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75화 (175/235)

<강철 소방대 175화>

175화. 태양은 뜬다 (5)

상사인 권일섭이 말도 없이 집으로 찾아왔다.

“들어가도 되냐?”

“아, 네. 들어오세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모습에 일단 들어오라며 문을 열어 줬지만, 손님은 권일섭 혼자만이 아니었다.

“어?”

권일섭의 뒤로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들어가시죠, 선배님.”

권일섭이 선배라고 호칭하며 먼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는 인물이 있었고, 그렇게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에 이성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소방 제복을 갖춰 입은 한 노년의 남성이 안으로 들어오며 이성하를 향해 살짝 눈인사를 건넸다.

“실례하겠네. 경기 재난 본부장 노상일일세.”

정중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며 손을 내밀었고, 황망하게도 이성하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재, 재난 본부장…….”

소방본부에 본부장이라는 직책은 꽤 있지만, 그 호칭 앞에 재난이라는 단어가 붙은 사람은 딱 세 사람이 있었다.

일명 탑 쓰리라고 통칭하는 서울, 경기, 부산 지역을 총괄하는 재난 본부장들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손을 잡는 게 아닌 경례를 올렸다.

“안전! 은평소방서 이성하 소방교입니다.”

재난 본부장의 직위가 소방본부를 총괄하는 소방총감의 바로 밑이라서였다.

[소방정감…… 와, 대박인데?]

렉스의 떨떠름해하는 음성처럼, 현 소방공무원 조직에서 단 네 사람만 달고 있는 소방정감이 눈앞의 경기 재난 본부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깍듯하게 안 해도 돼요. 저 무서운 사람 아닙니다.”

그 모습에 자신을 재난 본부장이라고 밝힌 노상일이 소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성하는 손을 내리지 못했다.

‘끄응…….’

군대로 따지면 쓰리 스타에 해당하는 계급이 소방정감이었다.

자신이 맡은 지역에 한해서만큼은 대한민국 소방관의 정점이라 불리는 소방청감의 의사마저 거부할 수 있는 직위가 소방정감이라는 자리였고, 그에 이성하는 한참 눈치를 봐야 했다.

‘내려, 인마.’

‘쩝…….’

옆에 있던 권일섭이 압박을 주고 나서야 조용히 손을 내릴 수 있었으니까.

물론 멍청하게 계속 멍을 때리지는 않았다.

“이, 일단 이쪽으로 앉으십쇼.”

우선 노상일과 권일섭을 소파로 이끌었다.

“저, 커피 드시겠습니까?”

“커피요?”

“네…… 싫으시면 유자차라도…….”

“그래요. 유자차 한 잔 주세요.”

“네, 잠시만 계십쇼.”

소방정감이나 되는 양반이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아온지는 모르지만, 일단 손님이라는 생각에 주방으로 들어가 황급히 유자차 한 잔을 준비했고.

“너 나한테는 안 물어보냐?”

그 모습에 권일섭의 웃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성하는 가볍게 무시했다.

‘전화나 하고 오지. 갑자기 오는 건 또 뭐고, 소방정감은 또 뭡니까.’

사전에 아무 이야기도 없이 소방정감과 같은 높은 직급의 상사를 데리고 집을 방문한 권일섭에, 소심한 복수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권일섭에 신경을 쓸데가 아니었다.

‘도대체 소방정감이 여길 왜 온 거지…….’

소방본부의 수뇌부 중 한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맛있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개 소방교인 자신의 앞에서 차를 마시며 웃음을 짓고 있었고, 문제는 그 눈빛에 어린 게 따스함이라는 거였다.

“운동 좋아하나 봐요?”

거실 한편에 있는 러닝머신과 역기들을 보며 자신의 일상에 관심을 보였다.

“아, 네. 구조대다 보니 집에서도 틈틈이 운동하는 편입니다.”

“그래요? 역시 괜히 최강 소방관을 단 게 아니군요.”

자신에 대해 조사를 했는지, 소방대회에서 최강 소방관을 수상한 걸 이야기하며 웃음을 지었고, 그렇게 몇 번의 이야기를 끝으로 찾아온 본론을 꺼냈다.

“징계위원회를 통해 해임됐다고 들었습니다.”

