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74화>
174화 태양은 뜬다 (4)
동아백화점의 붕괴 현장에는 아직 실종 상태로 남아 있는 희생자들의 생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언제 나오지…….”
“명환아, 제발 살아 있어야 해. 제발…….”
“엄마 아직 살아 있는 거지? 그렇지?”
모든 생업을 뒤로 미룬 채, 자신들의 가족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현장에서 밤을 지새우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이었고, 그중 어떤 남성은 사고가 발생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 숙식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소방관님. 생존자들 소식 있습니까?”
그리고 그 남성은 틈만 나면 무전기를 들고 있는 소방관에게 달려가 상황을 물어봤다.
“아직이요. 오늘 뚫는 쪽 지반이 약해서 작업 속도가 좀 느리거든요. 그나저나 선생님 오늘도 밤새우시지 않으셨어요? 저쪽 휴게 막사 가서 조금만 주무시다 오세요. 이러다 선생님이 먼저 쓰러지겠어요.”
그 모습에 연락을 담당하는 소방관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걱정했지만, 남성은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이런 상황에 제가 무슨 잠을 자겠어요. 아내가 저 안에 있는데.”
아내가 저 붕괴 현장 안에 있었다.
“여보, 나 오늘 백화점 가서 코트 하나만 사도 돼?”
“옷?”
“응. 나 곧 생일이잖아. 그래서 이따 지연이 만나서 명동 가기로 했는데, 그때 동아백화점 가서 코트 하나만 사려고. 헤헤.”
사고 발생 날 출근하기 전, 생일이라며 옷 하나만 사도 되냐고 애교를 부리던 아내의 모습을 기억했고, 안타깝게도 그게 남성이 기억하는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속보입니다. 현재 명동의 동아백화점이 무너져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희, 희정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아내가 쇼핑하러 간 동아백화점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으니까.
“김 팀장, 너 왜 그래?”
“팀장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런 자신의 모습에 동료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지만, 남성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내가 저기 있습니다…….”
“뭐?”
“희정이가 저기 있다고요!”
뉴스 한편에 자막으로 적힌 동아백화점이라는 문구에, 눈물을 터트리며 아내를 만나기 위해 명동으로 달려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명동으로 달려와 자리를 지킨 게 벌써 4일째였다.
‘살아 있을 거야. 희정이가 살아 나왔을 때 내가 옆에 있어야 해. 그래야 희정이가 내 얼굴 보고 안심하지…….’
혹시 자리를 비웠을 때, 아내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현장에서 아내의 생환을 기다린 것이.
그랬기에 남자는 자신을 걱정한 소방관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매번 이렇게 신경 써 주시고,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매일 현장에서 고생하는 그들의 고충을 잘 알아서였다.
“에이, 아닙니다. 당연한 걸요.”
“아니에요, 너무 감사해요. 꼭 이 은혜 갚겠습니다.”
자신의 감사에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자신처럼 매일 밤을 새우며 생존자들의 구조 작업을 진행하는 그들의 모습에 깊은 존경심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진실을 알기 전의 이야기였다.
‘하…… 오늘은 뭐 달라진 게 있나.’
남성은 구조 작업의 진행 상황을 알기 위해, 틈만 나면 핸드폰으로 뉴스 기사를 찾아보고 있었다.
‘분명 오늘 구조본부에서 수색지원팀을 더 보강한다고 했는데.’
현장에선 알 수 없는 전문가들의 현장 분석을 보기 위해 뉴스를 찾던 거였고, 그렇게 뉴스를 찾던 남성의 눈을 사로잡은 기사가 있었다.
<동아백화점의 붕괴 사고에 대한 진실과, 더딘 구조 작업의 이유.>
자신이 있는 동아백화점의 붕괴 사고를 다룬 기사였다.
‘붕괴 사고에 대한 진실이라고?’
제목부터 불안한 기운이 풍기는 기사에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가져다 댔고, 그렇게 한참 후 남성은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커질 사고가 아니었어…….’
붕괴 사고가 확산된 진짜 이유를 알게 돼서였다.
-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사님. 제가 어떻게든 이 일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니, 확실히 묻어 보겠습니다. 우리 동아를 위해서 말이에요, 하하하.
