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73화 (173/235)

<강철 소방대 173화>

173화. 태양은 뜬다 (3)

이성하의 설득을 포기한 박철민은 그대로 소방본부로 돌아왔다.

“본부장님 안에 계신가?”

“네, 안에서 차장님이랑 기술국장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계십니다.”

“잘됐네, 내가 왔다고 좀 말씀드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상사인 본부장실로 찾아가 자신의 도착을 알렸고.

“들어오셔도 된답니다.”

“그래.”

그렇게 안에서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씩씩대며 안으로 들어갔다.

‘X새끼. 감히 나를 무시해.’

자신이 오늘 이성하에게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선배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어~ 철민. 이성하 설득은 어떻게 됐어?”

“설득이요? 방금 제가 그놈에게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아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 때문에 자신에게 일의 경과를 묻는 본부장을 향해 서운한 표정으로 대답하며 소파 한쪽에 거친 모습으로 앉았으며.

“말을 해야 알지. 그놈이 뭐라고 했길래 박 준감이 이렇게 화가 난 거야?”

그런 자신의 모습에 상석에 앉아 있는 차장이 이유를 묻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다.

“이번에 내려진 징계도 없애 주고, 앞으로 그놈이 소방관으로서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우리 간부회가 밀어주겠다고 했는데, 필요 없답니다.”

“뭐? 필요 없어?”

“네, 그딴 더러운 수작으로 승진하는 건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화가 치민 모습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거 진짜야?”

“그럼 제가 거짓말하겠습니까? 그 소리 들으면서 얼마나 열 받았는데요. 게다가 오히려 훈계까지 들었습니다. 저한테 어떻게 구조 작업도 안 끝났는데 이딴 소리를 하냐고 합니다.”

진짜냐고 묻는 차장의 말에, 울분을 토하며 약간의 과장을 더해 선배들에게 전했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박철민은 씩씩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도 생존자들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할 시간 있으면 현장에 가서 돌이라도 하나 더 들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 말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하,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에게 훈계를 들어야 하냐고요. 제길.”

박철민의 이야기를 들은 간부들의 표정은 당연히 좋지 못했다.

“감히 소방교 따위가 우리한테 훈계를 해?”

“요즘 애들이 문제가 많다고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네요. 하, 거참.”

이야기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감히 말단 소방교가, 그것도 현재의 여론을 만드는 데 막대한 책임이 있는 소방관이 반성은커녕 간부들을 향해 훈계를 했다는 후배의 말에 자존심이 깊이 상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를 설득해 여론을 돌린다는 간부회의 계획은 단번에 철회됐다.

“됐어, 그놈 끌어들여서 기자회견하려고 했던 거 취소해.”

박철민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상한 본부 차장의 결정 때문이었다.

“차장님, 그래도 지금 여론이…….”

그 말에 본부장이 그래도 여론 분위기를 생각하자며 말을 꺼내려 했지만.

“아니. 없어도 돼. 그깟 놈 인터뷰. 우리가 그거 없다고 죽기라도 하나? 여론 분위기야 그냥 몇 달 참으면 돼. 어차피 고개 한 번 숙이고 몇 달 조용히 있으면 끝날 거. 그렇게 하지. 내가 기분이 상해서 못 참겠어. 한 번 봐주면 계속 기어오를 놈들이라고 이놈들이.”

기분이 상한 차장이 바로 역정을 내며 이성하의 인터뷰 계획을 취소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그에 박철민은 들어갈 때와 달리 웃는 모습으로 본부장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래. 차장님 말씀처럼 몇 달만 지나면 알아서 흘러갈 일이야. 구조작업 끝나고 대충 죄송합니다하고 머리 한 번 숙이면 끝날 일이지.’

드디어 자신이 원한 방향으로 계획을 잡는 간부회의 결정에, 만족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진 박철민은 그대로 본부를 나섰다.

“정민아, 나 지금 퇴근하는데 어디야? 오늘 만나서 한잔하자.”