마시던 차를 내리며 하는 말이었다.

“처음엔 이야기 듣고 놀랐어요. 은평대면 내가 아는 일섭이가 있는 곳인데, 그런 은평대가 한 명도 아닌, 팀 전체가 징계를 받았다는 것에 황당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 이유를 알고 화가 났어요. 그 징계가 본부의 부당한 처사로 행해졌고, 그에 대한 결과 또한 굉장히 추잡했으니까.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

“사과를 드리려고요. 소방본부의 수뇌부 중 하나로서. 그리고 이 사태를 방관한 소방관 중 한 사람으로서 이성하 소방관에게 사과드립니다.”

잘못된 징계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이번에 발생한 간부 비리에 대해 본부의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사죄를 청했고, 그 모습에 이성하는 아무 말을 못 했다.

꾸벅.

한참이나 숙인 그의 고개 때문이었다.

“이러시지 않으셔도…….”

“아니요. 그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이건 우리 소방본부의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이성하 소방관.”

“…….”

그 전 자신을 방문한 박철민과 다르게 아무 조건 없이,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해 사죄를 청하는 모습에 그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랬기에 이성하도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받겠습니다. 그 사과. 그러니 그만하셔도 돼요.”

사과를 받겠다고 하지 않으면 노상일이 계속해서 고개를 숙일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서 제복을 입고 왔네.]

‘네, 같은 소방관으로서 사과하고 싶었나 봐요.’

처음엔 그냥 무심코 넘겼지만, 제대로 제복을 갖춰 입고 방문한 노상일의 모습에 그 진정성을 알 수 있었고, 설령 그게 연기라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아따, 거 양반 고개 참 무겁네. 사과받겠답니다. 그러니까 얼른 고개 들어요. 그러면 쟤가 얼마나 부담 갖겠어요.”

그 모습을 보며 옆에서 만족한 표정으로 너스레를 떠는 권일섭의 모습만 봐도, 어느 정도 지금까지 느꼈던 서러움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바뀌는 건 없겠네.’

본부의 책임자 중 한 명이 사과하기 위해 찾아오긴 했지만, 실상 달라진 건 없는 상황이었다.

어제 확인했던 소청심사의 진행 과정만 봐도 이번에 내려진 징계에 대한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운 상태로 보였고, 노상일 본부장이 자신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소청심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걸 보면 자신과 권일섭의 해임은 확정된 듯 보였다.

“그나저나 시간 언제 빕니까? 다음 주에 저랑 낚시나 하러 가시죠.”

“낚시?”

“네, 요즘 집에만 있으니 심심해서 죽을 거 같습니다. 우리 낚시하러 간 지도 오래됐잖아요.”

노상일에게 한가롭게 낚시나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권일섭의 모습을 보면, 이미 모든 게 결정 난 상황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꺼내진 않았다.

“대장님, 여기 커피요.”

한창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 부엌으로 가서 아까 타 오지 않았던 권일섭의 커피를 타 왔다.

“야, 프림 없어?”

“에이, 여기가 소방서도 아니고, 가정집에 누가 프림을 챙겨 둡니까? 그냥 드세요.”

그렇게 커피를 타 줬음에도 불평을 토하는 권일섭의 말에 입을 실룩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고.

“하하하, 재밌네.”

그런 권일섭과 자신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노상일이 살짝 웃음을 터트렸지만, 이성하는 그에 살짝 웃음만 짓고는 권일섭에게 조용히 입을 뻥긋거렸다.

‘언제 가요?’

‘뭐?’

‘언제 가시냐고요.’

찾아온 용건도 다 들었겠다,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언제 돌아가냐며 은근한 눈치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말에 권일섭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선배님, 애가 우리보고 가라는데요?”

“……!”

이성하를 향해 얄미운 미소를 보내며, 이성하가 눈치 준 사실을 그대로 노상일에게 일러바쳤다.

“하하하. 제가 불편한가 보네요.”

그 말에 본부장이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고.

“아, 그게 아닙니다. 저희 대장님이 장난이 심하셔서…….”

이성하가 그런 본부장의 모습에 황급히 변명해 봤지만, 권일섭은 제대로 재미가 붙은 모양이었다.

“장난? 너 방금 나보고 언제 가냐며.”

