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76화>
176화. 태양은 뜬다 (6)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소방국은 약 400만 명의 인구수를 담당하는 행정구역 소방국이었다.
미국의 행정구역은 주 – 카운티 – 시티 순으로 구성되는데, 그 카운티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곳이 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였고, 그 많은 인구수만큼이나 소방국의 규모 또한 거대했다.
소방국 산하로 4개의 권역본부와 31개의 지역소방서인 방면대를 통해 176개의 센터 소방서를 둔 걸로 유명한 대형 소방국.
하지만 전 세계의 소방관들에게는 그런 크기보다 다른 이름으로 유명했다.
- LA카운티 소방국은 우리 미국의 자존심이다.
바로 미 연방정부가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자존심이라 칭하는 소방국.
그리고 그 이유는 그들이 보유한 특수재난구조대의 존재 때문이었다.
넓은 땅덩이만큼이나 각 주마다 몇 개의 특수구조대가 존재하지만, 미 연방정부가 공식 지정한 특수구조대는 딱 두 개였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 LA카운티 소방국의 재난구조대였다.
<美 재난구조대 멕시코시티 대지진 지원>
<911테러 LACOFD 긴급 출동>
<아이티 지진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미국 구조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소방국, 뉴질랜드의 위험은 우리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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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디라도 재난이 발생하면 미국의 성조기를 가슴에 매단 채, 나라를 대표해 출동하는 특수구조대가 바로 이 LA카운티 소방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이 연수계획서에 멍할 수밖에 없었다.
‘LA카운티가 우리나라에 연수 교육을 허락했다고?’
매년 한국의 소방본부는 실력 있는 소방관들의 해외 연수를 진행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소방 선진국으로 이름 높은 국가에 연수를 요청해 그에 대한 교육을 진행해 왔었고, 당연히 미국에서도 수차례 소방연수를 진행했지만, 그 목록에 LA카운티 소방국의 이름은 없었다.
“LA카운티? 거기는 다른 나라의 소방관들과 교류 같은 건 안 해.”
“교류를 안 해요?”
“어, 모든 소방전술과 장비들이 먼저 도입되는 곳이 거기거든. 괜히 미 소방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곳이 아닌 거지.”
매년 이성하가 있는 은평서에서도 연수 인원이 뽑히다 보니, 동료 선배들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었다.
‘정말 데일이 있는 그 LA카운티가?’
게다가 친우인 데일이 근무하는 곳이 그 LA의 특수구조대인 만큼, 그들의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는 잘 아는 상황.
하지만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에 적힌 연수 장소는 확실히 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소방국이 맞았다.
LACOFD라는 약어로 유명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소방국의 이름이 영문으로 또렷이 적혀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노상일 본부장을 바라봤다.
“이거…… 잘못 나온 거 아닙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듯 질문하는 이성하에 모습에 노상일 본부장이 말했다.
“잘못이요?”
“네, LA카운티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LA카운티 연수는 이번이 처음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제게 허락했다고요?”
미 소방의 자존심이라는 LA카운티 소방국의 연수가 처음으로 성사된 자리에, 본부의 간부들을 제쳐 두고 현장직인 자신을 보낸다는 게 마치 농담처럼 들렸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노상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소방관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연수는 꼭 간부가 가야 한다고?”
“…….”
“저는 연수는 꼭 필요한 사람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위가 문제가 아니라 가서 그곳의 교육을 확실히 배워서 올 수 있는 사람이요. 그리고 전 그걸 이성하 소방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수는 확실히 배울 수 있는 사람이 가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 모습에 이성하는 의아한 듯 물었다.
“제가요?”
“네, 권 대장이 그러던데요. 이 소방관이 은평대의 에이스라고. 지금까지 모든 재난을 극복하는 데 이 소방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그리고 저도 거기에 공감합니다. 이 소방관이 지금까지 보여 준 구조 작전이 대단했다는 건 저도 잘 알거든요. 제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전 이 소방관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LA카운티 연수, 솔직히 소방관으로서 굉장히 매력적인 기회잖아요. 하하.”
노상일은 지금까지 이성하가 보여 준 능력이라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건 물론, 소방관이라면 욕심을 부려야 할 기회가 지금의 연수라고 웃음을 지었고.
“그게…….”
그 칭찬을 과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이성하가 대답을 망설였지만, 그 모습에 노상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 연수 교육, 어차피 이성하 대원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요?”
“네, 제가 이 연수 계획을 추진하긴 했지만, 처음 제의를 한 건 제가 아니라 LA카운티거든요. LA카운티의 모스 소방관.”
이성하로서는 모를 리 없는 이름이었다.
[모스? 모스면 LA카운티 재난구조대 대장이잖아.]