더 이상 신경 쓸 것도 없겠다,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기 위함이었다.

“에이, 그냥 나와. 내가 거하게 살 테니까. 오늘 엿 같은 일이 있었는데, 그거 던져 버리는 기념으로 한잔해야 돼.”

다행히 일이 잘 해결되긴 했지만, 원래 이런 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술로 간을 한 번 씻어 줘야 모든 게 잘 끝난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박철민이 모르는 게 있었다.

그와 다른 간부들의 생각처럼 여론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가라앉는 성질이 있지만, 반대로 탈 수 있는 장작만 있다면 얼마든지 거세질 수 있는 게 여론이었다.

“지금 지하 몇 층 수색 중입니까?”

“소방관님…… 오늘은 생존자 없었나요?”

“아이고, 내 아들…… 내 아들 살려 내라, 이놈들아. 으허허헝.”

심지어 현장에는 아직 구조되지 못한 요구조자들의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지키는 상황이었고,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번 구조 현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 오늘 몇 명 구조됐데요?

- 아까 영상 보니까 오늘은 생존자가 없다고 하네요. 안타깝게도 사망자만 3명 늘었어요.

- 하…… 안타깝네요.

- 내일부터 지하 5층 수색한다는데 거기는 좀 더 많았으면 해요.

- 많을 겁니다. 아까 뉴스에서 전문가가 하는 말 들어 보면 밑으로 내려갈수록 오히려 건물 상태가 좋아서 생존자 있을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 제발 생존자가 더 나오길 빕니다.

- 저도요 빕니다!

구조 작업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생존자의 숫자에, 많은 사람들이 그 숫자가 더 늘어나길 기대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현장의 소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여론의 분위기는 그 계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금보다 더 거세질 수 있었다.

생존자의 소식이 늘면 늘수록 좋아질 수도 있지만, 그에 반대되는 소식이 나오면 얼마든지 안 좋아질 수 있는 상황으로.

그리고 그 방향을 정하는 건 박철민에게는 안타깝지만 이성하였다.

“김 기자님. 지금 올리실 거예요?”

박철민이 그깟 놈이라고 무시했던 이성하가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어, 편집은 다 끝났어. 바로 시작할까?”

그 말에 김정호가 씨익 웃으며 노트북에 손을 올렸고, 그 말에 이성하는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올려 주세요. 사람들도 알아야 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덧없이 희생됐는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어떤가? 자네도 나중엔 나와 같은 준감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 거야. 아니, 준감이 뭐야? 잘하면 청장인 소방총감까지 될 수 있을 걸세. 자네의 영웅 이미지에 우리 힘이 더해지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거든. 하하하.”

아직 구조 작업이 다 끝나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향해 승진이니 뭐니 하며 웃음을 짓던 박철민의 모습이 떠올랐기에.

‘나쁜 놈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미련을 완전히 벗어던졌으니까.

그리고 그에 따라 김정호는 고민 없이 노트북의 엔터키를 눌렀다.

터억.

오늘을 위해 아껴뒀던 영상을 올리는 거였다.

또 무슨 영상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기자들의 세계에는 널리 이용되는 격언이 있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취재한 내용을 한 번에 풀지 말라는 격언이었다.

여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취재한 내용을 경중에 따라 단계별로 천천히 언론에 풀라는 뜻이었고, 그 격언에 맞게 가장 핵심이 되고 충격이 될 취재 내용만큼은 마지막을 위해 아껴둔 상태였다.

“최명호? 지금 박철민이 만나는 사람 최명호예요?”

곁에 있던 허석훈이 영상을 보자마자 처음 보는 듯, 놀란 표정으로 사임한 최명호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자신이 박철민을 미행하며 찍은 영상은 아직 이성하와 권일섭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자신이 녹화한 영상이 너무 충격적이라서였다.

“이런 X 같은 새끼들이.”

현장에서 녹음하며 들었던 그 추악한 내용에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을 정도였다.