자신이 열어 본 기사에서, 현장에서 한 번 본 바 있는 박철민이라는 인간의 추악한 웃음이 핸드폰을 통해 흘러나옴에.
“이 X새끼들아. 니들! 니들 때문에…… 니들 때문에! 으허허허헝.”
이렇게까지 사상자가 늘어나고 작업이 늦어지게 된 이유가, 사실 동아백화점과 일부 소방관들의 비리 때문에 벌어진 사실이라는 걸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울분에 찬 고함을 토하는 건 남성만이 아니었다.
“아…….”
“내 아들…… 내 아들…….”
“나쁜 놈들아. 이게 진짜야? 이게 진짜냐고!!”
시간의 선후만 있다 뿐이지, 현장에 모든 사람들이 기사를 확인하고 고함을 질렀다.
“마, 맙소사…….”
“그 지시가 동아의 사주 때문이었다고…….”
갑작스런 사람들의 분노에 영문을 몰라 하던 현장의 소방관들 역시 그 녹음 파일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은 국민 모두의 모습이었다.
- 미친…… 뭐 더 빨리 무너져서 좋겠다고?
-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거 사실 아니죠?
- 맙소사, 소방관이란 사람들이 부실 공사를 덮으려 했다니…….
- 저놈들 사람 맞습니까? 저게 사람이 할 말이에요?
- 동아에서 사주한 거였어? 이 개 같은 놈들이. 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뭐? 잘 묻어 달라고?
- 죽여 버리고 싶다…… 진짜 앞에만 있다면 다 죽여 버리고 싶다…….
잘하면 쉽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재난이, 백화점의 주인인 동아와 몇몇 소방관의 비리 때문에 더 커졌다는 사실을 알고 모두 깊은 분노를 토한 것이다.
당연히 그 반응에 주체가 된 동아그룹과 소방본부가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동아 이 썩을 놈들아! 니들이 사람이냐! 뭐라고 말 좀 해 봐라! 니들이 사람이냐고!!”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동아는 모든 책임을 지고 이 사태에 사과하라!”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사용하지 않습니다. 동아는 무조건 보이콧합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번에 동아그룹이 저지른 짓에 대해 규탄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이게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들의 자세냐?”
“소방총감 나와! 돈 받아먹은 놈들 데리고 나와서 빨리 사죄해! 아니, 싹 다 옷 벗어!”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데 그걸로 돈놀이를 해? 나와! 나오라고 소방본부 이 썩을 놈들아!!”
종로에 있는 소방본부 앞은 분노한 시민들이 욕설과 함께 수십 개의 계란을 던져댄 덕분에 난장판이 벌어졌고, 그에 시작되는 건 정부의 대대적인 감사였다.
- 정부는 이번 동아백화점 사태에 대해 국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송스러움을 느낍니다. 강정희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과 경찰의 특별수사팀을 신설해 이번 사태를 일으킨 책임자들을 엄중 처벌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청와대의 대변인이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며, 이번 사태를 일으킨 책임자들의 엄중 처벌을 약속했다.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동아그룹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하겠습니다.”
“감사원입니다. 이번 일에 관련된 소방공무원 전원은 이 시간부로 전부 직위 해제됩니다.”
그에 따라 검찰과 감사원에서 동아와 소방본부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시작했으며, 그에 이번 비리에 조금이라도 이름을 올린 관계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검찰에 구속됐다.
<동아그룹의 강상도 이사. 구속 불응에 검찰 강제 구인 결정>
<검찰, 이번 동아백화점 구조 작업에 지시 결정에 관여한 전현직 소방공무원 7명 긴급체포>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니만큼, 여론의 눈을 의식한 검찰에서 단번에 칼을 빼 들어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그 책임자에 박철민이 포함된 건 당연했다.
파바바밧.
“박철민 씨. 녹음 파일에 나온 내용이 사실 맞습니까?”
“누구에게 지시를 받은 사안입니까?”
“사임된 최명호 국장의 지시를 받은 걸로 알려졌는데, 사실입니까? 한마디만 말씀해 주세요.”
