차 안에서 피곤함 때문에 잠시 지친 표정을 지은 이성하였지만, 공항을 빠져나오고 나서부터 보이는 광경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

넓은 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마을의 풍경 때문이었다.

높은 고층 빌딩 같은 건물이 아니라, 영화에서나 보던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늘어선 LA의 풍경에 깜짝 놀란 거였고, 그러다 보니 피로 때문에 잠시 있고 있던 로스앤젤레스의 특색이 떠올랐다.

“할리우드…….”

영화의 본고장이라는 할리우드가 있는 도시였다.

그 때문에 매년 각종 영화 시상식부터 많은 촬영이 이루어져 영화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이 이 로스앤젤레스였고, 그 별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소니…….’

도로 한 편으로 스머프와 스파이더맨 모형이 전시된 소니 스튜디오의 사무실이 보였다.

[여기가 다운타운이야. 웬만한 미국 영화의 야외 촬영은 대부분 여기서 찍는다고 봐야지.]

그 뒤로 렉스의 말처럼 정말 영화에서 여러 번은 본 것 같은 낯익은 거리가 펼쳐졌고, 그에 이성하는 드디어 자신이 온 곳이 미국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자, 이제 들어 볼까. LA에 온 소감은 어때?”

“끝내준다. 소니 스튜디오를 이곳에서 볼지 몰랐네. 나 스파이더맨 완전 좋아하거든.”

간간이 영화가 시작할 때마다 보이는 소니 스튜디오의 건물이 웅장하게 자리한 LA의 풍경에, 드디어 한국 땅을 떠나 미국으로 온 사실이 진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말에 데일이 만족한 표정으로 차 핸들을 돌렸다.

“그래? 그럼 이제 집 쪽으로 제대로 가 볼까.”

사실 이성하에게 LA가 어떤 곳인지를 알게 해 주기 위해, 조금은 돌아서 가는 길을 택한 참이었다.

“응? 이쪽이 아냐?”

“비슷해. 내 집은 살짝 옆 동네야. 여기는 컬버시티라고 영화 도시 초입에 위치한 곳이고, 내 집은 위쪽에 노스힐스에 있어. 여기서 한 20분?”

관광지로 유명한 LA에 왔음에도 피로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이성하의 모습에, 조금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데일이 말한 노스힐스가 앞으로 이성하가 LA에 있으면서 묵을 곳이었다.

“야, 근데 나 진짜 묵어도 괜찮겠냐?”

“괜찮아. 어차피 남는 빈방 쓰는 건데 뭐. 엄마도 너 온다고 좋아해.”

이성하는 데일의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에 신세를 지기로 한 상태였다.

원래는 폐가 될 수도 있는 생각에 혼자 살 집을 구하려 했지만.

“진짜 좋아하시는 거 맞아?”

“맞다니까 그러네. 네가 하도 뭐라고 해서 월세를 받긴 하는데, 엄마랑 아빠는 그런 거 상관없대. 아주 아들 은인 온다고 난리도 아니야. 겨우 몇 달 있는데 집 구한다고 나한테 뭐라고 했다니까.”

바로 너스레를 떠는 데일의 모습처럼, 데일 부모님의 적극적인 성화에 빈방을 얻어 월세로 살기로 한 상태였고, 다행히 그런 데일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어머, 이게 누구야. 한번 안아 봐도 되지?”

“아, 네. 그럼요. 이성하라고 합니다. 어머님.”

“사진보다 잘생겼네. 제프 존스야. 내 아들 구해 줘서 고맙네. 하하하.”

“하하하…… 반가워요. 제프.”

정말 은인을 대하듯 자신을 환영하는 데일 부모님의 모습에 어색한 웃음을 흘려야 할 정도였다.

“에이, 애 어색하게 왜 그래? 막 도착했는데 짐부터 풀게 하자고.”

“아 참, 내 정신 좀 봐. 방은 2층이야. 이쪽으로 올라가면 돼.”

“그래. 짐부터 풀어야지. 얼른 올라가게. 하하하.