“끄응…… 이 영상이 풀리면 소방본부 전체가 해체될 수도 있어요.”

나중에 내용을 들은 권일섭의 소방본부의 해체를 거론할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 그 당시 대화에 있었고, 지금 그 대화가 세상 밖으로 풀려 나왔다.

- 고생했네. 박 준감. 일은 잘 정리된 거지?

- 그럼요. 깨끗이 마무리됐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정리될 겁니다.

시작부터 무언가 냄새가 나는 음흉한 웃음이 오가는 음성 파일이었다.

- 정말 문제없는 거지?

- 그럼요. 특수구조대의 지휘권을 박탈해 놔서 구조작업은 국장님이 말한 대로 진행될 겁니다. 생존자들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우리 소방본부는 작업 속도에 방향을 맞춘 상태로 구조 작업을 진행하는 거죠.

현장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박철민이, 지금은 사임돼서 소방본부에 아무 권한이 없는 최명호의 지시대로 구조 작업을 진행한다는 황당한 대화가 흘러나왔고, 그 이유는 더 충격적이었다.

- 그래? 그럼 더 빨리 무너지겠군.

한때 소방본부의 정책을 결정하는 정책국장었던 사람이, 현장이 더 빨리 무너질 거라며 웃음을 지었다.

- 네, 그렇게 되면 말씀하신 대로 이번 동아백화점의 붕괴가 부실공사 때문에 발생했다는 증거는 없어질 겁니다. 이미 조사위원회도 그쪽으로 말을 맞추기로 이야기가 된 상태고요.

그에 현장 책임자라는 인간이 이번 백화점의 붕괴 사유를 조작하겠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었고, 그렇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서는 이번 사고로 발생한 생존자에 대한 염려는 없었다.

- 그래. 이게 맞아. 현장 놈들은 우회 작업이라는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는데, 이미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그래 봐야 뭐가 달라지냔 말이야.

- 맞습니다. 어차피 사망자는 발생한 상황입니다. 구조한다고 시간만 길게 끌어 봐야 사람들 이목만 더 끌고 더 머리 아파질 겁니다. 이럴 때는 과감히 시간을 앞당겨서 확실하게 구조할 사람만 구조하는 게 맞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이 된 이들이, 어차피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라면서 빨리 구조 현장을 종료시키는 게 최선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늘어놨던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더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다.

- 그나저나 동아에서 대우는 어떻습니까?

박철민이 은은한 목소리로 최명호에게 이번에 붕괴된 동아백화점의 모기업인 동아를 거론했다.

- 동아? 최고지. 자네도 듣게 되면 바로 오고 싶다고 할 거야.

그에 최명호가 피식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소리가 들렸고, 그 옆에서 다른 이의 목소리가 껴들었다.

- 이번 일만 잘 마무리해 주시면 제가 박 준감님 자리도 준비하겠습니다.

두 사람과 동석해 있던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 정말입니까?

- 네, 이번 동아백화점 건만 잘 덮어 주신다면 언제든 원하실 때 최 국장님과 같은 조건으로 모시겠습니다. 억대 연봉은 당연한 거고, 내년 서초구에 완공되는 저희 동아 아파트 한 채를 빼 드리죠. 차는 당연히 바꿔 드리는 거고요.

동아 관계자의 제안에 대답하는 박철민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 차 있었다.

-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사님. 제가 어떻게든 이 일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니 확실히 묻어 보겠습니다. 우리 동아를 위해서 말이에요. 하하하.

공무원이란 인간이 막대한 보상을 약속하는 남자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어떻게든 이번 사고를 묻겠다며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재생되는 영상을 이성하가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X새끼들.]

‘네, X새끼들이에요. 절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요.’

렉스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영상이 올라간 곳은 강철소방대의 팬 카페였다.

작성자 : 이성하

조회 수 3819

이성하의 이름으로 올라온 파급력 때문인지, 영상은 올라오기 무섭게 조회 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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