문제가 된 녹음 파일의 당사자였던 박철민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검찰로 인계됐다.
“찍지 마세요, 찍지 마시라고요.”
창피한 건 아는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꼴사나운 모습으로 수사관에게 이끌려 검찰로 구속됐고, 그 영상을 집에서 보던 이성하는 비로소 후련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후…….”
자신을 괴롭히던 박철민이 드디어 응분의 대가를 받아서?
아니었다.
이번 비리 사건으로 소방본부는 국민들에게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사람을 구해야 할 소방관들이 돈을 받고 의도적으로 구조 작업을 늦췄다는 것에 국민들의 원성이 끊이질 않았고, 그에 소방본부는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을 동원해 아직 진행 중이던 동아백화점 구조 작업에 총력을 다했다.
- 저희 소방본부는 이번 동아백화점의 구조 작업에 전 소방인력을 총동원해서 아직 살아 있는 생존자분들을 구조할 것을 약속합니다.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소방본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생존자들의 구조 작업에 모든 힘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끝났네요.”
드디어 길고 길었던 동아백화점 재난 현장이 모두 마무리돼서였다.
[그러게. 진짜 수고했다. 스물네 명이 추가로 더 구조됐어. 저 사람들도 고마워할 거야.]
그런 자신의 말에 동조하는 렉스의 말처럼, 무려 스물네 명이나 되는 생존자를 추가로 구조하며 동아백화점의 구조 작업이 모두 마무리됐으니까.
하지만 후련한 반면, 씁쓸한 것도 있었다.
“이제 소방관 다시는 못하겠죠?”
이번 일로 정말 자신의 소방관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에서였다.
[에이, 아직 모르지. 소청심사 신청한 거 결과 아직 안 나왔잖아. 그것만 받아들여지면 징계는 낮춰질 수도 있다며.]
그 말에 렉스가 신청해뒀던 소청심사를 이야기하며 혹시 모른다고 이야기했지만, 이성하의 생각은 달랐다.
“글쎄요,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반려할 생각인 거 같아요.”
아직까지도 신청해 뒀던 소청심사의 접수가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늦어도 45일을 넘지 않는 게 소청심사 접수라고 들었는데, 이미 그 날짜는 넘긴 상황이었고, 그걸 보면 반려됐다고 보는 게 맞는 판단이었다.
“제대로 밉보인 거겠죠. 위에서.”
뜻은 좋았지만, 이번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본부에서 앙갚음을 한 정황이 확실해 보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완전히 마음의 미련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끝인가, 소방은.”
더 이상 자신의 인생에 아버지와 같은 소방관의 길은 없을 거라고.
[야, 한국에서만 소방관 하라는 법 있냐? 나라는 많아. 마음만 있으면 내가 있던 미국에 가서 소방관 하는 건 어때? 너 이제 영어도 잘하잖아. 봉급도 많고 말이야.]
그런 자신의 모습에 렉스가 안타까웠는지, 미국에 가서 소방관을 하는 건 어떠냐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봤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피식 웃었다.
“제가요? 시민권도 없는데요?”
다른 나라들도 그렇지만, 소방관에 대한 지원 자격을 가장 꼼꼼하게 따지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지금 이성하가 말한 시민권은 물론, 소방관을 가장 영웅으로 대하는 나라답게 미국에서 소방관이 되려면 그 지역 사회의 유지나 유력 인사의 추천서가 필요했고, 이성하의 경우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소방관 하면 멋지긴 하겠네.’
국제구조대에서 봤던 미국구조대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두근거리긴 했지만, 사실상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게 지금 렉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일어나서 벽면에 걸어 뒀던 당근복을 향해 걸어갔다.
“앞으로 이 옷을 입을 일은 없으려나.”
확실하게 미련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긴급소집이 떨어지면 바로 입고 출동할 수 있도록 방문에 걸어 뒀지만.
“에휴.”
앞으로는 입을 일이 없다는 생각에 옷장에, 미련이라도 정리하기 위해 옷장에 넣을 마음을 먹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띵동.
지금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그에 잠깐 머리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바로 문을 열며 방문한 사람을 확인했고, 그렇게 보게 된 얼굴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권 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