이름을 듣자마자 렉스가 바로 입을 연 것처럼, LA카운티의 재난구조대 대장 이름이 모스였다.
- 제가 아닙니다. 저 이전에 구조팀을 구하기 위해 산을 오른 이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포기하던 상황에서 우리 미국을 위해 손을 내민 한국의 구조대죠. 그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구조는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특히 이성하.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요.
그 위험한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직접 헬기를 몰아 자신을 구했음에도, 그 모든 공로를 국제구조대와 자신에게 돌리던 그 모습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했고, 그 때문에 이 연수 교육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놈이면 그럴 만하네. 너한테 꼭 나중에 은혜를 갚겠다고 한 놈이잖아. 부하들을 구해 줘서 고맙다고.]
렉스의 말처럼 자신에게 목숨 빚을 졌다며 기회가 된다면, 언제라도 꼭 은혜를 갚겠다고 한 사람이 바로 그 LA카운티의 모스 대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왜 나만…….’
이번 연수 교육이 이성하 혼자만을 위해 진행되는 단독 연수라는 거였다.
‘모스 대장 성격이면 다른 선배들도 포함시켰어야 되는데.’
기간은 짧았지만, 그동안 알게 된 모스 대장의 강직한 모습을 떠올리면, 이런 혜택은 자신 혼자만이 아니라 그 당시 에베레스트에 올라간 국제구조대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는 게 맞았으니까.
그런데 그런 자신의 생각을 짐작했는지, 옆에 있던 권일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모스 대장 말로는 데일의 추천이라고 하더라.”
“데일이요?”
“어. 너 붕괴 사고 때, 데일이랑 통화하고 있었다며.”
“네…….”
“그때 네가 지진이라고 말한 걸 데일이란 친구가 모스 대장에게 보고했고, 그것 때문에 LA카운티에서 우리 쪽 상황을 주시했대. 이번 붕괴 사고에 대한 모든 상황과, 너와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징계를 받게 된 것도 알게 된 거지. 그래서 추진된 게 이번 LA카운티 연수야. 상황을 알게 된 LA특수재난구조대에서 은혜를 갚겠다며 우리 쪽으로 널 지목해서 연락해 온 거지. 자신들이 도움이 될 방법이 없냐고 말이야. 그걸 본부장님이 연수로 엮은 거고.”
이번 연수가 징계를 받게 된 자신을 돕기 위해 LA 특수구조대가 힘을 쓴 결과라 말했고, 그에 저도 모르게 데일에 대한 욕설을 내뱉었다.
“데일. 이 새끼가 미쳤나 진짜…….”
이 중요한 사항을 당사자인 자신과 이야기도 없이 진행한 것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데일을 욕할 게 아니었다.
“그놈도 너 욕하더라. 망할 놈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제, 제가요?”
“그래. 너 그 이후로 데일의 전화 안 받았다며. 문자 답장도 안 하고 말이야.”
권일섭의 말처럼 이성하는 붕괴 사고 이후로 데일의 전화를 일부러 피하고 있었다.
“끄응…….”
자신보다 나이만 많았지 작은 일에도 호들갑을 떠는 그 부산한 성격을 보면, 사정을 듣자마자 시끄럽게 굴 거라는 생각에 걱정하며 보내온 문자도 씹은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노상일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연락이 저에게 넘어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에게는 다행이었어요. 사실 LA카운티에서 내민 조건은 이성하 소방관을 완전히 데려가겠다는 거였거든요.”
“와, 완전히요?”
“네, 강력하게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 대접을 받을 친구가 아니라며, 그런 대접해 줄 거면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하지만 전 그럴 순 없었어요.”
“…….”
“전 이 소방관을 미국으로 보내는 걸 국가적 손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에이, 그게 무슨…….”
그 말에 이성하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노상일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전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소방관은 국가적인 영웅이에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실력 있는 소방관. 그 때문에 저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
“이 소방관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데 거기를 보냅니까? 국가적 손실이에요. 암, 국가적 손실이지.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연수였습니다. 보통 연수는 3개월로 진행되지만, LA카운티 쪽에서도 강력하게 주장해서 최종 6개월로 합의했어요. 게다가 이 소방관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조건으로요. 물론 이 소방관이 안 가면 이건 그냥 없어지는 조건입니다. 이 소방관이 아니면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LA쪽에서 공문을 보내왔고, 거기에 전 이미 제 이름으로 도장을 찍었어요. 어때요? 이래도 가고 싶지 않아요?”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하는 말이었다.
이성하를 빼앗기는 건 국가적 손실이기에, 그래서 자신이 그걸 연수로 바꿔서 진행했다고 말했으며, 그에 이성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6개월이라면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의 소방대가 있는 곳이니까요.”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이름을 들어 봤을 정도로, 세계 모든 재난구조의 선구자격 역할을 하는 곳이 이 LA카운티 소방국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음이 그렇다고 해서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저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겁니까?”
