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77화 (177/235)

<강철 소방대 177화>

177화. 태양은 뜬다 (7)

은평대의 복귀는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인사 발령문>

# 시행일시 : 2016년 10월 17일

# 발령내용 : 복직 발령

# 발령자 : 권일섭 외 3명

# 발령사항 : 은평구조대로 복직 발령함

징계로 인해 근신 중이던 대원 모두에 대한 복직 발령문이 은평서 게시판에 정식으로 걸렸고, 그에 따라 은평소방서의 출근표에는 오랜만에 구조3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구조 3팀>

김필주 – 구조 팀장

허석훈 – 구조

도성민 – 구조

마동민 – 구조

이전과 다르게 한 자리가 비어 있기는 하지만, 드디어 출동을 할 수 있는 구조팀의 모습으로.

하지만 그 빈자리 때문인지, 현장대응단 사무실은 평소와 다르게 차분한 분위기가 돌았다.

이에에에엥!

“출동이다!”

“전부 뛰어!!”

출동 사이렌이 울리면 모든 대원이 다급한 표정으로 뛰쳐나가긴 하지만.

“후…… 심심하네.”

“오늘 할 일 없냐.”

“예방과에 일지 서류 작성해야지 말입니다.”

“아, 그렇지. 그거 오늘까지 해야지.”

출동이 없을 땐 모두가 축 처진 얼굴로 뭔가 힘 빠진 표정을 지었고,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대원들은 비어 있는 자리를 돌아봤다.

<이성하 소방교>

“갑자기 해외연수라…….”

“그놈 정말 로스앤젤레스 가는 거예요?”

“신청서까지 올렸는데 가겠지, 그럼 안 가겠냐.”

“후, 그놈 가면 무슨 재미로 사냐.”

“그러게요. 진짜 그놈 때문에 매일 심장 떨려서 조마조마했는데, 막상 간다니까 너무 아쉽네요.”

구조3팀의 징계가 전격적으로 철회되며 정식 복귀가 이뤄지긴 했지만, 정작 그중 핵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성하가 빠진 것에 모두가 아쉬움을 느끼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하의 연수는 아쉬움보다는 축하를 해야 할 일이었다.

“에이, 무슨 초상났어? 가서 안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왜들 난리야? 해외연수면 승진이나 다름없는데 축하나 해 주자고.”

그런 대원들의 모습에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지휘팀장의 말처럼, 해외연수. 그것도 대원 한 명이 단독으로 연수를 가는 건 이 바닥에서 영전을 뜻하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대원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어려 있었다.

“그래도 그놈이 없는 3팀의 모습이 그려지질 않는걸요.”

어느덧 이성하가 은평서로 넘어와 동료로 함께한 게 2년이 넘었다.

“나도 그래. 그놈 처음 왔을 때는 정말 재밌었는데 말이야.”

“골 때리는 놈이었죠. 아침저녁으로 훈련하는 놈은 처음이었어요.”

“훈련뿐이겠어? 난 먹기도 그렇게 많이 먹는 놈은 처음이었어. 식당 이모님이 성하 그놈은 식비 따로 걷어야 된다고 했을 정도니까 말이야.”

다들 그간의 추억이 떠올랐는지 먹먹한 표정을 지으며 아쉬움을 표현했고, 그 아쉬움을 가장 느끼는 건 이성하를 팀원으로 둔 구조3팀이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이게 아들 장가보내는 기분일까요?”

김필주가 멋쩍게 웃으며 권일섭을 바라봤다.

“장가는 무슨, 골치 아픈 놈 떠나는 데 기분만 좋지.”

그 말에 권일섭이 바로 핀잔을 던졌지만.

“에이, 본인이 제일 아쉬워하시면서.”

“흥.”

옆에서 너스레를 뜨는 허석훈의 말에 바로 고개를 돌리는 걸 보면, 그 역시 아쉬운 건 마찬가지인 듯 보였고, 그런 선배들의 말에 도성민이 웃으며 말했다.

“그 녀석. 여기 와서 많은 일을 했다면서요?”

한편에 놓인 이성하의 사진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저는 모두 겪지 못했지만, 매일 그 일들을 뉴스로 들으면서 주먹을 움켜쥐었어요. 역시 이성하다. 내가 아는 이성하답더라고요.”

동기로서, 그리고 이제는 같은 팀에 근무하는 동료로서 이성하에 대한 그리움을 그렸으며, 그 말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공장 때는 죽여 버리고 싶었지.”