“…….”

“어? 이것 봐. 또 노려본다. 선배님 요즘 애들이 이렇습니다. 아무리 챙겨 줘도 이렇게 뒤통수를 친다니까요.”

어지간히 심심했는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끄응…… 제가 언제…….”

“와, 이제는 연기까지 하네. 성훈이가 잘못 키웠네. 제수씨가 슬퍼하겠어.”

당황해하는 이성하를 보며 끊임없이 장난을 걸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대꾸를 포기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야, 어디 가.”

“콜라 마시려고요.”

“콜라?”

“네, 대장님 때문에 화딱지 나서 저도 뭐 좀 마셔야겠습니다.”

계속해 장난을 치는 권일섭의 모습에, 대꾸를 안 하고 자리를 피하는 게 정답이라는 걸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이성하 소방관, 그거 마시고 저랑 이야기 좀 다시 하실까요?”

이성하와 권일섭의 장난을 보며 계속 웃음만 짓던 노상일이 이성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야기요?”

“네. 사실 오기 전에 권익위원회에 들렀다 오는 길입니다.”

이성하로서는 귀를 번뜩이게 하는 말이었다.

“궈, 권익위원회요?”

“네, 이번에 은평대가 신청한 소청심사 있지 않습니까. 그 건에 대한 항의를 위해 다녀왔습니다.”

노상일이 은평대의 소청심사를 거론했다.

그 말은 한마디로 이번 징계 결과에 대한 변화가 있을 거라는 말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착석했다.

“네, 말씀하십쇼, 본부장님.”

지금까지 답이 보이지 않던 소청심사 접수에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조짐에,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경건한 모습으로 노상일을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아니, 오히려 예상을 뛰어넘었다.

“소청심사 파기 환송서예요. 원래 접수되고 심사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저희 경기 본부에서 이번 징계위원회 결과에 대한 무효 신청을 진행해 은평대의 징계는 부당처분으로 파기 환송됐어요.”

본부장이 이번 징계의 부당처분을 거론하며, 권익위원회의 도장이 찍힌 파기 환송서를 내밀었다.

※ 결정 ※

사건 2016- 91 해임 처분 취소 또는 감경 청구

소청인 : 은평소방서 구조대장 권일섭 소방경

피소청인 : 중앙소방본부장

피소청인이 2016. 8. 24. 소청인에게 한 견책 처분에 대해 소청인이 처분 취소 구하는 소청을 하였으므로 우리 위원회는 이를 심사하고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 주문 ※

피소청인이 2016. 8. 24. 소청인에게 한 해임 처분을 파기 환송한다.

서울시소청심사위원회

이번 징계에 대한 감경 처분이 아닌, 아예 그 징계 자체를 없애는 파기 결정서였고, 그 뒤로 네 장의 결정서가 더 있었다.

<김필주>

<허석훈>

<이성하>

<도성민>

정말 노상일의 말처럼 권일섭을 비롯해 구조3팀에게 내려진 징계 처분이 모두 무효 처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인사 발령문?’

노상일이 내민 문서 마지막에 있는 인사 발령문이었다.

<인사 발령문>

# 시행일시 : 2016. 10. 17.

# 발령내용 : 복직 발령

# 발령자 : 권일섭 외 3명.

# 발령사항 : 은평구조대로 복직 발령함

징계가 취소돼 이번에 징계를 받은 은평구조대에 대한 복직 발령문이었는데, 그중에 자신의 이름이 없었다.

※ 별지 ※

권일섭 - 은평구조대

김필주 – 구조 3팀

허석훈 – 구조 3팀

도성민 – 구조 3팀

별지로 포함된 복직발령자의 명단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만 빠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의 이름은 빠진 게 아니었다.

<소방관 연수 신청서>

성명 : 이성하

소속 : 경기소방재난본부

직급 : 소방교

소방관 연수 신청서라는 종이에 이성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경기소방이라뇨…….”

난데없는 연수 신청서, 그것도 은평소방서가 아닌 경기본부 소속이라고 적힌 문구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뒷장 보고 이야기해.”

권일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종이를 넘겼고, 그곳에 적힌 내용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소방국 파견 협의안>

연수를 받는 곳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소방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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