자신이 알기로 소방 연수는 이렇게 급작스럽게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계획부터 시작해 그에 관련된 예산을 심의하는 데만 최소 6개월의 기간이 소요되는 게 소방연수.
그런데 상황을 들어 보면 지금 노상일은 그걸 단독으로 진행한 상황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본부장님 개인 결정이신 같은데, 본부 측에서 항의가 있을 겁니다. 심지어 저는 서울 소방본부 소속이지 않습니까.”
서울 소방본부 소속인 자신을 발령과정도 건너뛴 채 경기 소방으로 옮긴 사항은, 아무리 경기 지역을 총괄하는 재난본부장이라 할지라도 차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노상일은 웃음을 지었다.
“빚을 갚을 기회였거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반말로 말을 바꾼 노상일은.
“빚이요?”
“그래. 이번이 내 목숨 빚을 갚을 기회였어. 성훈이에게 진 빚 말이야.”
이성하의 아버지인 이성훈을 언급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그게 무슨…….”
갑자기 아버지를 언급하는 노상일의 모습에 뭔가 싶었지만, 그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아…… 노상일 대장…….]
렉스였다.
[살이 빠져서 못 알아봤었어. 저놈…… 장안동 화재 때 네 아버지 대장이야.]
“……!”
[그 현장에 같이 있던 놈이야.]
장안동 화재 참사 당시, 구조팀을 이끌었던 구조대장이 노상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렉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장안동…… 그때, 나는 성훈이에게 목숨을 빚졌지. 갑자기 명령을 무시하고 2층으로 올라온 그놈에게 무슨 짓이냐고 고함을 질렀지만, 그놈은 나가야 한다며 날 밀쳐 냈어. 그리고 그게 성훈이를 본 마지막이었다.”
노상일이 이성하를 보며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날 살리고 그놈이 희생했던 거지. 날 살리고 말이야…… 그리고 난 꼬박 5개월을 병원에 있었어. 그것 때문에 네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 못 했다. 기어서라도 갔어야 했는데. 또다시 빚을 진 거지. 그리고 나중에 서로 복귀해서는 현실을 알고 분노했어.”
말을 하다 화가 치밀었는지 잠깐 입술을 깨물고는 말을 이었다.
“한 사람의 동료라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그놈의 행동을, 본부에서는 무모하게 올라가서 죽었다며 혀를 찼다는 걸 알고 말이야.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내 목표는 고위 간부가 돼서 이 썩어 빠진 체계를 고치는 거였다. 쓰레기 같은 간부들의 정신 상태와 부족한 소방장비를 충족시키는 게, 현장에서 직접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
“그리고 그러면서 지켜본 게 너야.”
“저를요?”
이성하의 물음에 노상일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성훈이의 아들이 소방학교에서 거한 사고를 쳤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달려갔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널 지켜봐 왔다. 일섭이를 통해 네 이야기를 듣고 웃었고, 그리고 만족했다. 성훈이가 창피하지 않게 스스로 잘 큰 네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거든. 그러니까 그따위 걱정은 하지 마라. 어차피 썩어 빠진 놈들과 매일 싸우는 사이에 이런 거 하나 추가된다고 나빠질 건 없으니까. 그리고 이번 일은 날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해.”
“본부장님이요…….”
노상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후년에 소방총감을 준비하고 있어. 만약 내가 소방총감이 된다면 이 썩어 빠진 소방 간부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칠 거야. 지휘경력이 안 되는 소방관은 승진이 불가능한 건 물론, 최대한 모든 예산을 부족한 소방장비에 쏟아부을 생각이고. 거기에 네가 도움을 줘야 해.”
“…….”
“이번 LA카운티 소방연수. 거기 가서 네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경험을 가져와. 장비, 훈련, 그에 연관되는 시스템을 제대로 배우고, 그 뒤에 너는 돌아와서 일섭이가 이끄는 특수재난구조대에 합류한다.”
“특수재난구조대…….”
“그래. 우리도 전국. 나아가서는 세계까지 커버할 수 있는 소방시스템을 구축할 거야. 그러려면 LA카운티의 시스템이 필요해. 그걸 네가 해줘야 하는 거야. 이성하.”
지금보다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성하가 연수교육을 받을 LA카운티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곳의 경험과 기술을 흡수해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었고, 그 말에 이성하의 눈에 어려 있던 망설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가겠습니다.”
사람을 구한다.
“가서 본부장님이 말한 시스템 꼭 배워 오겠습니다.”
이성하 역시 오래토록 마음에 품어왔던 소방관의 긍지를 이야기 하는 본부장의 말에, 마음이 뜨겁게 불타올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