“공장이요? 저는 북한산입니다. 진짜 그때 그놈이 우리 모두 로프로 끌어서 옮기다 팔 작살 날 뻔했다는 거 생각하면 아직도 조마조마해요.”

“터널은 생각 안 나십니까?”

“큭큭큭. 에베레스트도 있습니다. 대장님.”

도성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금까지 이성하가 벌인 일들을 토로하며 하나같이 아쉬움을 토하는 게 구조3팀의 기분인 것이다.

그 때문에 마동민이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팀장님, 저희 오늘 회식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대로 이성하를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회식?”

“네, 지금 가면 언제 올지 알고 그냥 보냅니까. 오늘 같은 날 한잔해야죠. 제가 성하 선배한테 연락하겠습니다.”

연수 계획서의 내용대로라면 6개월 뒤에 돌아올 이성하지만, 실상은 그 기간이 더 연장될 수도 있는 무기한 연수라는 생각에, 송별회라도 거하게 하고 보내야 한다는 게 마동민의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허석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서라. 오늘은 안 돼.”

“네?”

“오늘은 안 된다고. 오늘 성하 중요한 선약이 있거든.”

송별회도 좋지만, 오늘 이성하는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그래. 오늘은 안 돼. 오늘 불렀다가는 우리 전부 죽을지도 몰라.”

김필주 역시 알고 있는 게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고, 그 말처럼 이성하는 오늘 중요한 선약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성하는 모르지만, 한 사람이 아침 일찍부터 이성하를 만나기 위해 한강으로 나온 참이었다.

“매일 같이 운동을 한다고 했지.”

김민정이었다.

“하, 공기 좋네.”

한강 벤치 앞에 앉아 한가로이 하늘을 바라보며 이성하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허억, 허억.”

저 멀리 이성하가 가쁜 숨을 내쉬며 달려오는 모습에 반갑게 손을 들었다.

“성하 씨!”

“……!”

“많이 뛰었어요?”

“민정 씨가 여길 어떻게…….”

“석훈 선배님에게 들었어요. 매일 오후 두 시에 체력단련을 위해 한강변을 뛴다고요.”

김민정이 허석훈을 통해 이성하가 매일 운동하는 장소가 한강이라는 걸 알고, 그 얼굴을 직접 보기 위해 한강으로 깜짝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김민정의 방문에 반가운 표정을 짓기보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연락하시지 그랬어요…….”

눈치를 살피며 인사를 하고는 그 옆으로 조용히 앉았고, 그러고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화났으려나…….’

자신이 김민정에게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연히 화났지,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미국으로 연수를 가겠다고 통보식으로 말하는데 누가 화를 안 내냐?]

‘끄응…….’

꾸짖는 듯한 렉스의 말처럼 김민정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상의도 없이 연수를 결정한 상황이었다.

“성하야, 너 김민정 선생과 이야기는 했어?”

“네?”

“김민정 선생 말이야. 너 설마 김민정 선생과 상의도 안 하고 그냥 간다고 한 거야?”

“…….”

“미친놈…….”

“맙소사, 저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뭘 어떡해. 그냥 나가 죽어라.”

나중에 허석훈을 통해 뒤늦게 자신이 남자로서 최악의 잘못을 저지른 걸 깨닫고 김민정에게 부리나케 전화하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민정 씨, 저 그런데 갑자기 연수를 가게 될 거 같아요…….”

- 연수요? 얼마나요?

“6개월이긴 한데 좀 더 길어질 수도…….”

-…….

기간을 듣자마자 싸늘하게 굳어 버린 김민정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 6개월이요? 어디로요?

“미국이요…….”

- 미국?

“그, 그게 어쩌다 보니까 갑자기 결정하게 돼서…… 죄송합니다.”

- 하…….

기간도 문제지만, 그 장소가 한국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한 미국이라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던 김민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얼굴을 마주한 김민정의 모습은 괜찮아 보였다.

“이야기 들었어요. LA카운티 소방국이 어떤 곳인지.”

이성하가 가게 될 곳을 알아봤는지, 연수 장소인 LA카운티 소방국 이야기를 꺼냈다.

“거기가 소방관이라면 한 번이라도 가보길 선망하는 장소라면서요? 세계 모든 소방관들이 참고하는 재난 대처 매뉴얼을 만든 곳이라고.”

구조대원이라면 한 번은 참조하는 재난 대처 매뉴얼을 이야기하며 이성하를 향해 활짝 웃었고, 그에 이성하는 저도 모르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재난 대처 매뉴얼을 알아요?”