데일이 중간에 끼어서 정리를 하고 나서야 방으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데일 부모님의 환대는 대단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느낌 좋은데요?’

[그러게. 둘 다 성격 괜찮아 보인다. 앞으로 편히 있어도 될 거 같아.]

‘네, 우리 엄마 같아요. 아버님도 그렇고요.’

한국에 있는 엄마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릴 정도로 환대해 주는 두 사람의 모습에, 앞으로의 연수 생활이 즐거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저녁에 잡아 둔 일정을 변경하기로 했다.

“데일, 저녁 먹는 거 나가서 말고 부모님이랑 같이 먹자.”

“우리 부모님?”

“어, 오늘 첫날인데 앞으로 잘 봐달라고 부탁할 겸, 식사나 대접하게.”

원래는 앞으로 지내게 될 특수재난구조대를 찾아가 안에 있는 직원들과 인사부터 나누려고 했는데, 저렇게 환대를 해 주는 데일 부모님의 모습에 첫날은 같이 식사를 하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 우리야 좋지.”

“외식? 우리 많이 먹는데 괜찮다면 난 상관없네. 안 그래도 배가 고프던 참이었거든. 하하하.”

다행히 이야기를 들은 두 분 역시 그런 이성하의 의견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식사하러 간 자리에서 다시 한번 환대를 받았다.

“이성하 소방관. 미국에 온 거 환영해.”

“하하하, 감사합니다.”

“자, 이성하 소방관의 성공적인 생활을 위해.”

“위하여!”

짠!

“앞으로 잘 지내자고.”

“이성하, 환영한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자신을 더 환영해 주는 데일과 그 부모님의 모습에, 웃으며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성하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준비했다.

“허억, 허억.”

앞으로 몇 달은 지내게 될 동네인 만큼 길을 익힐 겸 해서 가볍게 조깅을 다녀왔고, 그렇게 집에 와서는.

“데일. 일어나.”

“……으음?”

“아, 빨리. 일어나.”

아직도 꿈나라에 있는 데일을 정신없이 흔들어 깨웠다.

“야이, 씨…… 우리 출근 9시야. 아직 1시간이나 남았는데 왜 깨우고 난리야. 아후…….”

그 소란에 시계를 확인한 데일이 왜 벌써 깨우냐며 다시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었지만, 이성하로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안 돼, 일어나.”

휘이익.

데일이 덮고 있는 이불을 그대로 당겨, 데일을 팬티바람으로 만들었다.

“야아!!”

“자 착하지. 얼른 일어나서 씻고 나가자고.”

그것도 모자라 앙탈을 부리는 데일의 몸을 그대로 일으켜 세우며, 화장실로 밀어 넣었고.

“아, 진짜 왜 그러는데!!”

그 우격다짐에 울상을 짓는 데일의 모습에 웃음으로 대답했다.

“나 오늘 첫인사잖아. 일찍 가서 인사 좀 하게 도와주라. 흐흐흐.”

비록 연수의 형태이긴 하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근무형식으로 지내게 되는 만큼, 곧 만나게 될 재난 구조대의 소방관들에게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친놈아, 여기서 구조대 본부까지 차로 5분이면 간다고!”

그에 데일이 미친놈을 보는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이성하에게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내려와, 알았지?”

“아우, 저 새끼 진짜.”

“하하하. 밑에 있는다.”

이미 들고 갈 가방까지 챙겨 와 손을 흔들며 먼저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엉겁결에 씻고 나온 데일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야, 빨리 와.”

안 그래도 원하던 잠을 다 못 자 짜증 나 죽을 판에,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차 앞에서 손을 흔드는 이성하의 모습 때문이었다.

“어휴, 너 진짜.”

“에이, 오늘만 좀 일찍 가자.”

짜증 난 자신의 모습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활짝 웃는 이성하의 모습에 괜스레 화가 치밀었고, 그 짜증은 운전대를 잡을수록 더 그랬다.

“아, 역시 꽉 막혔네…….”