일반인인 그녀가 LA카운티 소방국의 업적 중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자신이 갈 연수 장소에 관심을 보인다는 생각에서였다. 때문에 이성하는 신이 난 듯 말했다.

“그것만이 아니에요. LA카운티는 일반 소방대만이 아니라, 공수부대까지 보유하고 있어요.”

“공수부대요?”

“네, 캘리포니아 자체가 삼림 지역이 많다 보니, 출동에 시간이 걸리다 보니 낙하산을 메고 산불 속으로 뛰어들어서 진압하는 부대가 있거든요.”

이성하는 아직 가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이미 LA카운티 소방국에 다녀온 것처럼, 그들의 시스템을 자랑하듯 설명했고, 그에 김민정은 겉으로는 웃음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쳇, 그렇게 좋은가.’

최대한 티는 안 내고 있지만, 자신과 떨어진다는 건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설레는 표정으로 LA카운티 소방국의 생활을 기대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서운한 마음이 든 것이다.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좋아했는데 뭐.’

이게 자신이 알고 있는 이성하의 모습이라서였다.

“거기에 소방항공기까지 있는데요. 이게 뭐냐면 원래 여객용으로 쓰는 보잉기들을 개조해서 산불진압에 쓰는 건데, 이걸 우리나라에 보급하면 많은 사람들이 산불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걸 막을 수 있는…….”

미국에 연수를 가서 좋은 게 아니라, 거기서 배운 걸 적용해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에 흥분해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고, 그래서 이성하의 손을 잡았다.

“다녀오면, 나랑 만나요.”

“……네?”

“다녀오면 나랑 연애하자고요.”

지금이 아니면 말할 기회가 없다는 듯, 김민정은 빨개진 얼굴로 고백했고, 거기에 이성하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네…….”

조용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 * *

김민정과 한강에서 약속하고 어느덧 3일 후, 드디어 이성하가 떠나는 날이 찾아왔다.

“왔냐?”

“네, 대장님. 식사는 하셨어요?”

평상복을 입은 은평구조대가 이성하가 출국할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장님, 여기요, 여기!”

“유 과장은 여기 왜 왔어?”

“에이, 와야죠. 제가 안 오면 어떡합니까? 제가 은평서 두 번째인데.”

서장인 성환용과 행정과장 유상명 또한 사복을 입은 채 공항으로 들어섰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천공항에 있었다.

“건호야, 성하는?”

“아직 안 왔어요.”

“아, 이 새끼 주인공이라고 늦게 오나.”

장건호와 박민우, 강동훈 등을 비롯해 이성하와 간간이라도 연락을 주고받는 86기 동기생들과.

“양 대장님!”

“여, 허 부장!”

“저도 왔습니다. 허 부장님.”

이번 동아백화점 붕괴 건으로 은평대와 친분을 나누게 된 특수구조대 대원들까지 인천공항에 나타났고, 그런 그들이 돌아보는 자리에는 이성하가 있었다.

“일단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반찬 위주로 쌌고, 김치는 택배로 보낼 거니까. 받자마자 냉장고에 넣어야 돼. 알았지?”

“아, 알았다니까요, 엄마. 이러다 출국 시간 늦겠어요.”

엄마인 강은희에게 잡혀 하소연을 하는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애처럼 보이는 모습이지만, 그 애처럼 보이는 이성하가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상태였다.

“잘 다녀와라.”

“몸 건강히 다녀와.”

“너무 오래 있지 마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앞다투어 작별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이 자리에 모든 이들이 이성하의 배웅을 위해 인천공항에 모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과분한 배웅이었다.

[기껏해야 3년 차가 엄청 출세했네.]

렉스의 말처럼 이성하의 소방 생활이 3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이 인원은 과한 편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을 꺼낸 렉스나, 이곳에 모인 이들 중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활짝 웃는 저 얼굴이 항상 자신들에게 힘이 돼 줬기 때문이었다.

“가서 연락 자주 할게요. 너무 자주 한다고 싫어하시면 안 돼요.”

곁에 있을 땐 매일 사고만 쳐서 얄미운 놈이지만, 그 모든 행동이 동료로서 본받을 자격이 있다는 행동이라는 걸 알기에.

“그래.”

“올 때 선물 꼭 사 와라.”

“너 연락 자주 해라. 잊지 말고.”

그 인사에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동료들의 환대 속에서 이성하는 걸음을 옮겼다.

터벅.

‘저 잘하고 올게요.’

LA카운티 소방국이라는 새로운 소방 생활을 향해 힘차게 걸음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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