안 막히면 5분이면 갈 도로가 차로 꽉 막혀 있었다.

빵! 빵!

곳곳에서 교통 체증으로 차량들의 크락션 소리가 울리고 있었고, 그에 데일은 이성하를 원망스런 표정으로 쳐다봤다.

‘우리 출근 시간은 교통체증 피하기 위해 일부러 1시간 늦게 한다고!!’

이성하는 모르겠지만 로스앤젤레스 특수구조대 소방관들의 출근 시간은, 항상 막히는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일반 사람들보다 1시간 늦게 출퇴근이 배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냥 포기한 채로 운전대를 잡았다.

‘그래. 네가 뭘 알겠냐.’

이성하가 뭘 알겠냐는 생각에서였다.

“이야, 공기 좋다.”

전혀 좋지도 않은 LA의 공기를 좋다고 말하며 얼굴을 창밖으로 내미는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나도 그랬지.’

자신의 재난 구조대 첫 출근 날이 기억나서였다.

‘아, 첫 출근이라고 밤새 근무복에 다림질하고 갔던 거 기억나네. 풋.’

이성하를 뭐라 할 것도 없는 게, 자신도 예전 재난 구조대로 첫 출근을 하면서 잔뜩 설레했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렸으니까.

‘그래. 내가 뭐라고 하든 들리겠냐. 재난 구조대 생각만 나겠지.’

소방관이 되어 본 이들만 아는 기분이었다.

모든 소방관들의 선망의 장소라는 재난 구조대에 배치되는 건, 그만한 설렘을 유발할 만한 일이었고, 실제 이성하는 현재 아무 말도 안 들리는 상태였다.

‘미친…… 공항이 있어?’

분명 재난 구조대의 본부로 가는 상황인데, 그 옆에 공항이 있었다.

위이이잉.

50명 정도 탈법한 소형 항공기들이 철조망 너머로 활주로를 달리는 게 보였고, 그 활주로 끝에는 노란색으로 도색된 소방헬기들이 있었다.

[열 대. 어마어마하네. 역시 캘리포니아 태스크포스2인가.]

렉스의 감탄사처럼 보유하고 있는 장비의 규모부터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갖춰져 있는 게, 앞으로 자신이 연수받게 될 LA카운티의 특수구조대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의 엔돌핀은 현재 최고조로 분출되는 상황이었다.

“여~ 데일,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어?”

“짐 하나가 있어서. 들어가도 되지?”

한국과 다르게 입구부터 검문을 통해 입장하는 재난 구조대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물론이지. 들어가 봐.”

“쌩큐.”

반가운 말과 다르게, 예리한 표정으로 데일이 몰고 있는 픽업트럭을 살피는 직원의 모습을 보면, 미국의 자존심이라는 별명처럼 그 엄중함이 장난이 아닌 듯 보였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여기가 LA카운티 특수재난구조대!’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공항이 딸려 있는 시설도 그렇지만, 입구의 엄중함부터 딱 봐도 엄청난 규모의 구조대 본부를 생각하면 얼마나 대단한 소방관들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바라봤고.

[오오, 대박, 개쩐다!]

그 때문에 갑자기 감탄을 터트리는 렉스의 고함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어디요? 뭐요! 뭐!’

또 어떤 대단한 게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렇게 보게 된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엄청난 장비가 있어서? 아니면 영화에서나 보던 각 잡힌 소방관이 있어서?

아니었다.

쏴아아아아!

뭔가 트램펄린 같은 구조물에 다섯 개의 호스가 연결돼 밑으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됐다! 됐어!!

그 물이 쏟아 내는 압력에 의해 공중에 떠 있는 한 소방관이 신난 표정으로 만세를 질렀고, 그에 이성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은 멋있는 소방관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X발. 존나 멋있어.”

“와, 대박! 드디어 성공했어!”

“로버트! 이거 너튜브 각이다. 대박이다, 진짜!”

꽤 많은 수의 소방관들이 그 모습을 보며 아이처럼 환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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